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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21화 (221/325)

제221화. 하비에르 후작

리스본 주재 에스파냐 영사가 보낸 전령을 받은 에스파냐 정부는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다시금 영토를 빼앗길 수 없다는 강경파와 북미 대륙에 대한 대한제국의 대규모 점령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그렇지 않아도 불안했는데 이참에 잘 되었다면서 조선의 제의대로 하자는 온건파가 대립했다.

영토를 지킬 의지가 없다는 강경파의 비난에 이기지 못할 전쟁의 소용돌이로 나라를 몰아넣는다는 온건파의 현실론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이전이라면 감히 왕 앞에서 보이지 못했을 고성과 욕설들이 난무했다. 포르투갈 전쟁의 패배이후 떨어진 왕권을 대변하는 모습이었다.

낮게 한숨을 내쉰 펠리페 3세가 강경파에게 물었다.

“하면 그 작은 땅을 지키기 위해 조선과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

직설적인 펠리페 3세의 물음에 귀족들 사이에서 강경파 귀족들의 수장으로 여겨지는 하비에르 후작이 나서서 답했다.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오라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자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개척지를 늘여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더라도 우리가 이미 차지한 지역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협상을 벌여보자는 말입니다.”

논리상 트집을 잡을 수 없는 말이었다. 결국 펠리페 3세가 한 발 물러서는 제의를 했다.

“하면 그 협상을 후작이 맡아보겠나?”

펠리페 3세의 물음에 대전에 당장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협상에 성공한다면 에스파냐 정부 내에서 하비에르 후작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겠지만 실패한다면 국왕과 온건파의 조롱을 감수해야 했다.

자칫 그 과정에서 문제라도 발생해 조선과 애써 이룩한 화해가 깨질 경우 그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위험한 임무였다.

그로인해 펠리페 3세가 최근 국왕 반대파로 돌아선 강경파 귀족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하비에르 후작을 제거하고 강경파들을 누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국왕의 제의를 거부하고 발을 뺄 것이라는 귀족들의 예상과 달리 하비에르 후작은 펠리페 3세의 물음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후작의 답에 강경파 귀족들의 눈빛엔 불안감이, 온건파 귀족들의 눈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들 같은 눈빛이 서렸다.

그런 상황에서 펠리페 3세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럼 조선과의 협상은 후작이 맡아 성사 시키는 것으로 알겠네.”

그것으로 에스파냐의 권력 정점을 두고 펠리페 3세와 하비에르 후작 간에 벌이는 위험한 도박판에 주사위가 던져졌다.

승자는 확실한 권력의 우위를 가져가겠지만 패자는 손상되어 반토막 난 왕으로써의 위엄을 완전히 잃거나, 승승장구하던 세력을 빼앗기고 목숨도 위험하게 될 터였다.

그날 하비에르 후작은 곧바로 리스본으로 출발했다. 조선과 제대로 협상을 벌이자면 전신소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

에스파냐와의 문제가 불거져 어수선하던 시기 거제 건선단지는 광해의 특명으로 구축함보다 작은 중형 증기철선의 설계를 완료하여 건조에 대한 승인을 청하였다.

이 중형 증기철선은 조선의 내해가 된 서해를 경비하는 연안경비단에 배치될 용도였다.

그간 연안경비단이 사용해오던 장갑귀선들과 판옥전선들이 너무 낡아서 교체해야만 했는데 신규로 장갑귀선과 판옥전선을 건조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개발된 중형 증기철선의 전장은 150척(약45M), 전폭은 25척(약7M)으로 온조급 구축함의 절반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선체에 5천 마력 증기기관과 연결된 증기터빈 1개를 장비하여 최고속도 25노트(약46Km), 순항속도 15노트(약 27Km)를 달성하여 일칠함대의 함선들과 연합작전 구사가 가능하도록 개발되었다.

처음으로 증기터빈 하나로 구동과 발전을 동시에 이루는 통합증기터빈을 설치한 함체였다.

