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77화 (177/325)

제177화. 비아나두카스텔루 해전

시크 수색단이 포르토 관리들을 고문한 끝에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병력이 곧장 기동해 북쪽의 해변도시인 빌라두콘드를 급습했다.

전투는 간단했다. 반항하는 수비대는 총으로 쏘아 죽이고, 그 이후는 창과 칼 같은 전통적인 무기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자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총알을 아껴 써야할 이유가 있었다.

검술을 활용한 전투에 있어서 시크 수색단의 활약은 다른 두 여단 장병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했다.

특히 전투 상대를 전원 살해하는 무자비한 전투방식은 호전성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후금의 여진족 전사들마저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그렇게 점령한 빌라두콘드에서 노획한 말은 겨우 1백50마리에 불과했다.

분노한 두 여단의 화풀이가 약탈로 이어졌다. 허가된 사항이었기에 약탈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온 도시가 약탈에 몸살을 앓았다.

적지에서 분노에 절어 실시된 약탈임에도 불구하고 두 여단은 영악하게 움직였다. 약탁물들은 곡물에 집중되었다. 나름 야전 보급을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노획 물자를 말들에 묶은 수레에 실은 두 병단은 시크 수색단을 앞세우고 다시 북쪽인 이스포젠드로 향했다.

두 여단과 시크 수색단이 휩쓸고 지나간 빌라두콘드에서 대량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가장 먼저 들렸던 포르토에서도 피난민들이 발생한 것은 당연했다.

두려움에 물든 포르투갈 백성들이 내륙방향을 향해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했다.

북쪽에서 가칭 ‘해병 기마대’에 속한 2개 여단과 시크 수색단이 난장을 치는 동안 리스본을 장악한 본대는 곧바로 오비두스와 산타렝 등 주변 도시로 장악지역을 확대했다.

아울러 타구스 강 건너 알마다(Almada)와 바헤이루(Barreiro), 몬티조(Montijo) 지역까지 모조리 장악했다.

포르투갈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직 에스파냐의 원군은 전장에 접근 전이었고, 포르투갈군은 조선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지상전을 해병대에 맡겨둔 채 이순신 함대가 북상을 재개했다.

리스본 북쪽에 위치한 페니시(Peniche)를 지나면서 해안에 건설된 페니시 요새를 포격하여 파괴한 이순신 함대는 서북부 해안 지대의 항구도시들을 모조리 포격하여 잿더미를 만들고 있었다.

이순신 함대가 최북단 항구 도시인 비아나두카스텔루(Viana do Castelo)마저 포격하여 잿더미로 만든 직후 이순신이 명령했다.

“비행대 출격 시키지.”

육군에서 정찰 수단으로 그 효용을 입증한 비행대가 수많은 시험을 통해 해군에도 배속된 것이다. 함상에서의 운용은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따라서 모든 함선에 배속된 것은 아니었고, 함대의 기함에만 할당되었다.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비행대원들에 의해 열기구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기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과 마찬가지로 4천척(약1천2백m)까지 올라간 비행대의 열기구에서 지급통이 내려왔다.

<2백리(78Km) 거리에서 함대 발견, 척수 수십 척 이상, 함종 범선. 국적 확인 불가>

거리상 망원경으로도 국적 깃발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해당 함대의 소속을 짐작했다.

조선에서 사전에 접한 정보대로라면 이 부근에서 수십 척 이상의 대함대를 낼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세 곳 뿐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그리고 에스파냐.

어느 곳의 함대이든 포르투갈 해안에 머무는 동안 도발을 받는다면 맞서 싸우도록 사전에 태왕에게서 명령 받았다. 따라서 이순신이 취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함대 대함전투 태세.”

이순신의 명령이 전파되자 곧바로 깃발이 오르고 전고(戰鼓)가 울려 퍼졌다.

함대가 전투준비를 갖추는 사이 비행선으로부터 지급통이 다시 내려왔다.

<함대 분리 중. 수십 척이 서쪽으로 분리, 별동대 우회기동 가능성 보임.>

지급통을 전달받은 이순신의 입가로 설핏은 미소가 깃들었다. 저들 딴에는 함대를 분리해 별동대를 활용하려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조선군에 완벽히 파악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전 함선에 해당 사실 전파해서 좌측이나 후방에서 별도의 함대가 출현해도 당황하지 않게 조치하도록.”

이순신의 명령에 부장이 분주히 움직이고 이내 기함에서 불빛신호가 각 함선들을 향해 보내졌다.

이순신 함대가 기항하고 있는 지역이 포르투갈의 북단 도시임을 감안해서 맞서 이동하지는 않았다. 타국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순신 함대는 비아나두카스텔루 앞바다에서 대형을 갖춰 다가올 상대 함대를 기다리기로 했다.

“니은자 대형.”

이순신의 명이 떨어지자 부장이 신호수에게 짧게 명했다.

“함대 죽음의 낫 대형!”

자신의 명과 다른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니은자 대형을 해군 장병들이 ‘죽음의 낫’ 대형이라 부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니은자 대형에 그와 같은 별명이 붙은 것은 몇 해 전 해군 기동훈련에서 벌어졌던 가상 해전 때문이었다.

당시 홍군은 조선군 원수에 막 올랐던 이순신이, 청군은 해군 총사 이억기가 맡아 지휘했다. 다수의 별동대를 운용한 청군에 맞서 홍군이 펼친 대형이 바로 이순신이 고안해 낸 니은자 대형이었다.

육지 쪽으로 열고, 바다 쪽으로 한쪽 각을 세운 이 대형은 실질적으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마치 학익진에서 한쪽 날개만 펼친 모양새라고나 할까?

