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74화 (174/325)

제174화. 9치(272mm) 작렬탄

단 3척으로 이루어진 조선 해군과의 전투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우선 전열함 6척이 침몰했고, 2척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20척의 무장상선들 중에서도 10여척이 반파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다.

네덜란드 선원들은 조선 함선들이 보인 놀랍도록 단단한 맷집에 놀라고 있었다.

수백발의 폭발탄을 뒤집어쓰고도 바다위에 떠 있던 왕건급 호위함은 물론이고, 홀로 네덜란드 함대와 포격전을 벌이던 해모수급 전열함의 위용은 전투가 끝난 후에도 네덜란드 선원들에게 공포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해전에서 승리를 거뒀으면서도 네덜란드 함대에 환호성이 없던 이유였다.

상당한 피해를 입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는 사라왁 항구로 입항했다. 수리와 보급을 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진입한 사라왁 항구에서 네덜란드 함대는 또 다른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항구 일대에 단단한 진지를 구성한 채 대기하고 있던 조선해군 육전대 병력과 조선무역선 선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무역선에 설치된 기중기로 배에 장착되어있던 이포까지 육상으로 옮겨 포대까지 배치한 조선군 진지에서 항구로 접근하는 네덜란드 함대에 포격을 가해왔다.

시간상의 이유로 12문 밖에 옮기지 못했음에도 조선군의 포격은 상당히 거셌다.

맷집이 좋은 전열함들을 앞세워 돌입시키며 저항하는 조선군 진지를 향해 네덜란드 함선들도 마주 포격하며 맞섰다.

함선에 비해 지상군에 대한 폭발탄의 충격은 훨씬 컸다.

수십 발의 폭발탄을 뒤집어쓴 조선군 진지가 무너지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살아남은 조선군 병사들이 네덜란드 함선들의 포격이 닿지 않는 안쪽으로 피신했다.

그런 사라왁 항구로 네덜란드 배들이 붙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

50척의 주몽급 순양함과 10척이 석탄운반선으로 구성된 이순신 함대는 대만섬을 그대로 통과해 포라중으로 직행했다.

이순신 함대의 순항거리상 부산포와 포라중까지는 별도의 보급 없이 항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10노트의 순항 속도로 항진하고 있는 이순신 함대의 항해 거리가 바람의 영향을 받아 속도가 들쑥날쑥한 범선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로인해 이순신 함대가 케풀라우안리아우 제도와 보르네오섬 사이의 바다에 도달한 것은 부산포를 출발한지 12일 만이었다.

범선들이었다면 평균적으로 보름은 넘게 걸려야 했던 거리였다. 물론 바람을 잘 만나 최대속도를 낼 수 있는 날이 많다면 이순신 함대보다 빠른 속도로 횡단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자주 일어날 수 없는 행운에 속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순신 함대의 운항 속도는 범선에 비해 확실히 빠른 것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보르네오섬 인근 지역을 통과하던 이순신 함대 기함의 함교 위에 설치된 망루에서 굉음과 함께 불빛을 관측했다.

관측 위치는 보르네오섬 서남단 쪽이었다.

워낙 큰 굉음에다 밝은 섬광이었기에 여상치 않다고 느낀 이순신이 함대에서 가장 많은 석탄 재고량을 보인 5척의 주몽급 순양함들로 정찰전대를 구성해 파견하고 본대는 그대로 포라중으로 향했다.

이순신의 명령으로 구성된 정찰전대에는 어느덧 장령으로 진급한 손일원이 함장을 맡고 있는 주몽급 순양함 027번함도 끼어있었다.

그 027번함이 앞장선 가운데 5척의 주몽급 순양함들이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보르네오섬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3시간에 걸친 항해 끝에 불빛이 관측된 지역에 도착한 정찰전대가 발견한 것은 일대의 바다를 뒤덮고 있던 다수의 잔해였다.

정찰전대의 수병들은 잔해 속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채 떠 있는 조선 해군 수병들의 시신을 건져냈다.

