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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94화 (194/325)

제194화. 포르투갈의 왕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의 무역을 장악하면서 시칠리아 일대까지 세력을 넓혔던 아라곤 왕국의 중심도시로 과거로부터 막강한 군사력과 해양 세력의 주둔지였다.

하지만 그 영화는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무너졌고, 카스티야 왕국이 에스파냐 일대의 중심이 되면서 영광의 중심은 마드리드로 이동했다.

병력도 흩어졌고, 해군 세력도 사라졌다.

여전히 아라곤 왕국시절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카탈루냐 지방에 군사력을 두고 있을 수 없었던 에스파냐 왕실의 판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대신 군사력에 대한 모든 부담은 과거 카스티야 왕국 지역이 지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신세계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수입 덕이었다. 사실 에스파냐가 콜럼버스를 지원해 신세계항로를 개척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카스티야의 여왕이었던 이사벨 1세가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가며 진행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그곳에서 거둔 결실도 모두 카스티야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시기에 카탈루냐 지방의 경제는 파탄 지경을 맞아서 부동산이 폭락하고 실업률이 폭증하여 불만이 높게 쌓여가고 있던 때였다.

그렇기에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지방은 일종의 피해의식도 있어서 에스파냐 왕실에 대한 반발심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런 바르셀로나로 피신하자는 결정이 나왔을 때 많은 에스파냐의 대신들이 걱정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바르셀로나는 외국군에 쫓겨 도망 오는 왕을 위해 싸울 결정을 내리고 대대적인 준비를 갖췄다.

적어도 그 결정의 바탕에는 위기에 처한 에스파냐의 왕을 구해주었을 때 카탈루냐의 경제 위기를 타파해주려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카탈루냐 지방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병력을 소집, 순식간에 2만에 달하는 병력을 만들어냈다.

상인과 농민, 일자리를 잃어버린 뱃사람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훈련받은 군인들은 아니었지만 카탈루냐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군대로 카탈루냐의 영광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들은 왕을 기다리지 않고 바르셀로나를 나와 왕이 이동해올 길목을 따라 남진했다. 바르셀로나를 전장으로 삼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덕에 이들은 대한제국 해병기마대에 펠리페 3세가 따라잡히기 전에 남부의 타라고나(Tarragona)에서 펠리페 3세와 조우할 수 있었다.

멀리서 일어나는 먼지구름으로 대한제국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카탈루냐의 군대는 로마시대에 세워진 이 고도에서 적을 막기로 했다.

기마대인 적에 비해 보병대인 자신들의 속도 상 어차피 적에게 따라 잡힐 것, 뒤를 잡히기보다는 방어진형을 구성하고 장소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카탈루냐 군대에 감동했던지 펠리페 3세는 자신을 따라온 근위군 중 2천5백의 보병대를 남기고 자신은 5백 남짓한 기병대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훈련이 잘되어 있는데다 장비의 충실도까지 높았던 근위군 보병 2천5백을 중심에 세운 카탈루냐군은 유적처럼 반쯤 남은 타라고나의 성벽을 뒤에 두고 진형을 구성한 채 다가올 대한제국군을 기다렸다.

카탈루냐군은 에스파냐군이 그간 각지의 전장에서 큰 효용을 본 테르시오 방진이 아니라 전통적인 창칼로 무장한 진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테르시오 방진이 효과를 보기위해서는 상당수의 총병이 필요했지만 카탈루냐 지방을 억제해 온 에스파냐 왕실의 정책으로 인해 그만한 총병을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충분한 창병을 앞에 세우고 검병과 철퇴병들을 좌우의 날개로 삼았다.

그리고 소수의 총병과 궁병을 섞어 중앙에 버티고 선 근위군 앞에 배치해 두었다.

총병과 궁병들은 적과 충돌하기 이전에 사격으로 적의 기세를 죽이고 본격적인 백병전이 벌어지면 근위군의 뒤로 숨어 엄호 사격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리 창칼이 위주인 병력이라도 수가 2만이 넘어갔기 때문에 충분히 위협적인 군대였다.

선도 기마대에 의해 그들이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은 여단장들은 정규전을 통해 전투를 벌일 경우 결국 펠리페 3세가 바르셀로나를 둘러싸고 있는 성채로 들어가기 전에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여단장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파하기로 했다.

한데 그 돌파의 선두를 110여단이나 120여단의 기마대가 아니라 시크수색단의 마차가 섰다.

시크 수색단은 모두가 8필의 말이 끄는 팔두마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 마차들 중 2대에 대해 발렌시아를 출발하기 전에 간단한 개조가 이루어졌다.

사실 이 개조는 달리는 마차에서 현식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유사시 후미에서 이동하며 뒤따라오는 적의 추격을 격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시크수색단장의 건의에 따라 대한제국 해병 기마대는 그 마차 2대를 돌파전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대규모 회전을 각오하고 도시 앞 넓은 벌판에 2만이 넘는 병력을 두텁게 배치하여 방어진을 구성한 카탈루냐군으로써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공격방식이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2대의 마차에 실려 있는 4정의 현식총이 뿜어내는 집중사격이 시작되자마자 근위군 앞에 버티고 있던 총병들과 궁병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들은 사거리의 차이로 인해 단 한발도 사격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덧없이 무너졌다. 문제는 그 뒤에 서 있던 근위군도 현식총의 사격에 덧없이 재물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빗발치는 현식총의 사격에 구멍이 뚫려버린 지역을 고속으로 통과하면서 기동마차에 타고 있던 시크수색단 병사들이 일제히 기마총을 쏘았다.

