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간택령(揀擇令)
태왕은 어린 대사가 애써 지키는 의례를 미소로 지켜보았다.
그 작은 손으로 내민 펠리페 3세의 국서를 도승지 허균이 받아 펼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태왕에게 건네주었다.
관례에 따라 에스파냐어와 한글로 동시에 쓰인 국서의 내용은 꽤나 장황했지만 축약하자면 이러했다.
지난날의 구원을 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것과 그런 양국의 화해를 더 깊게 하기 위해 양국이 혼인 동맹을 맺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추가로 펠리페 3세는 대사로 보내는 페르디난트 왕자의 교육을 맡아주길 부탁했다.
태왕은 에스파냐가 내민 화해의 손을 잡아주기로 했다. 이미 전쟁은 조선이 승리했고, 에스파냐가 먼저 왕자까지 보내 화해를 청했으니 외교적으로도 조선이 우위에 있음이 명확해졌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에스파냐의 노력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태왕이 국서를 받고 페르디난트 왕자의 교육을 맡겠노라 허락했다. 국혼의 경우 워낙 많은 청혼서가 들어온 이상 내명부에서 적절히 심사하여 혼처를 정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대사관의 경우는 이미 오래전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설치를 허락했다.
외교부는 태왕의 허락에 따라 위화도에 조성되어 있는 국제거리에 있는 대사관용 건물 하나를 내어주기로 했다.
아울러 대사관 설치를 위한 인력과 경비 병력을 준비되는 대로 에스파냐의 왕도인 마드리드로 파견하겠노라 보고하여 그 자리에서 태왕의 승인을 얻었다.
승인을 내린 광해는 주(駐)에스파냐 대사의 인선을 총리대신을 위시한 내각에 일임하여 복수의 후보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 임명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련의 사신과의 만남이 끝나고 돌아가려는 페르디난트 왕자를 광해가 불렀다. 불안해하는 디에고 백작의 표정에 광해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귀국의 왕이 짐에게 부탁한 것이니 앞으로 조선 왕실의 교육기관인 종학에서 가르쳐 보고자 한다. 그 전에 태자와 안면을 트고자 하는 것이니 대사는 걱정하지 말라. 왕자는 날이 저물기 전에 영빈관으로 돌려보낼 터이니.”
태왕의 말에 비로소 안도의 표정이 되는 디에고 백작을 두고 태왕이 페르디난트 왕자를 대동하고 움직였다.
그런 태왕과 페르디난트 왕자를 디에고 백작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어린 탓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걱정한 탓이었다.
그렇게 페르디난트 왕자를 데리고 태왕이 향한 곳은 태자궁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태자는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 페르디난트 왕자를 꽤나 좋아했다. 동생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태자에겐 동생같이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피부색도, 눈동자 색도, 말도 달랐지만 그런 건 태자에게 큰 차이로 보이지 않았다. 당장 황궁만 해도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서 관리나 환관, 궁녀들로 활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두 어린 소년들은 외모의 차이는 크게 상관치 않는 듯 보였다.
그런 두 소년을 남겨두고 광해가 태자궁을 떠나 장원으로 향했다. 페르디난트 왕자는 해가 지면 영빈관인 이화관으로 보내주라고 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광해는 장원에 위치한 내연기관 연구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다고 내연기관이 완성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몇 년 이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내연기관은 생각 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연료를 고르게 분사하는 기화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 가지의 개량을 거쳐도 같은 문제가 지속됨에 따라 결국 연료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한 뒤로 내연기관 연구소는 연료 정제와 시추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결과물을 얻었는데 바로 태왕이 그토록 원했던 헬륨가스였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광해는 헬륨을 대량으로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소의 연구자들과 개발 중이었다.
문제는 만주에 위치한 시험 시추시설에서 나온 헬륨가스의 양이 극히 작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광해는 현대의 기억 속에서 미국의 텍사스가 최대매장지중 하나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시추 기술진을 파견했다.
텍사스는 기초적인 수평 시추기로도 원유채굴이 가능한 유정을 다수 가지고 있는데다 대량의 헬륨가스 매장지도 가지고 있었다.
