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제임스 1세의 속내
이 상황에 대해 주포르투갈 잉글랜드 영사관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아일랜드 사절의 방문소식이 알려진 직후, 반역자들을 즉시 잉글랜드에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총독부에 넣었다.
이항복의 입장이 곤란했다.
아일랜드 문제는 엄연히 잉글랜드의 내정문제였다.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입장에서 가능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나은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갖은 고생 끝에 찾아온 외교사절을 어떻게 될 게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손에 넘겨줄 수는 또 없었다.
한참을 고심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결국 고심하던 이항복이 현 상황에 대해 태왕에게 비답을 청했다.
전신을 통해 해당 소식을 접한 광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실제 역사에서 일제 강점기 시대를 겪어야 했던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도와야 한다는 감정과 현재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제국을 운용 중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충돌했다.
더구나 연방제국이라는 다소 느슨한 형태의 제국을 운용 중인 조선의 입장에서 아일랜드를 돕는 것이 제후국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광해가 답신을 보냈다.
<내정 무간섭>
일제 강점기 같은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그 간단한 답이 담고 있는 태왕의 현실적인 고심에 대해서는 이항복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항복은 곧바로 아일랜드 사절단에게 퇴거를 명령했다.
리스본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총독부의 명령에 아일랜드 사절들은 절망했다.
잉글랜드 영사관은 여전히 그들의 신병을 인도해 주길 요청하고 있었지만 총독부의 결정에 대해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사고가 터졌다.
아일랜드 사절들 중 한명이 총독부가 숙소로 내어준 영빈관에서 자결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미 태왕의 결정이 떨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총독인 이항복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결한 이의 시신이 담긴 관을 싣고 아일랜드 사절들의 배가 리스본 항을 떠났다.
이항복은 주둔 함대인 연합전대의 왕무급 호위함 1척을 보내 그들을 아일랜드까지 호위하도록 했다. 그가 아일랜드 사절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호의였다.
대한제국 함선의 호위 때문인지 잉글랜드 영사관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잉글랜드 함대는 눈앞에서 지나가는 아일랜드 사절의 배를 그냥 지나쳐 보내야했다.
그것으로 끝났을 사안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은 영국을 통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을 세우는 것에 목을 매고 있던 제임스 1세가 그 일을 문제 삼으면서부터였다.
제임스 1세의 주장은 대한제국이 그레이트브리튼의 내정에 간섭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그냥 지나가면 그레이트브리튼의 자주권이 침해되는 것이라는 주장에 일부 의원들이 합류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당장 주포르투갈 영사가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외교적으로 가장 강력한 반발을 보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반년 전부터 정상화된 조선 무역선단 교역에 대해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조선 무역선단의 입항을 가로막거나 한건 아니었지만 잉글랜드는 물론이고 그레이트브리튼 내의 그 어떠한 상인도 물건을 사는 것도, 파는 것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물과 식량의 보급 정도만 가능할 뿐이었다.
사실 제임스 1세는 주조선 대사까지 불러들이고, 아예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방향으로 주장했지만 애덤스 백작을 위시한 잉글랜드 의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친조선파 의원들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제임스 1세는 조선과의 위기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해서 그레이트브리튼의 단결력을 최고조를 끌어올려 통합을 서두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임스 1세의 속내를 알지 못했던 애덤스 백작을 위시한 친조선파 의원들은 자칫 그것이 조선과의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저항 탓에 제임스 1세의 강경조치는 약간의 색이 바랬다.
그래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조선의 우방국이었던 잉글랜드가 반조선 정책을 폈다는 것에 유럽 각국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런 일들이 포르투갈 총독부를 통해 보고된 탓에 조선은 광무9년, 서기로는 1611년의 정초를 좋지 않은 소식을 안은 채 시작하게 되었다.
연초에 열린 확대 문무백관회의에서 그 사안이 다뤄지면서 겁 없는 잉글랜드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힘을 가진 나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에 광해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 대신들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라의 힘이 커질수록 힘과 무력보다는 우선적으로 외교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광해는 분노하는 대신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삐친 아이에게 화를 내봐야 울기밖에 더하겠는가? 사탕을 주어 우리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은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자칫 버릇이 나빠지진 않겠는지요?”
총리대신의 걱정 어린 물음에 광해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리되면 그때 가서 회초리를 들어도 나쁘지 않겠지. 내 생각은 그러한데 총리대신의 생각은 다른가?”
“아니옵니다. 폐하의 뜻과 소신의 생각이 어찌 다르겠나이까? 폐하의 명을 기다리옵니다.”
순순히 고개를 조아리는 총리대신의 답에 광해가 말을 이었다.
“잉글랜드에 사탕도 내밀 겸 이참에 무기를 수출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소만.”
“무기 수출이라 하시면 어떤 것들을 수출하려 하시옵니까?”
그간 조선은 무기의 국외 반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관리도 굉장히 철저해서 수량 확인이 매 분기마다 이루어질 정도였다.
오죽하면 신무기를 개발하는 장원 무기개발부서엔 태왕의 허락이 없이는 대신들조차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그런 무기를 수출하겠다고 하니 대신들이 놀라는 은 당연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총리대신의 물음에 광해가 답했다.
“가장 먼저는 전열함과 호위함, 그리고 무기는 아니겠지만 가능한 조선무역선들도 수출해 볼까 하오.”
증기철선시대로의 전환을 맞이하면 당장 대량의 전열함과 호위함들을 퇴역시켜 폐선절차를 밟아야 했다. 광해는 차라리 그 배들을 고가로 팔아먹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증기철선의 건조비를 일부 충당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모수급 전열함과 왕건급 호위함의 전투력을 알고 있는 대신들의 불안감은 상당히 컸다.
