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62화 (162/325)

제162화. 10 대 1 처형

북원에서 벌어지는 일로 인해 곤란해진 것은 할하였다. 피난민들이 할하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원을 황실이 반란집단으로 규정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피난 온 몽골 부족들은 제국의 반란집단이었다.

그런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할하마저 반란집단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할하는 조선군의 무서움을 지난 에카 바카투루의 항전으로 뼈저리게 느낀 곳이었다. 에카 바카투루가 바로 할하부의 족장이었기 때문이다.

적의 주력으로 판단된 할하를 당시의 이순신은 완전 말살시킬 요량으로 밀어붙였었다. 에카 바카투루의 동생이었던 지금의 할하 왕이 재빨리 항복하고 선처를 호소하지 않았다면 지금 북원이 처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몰살당할 위기를 이미 겪어본 것이었다.

그때 조선군의 화력과 전투력을 뼈에 새겨질 정도로 통렬하게 느껴보았던 할하는 다시금 조선과 척을 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곧바로 병력을 동원해 국경을 막아 버린 것이다. 이미 할하의 영토에 들어온 북원의 피난민들도 모두 내몰았다.

갈 곳이 없어진 북원의 피난민들이 갈팡질팡했다. 남쪽엔 황제의 친정군, 북쪽으로는 국경을 막아버린 할하군.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복수를 외쳐댔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고, 모두가 살길을 찾아 전전긍긍했다. 그런 이들 속에서 북원왕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긴 마찬가지였다.

월등한 조선군의 군사력에 완전히 압도당한 까닭인지 혼란으로 점철된 북원의 내부에선 추가적으로 병력을 내어 다시 대응하자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할하의 국경으로 내몰린 북원의 백성이 백만이 넘었다. 각지로 빠져나간 이들의 수는 겨우 몇 만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도 조선군을 피해 도망 다니기엔 마찬가지였다. 광해의 명을 받은 철산 돌격기마 병단이 단급, 다시 대급으로 나누어지며 흩어진 북원 부족의 격멸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광해의 친정군이 북원과 할하의 국경 지역에 도달했다.

북원의 백성들이 엎드려 살려 달라 간청했다. 그들 속으로 조선군이 달려들어 부족장들과 장수들. 그리고 북원왕을 찾아 내 광해 앞에 늘여 꿇어앉혔다.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던 광해가 참형을 명했다.

북원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왕이, 그들의 부족장이, 그들의 장수들이 모조리 목이 잘려나갔다.

북원 백성들 중 15세 이상의 사내들이 모조리 앞으로 끌려나왔다. 아녀자들의 울부짖음 속에 앞으로 끌려나온 북원의 사내들을 열 명씩 짝을 지어 그들에게 명령했다.

“너희의 죄를 짊어질 1명을 선택해 너희의 손으로 죽여라! 그것으로 너희의 죄를 만대에 전하여 경계로 삼고, 나머지 9명의 죄를 사하여 다시 기회를 줄 것이다.”

동양엔 없던 법이다. 로마에서 시행했던 단죄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손으로 한명의 동료를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씻는다.

하지만 그 부채는 마음속에 남는다. 죽인 것도 자신들의 손이니 그것을 명한 이들에 대한 원망과 그것을 행한 자신들의 죄가 함께 섞인다.

원망만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잘못도 각인된다. 다시 반항할 경우 어찌 되는지 똑똑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차마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차가운 음성으로 명령했다.

“1시간 후에도 결정치 못한 이들은 열 모두를 죽여 그 죄를 묻는다.”

광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로가 죽어야 할 이를 뽑느라 분주했다.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토론을 통하는 이들에서 제비뽑기를 하는 이들까지.

죽어야 할 이를 선발하지 않은 조는 단 한개도 없었다.

그렇게 뽑힌 이들을 처형하는 방법도 잔인했다. 칼은 주어지지 않았다. 살아남게 된 이들이 돌과 주먹, 그리고 발로 쳐 죽여야 했다.

죽어가는 이의 비명 속에 죽이는 이들의 눈물과, 지켜보는 이들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뒤섞였다.

처형이 끝나자 광해는 살아남은 이들 중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이들을 추려냈다. 부족장의 차남이거나, 하위 장수급의 인물들이 그렇게 차출 되었다.

차출되어 나온 이들도, 그런 이들을 다시 내보내야 했던 백성들도 모두가 불안한 눈길로 광해를 바라봤다.

그들의 두려움이 깃든 눈을 바라보며 광해가 명령했다.