구명조끼에 쓰여 있는 문자들로 침몰한 배가 포라중 주둔 함대였던 제213원정전대 소속 함선임을 확인한 순찰전대는 곧바로 일대의 수색에 들어갔다.

원흉을 찾기 위해서였다.

비번인 수십 명의 수병들이 자원하여 배 곳곳에 서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샅샅이 뒤졌다. 동료들의 복수를 다짐하는 주몽급 순양함 승무원들의 눈엔 분노의 불길이 가득했다.

수색은 오래지 않아 끝났다. 인근의 사라왁 항구 앞바다 일대에서도 다수의 잔해가 발견된 것이다. 그 잔해들 속에는 조선 해군의 것만이 아니라 네덜란드 배의 잔해도 다수 섞여 있었다.

그것으로 범인이 네덜란드 함대라는 것을 확인한 정찰전대가 사라왁 항구에 대한 확인 작업을 위해 접근했다.

만안으로 휘어져 들어가 위치한 항구의 특성상 함대가 외부 바다에서 항구 내부를 정찰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정찰전대장은 손일원의 027함에게 항구 내부로 진입해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에 따라 손일원의 027함이 사라왁 항구로 진입했다.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온 것은 접안시설에 잔뜩 달라붙어있는 네덜란드 함선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서 조선무역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하나 항구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공격자가 네덜란드군 이라는 것으로 방어자에 대한 추측은 충분했다.

손일원의 명령에 배의 측면을 항구방향으로 돌려 세운 027함이 2연관 일장함포 두문을 항구로 향했다.

목표는 한창 전투중인 항구 위의 네덜란드군이었다.

함장의 명령에 관측병들의 포격 재원이 곧바로 쏟아져 들어왔다.

“거리 3천(약5,455M). 방위 좌 213.”

관측병들의 포격 재원 보고에 더해 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장탄 산탄포탄!”

함장의 명령을 부장이 하부 갑판의 포격 지휘소와 연결된 확성관을 통해 전달하자, 포격 지휘소의 포술장은 다시 주포와 연결된 확성관을 통해 포수들에게 명령을 전파했다.

이내 선수와 선미 측에 장비되어 있던 일장함포가 둔중한 포신을 움직여 포선을 맞췄다. 증기기관과 연동되어 포탑을 회전시키는 기계장치는 현대시대의 것보다 기초적이어서 회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시대의 기술로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잠시 후, 같은 계통을 거쳐 하갑판 사격 지휘소와 연결된 함교의 확성관을 통해 ‘조준 완료’보고가 올라왔다.

“방포!”

손일원의 명령이 내려지고 잠시 후.

쿠궁.

굉음과 함께 선체가 진동했다. 조선 해군 최초의 대구경 장사정포의 실전 포격이 벌어진 것이다.

9치(272mm)의 대구경 포탄이 ‘쇄애애액’ 거리는 모골 송연한 비행음을 달고 날아가 떨어졌다.

콰광.

목표에서 빗맞은 두발에 직격당한 항구 건물 하나가 폭삭 무너졌다. 또 다른 두발은 정확히 네덜란드군 집적지를 때렸다.

충돌 즉시 폭발하는 작렬탄의 파괴력은 상상이상이었다.

포탄 낙하지점 전체가 순간적으로 날아갔다. 폭발탄이 떨어지면 포탄이 폭발할 때까지 도주할 시간이 주어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장탄도 빨랐다. 포신청소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장약과 탄두 일체형의 금속탄피형 포탄이 장전되고 곧바로 발포가 되었다.

2탄, 3탄이 떨어지면서 지상에 상륙한 네덜란드군의 피해가 막대했다.

놀란 네덜란드 함대가 접안시설에서 이탈해 움직이자 주포들의 방향이 바뀌었다.

쿵.

선수에 장비된 2연관 일장함포에 직격당한 네덜란드 전열함 1척이 그대로 폭발했다.

