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12화 (212/325)

제212화. 황제의 포부

작전상황도를 바라보며 연신 쏟아지는 보고를 듣고 있던 이순신의 귀로 다급한 통신장의 보고가 들려왔다.

“남창의 내금위 전신마차에서 전신이 들어옵니다!”

이순신을 비롯한 모두가 그 외침에 통신실로 시선을 집중했다. 잠시 후, 전신을 모두 받아 적은 통신병이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태양 속 삼족오 건재! 폐하가, 폐하가 무사하시답니다!”

통신병의 외침에 지휘소 내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 꼬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이순신이 황급히 통신실로 다가왔다.

“재차 확인하라. 암구어말고 비화통신으로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고,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

이순신의 명령을 받은 통신수가 비화책을 꺼내놓고 해당내용을 암호로 작성해서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타전했다.

잠시 후, 내금위 전신마차에서 발송한 답신이 들어왔다.

“일단의 무장 반란이 명나라에서 발생. 위기의 순간 군사고문단 병력이 합류하여 태왕전하 안전 확보! 현재 명나라 금의위와 중앙군단, 대한제국군이 합류하여 폐하의 안전을 확보하고 있음. 모든 상황 내금위장이 직접 통솔!”

“상대의 신분은?”

“내금위 전신마차병의 고유 식별암호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진짭니다!”

환희에 물든 전신수의 답에 이순신이 비로소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미소 지었다.

“좋아! 현재 군의 대비상황 전달하고 폐하의 비답을 청해라.”

“예. 원수님.”

이순신의 명을 타전한지 얼마 후, 다시금 내금위 전신마차에서 발송한 답신이 도착했다.

“군사 행동 일체 정지. 각 군은 각자의 원위치로 돌아가 대기하라.”

내용을 전달하는 통신병도, 그것을 들은 통합지휘소 요원들과 이순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이 역력했다.

“다시 확인해. 폐하의 명이 정확한지도 다시 확인하고!”

이순신의 명에 통신병이 전신을 보낸 직후, 답신이 날아왔다.

“이 원수. 군을 모두 정위치 시키시오. 짐은 무탈하오.”

답신을 읽은 통신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순신이 말했다.

“폐하. 그럴 수 없습니다. 폐하의 안전을 조선군이 직접 확보하기 전까지 군은 그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타전해.”

결연한 이순신의 명에 통신수가 비화책을 통해 암호로 작성한 내용을 타전했다. 그리고 또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내금위 전신마차와 연결된 전신기가 신호음을 토해냈다.

그것을 받아 적어 비화책을 놓고 해독한 통신병이 내용을 읽었다.

“작은 적에게 놀라 기준을 흩트리지 마시오. 명은 짐의 나라요. 짐의 군대가 짐의 나라를 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아니 될 일. 그러니 이 원수. 출발 전에 경이 올렸던 청원에 대한 짐의 답을 기억하고 있다면, 부디 그 뜻을 따라주시오.”

통신병이 읽은 전문에 이순신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 명나라 외유에 대해 이순신이 광해에게 청원을 한 것은 딱 한번, 호위 병력에 관한 문제뿐이었다.

2백이란 호위대의 숫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이순신과 원수부의 참모들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던 호위 병력의 수는 2개 병단, 2만이었다. 사전 전개되고 있는 2개 기동병단을 모두 남창까지 대동하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청원하기 위해 태왕과 독대했던 그날의 대화를 이순신이 떠올렸다.

“짐의 나라에 짐이 가는 것이오. 그런 일에 그처럼 대규모의 병력을 동반한다는 것은 짐 스스로 대한제국이 모래 위에 지어진 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오.”

“하오나 폐하. 명분은 그럴지나 현실은······.”

“현실은 이상이 만들고, 이상은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짐은 생각하오. 그러니 내 나라, 내 백성, 내 제후를 믿어봅시다. 짐도 믿지 않는 그들이 짐과 조선을, 나아가 대한제국을 믿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으니.”

