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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14화 (214/325)

제214화. 욕심들

궁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던 대신들의 영접을 받으면 환궁한 광해는 곧바로 대전으로 향했다.

그렇게 환궁과 동시에 열린 대전회의에서 광해는 제국 최고회의의 결과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광해는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남진이 대월(大越)을 원정하길 청원하여 그것을 허락하였다.”

그랬다. 남진의 왕인 마림이 제국 최고회의 와중에 대월을 원정하고자하니 그것을 허락해 달라 황제에게 청원했던 것이다.

나고야와 동일본을 제외하고 제후국들 중 가장 작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남진은 광동성을 제외한 광서성과 복건성엔 이렇다 할 평야가 없어 항상 식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었다.

조선을 통해 막대한 양의 식량을 수입해 간신히 부족분을 채우고 있었지만 그로인한 국부 유출이 심각해서 대한제국 제후국들 중 발전이 가장 더딘 나라였다.

결국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외부 원정을 통한 식량생산지를 확보하길 원했던 것이다.

남진의 요청에 대해 황제가 제후국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 모두가 동의 했던 것은 남진이 황제로부터 외정에 대해 허락을 받을 경우 자신들로 그럴 수 있게 되리란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 속내를 알면서도 광해는 제후들의 의견을 가납해 남진의 외정을 허락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남진의 왕은 일총과 육군용 화포의 구매를 청원했고, 제후들의 동의를 확인한 광해가 그 청을 수락했다.

그 일이 조선의 대전에서 다시 거론 된 것이다.

남진의 외정에 대한 내각의 평가는 무덤덤했다. 전장이 되는 지역이 조선의 영토와 접해있지 않아 영향이 적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군을 대표한 원수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원정의 대상인 대월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남진이 원정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고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그 와중에 신세계 원정이 본격화 될 경우 뜻하지 않게 남진이 두 곳의 전장에 동시에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 된 것이다.

그로인해 남진이 신세계 원정 대열에서 이탈할 경우 그 부담을 조선이 지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었다.

그런 원수부의 우려에 대해 광해는 꽤나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렇게 추가로 투입된 조선의 전력만큼 결실을 더 가져오면 되겠지.”

광해의 그 말로 군부가 우려를 거두자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그 논의가 다시 걸림돌을 맞은 것은 남진에 공급할 지상군용 화포로 광해가 일포를 거론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광해는 폭발탄의 반출도 함께 승인할 의향을 내비쳤다. 그것에 원수부가 다시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간 조선의 무기 반출 기준대로면 지상군 화포에서 조선 철포 이상은 수출 불가였다. 지상 전투의 특성상 조선군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병사들을 보호할 마땅한 장비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포와 폭발탄을 지상군용 화포로 수출하는 것에 원수부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원수부의 반대를 광해는 이해했다.

그럼에도 지상군용 일포와 폭발탄의 수출을 진행하려는 이유는 일포를 장비한 해군 함선들을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로 이미 판매할 것을 승인했던 까닭이었다.

강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철포였던 일포의 경우 제작과정에 필요한 기술이 그렇게 심도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조선 철포 정도의 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에 초보적인 강선 기술만 확보하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강선 소총을 생산해본 경험을 가진 유럽의 국가들 중 철포 생산 기술이 가장 발달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곳이 잉글랜드였다.

그런 잉글랜드가 일포를 복제해 내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잉글랜드는 이미 폭발탄을 복제 생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잉글랜드를 시발점으로 일포의 복제품들과 폭발탄이 유럽 여러 나라의 지상군으로 보급되기 전에 제후국들에게 선제적으로 공급하여 최대의 효과를 거두려는 것이었다.

광해는 그렇게 일포와 폭발탄을 제후국들에게 선제적으로 공급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이름을 쓰는 제후국 병력의 화력 보강을 꾀하고 그것으로 주변국들에게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주는 공포효과를 극대화하길 원했던 것이다.

거기다 아직은 다른 나라들이 보유하지 못한 나름대로 신무기에 해당하는 일포와 폭발탄을 공급함으로써 조선이 제후국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이 결코 가볍지 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광해의 설명으로 태왕의 생각을 이해한 원수부가 반대를 철회함으로써 남진에 대한 일총과 일포, 그리고 폭발탄의 수출이 최종 결정되었다.

다만 광해는 총과 포의 성능과 화력을 배가시키는 금속탄피형 총탄과 포탄의 수출은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남진군에는 이미 일총과 함께 기술이전이 이루어졌던 종이탄피형 소총용 범용탄과 마찬가지로 장약, 탄두 일체형 종이탄피 포탄의 제작 기술이 전수될 예정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포의 장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신기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아울러 광해는 이번 남창 사태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전신장비를 제후국에 개설되어 있는 조선 사무국에 일괄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그것을 통해 광해와 제후들간의 소통을 강화하여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반목을 방지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정들을 광해가 지체 없이 시행하도록 명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친 광해는 황후와 태자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궁전으로 향했다.

*****

황자에 대한 태자 책봉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아직 어려서 그 자질을 확신할 수 없긴 했지만 유사시 태자가 존재하고, 아니고의 차이를 이번 사태로 광해가 절감한 까닭이었다.

그로인해 후계구도가 명확해지자 태자의 성혼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급물살을 탔다.