외벽을 파괴한 작렬탄의 화염이 포갑판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화약을 일순간에 유폭 시킨 탓이었다. 전장40M에 달하는 전열함이 단 두발의 작렬탄에 폭발하는 장면은 네덜란드 함대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15분가량 벌어진 전투는 오로지 027함에 의해 주도되었다.

물론 후반에 접어들며 2척의 주몽급 순양함이 합류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전투는 그 이전에 결정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15분 동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는 간신히 살아남아 입항 했던 전열함 4척과 무장상선 6척을 잃었다.

네덜란드가 보유한 그 어떤 배도 주몽급 순양함이 발포한 9치 작렬탄을 버텨내지 못했다. 결국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에 백기가 걸리고, 항구에 상륙한 네덜란드 군인들도 백기를 걸었다.

동료함들의 삼엄한 경계 하에 항구에 접안한 027함에서 중무장한 50명의 해군 육전대원들이 하선했다. 그들을 살아남은 조선무역선 선원들과 육전대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합류한 육전대원들과 선원들이 항복한 네덜란드 군인들을 포박해 꿇어앉히기 시작했다.

정찰전대는 곧바로 1척의 순양함을 포라중으로 보내 상황을 알리는 한편 나머지 3척의 순양함에서 추가로 육전대원들을 상륙시켜 네덜란드 포로들을 관리했다.

정찰전대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곧바로 213원정전대의 나머지 함선들을 사라왁으로 보냈다.

다음 날, 귀환한 정찰전대를 포함해 전 함선이 동행한 혁거세급 석탄운반선을 통해 석탄을 보충 받았다.

사전 계획대로면 포라중에선 보르네오산 석탄을 보충받기로 했던 것인데, 네덜란드의 갑작스런 개입으로 어긋나 버린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대로 다음 기착지인 마드라스로 떠날 수는 없었다. 직접 보급을 택한 까닭에 10척의 혁거세급 석탄운반선들이 보유한 석탄들 중 3만5천 톤이 소요된 탓이었다.

혁거세급 석탄운반선의 석탄 수송량은 1척당 5천 톤으로 10척이 운송가능한 양은 5만 톤이었다. 그러니 이순신 함대에 직접 보충한 현재 잔여 적재량은 1만5천 톤이었다.

거기서 석탄운반선들의 자체 보충량을 빼고 나면 잔여 보관량은 5천 톤으로 급감했다.

마드라스와 광무항에서도 별도의 계획에 의거하여 석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포라중 같은 사태에 직면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석탄운반선에 겨우 5천 톤만 남아있다면 이순신 함대는 그길로 운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주몽급 순양함일지라도 석탄의 보급이 끊어진다면 고철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순신 함대도 사라왁으로 향했다. 석탄운반선들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

조선의 포르투갈 원정에 증기철선이 동원되면서 반드시 구축해야 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석탄 보급망이다.

이것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 한해 다수의 기술자들과 광산개발자들이 노력을 경주했다. 그런 노력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지(豫知)’라고 불리는 태왕의 명이 존재했다.

무슨 소린가 하면, 이곳에 무엇이 있을 것이니 살펴보라는 태왕의 말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다. 마드라스와 광무항도 마찬가지였다.

태왕이 지목한 지역에서 석탄광맥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드라스의 경우는 북부 오리사지역에서, 광무항의 경우엔 동부 해안을 따라 올라간 다반에서 광맥을 찾아냈던 것이다.

양쪽에 모두 석탄 생산 거점을 마련한 조선군은 일대에 세력을 형성한 술탄국과 부족들에게 은 또는 곡물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으로 전투를 피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해당 석탄광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해당 술탄국과 부족에게서 충당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대가도 따로 지불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원하는 금액이 워낙 작아서 조선이나 대한제국 일대에서 생산되는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다행히 마드라스와 광무항은 계획대로 수월하게 석탄 보급물량을 채울 수 있었다. 양쪽 모두 기지에 건립한 10만 톤 규모의 석탄 보관창고를 꽉 채웠던 것이다.

문제는 광무항에 내려져 있던 또 다른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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