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송곳 작전
포르투갈 원정을 준비하면서 이순신과 참모들은 작전 개시 이전부터 다수의 작전 계획을 검토하고 수많은 도상 연습을 진행 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무역선단과 철산 상단, 철물전 등 유럽과 오랜 시간 교역을 통해 정보를 축적한 이들을 불러 해당 작전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적용할 작전 계획을 추려냈다.
그 과정에서 이순신과 참모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역시 보급문제였다.
식량의 경우는 현지 조달이 가능하겠지만 총탄과 포탄 등 대한제국군 특유의 무장을 유지할 수 있는 보급품의 조달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였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없는 방법들이 모색되었다. 현지에서 확보한 화약을 통해 총탄을 생산 할 수 있는 시설을 포르투갈까지 옮겨가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실제 포르투갈 점령전을 펼치면서 맞닥트린 문제는 조선에서 계획하고 검토한 것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사실 생산시설은 비격진천뢰와 폭발탄의 것도 함께 가지고 왔다. 생산 기술자도 현재 리스본에 진주 중인 포르투갈 원정군 지휘부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구포탄인 비격진천뢰나 이포의 포탄인 폭발탄은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그것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의 화약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화약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포르투갈이었기에 화약의 현지 조달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던 판단은 틀렸다.
생각 외로 포르투갈의 화약 생산량은 대한제국군이 사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긴 조선군 체계를 답습한 대한제국군의 화약소모량은 이 시대, 그 어떤 나라의 군대보다 많았다.
실제로 이베리아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111여단이 소모한 화약량은 포르투갈의 1년 화약 생산량과 비등했을 정도였다.
수백문의 화포와 수천정의 총을 비 오듯이 쏟아내는 대한제국군의 전투방식은 대량의 화약 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정군 지휘부는 포르투갈에서 확보한 화약으로는 각 여단이 점령전 중 소모한 소총탄을 보충해 주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실 그것마저도 잉글랜드의 화약지원이 없었다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훨씬 많은 화약소비를 가져오는 비격진천뢰와 폭발탄의 현지 생산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조선에서 최선을 다해 대량의 보급을 실시하고는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따라서 보급에 걸리는 시간도, 보급되는 물품의 양도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한계를 가진 보급으로 포르투갈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반쯤은 운이었다.
포르투갈이 한곳으로 병력을 모아 대규모 결전으로 나와 준 덕이었다.
그런 전력의 집중이 오히려 부족한 보급물자의 집중을 가능하게 해서 전투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베리아 연합군을 격파한 후 포르투갈 내에서 조직적 저항이 제거되면서 소규모 저항을 분쇄하는 작전 외에는 이전과 같은 대량의 화기 사용이 줄어들었기에 부족한 보급이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정도는 조선에서 도착한 보급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에스파냐와의 전쟁이 본격화 될 때였다. 온 사방에서 전투를 치를 경우 소모될 막대한 총탄과 포탄을 지탱해 줄 보급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순신과 참모들은 에스파냐도 포르투갈이 그랬듯이 결전을 걸어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래야만 원정군의 부족한 보급물자를 한 곳으로 집중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할 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 조선에서 수립했던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에스파냐가 전력을 하나로 모을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원정군 지휘부는 두 가지 기조를 섞어 유도작전을 실시했다.
포르투갈 전역이라는 대규모의 점령지를 안정화 시키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병력이 필요했다. 사실 12만에 달하는 현재의 원정군 전체병력으로도 벅찬 임무였다.
하지만 원정군 지휘부는 그 임무에 겨우 5개 여단만 배정했다. 잉글랜드가 지원한 2만의 병력이 가세했다고는 해도 겨우 4만5천의 병력으로 포르투갈 전역을 점령하여 안정화 작전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 조선식 점령 정책이 포르투갈인들로부터 예상외의 호응을 받았다. 거기다 종군 신부와 수녀들의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대규모 소요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순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신의 도움’이었다.
그 상황에서 원정군 지휘부는 점령 작전에서 해제된 병력 중 10개 여단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간의 국경선에 배치해 병력 분산이라는 고의적 실책을 연출했다.
거기다 한 가지 제약을 더 걸었다.
바로 국경에 투입된 10개 여단에 선제공격을 금지 시킨 것이다. 아예 국경은 넘지 못하도록 작전지침에 못을 박았다.