당시 홍군은 전면의 함선과 한쪽 날개로 청군을 감싸듯 몰아넣고 포격전을 전개했다. 당시 밀가루가 잔뜩 들어간 공탄을 얼마나 뒤집어썼는지 청군의 본대가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될 지경이었다.

한쪽 날개로 막힌 데다 반대편은 육지에 가로막혀 청군의 본대가 전장에서 이탈하지도 못한 채 모든 포격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회심의 일격을 담당했던 별동대들도 날개를 펼치듯 진형을 일자진으로 변경한 홍군의 집중포격에 걸려 각개 격파당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억기가 이순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해당 니은자 대형을 상대하는 내내 죽음의 낫을 마주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병사들에게 전해지며 ‘죽음의 낫’ 대형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이었다.

깃발과 전고, 불빛신호의 세 가지 형태로 전달된 이순신의 명에 따라 함대가 길게 횡대로 늘어섰다. 일명 죽음의 낫 대형으로 불리는 니은자 대형은 이렇듯 일렬횡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진형을 구축하고 기다리길 3시간, 비행대 열기구에서 지급통이 내려왔다.

<깃발 확인, 에스파냐! 별동 함대 서쪽으로 위회하여 고속 항진 중, 아군 함대의 좌측 후방에서 돌출할 계획으로 사료됨.>

상대의 정체를 확인했음에도 이순신은 함대를 제자리에 대기시켰다. 아직 에스파냐의 함대는 포르투갈의 바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지상군도 파견했다는 소문만 파다했을 뿐 직접 조우하지 못했으니 아직 에스파냐와는 전쟁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 제집 앞바다에서 에스파냐 함대가 무슨 짓을 하든 아직은 조선이 관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2시간이 지나고 함교 위 망루에서 에스파냐 함대를 망원경으로 식별하자 비행대에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열기구가 연결된 밧줄이 도르래를 통해 감기고 열기구가 내려오자 이내 열원이 제거되고 뜨거운 공기를 빼내는 작업이 상갑판에서 분주하게 벌어졌다.

함상에서 가장 취약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온 상갑판이 열기구의 천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을 최단시간 안에 수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을 위해 상갑판에 대기하고 있던 수병들까지 달려들어 열기구에서 뜨거운 공기를 빼내고 힘없이 늘어진 천을 차곡차곡 접기 시작했다.

거의 30분에 걸쳐서 열기구의 수납이 완료되자 망루에서 함교의 확성관을 통해 보고가 올라왔다.

“에스파냐 함대, 포르투갈 영역 진입!”

이제 조선의 함대가 에스파냐 함대에 대응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함대 전진.”

이순신의 명이 떨어지고 이내 전진을 뜻하는 깃발이 오르고 북이 울렸다. 곧바로 함대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상대측도 이순신 함대를 발견했는지 곧바로 내려왔다.

이순신 함대가 우측에 육지를 가까이 두고 북상한 까닭인지 상대의 에스파냐 함대도 좌측으로 육지를 가까이 끼고 남하해 왔다.

상대를 향해 일렬횡대를 구성한 채 접근하길 다시 1시간가량, 망루와 연결된 확성관에서 견시수의 음성이 울렸다.

“에스파냐 함대 60척. 갤리온 다수, 전열함 확인.”

최근 유럽은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전열함의 수가 차츰 늘어가고 있었다. 이전에 바다의 최강자였던 갤리온은 그런 전열함에 주역의 자리를 내어주는 실정이었다.

상대에게 전열함이 있다고 작전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순신은 묵묵히 전방을 주시할 뿐이었다.

함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검고, 잔잔했다.

이당시 함교에 사용된 유리는 굉장히 두꺼웠다.

시계탑에 끼울 정도의 커다란 유리를 만들지 못해서 비올 때마다 방수포를 뒤집어 씌워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조선의 유리 제작 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함교에 어울릴 정도의 커다란 유리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도였다. 방풍 유리는 가능하지만 함포의 발사 반동이나 적함의 포탄충격에서 함교 요원들을 보호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가로 1자(약30Cm), 세로 반자(약15Cm), 두께 반자짜리 유리를 만들어 냈다.

유리가 두꺼워지면서 약간의 왜곡이 발생하지만 함교에서 외부를 확인하는 것에는 충분했다,

이것을 강철 프레임에 맞춰 넣어서 마치 수십 개의 모니터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함교 유리창을 완성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만든 유리창도 적의 포탄에 직격당하면 깨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얇은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서 함교 요원들에게 흉기처럼 날아들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워낙 두껍기 때문이다.

그래도 깨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함교 투과 창문에는 별도의 덧창이 존재한다. 함교에서 도르래를 감아 당기면 함교 상부에 젖혀두었던 철재 덧창이 내려와 덮이는 형태였다.

덧창이 덮이면 함교는 장님이 된다. 이때는 함교위에 설치된 망루가 눈 역할을 했다. 이것을 위해 망루는 밀폐형으로 만들어졌고, 오로지 망원경을 내밀 정도의 공간만 뚫려 있었다.

물론 사방을 쉽게 확인하기 위해 뚫려있는 곳이 많기는 했다. 따라서 저격수가 노린다면 충분히 위험할 수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견시수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방탄조끼에 철모, 거기다 망원경을 댈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는 철 가면까지 써야 했다.

모두가 유사시 저격병의 총탄에서 견시수를 지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런 견시수의 보고가 함교 확성관을 타고 울렸다.

“에스파냐 함대 1만보(약1천8백M)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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