“자칫 아이에게 날카로운 칼을 쥐어주는 겪이 아니 되려는 지요?”
“당연히 칼날을 무디게 하여 건네주어야겠지.”
광해의 답에 무엇인가를 떠올린 총리대신이 물었다.
“혹 일전에 제후국에 전해준 일총처럼 능력을 감해서 보내는 것이옵니까?”
“바로 그러하네. 배의 능력을 깎는 것은 불가하니 무장한 무기들의 성능을 내려야겠지.”
“포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맞네. 각 함들이 장비하고 있는 포들을 현재의 이포에서 더 낮춰서 보낼 생각일세.”
“하면 일포를 생각하시옵니까?”
병무부 대신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보다 낮았으면 좋겠는데 그 이하는 이미 초선포라는 이름으로 유럽이 가지고 있으니 일포정도는 되어야 구미가 당기겠지.”
조선에서는 두세대 이전의 구형포로 전량 퇴역되어 전략물자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만 아직 유럽은 도달하지 못한 기술로 만들어진 포였다.
사거리도 최대 2천보(약3.6Km), 유효 1천5백보(약2.7Km)에 달하는데다 이미 잉글랜드가 폭발탄을 복제해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사시 조선군 함선에도 위협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한 대신들의 걱정을 알아차린 광해가 미리 말했다.
“철선으로 전환이 되면 폭발탄으로는 피해를 입히기 어렵네. 이미 실전에서 인증된 것이니 두말할 필요는 없겠지.”
광해의 말에 비교적 전투 결과에 대해 상세히 아는 병무부 대신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긴 하겠사옵니다만 모든 함선을 철선으로 바꾸는 것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 않겠사옵니까?”
“전열함과 호위함을 팔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적어도 저들의 손에 전열함과 호위함이 들어가기 전에 해군 함대는 모두 철선으로 변경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네만.”
“그렇기만 하다면야 소신과 병무부는 달리 반대할 이유가 없나이다.”
그렇게 병무부 대신이 물러나자 회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와 중에 외교부대신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유럽에 파시기 전에 먼저 제후국들에게 판매를 허락해 주실 수는 없으시겠나이까?”
“제후국들이라······. 가능은 하겠으나 그들이 사들일 능력이 될까?”
“지난 몇 년 간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뒤로 찬 주머니에 상당한 자금이 싸여 있을 것이옵니다. 그것을 이참에 걷어내시지요.”
외교부 대신의 말에 광해의 입가로 악동 같은 미소가 깃들었다.
“그럴까? 하면 이참에 제후국들 뒷주머니 좀 털어보세. 원하는 나라가 있다면 팔 수 있다고 이야기해도 좋네.”
이 당시 바다를 접해 해군을 키우고 있는 나라는 5개국, 그중 갇힌 바다인 카스피해를 끼고 있는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4개국이 각기 30척 남짓한 왕무급 호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배들 중 8척이 대서양함대와 포르투갈주둔 연합전대로 차출되어 있었으니 실제로 각국이 자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운용하고 있는 배는 22척 가량이었다.
포르투갈에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운용하기 시작한 제후국들은 해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현재는 조선의 도움을 받아 물자와 병력을 실어 나르고 있긴 했지만 그 절차가 까다롭고 반드시 허락을 얻어야 해서 제때에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바다를 접하지 못한 나라야 해결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바다를 끼고 있던 4개국의 해군확대욕구는 그로인해 상당히 강했다.
다만 대한제국의 종주국인 조선이 4개국의 해군 규모를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배를 늘릴 수도 없었다.
조선의 배려와 지원으로 완전히 목선으로 설계가 변경된 왕무급 호위함을 생산할 수 있는 선소를 각국이 갖추고 있음에도 배를 늘리지 못한 연유가 그것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달된 해모수급 전열함과 왕건급 호위함의 판매소식은 4개국에게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특히 제후국의 경우엔 이미 왕무급 호위함에 이포가 장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포로 무장을 감소시키는 정책도 취하지 않기로 했기에 호응이 높았다.
4개국이 원한 것은 모두 해모수급 전열함이었다. 어차피 왕건급과 동일한 성능을 가진 왕무급 호위함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조선이 보유한 해모수급 전열함의 수는 모두 130척, 왕건급 호위함의 경우엔 159척이었다. 이중 명, 남진, 나고야, 동일본 4개국이 원한 것은 80척의 해모수급 전열함으로 각국 당 공히 20척씩을 요청한 셈이었다.
더 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이 가진 모든 자금을 탈탈 털어낸 것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광해가 그러한 4개 제후국의 요청을 수락했다.
곧바로 4개국 수병들이 교육을 위해 조선으로 급파되었다. 광해는 우선 해모수급 전열함들로 구성된 71, 72기동함대에 그들의 교육을 맡겼다.
향후 판매도 두 함대에 소속된 전열함들을 우선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적응훈련까지 시키도록 명령되어 있었다.
아울러 광해가 거제 건선단지에 대량의 증기철선 제작을 명했다.
이미 초도분 일칠함대의 건조가 절반정도 진행된 거제 건선단지는 개장공사를 끝낸 건선거들에서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 30척을 건조 중이었다.
그런 거제 건선단지에 태왕의 명이 떨어지자 비어있는 신규함 건조 건선거 전체에서 차세대 증기철선들을 건조를 시작했다.
일칠함대 2개 분량의 차세대 증기철선들이 추가로 착수된 것이었다. 해당사항이 결정되어 시행되자 곧바로 광해가 잉글랜드 대사를 영성궁으로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