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불굴의 투지
광해가 포르투갈을 향해 가고 있을 장관을 대신해 외교부 차관을 불러들였다.
“제국 전권대사들을 소집해서 내 명을 전하게. 전 제후국은 각기 1만의 병력을 추려 조선으로 보내되 후금과 북원, 할하, 준가르는 기마군을 다른 제후국들은 보군을 보내라 명하라.”
“이유를 물으면 어찌 답하오리까?”
“그저 황명이라 전하라.”
“불문곡직(不問曲直)의 명은 불화를 만들 수도 있나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외교부 차관에게 광해가 말했다.
“황제의 분노가 크다고만 전하라. 하면 알 것이다.”
대체로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다. 광해는 아마도 조만간 제후국들 모두가 조선 무역선단이 포르투갈에서 당한 일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광해의 뜻을 알아차린 외교부 차관이 고개를 조아렸다.
“명을 받잡나이다. 폐하.”
다음 날 소집된 제국 전권대사들이 황제의 명을 받아 본국에 알리는 파발을 띄웠다. 외교부에선 그저 황명이라 설명했지만 대사들은 본국으로 보내는 파발에 조선 무역선단이 포르투갈에서 당한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전권대사들의 파발이 한성을 떠난 날, 광해가 곽재우를 조용히 궐로 불러들였다.
붉은 색이 또렷한 해병대 군복을 차려입고 엎드려 있는 곽재우에게 광해가 말했다.
“몇 달 후, 총사에게 12만의 병사들을 줄 것이오. 일당백의 전사들로 키워주시오. 내가 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반년 정도일거요.”
“모두 해병으로 키우시는 것이옵니까?”
“배를 타고 멀리 이동할 것이고, 상륙을 하여 싸울 것이긴 하나 일단 상륙을 하면 육전이 대부분일 것이오.”
“그에 맞춰 병사들을 훈련시키겠나이다.”
“긴 싸움이 될 거요.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벌어질 싸움에 오랜 시간 종사해야 할 병사들이오. 내가 육군이 아니라 해병대에 그들을 맡기는 것은 전투력만이 아니라 그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오.”
“불굴의 투지, 과감한 결단, 돌아보지 않는 전진. 모두 해병을 뜻하옵니다. 12만 모두가 그런 해병의 정신을 가지게 될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염려치 마소서.”
말과 함께 고개를 조아리는 곽재우에게 광해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들을 어디다 쓸지 내 뜻을 경이 알 것이오.”
“예. 소신, 언제 불러주시나 기다렸나이다. 부름을 받았으니 폐하의 뜻을 저 간악한 저 양이 무리들의 뼈에 새겨줄 것이옵니다.”
“믿으리다.”
“충!”
군례를 올린 곽재우가 물러갔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갖춰지고, 사로잡힌 이들이 돌아오면. 광해는 그때까지 참고 참았던 인내를 모조리 분노로 바꾸어 쏟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시간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참고 인내하여 준비에 차지일 없도록 만반을 두루 살필 때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광해가 그대로 궐을 나섰다.
이역만리 그 많은 병력을 보내려면 지금부터 살펴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궐을 나선 광해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왕명으로 내의원이 한성 한복판에 세운 왕립조선 종합의원이었다.
1백 명의 의원과 3백 명의 의녀를 두어 병자를 다루고, 2백 명의 서원(書員)을 두어 잡무를 맡아보도록 한 이 왕립조선 종합의원은 명실상부한 이 시대 세계 최대의 전문 의료 기관이었다.
광해는 이 왕립조선 종합의원 예하에 의학당과 의녀학당을 열어 의원들과 의녀들을 키워냈고, 의료연구소와 약제연구소를 두어 의술과 약학의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광해가 향한 곳은 약제연구소였다.
약제연구소가 처음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어의 허준이 태왕의 조언으로 개발에 성공한 종두법이다. 지금은 약제화해서 마치 백신처럼 사용가능한 예방약제가 생산될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것이 온 제국 전체에 보급되어 종두법시행에 사용되고 있었다, 포르투갈과의 충돌만 아니었다면 광해는 그것을 올해부터 유럽에 공급할 예정이었다.
