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65화 (165/325)

제165화. 함상(艦上) 방어전 (1)

이번에 리스본에 기항한 무역선단은 200번대로 시작하는 30개의 조선 무역선단들 중 하나인 제211 조선 무역선단이었다.

모든 조선 무역선단들이 그렇듯이 기함으로 사용되는 해모수급 전열함 1척과 왕건급 호위함 4척, 그리고 조선무역선 10척으로 이루어진 이 함대의 무장병력들 중 호위함의 수병들은 모두가 현역 조선 해군 장병들이었다.

물론 조선무역선의 탑승자들은 전원이 예비역이다. 선장을 비롯해 막내 선원까지 해군 또는 다른 병과일지라도 조선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들의 신분은 군무원이다. 군에서 근무하는 일종의 관리 비슷한 처우를 받는 것이다. 그런 신분 때문인지 다른 나라 선원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뱃사람 특유의 무질서함이나 거친 행동은 없었다.

하긴 군율로 움직이는 조선 무역선단에서 그런 행동을 보였다간 당장 군법에 회부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를 테니까.

운항중인 조선군 함대의 군율은 엄격하고 독하기로 유명했다. 지금의 조선 해군의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선군 원수 이순신이었기 때문이다.

평시엔 따뜻해도 임무에 나서서는 그보다 냉철하고 무서운 양반이 없는 사람이 바로 이순신이었다. 그가 뼈대를 세운 조선 해군 출신들은 어딜 가도 그것이 배위라면 이순신의 기조를 따랐다.

그래서인지 조선 무역선단의 선원들도 엄격한 규율의 준수가 몸에 배어있었다. 그것은 지금 리스본에 기항한 제211 조선 무역선단의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시 기항 대기 병력은 정원의 절반이지만 경계 병력은 10분지 1일다. 특별 상륙으로 인해 평상시보다 적은 인원이 남겨져 있다고는 해도 경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겨울이라 그런가 바람이 제법 찹니다.”

제211 조선 무역선단 기함으로 쓰이는 해모수급 전열함인 버들치함의 당직 준사인 다우란타가 홍차 두 잔을 들고 나와 하나를 당직 사관을 맡고 있던 이세현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차서 따듯한 차가 간절했습니다.”

자신이 내민 차를 받아드는 이세현에게 다우란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선으로 돌아가면 이 정도 바람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사람이 참······. 간사하다 싶네요.”

“적응을 해서 그렇죠. 뭐.”

씨익 웃으며 차를 홀짝이는 이세현에게 다우란타가 말했다.

“그나저나 희망봉 해전 이야기가 파다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연회도 열어주고, 포르투갈이 말라카 때처럼 물러설 모양입니다.”

다우란타 준사의 말투만 들어서는 그가 남간도 출신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그의 조선어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남간도 특유의 사투리도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통역병 출신인 그는 군역병에서 준사로 지원하며 역관을 기르는 사역원에서 위탁교육까지 받아 여진말과 조선말뿐이 아니라 포르투갈어와 에스파냐어, 심지어 영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세현이 답했다.

“이번 희망봉 해전의 결과로 조선군의 강대함을 다시금 깨달았겠죠. 우리 입장으로서는 다행인 일입니다.”

“암요. 아무리 정경분리 정책이 통용된다지만 전쟁 상태의 국가를 방문한다는 건 부담이니까요.”

다우란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세현의 시선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무역선단이 접안해있는 시설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좌현 경계병 경계 강화!”

이세현의 나지막한 경호성에 항구 접안시설과 맞닿아 있던 좌현에 서 있던 경계병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 다가와 결국 배 곁에 와 섰다.

“무슨 일입니까?”

다우란타가 유창한 포르투갈어로 묻자 상대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시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음식이라도 보내드리라고······. 아! 귀국의 단장님께도 허락을 얻었습니다.”

“저희는 아직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만.”

“저희가 음식이 따듯할 때 전해드리고 싶어서 서두르느라 그랬습니다만 조금 있으면 당도하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의 답에 다우란타가 이세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설명에 이세현이 잠시 고심하다 고개를 저었다.

“뜻은 고맙지만 명령을 받기 전이니 받을 수 없다고 말하세요.”

이세현의 말을 다우란타가 전하는 동안 연회에 참석했던 병사 하나가 달려왔다.

“단장님의 전언입니다.”

“뭐냐?”

“음식을 제공한다니 받아서 취식해도 좋다하십니다.”

병사의 전갈에 이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당직사령님께 보고하겠다. 명령 받았다고 단장님께 보고하도록.”

“예. 충!”

군례를 올린 병사가 돌아가자 음식을 들고 온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것보라는 듯이 올려다보며 웃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주십시오. 전 당직사령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다우란타 준사를 두고 이세현이 당직사령이 머물고 있는 선미 선실로 달려갔다.

이세현이 맡고 있는 당직사관이 버들치함의 당직군관이라면 당직사령은 제211 조선 무역선단 전체를 관장하는 당직군관을 뜻했다.

아무리 단장의 명령이 있었더라도 당직사령의 허가가 없이는 음식물을 배 위로 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세현의 보고에 당직사령은 단장의 명령대로 하라고 허가했다. 당직사령의 허락이 내려오자 각 함마다 음식을 가져온 포르투갈 사람들이 붙었다.

그런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밧줄을 내려 각 함마다 음식 바구니들을 배위로 올렸다. 음식을 가져온 이들이 배안을 구경하고 싶어 했지만 그건 당직사령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접안시설에서 외관을 구경해도 되냐는 요청은 수락했다. 안전상 문제될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배 위로 올려진 음식들이 선실 갑판의 식당으로 옮겨졌다. 규정상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배안에서의 취식은 식당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은 음식부스러기의 발생을 억제해서 배안의 위생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수렵사관이란 별칭까지 부여되는 고양이들과 도마뱀까지 배에 태운다.

