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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89화 (189/325)

제189화. 페르디난트 공작의 히든카드

숲 가장자리에 모여 벌목지를 주시하고 있는 4천의 에스파냐 용병대의 뒤에 조용히 접근한 3단은 단장의 수신호에 따라 절반의 병사들이 일제히 수탄을 던졌다.

수탄을 던진 후 3단의 병사들은 모두 나무 등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4천의 에스파냐 용병들에게 날아든 수탄의 개수는 5백 개였다. 난데없이 날아든 나무토막들에 놀란 용병들이 사방을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에 의아해하는 순간 사방에서 폭음이 울리며 수탄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쾅.

수탄의 파괴력이 비격진천뢰에 비해 약하다고는 하나 주위의 병사들을 살상하기에는 충분한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그런 수탄들이 일제히 터지면서 주변의 용병들을 휩쓸었다.

용병들의 절반 정도가 피에 절어 울부짖는 와중에 3단의 병사들이 엄폐물에서 벗어나며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살아남아 울부짖던 용병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도주할 시간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단 한차례의 수탄 공격과 그 뒤를 잊는 3단의 일제사에 4천에 달하던 용병들이 속절없이 전멸해 버렸다.

숲에서 요란한 폭음과 총소리가 들리자 벌목지를 기어가고 있던 스위스 용병대가 잔뜩 긴장한 채 바닥을 기는 속도를 높였다.

여전히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어둠과 길게 자란 수풀이 감춰주고 있었다.

숲에서 총소리가 들리자 벌목지를 주시하고 있던 111여단장이 포병대장에게 명령했다.

“화염탄 벌목지 중간에 한발.”

“화염탄입니까?”

포병대장이 다시 물은 것은 일대에서 화염탄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숲이어서 한번 불이 붙을 경우 대규모 산불로 번질 위험이 있는데다 나무를 베어낸 벌목지도 불이 잘 붙는 수풀로 가득했던 까닭이다.

“그래. 한발 먹여.”

여단장의 확인에 포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여단본부 포병대 하나포가 장탄하고 있던 산탄포탄을 꺼내고 다시 화염탄으로 재장탄 후 곧바로 발사했다.

쾅.

포격음이 울리고 잠시 후.

쿵!

벌목지 중간쯤에 떨어진 화염탄이 폭발했다.

곧바로 화염이 일어나며 벌목지를 기어가고 있던 용병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발포!”

여단장의 짤막한 명령에 130문의 이포가 불을 뿜었다. 모두가 산탄 포탄이었다.

자신들의 접근이 발각되자 한스의 고함에 스위스 용병들이 모조리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스위스 용병들 사이사이로 산탄포탄이 떨어지며 무더기로 쓰러졌다.

숲 가장자리에 모여 있던 에스파냐 용병대를 전멸시킨 3단은 어느새 나무 등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벌목지를 통과한 총탄들이 숲으로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격 방향 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따라서 스위스 용병대를 가운데 몰아넣고 양측에서 협공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채 3단은 숲속의 엄폐물에 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3단이 합류하지 않았음에도 벌목지의 스위스 용병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이포의 포탄이 터지고, 소총수들의 일제사가 가해지는 것도 모자라 구포에서 발사된 비격진천뢰가 쇠비를 내렸고, 현식총까지 불을 뿜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용병을 대변하는 미늘창을 든 채 달려가는 한스의 눈에 사방에서 속절없이 쓰러지는 수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스위스 용병들이 든 아쿼버스는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사격자세를 취하는 스위스 용병들을 총격하는 대한제국 해병대의 사격술은 상당히 정확해서 제대로 쏘아보는 이도 드물었다.

간혹 운 좋게 발사에 성공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엄폐물에 보호를 받는 대한제국 해병대를 위협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덧없이 죽어나가는 수하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달리던 한스의 머리가 마치 망치에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으며 뒤로 젖혀졌다.