그것도 공공연히 떠들어서 적의 첩보망에 그 사실이 흘러들어 가도록 마구 떠들어대고, 수시로 강조했다.
사실 그것은 적에게 알리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실제로 경계에 투입된 10개 여단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자칫 전 국경선에 걸쳐 전투가 벌어진다면 원정군 지휘부가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 지휘부의 노력에 따라 국경선에 투입된 대한제국군은 수비 병력의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에스파냐가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에스파냐의 공격에 대비해 국경을 지키고 있는 병력, 그러니까 국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병력으로 인식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에스파냐의 입장에서 적군인 대한제국군의 병력이 그렇게 흩어져 고착되어 있다면, 포르투갈로 파고들 작전을 구사하기가 쉬워진다.
가능한 한곳으로 병력을 집중해서 돌파하여 틈을 벌이고, 그곳으로 대규모 병력을 밀어 넣을 수 있을 경우 대한제국군이 해당 전장에 집중 되어 전장을 포르투갈로 한정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스파냐로써는 자국의 영토가 전쟁터가 되지 않는,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을 위해 대한제국군은 도처에 덫을 놓고 기다렸다. 뻔히 조공인 것을 알면서도 북부의 공격에 반응하여 예비 병력으로 돌려놓았던 9개 여단 중 5개 여단을 파견하기까지 했다.
유혹이다.
네들이 원하는 대로 다 되었으니 얼른 들어오라는.
실제로 에스파냐는 대한제국 원정군 지휘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왔다.
다만 소떼를 선봉에 세우는 수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것이 초기 방어전선의 붕괴를 불러왔다.
하지만 이순신과 지휘부는 그것에 놀라지 않았다. 전면 붕괴한 것도 아니고 105여단은 대부분의 병력을 보존한 채 뒤로 물러서서 방어전선을 새로 구축했으니까.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남아있던 예비병력 4개 여단을 모조리 이스트모레스로 급파했다. 가지고 있던 보급물자 전체를 그 병력에 몰아주었다.
사전 계획대로라면 조만간 11, 13함대로 이루어진 보급 함대가 도착하겠지만 그때까지는 총탄은 몰라도 이제 더 이상의 포탄은 보급이 불가능해 진 것이다.
아울러 북부로 떠난 5개 여단에도 긴급전령을 띄웠다.
이제 소위 ‘송곳 작전’이라 명명된 습격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
에스파냐군은 포르투갈 내부 진공 작전 계획에 의거해서 탈환(?)한 포르투갈 도시와 마을들에서 곧바로 무작위적인 대량의 징집을 실시했다.
에스파냐군은 12세 이상의 사내라면 너무 어리고, 늙고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끌어내 농민병으로 삼았다.
그렇게 모은 2만의 농민병을 앞세운 에스파냐군 5만이 이스트모레스를 덮쳤다.
겨우 5천 남짓한 병력으로 105여단이 7만에 달하는 에스파냐군의 파상 공세에 맞섰다.
이스트모레스에서 확보한 약간의 화약으로 총탄을 야전 생산해 채웠지만 그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금속탄피형 총탄을 사용하는 현식총용 총탄과 각종 포탄은 채울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다.
그로인해 대한제국군에게 가장 강력한 화력을 제공해주던 현식총과 각종 포들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나마 아직 보유량이 남아있던 수탄과 지향뢰를 사용해 적군의 월성을 간신히 막아내며 105여단이 힘겨운 방어전을 펼치고 있었다.
에스파냐군은 그런 이스트모레스를 향해 투입병력의 증강을 지속했다. 바다호스로 집결한 병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전 생산한 총탄마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105여단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던 그 순간. 드디어 기다란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둘러 후방을 바라본 105여단 병사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증원군이 질서정연하게 진군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증원군의 출현에 에스파냐군은 곧바로 반응했다.
이스트모레스에 대한 공략에 일단의 병력을 남겨두고는 진군해오는 대한제국군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페르디난트 공작은 속도를 여전히 중요시 했다.
3만의 병력이 이스트모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2만의 포르투갈 농민군을 앞세운 5만의 에스파냐군이 그렇게 돌진해왔다.
선봉을 섰던 여단이 곧바로 진군을 멈추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포가 방열되고, 소총병들이 사격선을 구성했다.