배기는 1개의 연돌로 이루어졌고, 석탄 적재공간의 부족으로 인해 항속거리는 일칠함대를 구성하는 신형 증기철선들에 크게 못 미치는 1천 해리(약1천8백Km)였다.

무장은 선수에 단장식 삼함포 1문, 선미에 일속포 1문을 배치하고, 좌우 측면으로 밀폐식 현식총좌 2문씩 4문을 장비하여 근거리 화력을 보강했다.

선미에 장착된 일속포는 연락선 격납고 위에 배치되어 사격점이 높았다.

선미에 마련된 격납고엔 연락선 2척이 수납되어 유사시 구조, 수색, 소형 선박 접근 등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다른 증기철선들에 비해 무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경비용도로는 차고 넘치도록 충실한 무장이었다.

실제로 이 함선의 전투력은 제후국들과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에 판매된 해모수급 전열함과 일대일 전투를 벌여 승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실 함대함 포격전으로 들어가면 구형 폭발탄을 쓰는 범선들은 탄두, 장약 일체형으로 제작된 금속탄피형 작렬탄을 사용하는 철선들과는 교전 자체가 어렵다.

장비한 포의 수량이 문제가 아니라 포의 사거리와 포탄 파괴력 및 치명도가 완전히 다른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형 폭발탄은 철선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여전히 유럽 내 여러 열강들이 주로 사용하는 쇠구슬 포탄의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종류의 포탄 모두 철선에 채용된 장갑판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현재 조선군이 사용하고 있는 작렬탄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따라 최근 장원 포탄개발조에서는 철선 파괴용 포탄을 새롭게 개발 중이었다. 조선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철선이 등장할 경우를 대비한 개발이었다.

이 신형 포탄에는 최근 개발이 완료된 무연화약이 채용되었다. 현재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는 무연화약은 조만간 조선군이 사용하는 모든 화약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광해는 거제 건선단지가 청원한 중형 증기 철선에 얼마 전 사망한 정경달의 이름을 붙여 정경달급이라고 명명하여 건조를 승인하였다.

이 정경달급 경비함은 20척을 건조하여 전량 서해를 경비하는 연안경비단으로 배치할 계획이었다.

아울러 거제 건선단지는 기밀 구획에서 건조될 신형 초대형 평면갑판 함선 건조계획에 대해 태왕의 재가를 요청해왔다.

이 신형 초대형 평면갑판 함선의 크기는 전장 9백척(약272M), 전폭 130척(약39M)로 그간 조선이 건조한 함체 중 가장 대형인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보다도 훨씬 컸다.

거제 건선단지가 그 용도도 모르는 이 선체를 굳이 제작하려는 의도는 처음 제작된 1만 마력 증기기관 6기가 모두 함께 사용하도록 설계된 이 배의 독특한 배기환경 때문이었다.

평면으로 이루어진 갑판 한쪽 구석으로 내몰린 함교에 설치된 하나의 연돌로 모든 배기연기가 제대로 배출되는지 명확한 운용 실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배기연기의 배출이 중요한 이유는 배기가 기관의 출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배기 배관은 병목현상을 일으키기 쉽고 배기에 영향을 주어 기관출력의 저하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거제 건선단지 기밀구획의 요청에 대해 광해가 재가하여 건조를 명하였다.

이 배와 연관되어 최근 장원 내연기관 연구소엔 하나의 부설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바로 헬륨기체 연구소다.

애초에 이 기체에 헬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휴스턴과 비슷한 맥락이었는데 광해가 실수로 말해버린 탓이었다. 태왕이 말하면 그것이 법이었던 조선으로써는 곧바로 그 기체에 헬륨이란 이름을 붙여서 사용했던 것이다.

이 헬륨기체 연구소는 헬륨의 대량채굴 및 보관, 수송 방법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채굴한 헬륨을 활용하여 하늘로 띄우는 비행체의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그 원활한 개발을 위해 열기구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이 모두 이 연구소로 합류한 상태였다.

