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함상(艦上) 방어전 (2)
다행이 상륙병력은 모두 간단한 칼만 찬 채 하선했다. 점령전 등 군사작전이 아닌 경우, 기항지에서 총기의 무장 상륙은 불허된다.
무기의 외부 유출도 문제지만 쓸데없는 무장 상륙으로 기항지 사람들에게 나쁜 선입견을 심어줄 필요가 없다는 해군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니 저들이 들고 오는 총들이 조선군 상륙병력들에게서 노획한 나총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유럽 각국이 사용하는 화승총의 일종인 아쿼버스일 터였다. 조선군 입장에서는 구닥다리 구식 소총이지만 지금 같은 지근거리에서는 저들의 총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배를 빨리 접안시설에서 떼어내라!”
당직 사령의 명령이 하갑판으로 전달되었다. 4명의 경계병들이 바람날개와 연결된 구동부를 움직이기 위해 애를 썼다.
본래 전열함의 바람날개의 구동부는 최소 10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인원을 동원하면 배를 지킬 병력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이 구동부를 돌리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배위에서도 분주히 움직였다. 배를 접안시설에 고정시키기 위해 연결한 굵은 밧줄을 잘라내야 했기 때문이다.
총을 내려놓고 도끼를 든 경계병들이 사정없이 내려치고 있었지만 탄탄한 밧줄은 좀처럼 잘라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접안시설로 몰려온 포르투갈 군인들이 배위로 총을 쏘았다. 자욱한 연기가 접안시설에 가득 차며 총탄이 배위로 빗발치기 시작했다.
난간에 몸을 숨긴 경계병들이 나총으로 응사했지만 배위로 걸려 올라오는 갈고리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 있었다.
저 갈고리들에 연결된 밧줄을 잡고 올라오는 포르투갈 군인들을 사살하기 위해서는 사격 각도 상 경계병들이 일어서야 하는데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총탄이 빗발쳐 날아들고 있었다.
이러다간 배위로 넘어 들어오는 포르투갈 군인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일까지 벌어지면 방어는 더욱 불리해진다.
결정을 내린 당직사령이 이세현에게 명령했다.
“포! 포를 쏴라. 목표는 접안시설이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서 포탄이 접안시설을 뚫고 나갈 겁니다.”
그것도 대량포격이면 상관없겠지만 포갑판으로 내려 보낼 수 있는 경계병의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발포 가능한 포의 수는 많아야 두문 적으면 한문이다.
그것으로는 접안시설을 포탄의 힘을 파괴해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일 터였다.
그것에 갈등하던 당직사령의 눈에 구포 옆에 놓인 비격진천뢰가 들어왔다.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에 불을 붙여 던져라!”
순식간에 당직사령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세현과 다우란타가 산탄형 비격진천뢰의 심지에 불을 붙여 난간 밖으로 던졌다.
격투전 무기로 지정된 수탄과 지향뢰는 해군에는 보급되지 않았다. 임무특성상 거의 쓸 일이 없는 폭발무기를 위험을 감수하고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 때문이었다.
그것이 수탄이 아니라 비격진천뢰를 던진 연유였다. 물론 수탄에 비해 폭발력이 훨씬 강한 비격진천뢰의 폭발 반경이 배에서 너무 가까워서 선체에도 피해가 있겠지만 지금은 그걸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과쾅!
굉장한 충격이 선체를 때리며 비명들이 난무했다. 배 아래에 있던 포르투갈 군인들이 떼거리로 죽거나 다치며 지르는 것들이었다.
효과가 있었던지 빗발치던 총탄의 수가 줄었다.
서로 시선을 나눈 이세현과 다우란타가 한발씩을 더 던졌다.
콰광.
다시금 비명들이 울리고 날아드는 총탄의 수가 더 줄었다. 그러자 경계병들이 일어서 배에 달라붙어있는 이들을 찾아내 사살했다.
폭발반경에서 비켜나간 이들 서넛이 배에 매달려 있다가 그런 경계병들의 사격에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버들치함의 대응을 답습했던지 각 함에서도 비격진천뢰를 던져 배로 달라붙는 포르투갈 군인들을 격멸했다. 그런 조선 무역선단의 함선들을 향해 포구 인근에서 대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선포다!”
조선의 기술로 만들어진 포니 그 성능이야 누구보다 조선의 군인들인 조선 무역선단의 수병과 군관들이 잘 안다.
