제223화. 대역죄
본래 연합 전대를 포함한 포르투갈 주둔군의 지휘권은 포르투갈 총독과 대서양군 사령관 양쪽에 모두 있었다.
어느 쪽의 명령이라도 따라야 할 의무가 포르투갈 주둔군에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포르투갈 주둔 함대의 임무를 수행 중이던 연합전대에 하비에르 후작의 연락을 받은 이항복의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을 받은 연합 전대는 1백 척의 조선무역선에 연합전대 소속인 4척의 왕무급 호위함을 딸려 산탄데르로 출동시켰다.
해당 사실은 대서양군 사령부로 지체 없이 보고되었다.
작전지역에 대한 모든 군사행동을 하나의 작전상황도에 표시해서 관리하는 조선 특유의 통합지휘소 체계가 대서양군에도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서양군 작전지역에서 움직이는 연합전단도 당연히 군사행동에 대한 보고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정리된 상황은 리스본에 위치한 대서양군 통합지휘소의 작전상황도에 표시되지만 북미 대륙 점령 작전을 지휘하는 전방 지휘소인 퀘벡 임시 지휘소의 작전상황도에도 똑같이 표기된다.
그로인해 이항복의 통보나 상의가 없었음에도 퀘벡 임시 지휘소에서 작전 지휘 중이던 대서양군 사령관 이억기도 해당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지휘권이 미치는 대서양 지역에서 벌어진 군사행동이었지만 사전에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는 것에서 이억기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대서양군도 작전상황을 조선군 최고 사령부와 조선군 원수부 통합지휘소로 보고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현황 파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사안이었다.
다만 이번에 벌어진 독단적인 연합전대의 작전이 이항복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 조심스러웠다.
당장 이항복은 총리대신, 그리고 조선군 원수와 함께 조선에 단 셋뿐인 1품의 관리로 포르투갈 총독이란 직책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부로 보고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이억기가 직접 포르투갈 총독부로 전신을 넣었다
이억기의 전신을 받은 이항복은 사실 당황했다. 이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이억기가 상황을 파악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항복은 하비에르 후작을 도와서 그와 자신간의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 접점은 결국 언젠가 에스파냐 왕실의 대를 끊는 비밀 작전에 필요한 것들을 에스파냐 내부에서 얻을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가능한 태왕이나 태왕과 가까운 고위 관리들은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억기가 덜컥 연락을 해오면서 이항복의 바람은 처음부터 어긋나 버린 셈이었다. 결국 이항복은 상황을 설명하는 전문을 이억기에게 보내야만 했다.
물론 자신의 속마음은 빠지고, 에스파냐를 돕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는 대략적인 상황설명이었다.
그 전문을 받은 이억기는 상당히 곤란해 했다. 국가급 전쟁에 조선군과 대한제국군이 발을 담근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문제 삼을 수 없는 상대가 벌인 일이었기에 이억기는 불만을 애써 내리누르며 조선 최고 사령부와 조선군 원수부로 상황을 보고했다.
해당 상황을 보고 받은 최고 사령부는 지체 없이 태왕에게 보고했다. 국가급 전쟁에 조선군이 개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최고 사령부의 보고에 광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런 태왕의 반응을 보고 받은 이순신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명령했다.
“상황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대서양군에 위기관리반 가동을 지시하라.”
한마디로 만약에 대비한 상황확인만 하고 그냥 두라는 소리였다.
하다못해 포르투갈 총독부로 조금 더 자세한 정황을 확인하는 작업이라도 할 줄 알았던 사령부 장병들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철두철미한 이순신의 평소 방식과는 전혀 다른 일처리에 이억기가 대서양 함대 제독으로 전임되어 나간 이후, 새로 해군 총사를 맡고 있는 우치적이 물었다.
“어찌 그냥 두신단 말입니까? 폐하께 상신하여 배를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독에 대한 폐하의 신임이 잘못 되었다 아뢰자는 말씀이시오?”
“그건······.”
당황하여 뒷말을 잇지 못하는 우치적에게 이순신이 빙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폐하의 신임이오. 우리가 왈가불가 할 사안이 아니란 소리요.”