광해는 헬륨과 내연기관을 접목시켜 비행선을 만들어내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생각을 가지고 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대량의 수송능력을 갖춘 대형 비행선이 아니라 일정한 수량의 폭탄을 싣고 하늘을 나는 소형 폭격 비행선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조선은 원하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지상군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급 무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물론 소형이라고는 해도 비행선의 특성상 부력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크기를 가져야 한다는 단점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시일이 지나 내연기관의 효율성이 증가하고 신뢰성이 확보되면 비행기의 개발에도 나서겠지만 그러기 전까지 비행선을 통해 제공권을 장악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만일 대공포가 등장한다면 비행선은 실제역사에서처럼 하늘 위에 떠있는 샌드백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조선을 제외한 현재의 화약 및 화포 수준에서 의미 있는 대공포가 출현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격추 위협에서는 상당기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격추 위험에서는 그렇게 벗어난다고 해도 비행선은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악천후에 약해서 운용상에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광해가 비행선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지난 포르투갈 전쟁과 같은 타 대륙 국가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와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먼 거리까지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해서 막대한 전비와 상당한 인명 피해를 감수해가며 긴 시간 전쟁을 치른 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충분히 경험한 까닭이다.

따라서 타 대륙 국가와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대신 비행선들을 통한 공격으로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공격 화력이 다소 부족하긴 하겠지만 여러 대의 소형 폭격 비행선이 날아와 왕궁 또는 군사 집결지를 폭격하는 것은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이시대로 보면 당하는 입장에선 악몽과도 같을 테니까

더구나 지형지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이동이 가능한 비행선은 굉장한 파괴력을 보여 줄 것이 분명했다.

광해는 항공모함과 비행선을 결합해서 실제역사에서 2차 세계대전 시대부터나 구사가 가능했던 원거리 항공제압작전을 실현해 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가로 개발되어야 하는 품목이 있었다.

바로 경량 금속이다.

비행선을 이루는 골격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부력이 적게 들어가고, 그것은 비행선의 크기를 결정짓는 기낭(氣囊)의 크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철산 산업단지가 개발해 놓고 있는 가장 가벼운 금속은 알루미늄이었다. 전기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개발이 완료된 것인데 그로인해 개발 기간이 비교적 짧아서 아직 상업적 생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알루미늄을 이용한 합금은 아직 꿈도 못 꾸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해는 별도의 제철 시설을 보유한 장원의 신철 연구소에 알루미늄 합금 연구를 명해 놓은 상태였다. 가벼우면서도 일정 이상의 강도를 가진 금속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다.

현대시대로 말하자면 항공기 제작용으로 사용되는 두랄루민과 같은 형태의 금속을 얻길 희망했던 것이다. 광해는 그렇게 완성된 경량금속으로 비행선의 골격을 만들 수 있길 희망했다.

그런 사항들을 결제하고 점검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던 광해에게 외교부 대신이 알현을 청해왔다.

광해의 허락으로 마주한 외교부 대신은 에스파냐의 역제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을 모두 들은 광해가 물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영토만 인정해주면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은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예. 북미 대륙에서의 추가적인 영토 확장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습니다. 또한 그 역제의를 우리 조선이 수용해 줄 경우, 에스파냐는 자신들이 확보한 지역 외의 북미 대륙에 대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배타적인 영유권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마치 아파트 공사현장에 알박이 하듯 들어앉겠다는 것이기에 통합적인 관리나 후일을 위해서도 에스파냐의 점령지를 인정해 달라는 전자의 요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후자의 조건도 조선이 점령한 이후엔 에스파냐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광해는 그 조건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외교부 대신은 기존 정책대로 진행하라는 태왕의 지시를 받고 돌아갔다.

태왕의 지시를 받은 외교부 대신은 곧바로 리스본에 머물고 있는 에스파냐의 하비에르 후작에게 전신을 보내 역제의가 태왕에 의해 최종 거부되었음을 통보하고, 조선의 기존 제의에 대해서 다시금 논의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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