다소 미온적이던 조선 권문, 명가들도 차기 조선의 태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가 될 태자와 자신들의 여식을 맺어주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식을 포르투갈 총독 겸 남포르투갈도 관찰사인 이항복을 통해 접한 잉글랜드의 애덤스 백작이 잉글랜드 왕실과의 혼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조선과의 협력보다는 그레이트브리튼의 완성에 더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던 제임스 1세가 그 일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하고 나선 것은 애덤스 백작도 예상외였다.

사실 제임스 1세는 조선왕실과의 혼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스튜어트 왕가가 유럽 여러 나라가 그렇듯이 조선 왕위, 나아가 대한제국 황위 계승권을 얻을 수 있길 바랐던 것이다.

자손이 적다고 알려진 조선 왕실의 대가 끊길 경우 스튜어트 왕가가 조선과 대한제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동양, 특히 조선 왕실의 왕위계승권에 대한 지독한 폐쇄성을 미처 알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여하간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잉글랜드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잉글랜드와 함께 조선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프랑스가 덩달아 끼어들었다.

그랬으면 그저 웃고 말았을 그 일에 과거의 앙금을 떨쳐낼 겸 양국의 국혼을 성사시키자며 에스파냐가 발을 담그면서 상황이 변했다.

이항복이 유럽의 왕위 계승권에 대한 정보와 함께 유럽 최대 왕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총리대신에게 전한 것이 기름을 부은 격이되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1세가 했던 생각을 이젠 총리대신인 이원익이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잘하면 에스파냐는 물론이고, 신성로마제국도 전쟁 없이 집어 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스파냐 왕가나 신성로마제국 황가의 대가 끊기길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만드는 방법은 한 두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그 모든 속내를 태왕에게 곧이곧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런 협작질을 경멸하는 것이 태왕의 성품이었기에.

그래서 이원익은 결심했다.

오욕은 자신이 뒤집어쓰고, 만세의 영광은 조선이, 자신이 충심으로 섬기는 조선의 왕실이 가지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런 총리대신 이원익의 전신이 리스본에 있던 이항복에게 보내졌다.

총리대신의 전신을 받은 이항복은 그 계획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다. 문제는 에스파냐와 신성로마제국의 후대를 태왕이 모르게 인위적으로 끊어놓아도 좋은 가에 대한 것이었다.

몇날 며칠을 고심하던 이항복이 총리대신에게 답신을 보냈다.

<조선과 왕실을 위해.>

답신을 받은 이원익은 이항복이 태왕에게 포르투갈 총독의 자리에 연임을 청하는 장계를 올렸다는 소리도 함께 들었다.

최근까지도 귀국 준비를 서두르던 이항복이었으니 그가 포르투갈에 남으려는 이유는 자신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 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으로 이항복의 결심을 읽은 이원익은 서둘러 다른 대신들을 모았다. 이항복의 포르투갈 총독 연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신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광해의 입장에서 이항복이 포르투갈을 조금 더 맡아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본토에서 먼 해외 영토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항복의 일처리는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북부 포르투갈을 분할 통치하는 제후국들이 파견한 행정관들간의 중재에도 능숙했고, 피점령지 백성들인 남포르투갈인들에게 칭송을 들을 정도로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다만 번왕에 준하는 자리에 한 사람을 오래 두고 있는 것에 대한 내각의 반대가 걱정이었는데 그것을 묻는 대전 조회에서 오히려 내각이 적극 찬성하는 덕에 큰 걱정을 덜었다.

따라서 이항복의 포르투갈 총독 겸 남포르투갈도 관찰사의 임기는 2년 더 연장된 광무 11년, 서기로는 1613년 12월까지로 연장되었다.

그에 따라 올 9월에 출발할 예정이었던 신임 총독에 대한 인선 작업도 중단됐다.

관련한 일들이 마무리된 6월 중순, 잉글랜드 대사와 프랑스 대사가 정식으로 국혼 청혼서를 왕실로 접수했다.

자국의 공주를 태자의 배필로 삼아달라는 청이었다. 에스파냐의 정식 국혼청원을 담은 펠리페 3세의 국서를 가진 전권대사는 현재 에스파냐를 출발해 조선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체결된 조선과 에스파냐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따라 대사관 설치의 임무도 띄고 있었다.

외교부 장관을 통해 해당 사실을 보고 받은 광해는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다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미 인종구성으로는 글로벌 시대로 접어든 조선이었다. 그런 조선의 중심인 왕실이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성혼을 시킬 수 없다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자칫 그것이 권력층이 순혈주의로 흐르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후국 중 하나인 카자흐나 위구르, 준가르의 경우엔 피부색이나 눈동자 색이 다른 인종들도 많았고 그들도 대한제국의 백성으로 잘 어울려 살고 있었다.

거기다 요즘은 포라중이나 마드라스, 아프리카 요소요소에 설치된 해외 영토를 통해 다양한 인종들이 조선 본토로 이주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들이 차별 받지 않도록 법까지 만들어 반포한 왕실이 오히려 그 차별을 선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왕실 혼사의 경우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하는 내명부의 주인인 황후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조차 조선인이 아니라 명나라 공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예상외로 외국 왕실의 공주들도 나름대로 공정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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