“하지만 그러다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질 않겠습니까?”
“그러면 싸우면 될 일. 우리 군에 대한 폐하의 신뢰가 두터우니 그냥 두시는 것일 터. 우린 그런 폐하의 믿음에 보답하도록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오.”
“군을 믿고 폐하께오서 그냥 두시는 것이란 말입니까?”
“아니면 뻔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두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소?”
이순신의 반문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우치적이 물러났다.
그것으로 더 이상의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태왕이 묵인하고, 원수가 동의한 일에 사족을 달 정도로 간이 큰 이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항복의 지시로 이루어진 작전이 그대로 진행되게 되었다.
최고 사령부의 지시를 받은 대서양군 사령부는 곧바로 위기관리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조선군에서 위기관리반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관련첩보를 수집하는 일단의 정보작전 통합체로 위기상황 발생 시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일단의 대기전력도 동반한다.
대서양군 위기관리반은 정보 수집을 위해 곧바로 리스본에 기항해 있던 온조급 구축함 1척을 투입했다. 해당 구축함은 석탄을 만재한 채 최고속도로 산탄데르를 향해 출발했다.
연합전단 소속 범선들의 최고속도가 13노트인 것을 감안할 때 25노트의 최고 속도를 가진 온조급 구축함은 뒤늦게 출발했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연합전단 범선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이항복의 명령을 받고 투입된 연합전대 소속 범선들에는 전신장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정보 수집이 불가능했기에 취해진 조처였다.
아울러 유리급 순양함 1척과 온조급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진 긴급대응전력을 영국해협 인근까지 전개시켜 언제라도 출동이 가능하도록 대기시켜두었다.
그러한 대서양군의 움직임은 주둔군 사령부에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유사시에 대비해 작전 활동이 겹치는 경우 대서양군 지휘소에서 주둔군 사령부로 정보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이항복도 그런 대서양군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항복의 마음은 불안으로 흔들렸다. 대서양군이 이번 작전을 알게 된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통합지휘체계를 알게 된 까닭이었다.
당연히 조선군 최고 사령부도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란 점도 그때서야 이항복은 인지했다. 최고 사령부의 지휘관은 태왕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상황을 태왕도 안다는 뜻이었다.
무언가 물음이나 지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찌 답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태왕에게선 아무런 물음도 없었다. 그것이 이항복의 불안감을 더 키웠다.
‘태왕이 모르게, 태왕에게 상의 없이, 태왕의 허락 없이.’
이전엔 하지 않던 일을 하였기에 이항복의 그 불안감은 나날이 더 깊어갔다. 결국 버티지 못한 이항복이 황궁 전신소로 전신을 넣었다.
수신자는 총리대신이었다.
몇 시간 후, 총리대신이 태왕의 알현을 청했다.
같은 시간, 리스본의 이항복이 총독부 건물 앞마당에 거적을 깔고, 관복을 벗어둔 채 그 위에 올라 조선이 있는 동쪽을 향해 엎드려 죄를 청하였다.
석고대죄다.
이 상황에 ‘왜 이러시냐’ 따위의 물음은 불가하다. 그러지 말라고 부축하여 말리는 행위도 하지 못한다. 신하가 왕에게 직접 죄를 청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총독의 행동에 놀란 부총독은 황급히 전신소를 통해 그 사실을 태왕에게 보고했다.
총리대신인 이원익의 알현 요청에 이은 이항복의 석고대죄에 대한 소식을 접한 광해는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항복의 움직임에 묵묵히 그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던 태왕으로써는 생각보다 과격한 방식으로 설명이 도달한 것이다.
광해가 깊이 고심한 끝에 총리대신의 알현을 허락했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린 시간 내려진 태왕의 허락에 총리대신 이원익이 황급히 침전으로 들었다.
들어서기 무섭게 바짝 엎드린 이원익이 불안으로 흔들리는 음성으로 지난 시간 자신과 이항복이 무엇을 위해 움직여 왔는지 소상히 고했다.
