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의미 없는 조약
숨을 고른 외교부 장관이 펠리페 3세의 말에 답했다.
“조선은 그럴 생각이 없사옵니다. 다만 아국과 전쟁상태의 나라에 조선의 기술로 만들어진 화포를 판매한 것도 모자라 포르투갈의 선원들이 지휘권을 가진 배로 찾아간 아국의 군관들을 살해함으로써 양국의 우호가 종료되었다 판단했을 뿐이지요.”
“그, 그것은······.”
뒷말을 잇지 못하는 펠리페 3세에게 외교부 장관이 말을 이었다.
“그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옵니다. 지금은 그것을 논하고자 찾아 뵌 것이 아니오니 당금의 사안에 집중하고자 감히 청합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온 탓인지 펠리페 3세는 외교부 장관의 말에 얼른 주제를 바꾸었다.
“포로들의 일 말이더냐?”
“예. 조선은 그들을 돌려받길 원하옵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리스본 항을 엉망으로 만든 죄인들이다. 돌려줄 수 없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감옥에서 만난 단장으로부터 전후의 사정을 소상하게 설명 들었던 외교부 장관은 펠리페 3세의 말에 거짓말이라고 쏘아붙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임무는 논쟁으로 저들의 잘못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힌 포로들을 석방시켜 데려가는 것에 있었다.
그것을 상기하며 애써 분노를 내리누른 외교부 장관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배상을 지불할 용의가 조선에는 있나이다.”
“배상? 조선이 배상을 하겠다는 소린가?”
“포로들을 돌려주신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 말이옵니다.”
“그러니까 몸값을 주겠다?”
직설적인 펠리페 3세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국왕 폐하의 분노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 생각해 주십시오.”
“사과의 표시라?”
“예.”
“내 분노를 가라앉히는 값은 결코 싸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있다고 믿사옵니다.”
“그렇단 말이지······. 하면 무엇을 제시하겠는가?”
펠리페 3세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이 답했다.
“소신이 아국의 태왕 폐하께 받은 것은 이 협상에 대한 전권이었을 뿐, 무엇을 제시하라는 명을 받은 것은 없사옵니다. 하니 먼저 말씀을 해주시면 제가 답해 올리겠나이다.”
“우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리스본 항구의 봉쇄가 풀려야 할 것이다. 물론 죄인들이 가지고 있던 물품은 돌려줄 수 없다.”
“이해하옵니다.”
예상 외로 순순한 답이었던지 슬쩍 외교부 장관의 표정을 살핀 펠리페 3세가 말을 이었다.
“그것은 배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유럽 각국이 사략선들을 운용해 경쟁관계인 타국의 배와 물건은 물론이고, 심지어 타고 있던 선원들까지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외교부 장관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그것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각 함정들이 장비하고 있던 무장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외교부 장관은 분명 출발 전에 태왕에게 명령받았다.
포로들로 잡힌 이들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배와 무장은 물론이고 그 어떤 손해도 감수하라고,
그것을 기억해낸 외교부 장관이 고개를 숙였다.
“그 또한 받아들일 것이옵니다.”
“당연히 강탈해간 희망봉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멈칫 하는 외교부 장관에게 펠리페 3세가 밀어붙였다.
“난 본래 조선의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그조차 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죄인들을 풀어 달라 청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흐음······. 그리 하겠습니다.”
“또한 말라카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 하겠나이다.”
“좋다. 아울러 그 모든 것을 돌려준 후 다시 포르투갈로부터 빼앗지 않겠다는 조약을 맺으라.”
“하면 포로들을 돌려주시는 것이옵니까?”
“조약서에 조선 국왕 국새가 찍혀 돌아오고, 희망봉과 말라카를 포르투갈군이 다시 회복한 것이 확인된다면 풀어 줄 것이다.”
“조약서부터 주소서. 제가 서명하여 곧바로 본국으로 전달하여 아국 태왕 폐하의 옥새를 찍어 오도록 하겠습니다.”
“희망봉과 말라카는?”
“태왕 폐하의 전권을 위임받은 제가 명령서를 써서 조선의 함선을 먼저 보낼 터이오니 그 뒤를 포르투갈의 함선이 따라가 인수받으십시오.”
“좋다. 그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그대는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어차피 사로잡힌 이들과 함께 돌아가지 않는 이상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오니 상관없습니다.”
“좋다. 머물 곳을 마련해 줄 것이니 그곳에서 기다려라. 곧 조약서를 만들어 다시 부를 것이다.”
“예.”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이고 물러나는 외교부 장관을 바라보는 펠리페 3세의 입가엔 만족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에스파냐 시종의 안내로 대전에서 물러나온 외교부 장관은 수행원들과 함께 머물 작은 별궁을 하나 배정받았다. 그곳에서 외교부 장관은 포르투갈로 향해 오던 와중에 들렸던 말라카와 희망봉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외교부 장관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말라카와 희망봉이 어떤 구실로라도 끌려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에 따라 두 곳의 주둔군 지휘관들과 협의를 해본 결과 아프리카 최남단 서극단에 위치한 희망봉의 경우엔 동극단에 일단의 평지(현대 시대의 포트 엘리자베스가 존재하는 지역)를 발견한 것이 있어 그곳에 새 항구도시를 열어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따라서 만약 희망봉을 다시 포르투갈에게 내어줄 경우 조선군은 그 동극단에 다시 항구도시를 만들어 중간 기착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말라카의 경우는 더 수월했다. 애초에 조선이 말라카를 점령할 당시 차기 기항지로 삼기 위해 점령해둔 포라중(싱가포르)의 개발이 완료되어 임무 전환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말라카가 과거부터 무역거점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장점이 있는 반명 주변의 술탄국들의 침략이 빈번하다는 것이 꾸준히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실제로 조선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 번이나 주변 술탄국과의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방어를 위해서는 상당한 군사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군사적 충돌 위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개활지에 건설된 탓에 방어에는 취약했다. 그와 반대로 포라중은 대륙과 폭이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방어에 유리했다.