시추 기술진은 그런 헬륨 매장지를 찾는 것을 임무로 띄고 있었다.
그렇게 파견된 시추 기술진을 보호하고 개척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해병에 새롭게 구성된 해병 개척단이 함께 파견되었다.
1척의 유리급 순양함, 그리고 2척의 온조급 구축함과 5척의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으로 구성된 이 개척단은 전투함과 수송선을 운용하는 수병들 외에 2백 명의 해병과 3백 명의 건설 및 시추 기술자들, 그리고 2백 명의 농업 등 생존 기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원수에 비해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이 많은 것은 대량의 보급품과 석탄을 만재해서 초기 보급 없이 개척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렇게 대량 매장지를 찾는 노력과 더불어 장원에서는 헬륨가스를 대량으로 채굴할 수 있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었다.
*****
왕실의 혼사는 왕명으로 시작되지만 그 과정은 내명부에서 주관한다.
현재 왕실의 가장 웃어른은 인조의 후궁이었던 인빈 김 씨였지만 그녀가 정비가 아니었기에 황실의 가장 어른은 현재 황후였다.
그녀는 태자의 혼례를 가능한 조선의 예법에 맞춰 진행하려 애를 썼다.
다만 태왕이 간택령을 내리면 그날부로 조선의 모든 혼례가 금지됨으로 먼 타국의 공주들까지 후보선상에 놓이는 이번 혼례의 특성을 감안하여 중전은 관례를 약간 비틀어 초간택과 재간택까지는 간택령 없이 진행하고자 하였다.
이것에 대해 황후가 태왕의 허락을 구해오자 대전 조회에서 논의가 되었는데 과거 예조의 업무를 이관한 교육부 대신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관례를 그리 어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연유였다.
그런 교육부 대신에게 광해는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예를 지키는 것이 중하다고는 하나 현실을 외면하는 예는 그 가치를 보존하기 어렵다.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예를 고쳐 쓰되 마음가짐과 정갈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하오나 그리 현실에 맞추어 예를 바꾸다보면 모든 예가 무너져 무지한 이들의 나라가 될까 걱정이 되옵니다.”
“짐이 선황의 장례를 9일간에 치르겠노라고 선언했을 때 세상에 종말이 올 것처럼 떠들어 대던 이들이 있었다. 하나 세상은 여전히 옳고 그름을 제대로 따질 줄 알며 여전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한다. 예와 허례허식을 혼동치 말라.”
다소 차갑게 내려앉은 광해의 음성에서 그가 탐탁치 않아한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인가. 교육부 대신의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그런 교육부대신을 일별한 이원익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폐하의 말씀이 지당하시오나 관례를 그리 쉽게 고칠 수 없다는 교육부 대신의 청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사료되옵니다.”
“하여 어찌 하자는 것인가?”
“폐하께오선 간택령이 내려지면 민간의 혼례를 금하여 백성들의 불편이 장기화 되는 것을 우려하시는 것이오니 간택령을 내리시되 금혼령은 피하심은 어떠하신지요?”
이원익의 청에 광해가 미소를 그렸다.
“그것 참 좋은 방법이로다. 교육부대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소신도 총리대신의 의견이면 족하다 사료되옵니다. 폐하.”
“하면 그리하라. 간택령을 내리되 금혼령은 피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것으로 광무9년, 서기로는 1611년 9월 12일을 기해 조선 전역에 태왕의 간택령이 내려졌다.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이 대한제국의 종주국이니 대한제국에도 동시에 간택령이 내려졌다. 다만 조회에서 논의된 대로 금혼령은 수반하지 않는 간택령이었다.
많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위한 황제이자 태왕의 배려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렇다고 간택령 중에 혼례를 올리는 백성들은 없었다.
백성들은 잠시 자신들의 혼례를 미룸으로써 대한제국의 황제이자 조선의 태왕인 자신들의 군왕에 대한 예를 다하고자 했다.
조선을 포함해 자그마치 12개 국가에서 혼례가 정지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대월에 대한 원정 준비로 여념이 없던 남진은 제국의 경사인 국혼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전쟁을 벌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와 국혼이 끝난 후로 원정을 미뤘다.