에스파냐의 왕위 계승권을 확보하기 위해 황후에게 아내를 보내 에스파냐 공주를 초간택에 넣은 일부터 향후 에스파냐 왕실의 대를 끊기 위한 작전에 써먹고자 이항복이 하비에르 후작과 접점을 만들려 무리해서 이번 작전을 펼치게 되었다는 것까지.
“폐하의 윤허 없이 이런 일들을 하였으니 죽어 마땅하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바짝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대고 대죄를 청하는 이원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광해가 물었다.
“총리.”
“하문 하소서.”
“왕실과 조선을 위하는 그대와 총독의 충정은 이해하나 짐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죽여주시옵소서.”
다시금 바짝 엎드리는 이원익을 바라보던 광해가 밖을 향해 외쳤다.
“상선 게 있느냐?”
광해의 부름에 문이 열리고 상선이 허리를 굽혔다.
“예. 폐하.”
“도승지를 들라 이르라.”
“예. 폐하.”
상선, 알지의 답이 나오고 곧바로 문이 닫히더니 이내 누군가 서둘러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도승지를 부른다는 것은 광해의 처결이 무거울 것이라는 점을 내비치는 것이었기에 바짝 엎드려 있는 이원익의 목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런 모습을 광해는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후, 황급히 침전으로 든 도승지 허균에게 태왕의 명이 떨어졌다.
“왕의 귀와 눈을 막고 사사로이 움직인 총리대신 이원익과 포르투갈 총독 이항복을 파직한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해 당황하는 도승지가 바짝 엎어져 있는 이원익을 곁눈질 했다. 당금 조정에서 태왕으로 부터 가장 총애를 받아왔던 두 명의 신하가 동시에 파직된 탓이다.
문제는 그렇게 곁눈질로 본 이원익이 바짝 얼어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처결이 내려졌음에도 저런 모습이라는 것은 지금 내려진 태왕의 명이 처결의 시작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하긴 왕의 눈과 귀를 막은 죄는 대역죄였다. 광해가 이번 일을 어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당사자의 참형은 물론이고, 구족까지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홀로 움직인 일도 아니고 다른 이와 작당하여 함께 왕의 눈과 귀를 막고, 사사로이 군까지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바짝 엎어져 있는 이원익의 귀로 태왕의 명이 연이어 떨어졌다.
“지은 죄가 크다 하나 그간 세운 공이 또한 작지 않고 스스로 죄를 청하였으니 짐과 조선을 위해 뼈가 부서져라 일하여 이번 죄를 갚으라. 이원익을 초대 녹주도 관찰사로 임명하고, 이항복은 북미 총독에 임명하니 각자 부임처로 가 그 소임을 다하라.”
태왕의 명이 떨어지자 도승지가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정작 명을 받은 이원익은 눈물을 흘리느라 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들면서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각오했던 이원익은 부인과 아들들을 불러 마지막 인사까지 하고 나선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왕은 죄인인 자신을 녹주도 관찰사라는 높은 자리에 여전히 중요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아량에 감격한 이원익이 격정에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원익에게 광해가 말했다.
“죄를 공으로 씻으라. 하여 다시 짐의 곁으로 돌아오라.”
“폐, 폐하······.”
울음 섞인 음성으로 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원익을 광해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들의 마음이 사사로운 이익을 향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자칫 그것이 왕을 위하고 조선을 위한 일이라면 뒤에서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것으로 관리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과 상통하는 의미에서 지금의 솜방망이 처벌도 사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원익과 이항복을 이 일로 내칠 수는 없었다. 당금의 조정에서 광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신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광해는 이번 일을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다.
“짐의 뜻을 헤아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폐하······. 크흐흐흐흑.”
결국 이원익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노신을 태왕의 눈짓을 받은 도승지가 부축해 침전을 벗어났다.
도승지를 통해 도달한 전신으로 소식을 접한 리스본의 이항복도 하해와 같은 태왕의 아량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이렇게 끝날 것 같았던 일은 다음날 상황을 파악한 사간원에서 상소가 빗발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