접안시설의 끝부분에 접안한 조선 무역선들은 모르겠지만 육지와 가장 가까운 버들치 함과 왕건급 호위함들은 충분히 사거리에 들어갈 터였다.
조준 정타는 어려워도 이정도의 함선들이 모여 있는 곳에 대한 사격이면 아무리 강선이 없는 초선포라도 어지간하면 쏘면 맞을 수밖에 없다.
“구포.”
당직사령의 외침에 다우란타와 이세현이 구포로 달려갔지만 구포병도 아닌 두 사람이 저 정도 거리의 포르투갈 초선포들을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포병. 포병 없나!”
이세현의 외침에 경계병들 중 한명이 달려왔다.
“상병 미시모토. 제가 포병입니다.”
“구포 사격 가능한가?”
“훈병원에서 훈련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전 이포병입니다.”
포병의 답이 거친 포성에 묻혔다.
콰과과과쾅!
포르투갈 초선포들이 발포된 것이다.
퍼버버버벅.
배위의 모두가 바짝 몸을 엎드렸다. 포탄에 맞아 부서져나간 나무 조각들이 상갑판 위로 우수수 쏟아졌다.
“괜찮나?”
당직사령의 고함소리 속에 경계병들이 저마다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포탄 공격에 당한 병사는 없어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당직사령의 고함소리가 이세현에게 들려왔다.
“저 새끼들이 다시 쏘기 전에 조져버려!”
당직사령이 팔을 뻗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포르투갈 포병들이 포를 장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세현이 미시모토라 밝힌 해외 5도 출신의 상병에게 명령했다.
“귀관의 훈련 때의 기억에 우리 함과 동료 전우들의 목숨이 걸렸다. 반드시 박살 내!”
이세현의 명령에 미시모토 상병이 황급히 구포의 방향과 각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다우란타 준사와 이세현이 구포 안에 화약을 넣어 다지고 산탄형 포탄을 올려놨다.
장탄을 확인한 미시모토 상병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세현이 지체 없이 불을 댕겼다.
꽝.
거친 폭음과 함께 비격진천뢰가 날았다.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쾅!
포병대가 위치한 곳에서 수십 보는 벗어난 지역에서 비격진천뢰가 폭발했다. 포병대는 무사했지만 쇳조각이 비처럼 쏟아진 지역을 막 지나던 포르투갈 총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다시!”
당직사령의 명령에 이세현과 다우란타가 화약을 재고 포탄을 올리는 동안 미시모토 상병이 다시 방향을 맞췄다.
“온다!”
갑작스런 당직사령의 고함이 울리고.
콰과과광.
커다란 포성과 함께 포르투갈 포병들이 쏘아댄 포탄들이 다시금 버들치 함을 비롯한 조선 무역선단 함선들을 두드렸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나뭇조각들 속에서 각도를 맞춘 미시모토 상병이 외쳤다.
“쏘십시오.”
미시모토 상병의 외침에 이세현이 구포를 점화했다.
꽝!
거친 폭음을 동반한 채 발사된 비격진천뢰가 하늘에서 폭발했다.
쾅!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포르투갈 포병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환호성을 지르는 경계병들 사이로 다른 호위함에서도 포성이 들리더니 발사된 비격진천뢰가 정확하게 포르투갈 포병대 위에서 터졌다.
쾅.
쏴아아아.
소리가 자탄형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른 주먹보다 약간 더 큰 자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잠시 후.
파바바바방.
자탄들이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포르투갈 포병들의 피해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초탄을 명중시킨 것을 보면 저쪽 호위함엔 구포병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금 쏘아 올려진 비격진천뢰는 이번에도 포르투갈 포병대의 머리 위에서 터졌다.
쾅!
쏴아아아.
이번에도 자탄형이다. 포르투갈 포병들이 놀라서 도망가는 와중에 폭발한 자탄들에 의해 초선포들이 포가에서 떨어져 나와 나동그라지며 망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선군 경계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접안시설에 붙박여 있었고, 밧줄은 잘리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육지 쪽에서 또 대량의 포르투갈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직사령이 도끼를 받아들고 밧줄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세현이 병사들과 함께 다가오는 포르투갈군에 구포를 쏘고 총을 쐈다. 그 와중에 한 병사의 당황성이 들려왔다.
“항구 입구로 적함이 다가옵니다!”