“하오나 폐하······.”

불안하게 부르는 이순신에게 광해가 말을 이었다.

“괜한 고집이 아니오. 역사상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형태의 제국이기에 이제야 땅이 굳기 시작하고 있소. 제국의 어딘가는 그런 제국을 흔들어대려는 이들이 있을 터, 짐이 제후들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반드시 사달을 부를 것이오. 짐은 그것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소.”

“폐하의 그 뜻을 제후들이 알기는 하겠는지요?”

“보여주지 않으면 어찌 알겠소. 하니 이번 기회에 보여주려 하는 것이오. 짐이 제후들을 믿는 다는 것을. 위험하다 말하는 이 일을 굳이 하려는 것은 그것으로 저들과 짐의 결속이 강해지고 그만큼 제국의 기틀이 단단해 지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오.”

“폐하······.”

여전히 불안해하는 이순신의 음성에 광해가 미소를 그렸다.

“더는 조선을 주변국들과의 전쟁을 걱정하며 사는 나라로 남게 할 수는 없소.”

“지금 조선의 힘은 자웅을 겨뤄 이기지 못할 적이 없을 만큼 강성하옵니다. 하온데 어찌 걱정하시옵니까?”

“조선만 지키고 앉아 있을 것이라면 경의 말이 맞을 것이오. 하나 경도 직접 보고 겪어 보았으니 알겠지만 유럽의 열강들은 이미 본격적인 세계 식민 경쟁에 뛰어들어 있소. 우리도 그들과의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근방에서 서로 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나가야만 하오.”

“소신이 직접 부딪쳐 보았으나 그들과의 싸움에서도 조선군은 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렇겠지요. 경과 우리 조선군 장병들을 믿소. 하나 그들과의 싸움에 동원해야 하는 병사들은 적지 않을 것이고, 먼 거리를 가야 할 것이오. 지금 포르투갈에 있는 병력이 순수하게 조선의 병사들로 이루어졌다면 그 부담을 어찌 모두 감당할 수 있겠소. 또한 만에 하나 그 부담을 노리고 본토를 도발해 오는 주변국이 있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지어야 하는 2중의 부담은 또 어찌 하고.”

“명과 후금을 정벌하시어 아예 복속 시켜 조선의 강토로 삼으시면 부족한 병력은 채우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나이까?”

“그들이 온 마음으로 조선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시오?”

“그건······.”

선뜻 답하지 못하는 이순신에게 광해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많은 내분을 겪어야 할 것이오. 자신들의 나라를 갖고자 하는 열망은 그토록 무서운 법이니. 그것을 막기 위해 쏟아내야 할 노력은 외정으로 쏟아야 할 힘을 갉아먹을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런 헛된 소모를 겪고 싶지 않소.”

“하오나 만주 4도나 서부 3도의 경우엔 그런 소요가 일어나지 않고 있나이다.”

“비교하여 지금이 낫다고 판단하니 가능한 일이오. 적어도 독립하자고 나설 때보다 지금이 더 풍족한 삶이라는 것을 동족들이 사는 제후국들을 두 눈으로 보며 느끼고 있을 테니까.”

긴 이야기로 목이 탔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찻물을 한 모금 마신 태왕이 말을 이었다.

“더구나 조선은 그들에게 차별을 두지 않소. 압박도 주지 않으며 원한다면 언제라도 동족들이 세운 제후국으로 이주해 갈 수 있는 자유도 있소. 목숨을 걸고 독립을 부르짖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 한데 그 비교가 사라지고, 동족들이 세운 독립국으로 갈 기회도 없어지면 어떤 생각들을 가질 것 같소?”

“투쟁······, 하리라 보시는 군요.”

“괜한 기우만은 아닐 것이오.”

태왕의 말에 이순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면 제후국들은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옵니까?”