순간 그의 가슴어림을 서너 발의 총격이 추가로 훑고 지나갔다.

머리와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쓰러지는 한스의 시야로 그처럼 무더기로 쓰러지는 스위스 용병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

자모라에 대한 조공도 실패하던 시점, 마지막 남은 1개의 별동대 5천이 포르투갈 북동부와 접경을 이루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인 라 프레헤네다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오우렌세나 자모라에 모여 있던 별동대 병사들과는 달리 완전히 자유 복장을 한 이들로 거리를 걷는 백성들과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인적구성도 모두가 포르투갈인들로 국외에서 용병들로 활동하던 이들을 모아들인 것이었다. 이들을 고용한 것은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거대 상인 가문들이었다.

페르디난트 공작은 이 포르투갈인 용병들에게 하나의 임무를 맡겼다.

바로 후방 교란이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라 프레헤네다를 출발해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로 숨어들어 에스파냐군이 북부를 통해 총공세에 나설 것이니 뜻있는 포르투갈 백성들은 호응해 북부로 모이라는 소문을 퍼트릴 계획이었다.

아울러 몇몇 곳에서 불을 지르고 공공건물을 파괴하는 등, 교란 작전도 벌이도록 되어있었다. 아울러 여러 국경지역의 농민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일련의 임무를 띤 포르투갈 용병들이 국경을 향해 움직였다.

대한제국군이 포르투갈을 점령한 이후 기본적으로 에스파냐와의 국경은 봉쇄되었다. 넘어가는 것도, 넘어오는 것도 불허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국경 봉쇄의 일차 경비망은 하늘높이 떠있는 비행대다.

2개의 열기구가 번갈아 올라오며 교대로 상공 정찰을 진행하는 비행대의 탐망은 상당히 넓고 정확해서 이들의 눈을 피해 숨어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시야 정찰이다 보니 시야가 짧고, 좁아지는 야간을 이용한 침투에는 취약했다.

그것을 메우는 것이 도처에 조성된 초소다. 1개 오, 5명이 배치되는 초소는 기본적으로 3개의 관측망을 가진다. 전방과 좌우 측방이다.

각기 1명씩의 병사가 한쪽 방향을 담당하고, 2명의 병사가 쉬어가며 교대를 이루는 이 초소의 탐방은 거의 10리(약3Km)마다 하나씩 세워진 초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구멍을 라 프레헤네다를 출발한 용병들이 정확히 짚어냈다. 숲과 산, 그리고 하천을 통해 조용히 스며든 것이다.

물로 그 과정에서 발각되어 사살되거나 포로가 된 이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절반정도가 포르투갈로 무사히 침투했다.

그들은 국경지대로 퍼져나가며 에스파냐의 반격에 대한 소문을 내고 호응하려는 자는 북부로 모이라는 포고문을 사방에 붙이고 다녔다.

그것에 호응해 일부가 북부로 모여드는 현상이 보였으나 점령군들에 의해 재빨리 제압되어 투옥되었다.

상황이 여의치 앉자 계획대로 창고나 마을 관청 등에 불을 붙이고, 다리를 무너트리는 등 교란활동에 나섰다.

문제는 그 일련의 교란활동이 삼엄한 경비에 막힌 점령군 시설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것에 집중되었다는 점이었다.

혼란은 일었지만 그 혼란이 점령군이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간혹 경비대나 점령군에 의해 현장에서 추포된 이들이 에스파냐가 투입한 포르투갈 용병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백성들의 분위기가 나빠졌다.

포르투갈을 되찾겠다는 에스파냐의 병사들은 백성들의 곳간을 불태우고 다리를 무너트려 이동에 불편을 초래했지만 점령군인 대한제국군 병사들은 그렇게 일어난 불을 함께 끄고 식량을 잃은 가정에 긴급식량을 제공했다.