의료한류를 수백 년 앞당겨 시작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광해는 세계의 의료기술을 조선이 선도하게끔 만들 생각이었다.
그 중심에 서게 될 약제연구소가 요사이 매진하고 있는 연구는 항생제였다. 페니실린에서 착안해 전달된 광해의 조언으로 푸른곰팡이에서 항생제 성분을 분리해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정에 없던 광해의 방문을 어의 허준이 맞았다.
“오셨나이까. 폐하.”
“고생이 많소.”
“아니옵니다. 매일 같이 소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이곳이 제겐 극락과 다를 것이 없나이다.”
“경의 노고에 짐과 온 나라 백성이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겸양하는 허준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광해가 물었다.
“어찌 결과는 좀 있소?”
“최근 두 가지 물질을 찾아내 실험을 하고 있나이다. 화농에서 취한 고름을 주입한 토끼들 중 그냥 방치한 토끼는 시름시름 앓다 죽은 반면 그 두 물질을 투입한 토끼는 아직 살아있나이다.”
“하면 그것들이 항생제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 아니요?”
“예. 그렇긴 하오나 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 추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나이다.”
“어찌 하고 있는 거요?”
“상처를 내고 곪게 만든 돼지 12마리 중 4마리는 방치하고 8마리는 각기 4마리씩 나누어 두 후보 물질들을 투여했나이다.”
“언제면 결과가 나오겠소?”
“열흘 안이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이런 부류의 일이 서두른다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은 아니겠으나, 어의.”
“예. 폐하.”
“일 년, 아니 반년 안에 성공해야 하오. 십만이 넘는 제국의 아들들이 머나먼 타국 땅으로 갈 것이오. 그들에게 항생제는 여분의 목숨이 될 것이오.”
“명심하여 서두르겠나이다. 폐하.”
“어이를 믿으리다.”
고개를 조아리는 허준의 손을 부여잡고 미안함을 표한 광해가 허준의 배웅을 받으며 약제연구소를 떠났다.
다음에 찾은 곳은 장원이었다.
증기철선에 실릴 대구경 장사정포는 완성이 되어있었으나 아직 부포로 사용될 이포의 개량형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광해의 방문에 나대용이 황급히 마중을 나왔다.
“부포는 어찌 되었소?”
“재설계가 마무리 되어 마침 시제품이 나왔나이다. 보시겠사옵니까?”
“그럽시다.”
광해의 답에 나대용이 그를 화포 개발조로 안내했다.
화포 개발조 연구소 한쪽에 자리를 차지한 거대한 철 구조물 앞으로 광해를 안내한 나대용이 화포 개발조장을 불러 설명을 시켰다.
“구경과 후장식, 주퇴복좌기 등 기본 설계는 이포와 같습니다. 다만 포신이 길어졌고 강선의 회전도 많아졌습지요. 그로인해 정확도는 더 늘었나이다.”
“정확도가 늘었다니 좋은 일이군. 다른 것은?”
“포신의 사격 각도의 조절 폭이 커졌사옵니다. 그 결과 일전에 폐하께오서 말씀하셨던 곡사도 가능해졌나이다.”
화포 개발조장의 설명을 들으며 광해가 둘러 본 포는 밀폐형 포탑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에 만족해하는 광해의 표정을 알아차린 화포 개발조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일전에 향후 화기 개발 과제 토의에서 폐하께오서 향후 개발되는 포는 포수들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대구경 장사정포와 마찬가지로 밀폐형 포탑을 채용하였나이다.”
“좋아. 선택을 잘했네. 무기는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되나,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으니 항상 내 형제가, 내 자식이 쓸 무기라 생각하고 사용자가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일세.”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고개를 조아리는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광해가 포를 살피며 물었다.
“선회도 하나?”
“예. 신형 증기철선의 설계상 4문의 부포가 측면에 설치된다하여 배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든 자유로이 선회하여 목표를 찾을 수 있게 하였나이다.”
“이름은 지었던가?”
“기존 포의 작명법에 따라 삼형포, 줄여 삼포라 칭하고자 하옵니다. 어차피 이동식 포가에 얹은 개방형 삼포 또한 육군에 보급 될 것이기에······.”
화포 개발조자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광해가 물었다.