그러니 예정보다 조금 앞당겨 포라중으로 이전하면 그만이었다.
또 하나, 조선군이 말라카에서 철수하면 요사이 말레이 인근에서 한창 세력을 확장중인 네덜란드가 냉큼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네덜란드는 한창 에스파냐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전개 중이었다.
그런 네덜란드의 아시아 진출을 담당하고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전투 없이 교역도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정도로 호전적인 집단이었다.
펠리페 3세가 에스파냐와 함께 통치중인 포르투갈과 전투를 벌여 말라카를 차지하는 것을 망설일 이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교부 장관은 만약 포라중이 생각보다 부족하다면 그때 네덜란드의 수중에서 말라카를 다시 되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펠리페 3세가 거론한 조약은 포르투갈에게서 다시 빼앗지 않겠다는 것이었지 다른 나라로부터 말라카를 되찾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들을 정리한 외교부 장관의 입가엔 미소가 깃들었다. 그것은 얼마 전 펠리페 3세가 대전에서 지었던 미소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다음 날, 외교부 장관은 다시 대전으로 불려가 펠리페 3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약서에 수결을 놓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말아 자신이 미리 써놓은 장계와 함께 보관통에 넣어 수행원에게 전하여 조선으로 보내도록 했다.
해당 보관통은 리스본으로 전해져 곧바로 조선으로 향할 것이었다.
아울러 외교부 장관은 두 통의 명령서를 작성해 또한 리스본으로 향하는 수행원에게 주었다. 그것들은 희망봉과 말라카로 향하는 명령서로 포르투갈군에게 해당지역을 내어주라는 명을 담고 있었다.
외교부 장관이 태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것을 알고 있는데다 사전에 나눈 대화로 인해 두 지역의 지휘관들은 두 말 없이 그 명령에 따를 것이었다.
해당 명령서가 리스본에 대기 중인 왕건급 호위함에 전해지고 이내 조선으로 출발했다.
며칠 후, 외교부 장관의 명으로 리스본 항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한 조선 무역선단들이 본연의 임무로 복귀했다. 뒤늦게나마 각자의 교역지로 향한 것이다.
물론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항구에 대한 기항은 금지되었다.
그렇게 봉쇄가 풀어진 리스본 항구에서 희망봉과 말라카를 인수하기 위한 포르투갈의 함대가 출발했다. 그간은 조선 무역선단에 포함된 호위함들의 위용에 눌려 항구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했던 포르투갈의 함선들이 오랜만에 돛을 한껏 펼치고 바다로 나아갔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포르투갈의 함선들을 리스본 항구 밖에 기항하고 있는 제211원정전대의 장병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외교부 장관의 예상대로 희망봉과 말라카 주둔 조선군 지휘부는 명령서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희망봉 주둔군의 경우엔 외교부 장관의 명령서를 받자마자 짐을 싸들고 모두 주둔 함대에 탑승해 바다로 나아갔다.
그렇게 조선군이 떠나자 포르투갈군이 다시 희망봉 일대를 장악해 갔다.
희망봉을 떠난 조선군은 남단을 항해해 동극단에 위치한 작은 반도에 배를 정박하고 상륙했다. 그들은 사전에 미리 이 지역에 대한 이름도 지어 놨다.
그 이름은 바로 ‘광무항’이었다.
태왕의 연호를 따 지은 것이었다. 그곳에 병사들이 주변의 나무를 베어와 요새를 짓고 간이 포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본국에 지원을 청해 공병대와 건설단이 파견되면 제대로 된 항구를 짓기로 하고 급한 대로 목재를 사용해 임시로 사용할 접안시설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그곳에 다시 조선기와 대한 제국기, 그리고 조선 육군을 상징하는 삼족오 깃발과 삼태극이 선명한 해군기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말라카 주둔군도 명령서에 순순히 따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라카의 주둔지에서 모든 짐을 깡그리 싣고 떠났다. 책상과 의자 같은 집기류는 물론이고, 그릇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 간 짐을 모조리 포라중에 풀었다.
말라카 주둔군은 곧바로 포라중 주둔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 임무를 재개했다. 소수가 배치되어 있던 포라중 경비대는 상위 부대였던 말라카 주둔군, 아니 이제 포라중 주둔군이 된 부대와 합류했다.
다소 귀찮은 이전 작업들이 수반되기는 했지만 그런 일련의 조치로 인해 조선은 여전히 아프리카 남단과 말레이 항로에 중요 기항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새로운 기항지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시간, 조선에서 태왕의 옥새가 찍힌 조약서가 다시 포르투갈을 향해 출발했다.
그때가 5월 중순이었는데, 포항 해병대 훈병원에서는 제국 내 각 제후국이 보내온 병력들과 조선에서 새로 소집된 1만의 병력을 합해 12만의 병력이 한창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