쥐와 벌레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여하간 선실갑판의 규모 상 식당구역도 크기에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한 번에 취식 가능한 선원들의 수가 그 크기에 맞춰 제한됐다.

해모수급 전열함의 경우엔 40명이다. 어차피 돌아가면서 취식을 하기 때문에 그 수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수병들은 없었다.

더구나 지금의 경우엔 배에 남아있는 이들의 수가 잠을 자고 있는 다음순번 경계병들까지 모두 합해도 어차피 72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 현재 경계에 투입된 병력이 군관 포함 29명이다. 그들을 빼면 잠을 자고 있는 다음순번 경계병들까지 다 깨워서 식당으로 향한다고 해도 43명이었다.

3명쯤은 대충 어디 걸터앉아서 끼어도 될 것이란 소리다. 그렇게 다 모인 까닭인지 식당이 있는 하갑판이 소란스러워졌다.

경계병들이 부러운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규정상 경계 병력의 취식은 금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먹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동료들이 경계병들의 몫은 미리 떼어놓을 테니까. 그러니 경계임무가 끝나고 먹으면 된다.

단지 음식이 식을 거라는 것이 조금 아쉽겠지만, 그쯤은 감수해야 했다.

선원들에게 일정량의 럼주를 꾸준히 배급하는 유럽의 함선들과 달리 조선의 함선에선 보관된 식수의 상태가 불량하여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술의 배급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음식에서도 술은 모조리 회수되어 선창으로 보내졌다. 대신 선원들은 과일을 짜내어 만들었다는 주스들을 술 대신 삼아 잔에 따라 기분들을 냈다.

그 왁자지껄한 음성들이 고스란히 들려오는 상갑판에서 경계병들이 그렇게 들려오는 농담들에 쓰게 웃었다.

시선은 경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직사관인 이세현은 그것까지는 무어라 하지 않았다.

모든 자리가 그렇지만 처음의 시간이 지날수록 흥분은 수그러드는 법이다. 하갑판 식당에 모인 이들도 마찬가지였던지 왁자지껄하던 소리가 점차 줄어들더니 조용해졌다.

한데 그게 너무 극명했다. 이렇게까지 조용할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다우란타 준사도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잠시 살펴보고 온다며 하갑판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다우란타 준사가 잔뜩 굳은 표정을 올라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는 이들이 없습니다.”

“설마!”

무엇인가를 짐작하고 놀라는 이세현에게 다우란타 준사가 고래를 저어보였다.

“숨은 쉽니다. 외부 음식에 대한 은침을 사용한 기초 독성검사는 하니까 독살은 아닙니다.”

“하면 미혼약이란 소리군요.”

“예. 문제는 그 출처이겠죠.”

다우란타 준위의 답에 여전히 선창에서 어슬렁거리는 포르투갈 사람들을 일별한 이세현이 다우란타 준사를 바라봤다.

“상륙한 이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배가 이지경이라면 그들도 당했을 겁니다.”

“그럼······?”

“일단 방어계획을 짜야 합니다. 저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말입니다.”

선창에 이리저리 모여 배를 구경하는 것처럼 보이는 포르투갈 사람들을 눈짓하는 다우란타의 말에 이세장이 말했다.

“그럼 준사께서 조용히 경계병들 개개인의 무장상태 확인하고, 상황전파 부탁드립니다. 당직 사령께는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다우란타 준사가 병사들을 점검하는 척 돌아다니며 상황을 전파하는 사이 이세현이 선실에 있던 당직사령에게 보고했다.

놀란 당직사령이 식당까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상갑판으로 올라왔다. 그런 그의 손에는 장탄된 나총이 들려있었다.

“상륙한 이들도 같은 상황이겠군.”

“아무래도 그렇게 판단해야 할 듯합니다.”

“일단 배를 항구에서 빼내야겠다.”

“하지만 돛을 펼 인원도 부족합니다.”

“우선은 바람날개로라도 기동해야 한다. 다른 함선들은?”

“아직 이렇다 할 반응들이 없어서 알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불빛신호 보내서 이상상황 전파하도록.”

당직사령의 명령에 이세현이 당직 신호병을 불러 조용히 불빛 신호를 보내도록 했다.

곧바로 곁에 정박 중인 왕건급 호위함에 불빛신호가 전달되고, 확인 했다는 답신이 왔다. 이제 그 왕건급 호위함에서 곁에 정박한 함선으로 차례차례 불빛신호가 전달될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조선 함선들의 움직임을 접안시설에서 구경하는 척 어슬렁거리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들켰다고 생각했던지 고함소리가 들리고 저마다 숨겨놓았던 무기들을 꺼내들고 배로 오르기 위해 달라붙었다.

갈고리가 던져지고 선체 난간에 걸리자 그걸 잡아당겨 안전을 확보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상당히 능숙한 움직임들이 훈련된 군인들이 분명했다. 그것을 확인한 당직사령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기 사용 허가! 사격하라!”

당직사령의 명령에 경계병들이 저마다 배위로 올라오려 애를 쓰는 포르투갈 군인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타당탕탕탕.

이런 경우 비상종을 쳐야했지만 총소리가 울렸으니 비상종소리보다 훨씬 강력한 신호가 되었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접 함선들에서도 달라붙은 포르투갈 군인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던지 항구 인근 건물들에서 무장한 포르투갈 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중 상당수가 총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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