“대구경 장사정포는?”
“해군에서 광무3형 장사정 함포라는 이름을 요청해왔나이다.”
“광무3형 장사정 함포?”
“광무3년에 개발된 장사정 함포라 하여······.”
“아!”
“하나 부르기 어려우니 처음 개발된 장거리 함포라 하여 일형 장거리 함포, 줄여 일장함포라 부르자는 의견이 더 많사옵니다.”
영어의 존재도 알고, 사역원에서 영어를 쓰는 역관들도 길러내지만 아직 조선 백성들의 실생활에서 영어는 생소한 언어였다.
그러니 K2 같은 간단한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다. 아니, 가능한 광해는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들에 영어를 쓰지 않길 원했다.
이제 세계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한글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군. 향후 개발된 함포에도 적용할 수 있을 테고.”
“예. 이장함포, 삼장함포 순으로 붙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옵니다.”
“그리 하라.”
함포의 이름까지 결정지은 광해가 나대용에게 물었다.
“포의 크기가 커졌는데 이곳에서 만들어 거제까지 가겨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겠나?”
“하예 그렇지 않아도 폐하께 이참에 거제 건선단지 안에 아예 함포 제작소를 만드는 것을 주청 드릴까 하던 참이옵니다.”
“좋은 생각이로군. 그리 하도록 하지. 거제에서 만들면 증기 기중기들로 바로 들어 옮길 수 있으니 좋은 생각이로군.”
“예. 하오면 서둘러 진행하겠나이다.”
“그리하게.”
화포 개발조를 나온 광해는 포탄 개발조에 들려 완성된 작렬탄을 살피고, 새로 개발된 연막탄도 시찰했다.
연막탄은 광해가 현대 군사작전을 감안하여 만들도록 지시한 것으로 필요시 아군의 움직임을 적군의 시야에서 감추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었다.
그것들의 실제 시현까지 참관한 광해가 소총 개발조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광해는 나총이 개발 될 때부터 신형 소총의 개발을 요구했었다. 리볼버 탄창을 채용한 총기가 가혹한 야전 상황에서 고장이 잦고 수명이 짧다는 것을 실제역사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형 소총의 개발 당시엔 조선의 기술이 연발사격을 가능하게 할 탄창으로 리볼버 이상을 선택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연유로 우선은 보군의 화력 보강을 위해 나총을 보급하고, 추후 기술을 확보한 후 개량을 통해 신형 소총을 개발하기로 했었다.
당시 광해가 신형 소총에 요구한 성능은 세 가지였다.
첫 째. 아래에서 위로 끼우는 별도의 탄창을 채용할 것.
둘 째, 금속탄피 총탄의 채용을 위해 탄피가 자동 사출될 것,
셋 째. 발사 후 다음 총탄이 약실에 자동으로 정위치 될 것.
나총이 개발된 이후 줄기차게 이 세 가지 목표를 향해 기술개발이 이루어진 덕에 6년이 지나 7년째에 접어든 올해 소총 개발조에서는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출력의 증기기관을 활용한 각종 공작기계들이 다수 제작되고, 그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가공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덕이었다.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소총 개발조에서 만들어낸 신형 소총의 외관은 딱 프랑스의 명품 소총이었던 Mle 1892/M16이다.
1900년도 초에 만들어진 이 소총의 외관을 거의 빼다 박듯이 닮아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볼트액션식 소총들의 생김새가 거기서 거기이겠지만 탄창의 위치와 형태가 비슷했다. 다만 Mle 1892/M16이 5발 들이인 데 비해 소총 개발조에서 개발한 신형 소총의 경우 10발들이 탄창을 채용하고 있었다.
8발 들이인 나총의 리볼버 탄창보다 더 많은 장탄수를 보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10발을 한계로 정한 것은 여전히 사용화약이 흑색화약이었기 때문이다. 금속탄피를 사용함으로써 후방가스 배출과 탄매 번짐이 줄었지만 총신에 대한 탄매 형성은 여전했던 탓이다.
따라서 10발을 사격한 이후엔 거의 절대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총신 내부의 청소가 필요했다.
그렇게 개발된 신형 소총에 소총 개발조에서는 다총이란 명칭을 붙여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