이내 이포의 유효사거리인 3천보에 에스파냐군이 들어오자마자 포격이 개시되었다. 개활지에서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대한제국군을 향한 돌격은 미친 짓이었다.
그 미친 짓을 에스파냐가 고집했다. 순식간에 선두에 섰던 2만의 농민병이 육편이 되어 흩어졌지만 에스파냐군의 공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2만의 피해로 에스파냐군이 줄인 거리는 2천보(약3천6백M)였다. 나머지 1천보(1천8백M)를 줄이기 위해 5만의 에스파냐군이 밀어닥쳤다.
2만으로 2천보를 줄였으니 1만이면 나머지 거리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에스파냐군의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최악의 무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인살상력으론 대한제국군은 물론이고, 조선군에서도 최고로 치는 확산탄이 발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1천보 거리에서 폭발하는 확산탄이 돌진해 들어오던 에스파냐군을 난도질 했다.
이전의 피해는 피해 축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거리’를 확보한 대한제국군의 화력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공격이 에스파냐군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뒤따라오던 여단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포격에 참여하는 이포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돌파해서 난전만 벌일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듯이 굴었던 에스파냐군의 공세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3만이 훌쩍 넘어가는 피해를 추가로 입었으면서도 1천보의 거리는 겨우 절반밖에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1천보 거리에서 연신 터지는 확산탄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다가 5백보로 거리가 줄어드는 순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구포의 포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페르디난트 공작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막강한 대한제국군의 화력을 뚫어낼 기회를 영영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이스트모레스에 추가로 도착한 3만의 병력을 더 밀어 넣었다. 그로인해 잠시 주춤거렸던 에스파냐군의 공세가 다시 강화되었다.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뚫어내려는 에스파냐군과 무지막지한 포격으로 그런 에스파냐군의 돌진을 막아내려는 대한제국군 사이의 전투가 이스트모레스 후면의 벌판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자고로 인해전술만큼 무서운 게 없다던가.
결국 에스파냐군이 거리를 5백보 이하로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구포가 대량으로 쏘아대는 비격진천뢰가 만든 죽음의 지대를 돌파한 것이다.
에스파냐군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 같은 괴성들이 터져 나오며 달려대기 시작했다.
곧이어 양측의 거리가 소총의 사거리로 줄어들자 곧바로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탕, 타다당, 타다다다당.
저쪽이 만 단위가 넘어가는 병력을 투입했다면 이쪽도 만 단위가 넘어가는 병력이 구성한 소총사격선 이었다.
에스파냐군 병사들이 수도 없이 쓰러졌다.
거기다.
타라라라라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백정의 현식총이 불을 뿜으며 총탄들이 빨랫줄 뻗어 나오듯이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달려오던 에스파냐군 병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수백정의 현식총이 구성한 화망은 조밀하고, 치명적이었다.
돌파가 무색하게 에스파냐군 병사들이 무너졌다. 그 위로 구포가 발사한 비격진천뢰가 폭발하며 쇠비를 쏘아냈다.
온 벌판이 에스파냐군의 시체로 뒤덮였다. 특히 1천보 거리부터 5백보 거리에는 시체 위에 시체가 덮일 정도로 에스파냐군의 피해가 막대했다.
결국 피해를 감당하지 못한 에스파냐군의 공세가 중단되었다. 포르투갈 농민병을 포함, 자그마치 10만을 갈아 넣었음에도 돌파하지 못한 것이다.
페르디난트 공작이 분루를 흘리며 이스트모레스를 포위한 채 공략하던 3만의 병력과 함께 물러났다.
그런 에스파냐군을 대한제국군이 쫓지 않았다.
페르디난트 공작과 에스파냐군은 몰랐지만 비격진천뢰를 비롯한 각종 포탄은 물론이고, 소총탄들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현식총의 경우 4개 여단이 보유한 모든 탄창을 거의 다 소모한 상태였다.
오죽하며 물러가는 에스파냐군을 바라보며 여단장들이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였다.
이제 반대로 전선에서 물러난 에스파냐군이 자모라에 방어선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뒤에 남아있던 오스트리아군 3만과 이스트모레스를 포위하고 있던 에스파냐군 3만을 합해 6만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한 페르디난트 공작은 그 많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결사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소위 ‘해병 기마대’라 불리는 이들이 에스파냐의 국경을 돌파해서 고속으로 마드리드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대한제국군의 송곳이 펠리페3세를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