놀라 돌아본 시선엔 고함소리처럼 2척의 대형 범선이 마치 항구 입구를 막아서는 것처럼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 배들의 돛대 위에는 포르투갈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항구를 봉쇄해서 우리가 탈출하는 것을 막고 이안에 가두려는 것입니다.”
다우란타의 고함에 이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경험이 많은 당직사령은 한수를 더 내다봤다.
“적함에 포격 기회를 주지마라. 전함 방포!”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이세현의 고함소리에 구포를 쏘던 미시모토를 비롯한 몇몇 경계병들이 포갑판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들이 우현 쪽 포들을 장탄하느라 분주했다.
그나마 장탄화약과 탄이 일체형으로 제작된 종이탄을 후장식 포에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순식간에 장탄이 끝났다.
경계병들이 미시모토의 지시에 따라 조준하고 곧바로 포를 쏘았다.
콰광!
두발의 포탄이 발사되자 그 포탄들은 곧바로 항구 입구로 들어서던 포르투갈 범선 중 한척의 선체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콰광!
폭음과 함께 명중당한 함선의 포구 밖으로 불길이 일어나는 것이 언 듯 보였다. 하지만 미시모토 상병을 비롯한 병사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확인할 여유도 없이 재장탄으로 정신없었다.
“장탄 완료!”
동료 병사의 외침에 자신도 장탄을 마친 미시모토 상병이 외쳤다.
“방포!”
콰광.
곧바로 날아간 포탄들은 이번에도 포르투갈 함선의 선체를 정확하게 뚫고 들어갔다.
쾅쾅.
다시 두 번의 폭음이 울리고. 잠시 후.
콰앙!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4발의 폭발탄 공격을 받은 포르투갈 범선이 폭발해 버렸다. 공격을 위해 포갑판에 잔뜩 꺼내놓은 화약들이 유폭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기우뚱 기울다 급속도로 침몰해가는 동료 범선의 모습에 놀랐던지 함께 항구 입구로 들어왔던 포르투갈의 범선 중 나머지 한척이 선회를 시도했다.
항구 밖으로 돌아나가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이쪽을 공격하기 위해 포선을 맞추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미시모토는 다시 포격을 하기 위해 장전을 서둘렀다.
그때였다.
콰과과쾅.
연속적인 포격음이 들리며 대여섯 발의 포탄이 선회 중이던 포르투갈 범선에 명중했다. 놀라 탐망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미시모토 상병이 외쳤다.
“아군의 포격입니다. 호위함들과 무역선에서도 화약연기가 납니다.”
저들의 위험도를 알아차린 동료 함들이 포격에 합류한 것이다.
잠시 후, 몇 발의 포탄을 더 두들겨 맞은 포르투갈의 함선은 동료 함과 마찬가지로 굉음과 함께 유폭되어 침몰되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항구의 입구가 좁아졌다는 것이었다. 그 좁은 통로를 뚫고 나가자면 애를 먹을 것이 분명했다.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서둘러 상갑판으로 올라온 이세현의 시선에 마침내 밧줄을 끊어낸 당직사령이 보였다.
마침 선미 쪽에 연결된 밧줄도 끊어졌다.
도끼를 든 병사가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당직사령의 고성이 하갑판으로 향했다.
“구동부! 구동부 뭐해! 배를 떼라니까!”
“이게 안돌아갑니다.”
밑에서 올라온 답에 당직사령이 몇몇 수병을 더 지목해 함께 달려 내려갔다. 그렇게 당직사령이 자리를 비운 상갑판을 지휘해 이세현이 사납게 달려오는 포르투갈 군인들을 사살했다.
그러는 가운데······.
우지끈.
배가 접안시설에 부딪치면서 굉음을 내었다. 바람날개가 돌아가면서 배를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이세현이 키를 잡았다.
한데 그런 이세현의 눈에 믿기지 않는 장면이 보였다. 육지 쪽에서 포르투갈 군인들이 정신을 잃어 축 늘어진 이들 수십 명을 끌고 나오는 것이 보인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하지만 확인을 위해 이세현이 황급히 망원경을 펼쳐 보니 역시나 상륙했던 단장과 고위 군관들이었다.
“당직사령님! 당직사령님!”
이세현의 애타는 부름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한 당직사령이 황급히 올라왔다. 그가 이세현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망원경을 들었다.
“흠······.”
당직사령의 침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