그것은 조선이 강제한 일도, 그러길 바란다고 말한 적도 없는 상황에서 남진의 왕과 조정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대한제국이라는 울타리에 놓여 있는 제후국들에게 종주국인 조선의 위상이 어떠한 것인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인 셈이었다.
간택령이 떨어지자 조선의 권문과 명가는 물론이고 제후국 왕실과 명가에서 수천 통에 달하는 청혼서가 들어왔다.
제후국들의 경우 거리상 전신소를 통해 그 많은 청혼서가 들어온 탓에 며칠간 전신소가 24시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을 정도였다.
황후는 그렇게 들어온 수천 통의 청혼서를 가지고 왕실의 여인들과 논의하여 초간택에 들 30명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그런 황후에게 총리대신인 이원익이 사사로이 부인을 보내 조심스럽게 한 가지 청을 넣었다.
에스파냐의 공주를 초간택에 넣어달라는 청이었다.
자신 가문의 여식을 넣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먼 타국의 공주를 넣어달라는 청이었기에 그것이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던 황후는 총리대신의 아내가 보는 자리에서 조용히 에스파냐 왕실의 청혼서를 초간택 단자에 넣음으로써 그 청을 가납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황후의 결정을 전달받은 이원익이 다시 자신의 아내를 보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황후는 그런 총리대신의 행보를 아직까지는 묵묵히 수용하고 있었다.
초간택을 받은 30명의 후보 중에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공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파냐의 공주만 초간택을 받을 경우 외교적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는 것을 황후가 감안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초간택을 받은 여인들이 모두 궁으로 들어와 재간택을 받기 위해 경쟁에 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황후는 총리대신을 통해 초간택을 받은 모든 여인들의 가문에 내년, 그러니까 광무10년, 서기로는 1612년 1월 15일까지 궁에 입궁하라는 명을 내렸다.
거리가 먼 타국의 공주들까지 섞여 있었던 터라 기간을 넓게 잡아 오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한 배려였다.
황후의 그 명은 에스파냐 왕실은 물론이고,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실에도 포르투갈 총독부의 전신소를 통해 동일하게 전달되었다.
세 나라의 왕실은 당황했다.
결정이 나서 결혼하러 오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후보자들, 그것도 29명과 경쟁하기 위해 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절차가 있는지도 몰랐던 세 나라 왕실로써는 난감한 절차였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청해놓은 혼사를 먼저 깰 수도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조선이라는 강대국이었다.
무역선단 하나를 강제로 억류했다고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수십만의 대병을 보내 포르투갈을 병탄해버린 군사대국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라의 황실에 청혼을 했다가 먼저 파혼을 하자고 나설 수는 없었다. 자칫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일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끔찍한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 나라 왕실은 조선 황실의 요청에 따라 공주들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수송편에 대해 리스본의 포르투갈 총독부로 문의했다.
이항복은 최근 대서양함대로 배속된 초도분 일칠함대와 함께 대서양함대 제독으로 발령되어 온 정경달에게 도움을 청했다.
71기동함대 사령에서 대서양함대 제독으로 전임되어 온 정경달은 이항복의 요청을 즉각적으로 수용했다.
조선 황실의 경사를 위한 일이었기에 감히 재고 자시고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 나라의 공주를 수송할 것이었기에 정경달은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 한척에 대해 이항복의 도움을 받아 내부개장을 실시했다.
개장이라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몇 개의 선실을 조금 화려하게 꾸며서 세 나라의 공주가 긴 여정 동안 불편함 없이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그녀들을 수행할 시녀들과 경호 인력이 머물 공간도 배안에 별도로 마련되었다.
그런 공간들을 꾸미고, 그녀들이 필요한 물자들을 실고도 공간이 많이 남을 만큼 탈해급은 거대한 선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개장된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을 유리급 순양함 1척과 온조급 구축함 2척이 호위하여 조선으로 출발했다.
그 함대에는 추가로 석탄과 보급품을 만재한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 1척이 추가로 딸려 있었다.
태자비가 될지도 모를 공주들이 타고 있는 배에 감히 석탄 등 보급품을 실을 수 없었던 정경달이 낸 고육지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