뿐만 아니라 그 뒤를 따라 돌입한 기마대들도 좌우로 연속으로 기마총을 쏘아대는 통에 카탈루냐군은 속절없이 그렇게 돌파하는 해병기마대를 그냥 보내야만했다.

송곳처럼 꿰뚫고 지나간 해병기마대의 뒤로 중앙을 맞았던 근위군을 비롯한 2천 가까운 카탈루냐군의 시체가 남겨졌다.

워낙 중앙부를 순식간에 돌파당한 터라 카탈루냐군엔 여전히 2만에 가까운 병력이 남아있었다. 정신을 차린 지휘관들이 이미 저만큼 멀어진 해병기마대를 쫓는다고 소란을 떨었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결코 저들의 뒤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발렌시아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향하면서 왕실 인사들을 나누자는 의견이 잠깐 나오긴 했었다.

함께 몰려가다 자칫 생포라도 되는 날엔 에스파냐 왕실의 왕위 계승권자들이 모조리 포로가 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호위 병력을 나눌 생각이 없었던 펠리페 3세는 그 의견을 묵살했다.

그런 까닭에 바르셀로나를 향해 달려가는 왕실 인원들에는 펠리페 3세와 왕비인 마르가레테뿐만 아니라, 차기 국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2명의 왕자와 3명의 공주도 함께 하고 있었다.

보병을 떨어내고 근위기병대만을 대동했다는 점에서 고속 기동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리 빠르게 이동하지 못했다.

수많은 귀족과 그 가족들이 탄 마차들, 그리고 막대한 왕실의 재산을 실은 수레들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후방에 2만이 넘는 카탈루냐군이 방어선을 치고 적을 막을 것이라는 방심이 속도에 대해 안달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 결과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파해 추격을 이어간 해병기마대에 곧바로 따라잡혔다.

뒤에서 일어나는 거친 먼지구름이 무섭게 다가온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위기의식을 느낀 왕가는 귀족들과 막대한 재산도 버린 채 왕가만을 태운 채 고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말에서 산다는 유목민족 출신들로 구성된 해병기마대를 따돌릴 수 없었다.

저항을 시도하는 5백 남짓한 근위기병대를 순식간에 도륙한 해병기마대가 당황으로 물든 왕실과 귀족들을 전원 생포했다.

바르셀로나의 성벽이 멀찍이 보이는 코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해병기마대는 왕실인사들과 귀족들을 모조리 시크수색단의 감시 하에 중앙에 두고 그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며 고속 기동했다.

타라고나 인근에서 바쁘게 바르셀로나 쪽으로 달려오던 카탈루냐군과 다시 조우했지만 에스파냐 왕실깃발이 휘날리는 해병 기마대를 막아서지 못했다.

에스파냐의 왕이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마주친 몇몇 에스파냐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완전무장한 대한제국군 속에 갇힌 자신들의 국왕을 구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칫 그러한 시도의 와중에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해병기마대는 에스파냐의 왕을 사로잡았다는 안도감에 주저하거나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그들을 잡기위해 움직이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에스파냐를 이탈해 포르투갈로 귀환하기 위해 고속으로 기동했다.

사전에 전령으로부터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리스본 성문까지 나가 펠리페 3세를 정중히 맞이했다.

상당히 위압적인 분위기로 이송되던 때와는 달리 리스본의 원정군 지휘부로 신병이 이관된 이후로는 에스파냐 왕실 사람들은 그들의 신분에 맞는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몇몇 고위 귀족을 대동한 채 한때 포르투갈 왕궁의 대전으로 사용되던 곳에 앉은 펠리페 3세는 마주 앉은 이순신과 휘하의 장수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펠리페 3세에게 이순신이 서류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펠리페 3세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국왕 전하께오서 포르투갈의 왕위를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 양도하며 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의 조약서입니다.”

“포르투갈의 왕위를 내놓으라?”

“예.”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나를 사로잡고 겨우 포르투갈만 원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묻는 펠리페 3세에게 이순신이 답했다.

“소장이 아국의 황제폐하께 받은 명령은 하나였습니다. 무도한 포르투갈을 점령하여 과거의 죄를 물어라.”

과거의 죄가 조선 무역선단에 가해졌던 공격 및 납치 사건임을 펠리페 3세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문제는 시작은 포르투갈 귀족들이었지만 결국 허락은 자신이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모를 대한제국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는 것에 펠리페 3세가 물었다.

“단지 포르투갈을 점령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끝내겠다는 것인가?”

“단순한 점령은 아닐 겁니다. 대한제국은 영원히 포르투갈을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요.”

“식민······지로 삼겠다는 소린가?”

“단순한 식민지가 될지 아니면 대한제국의 강토가 될지는 소장이 결정할 사안이 아닌지라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대한제국 황제의 권한이라는 소리로군?”

“예. 폐하의 결정에 따라 포르투갈의 운명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순신의 답에 펠리페 3세가 이순신을 묵묵히 바라보다 물었다.

“이곳에 서명하면 나는 어찌 되는 것인가?”

“원하시는 때에 에스파냐 국경까지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

순순한 이순신의 답에 펠리페 3세는 서류를 당겨 곧바로 서명하고 그 곁에 촛농을 떨어트려 반지인장을 찍었다.

그것을 돌려주며 무겁게 내려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이제 되었는가?”

서류를 확인한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언제 돌아가시겠습니까?”

“지금도 가능한가?”

단 한순간도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펠리페 3세에게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시겠습니다. 참! 필요하시다면 마드리드까지 호위 병력을 붙여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네.”

단호한 펠리페 3세의 거절을 이순신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정중히 국경까지 모시도록.”

명령을 받은 휘하 장수가 펠리페 3세와 날카로운 표정의 고위 귀족들을 안내해 나가자 이순신이 한숨 돌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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