무기를 놓은 점령군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무너진 다리를 서둘러 다시 놓아서 농터로 나가는 백성들의 이동을 도왔다.

포르투갈 백성들 사이에서 에스파냐보다 대한제국이 더 낫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였다.

에스파냐가 들여보낸 용병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스며든 용병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도처에서 불을 지르고, 농부들에게 접근해서 분란을 조장하려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분노한 농부들의 손에 직접 잡히거나 점령군에 신고 되어 추포되는 용병들이 속출했다.

포르투갈인들이 독립의 의지가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전 날 밤에 자신의 집 곳간에 불을 지른 자가 다음 날 다가와서 대한제국에 대항해 일어서자고 말하니 그게 곱게 들릴 리 없었던 것이다.

도처에서 에스파냐가 들여보낸 용병들이 사로잡히거나 반항하다 사살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한 가지는 성공했다. 온 포르투갈에 에스파냐가 곧이어 북부를 통해 대규모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던 것이다.

그 소문이 얼마나 그럴싸하게 퍼졌는지 일부 대한제국군 참모들 중에서도 북부로 예비 병력을 집결해두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참모들의 의견에 동의했던 것인지 이순신 원수가 예비 병력들 중 5개 여단을 북부로 이동시켰다. 그 중에는 해병기마대로 불리는 2개 여단과 기동보병화되어 있던 시크수색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부로 대규모 대한제국군이 움직였다는 보고를 접한 페르디난트 공작이 드디어 움직였다.

페르디난트 공작은 이번 전쟁을 물량전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화력이 우세한 대한제국군을 제압할 유일한 무기는 그 화력을 넘어서는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막대한 피해를 양산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에스파냐가 그 막대한 피해를 떠안을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번 전쟁은 포르투갈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그러니 피해를 감당하는 것도 에스파냐가 아니라 포르투갈이어야 했다.

따라서 페르디난트 공작은 공세 직후, 포르투갈 탈환지역에서 대량의 징집을 통해 대규모 병력을 조성해서 전선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에스파냐 반격군이 어떻게 하든 대한제국군이 구성한 전선을 깨고, 포르투갈 내부로 진입해야만 했다.

페르디난트 공작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한제국군이 예비 병력을 전선에 집중시키기 전에 에스파냐군이 대량 공세를 취해 전선을 돌파해야 했기 때문이다.

페르디난트 공작은 공격이 시작되면 방어자인 입장에서 가장 뼈아플 공간을 탐색해 선택했다.

그곳은 서부 접경도시인 바다호스(Badajoz)였다. 옛 무어 왕국의 수도였던 이 고도가 선택된 이유는 에스파냐의 접경지대들 중 리스본까지 직선거리로 가장 가깝다는 것 때문이었다.

공작은 이곳에 3만의 병력을 상인들이나 농부, 그리고 소몰이꾼들로 위장해서 비밀리에 먼저 들여보냈다. 이들은 1만 마리에 달하는 소들을 함께 끌고 들어갔다.

무기들도 상인들이 상품처럼 위장하여 반입했을 정도로 페르디난트 공작은 바다호스로의 집결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들이 포르투갈에서 첩보를 모으듯 대한제국군도 에스파냐에서 첩보를 모으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취해진 조처였다.

따라서 나머지 13만 병력도 주변 도시에 흩어져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공작이 공격을 결심하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주변 도시들에 주둔해 있던 병력들이었다.

그들이 야간을 이용해 일제히 바다호스를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다음 날, 날이 채 밝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그간 위장을 하고 있던 바다호스의 병력들이 일제히 무장을 챙기고 군열을 정비했다. 의아한 것은 그런 에스파냐군 앞에 소떼가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지난밤에 내린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새벽5시.

페르디난트 공작의 명령을 받은 3만의 에스파냐군이 대한제국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해 둔 포르투갈과의 국경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런 에스파냐군의 앞엔 1만 마리의 소떼가 몰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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