“적어도 자국 내의 자치권이 보장되고 제국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이 명확할 때는, 그리고 자신들의 자유가 억압당하지 않는 이상은 적어도 그럴 것이라 믿소.”

“하면 지금 같은 느슨한 제국의 형태를 취하시는 것도 그러한 이유시옵니까?”

“그러하오. 물론 언젠가는 완전한 독립을 부르짖는 제후국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오. 이익보다는 자존심이 중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니. 하나 그 순간이 온 제후국에 동시에 퍼지지 않는 한, 또 그것을 누를 힘이 조선에 있는 한 제국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자신의 말에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는 이순신에게 태왕이 조용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대한제국의 종주국으로, 세계열강에 우뚝 선 조선에 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구려. 난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오오. 그것을 위해서라면 짐은 목숨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소이다. 그러니 이 원수. 그것을 위해 함께 노력해 주시구려. 제국을 하나로 보고, 하나로 대해 주시구려. 짐이 이리 부탁하리다.”

명을 내리면 따라야 하는 자신에게 부탁이라 말하는 태왕의 뜻을 이순신은 감히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것이 겨우 2백의 내금위 병사들만을 대동하고 광해가 명으로 간다는 것에 이순신이 동의한 연유였다.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는 이순신에게 통신병이 놀란 눈으로 뒤이어 도착한 전신을 해독해서 읽었다.

“이 원수. 그때처럼 지금도 부탁하리다.”

그날의 말을 다시금 태왕이 거론했으니 상대가 태왕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거기다 공공연히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있는 전문에 태왕이 신하인 이순신에게 부탁이란 용어를 썼다.

그것은 단 둘이 있을 때의 무게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모를 태왕이 아님에도 ‘부탁’이란 말을 썼으니 그 결심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뜻일 터였다.

결국 짧은 갈등 끝에 이순신의 입이 열렸다.

“타전. 신 이순신, 폐하의 명을 따르옵니다.”

이순신의 그 말에 사방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불안한 것이다. 조선군이 남창에 닿기도 전에 물리라는 태왕의 명을 이순신이 따르기로 한 것이.

그렇다고 안 된다고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태왕이 신하인 이순신에게 ‘부탁’이란 말까지 써가며 한 명을 감히 어길 자고 나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휘소 요원들을 한차례 훑어본 이순신이 말했다.

“폐하의 뜻이 굳건하니 그 뜻에 따른다. 그것이 신하된 도리이니.”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 무력감으로 고개를 떨구는 이, 불안감으로 고개를 내젓는 이, 각자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는 지휘소 요원들을 바라보며 이순신이 명을 내렸다.

“전군에 타전. 태양 속에 삼족오가 건재하다. 사실 확인 완료. 전군 진군 정지하고, 모두 원위치로 돌아가라. 이것은 폐하의 황명이다. 어기는 자, 군령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이순신의 명을 통신병들이 각자 맡은 부대로 신속하게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순신이 전령을 보내 황실과 내각에도 그 사실을 알렸다.

온 황궁에 만세소리가 메아리쳤다.

단지 태왕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식이 도착한 것만으로도 황궁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혼절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던 황후가 소식을 듣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울음을 그친 태자가 웃음을 되찾았다.

자신에게 대전 처마에 올라 ‘상위복’을 외치라 청했던 환관들에게 너무 섣불렀다 호통을 치는 상선 알지의 입가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제정신들을 되찾은 내각의 대신들이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태왕에게 제국 최고회의를 중단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환궁할 것을 청원하는 전문을 보냈다.

그 청원에 대한 태왕의 답은 ‘불가’였다.

불안했던 총리대신이 황후를 찾았다. 태왕을 설득해서 귀국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총리대신의 청원은 사실 무례한 것이었다.

황후가 바로 명나라 황실의 공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황후에게 총리대신은 네가 나고 자란 모국이자 네 오라비가 다스리고 있는 명을 믿지 못하니 태왕을 귀국하라 설득하라는 청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