“왕을 뽑아라. 그 왕에게 북원을 맡겨 다시 다스리게 할 것이다.”

너무 덤덤하여 무심한 그 음성에 북원의 백성들이 목을 움츠렸다. 분노하여 떨어 울리는 고성보다 그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도저히 수만의 생목숨을 끊어놓은 이의 눈빛이 음성이 아니라 느낀 까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뽑힌 이에게 광해가 책봉교서와 옥새를 던지듯 내려주었다. 그것을 황급히 받아든 북원왕이 흙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그런 새 왕을 따라 북원의 백성들이 모조리 흙바닥에 고개를 묻고 엎드렸다. 그 광경을 오연히 내려다보며 광해가 말했다.

“반항은 용납하지 않는다. 다음엔 열에 하나가 아니라 둘을 죽일 것이고, 그 다음엔 넷을, 그다음엔 모두를 죽여 죄를 물을 것이다.”

“가, 각골 며,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두려움으로 떨리는 음성으로 답한 새 북원왕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광해가 돌아서고 이내 조선군이 철군을 시작했다.

하지만 북원왕도 북원의 백성들도 한참을 그렇게 엎드린 채 일어설 줄을 몰랐다.

국경을 봉쇄하느라 배치되어 있던 할하의 군사들이 그 모든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소문이 할하를 넘어 온 제국 천하로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북원의 반란이 종식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황제의 파발보다 더 빨리 소문이 번졌다.

황제에게 반하면 어떤 결과를 맞는지 제국의 백성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5월이 다가왔다. 제후국이 전권대사와 제국의원 그리고 1만의 병력을 조선으로 보내기로 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더구나 이번엔 처음 각 제후국의 후계자들이 참석하는 미래 회의가 열리는 해여서 그렇게 조선으로 보내진 이들 속엔 각 제후국의 후계자들이 섞여 있었다.

실제역사에선 만력제의 뒤를 이어 태창제(泰昌帝)로 등극했던 주상락이 왕세자의 신분으로 참여했고, 아직 왕세자를 정하지 않은 후금에서는 조선 조당의 예상과 달리 누르하치의 여덟 번째 아들이자 열다섯에 불과한 홍타이지를 보냈다.

실제 역사에서 그가 후금의 차기 황제로 올라선다는 것을 몰랐던 한성의 조당에서는 감히 누르하치가 황제의 위엄을 손상했다고 난리였지만 역사를 아는 광해는 담담했다.

다만 실제역사와 달리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나름의 세력을 구축한 추옌이 여전히 밀려났다는 것에 의아함을 가진 정도였다.

사실 이것엔 추옌의 의지도 한몫했다. 그는 왕세자가 아니라 이순신의 제자이길 원했다. 그것을 조건으로 홍타이지의 후계자 지명에 동의한 것이다.

그는 미래회의에서 홍타이지가 돌아오면 후금을 떠나 이순신의 문하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이순신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내려진 자신들끼리의 결정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조선에서는 아직 어린 왕자를 대신해 총리대신인 이원익이 참석했다.

광해가 최근에 재정한 조선의 왕실 법규 상 후계자의 지명이 없이 태왕이 붕어한 경우 차기 태왕을 왕실종친회에서 의금부의 동의를 얻어 정할 때까지 총리대신이 행정수반으로써 조선을 이끌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린 미래회의에서 각 제후국의 후계자들은 서로의 안면을 트고 향후의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들을 위해 황후 책봉을 받은 서안 공주가 작은 연회를 열어 먼 길을 온 것을 위문했다. 미래회의에 참석한 각 제후국의 후계자들은 그 자리에서 차기 황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조선의 왕자와 대면했다.

이제 4살이 된 어린 왕자임에도 각 제후국의 후계자들은 지극히 공손했다. 그런 이들을 서안 공주는 부드럽게 대했다.

제국 의원들은 이화관 옆에 임시로 마련된 제국의회 건물에 각자의 집무실을 배정받았다. 숙사는 임시로 이화관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현재 신의주 일대에 조성되고 있는 새 도읍엔 제국의회 의사당과 그들의 관저들이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권 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의회 건물과는 다른 건물에 집무실이 마련되었지만 그들의 관저로 이화관이 배정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위해 조선은 이화관 옆에 제국의회 건물과 대사들이 일을 볼 수 있는 건물을 황급히 지었다.

아울러 각국에서 보낸 수행원들과 병사들이 머물 숙사도 이화관 옆에 새롭게 지었다. 그곳에 머물게 되는 이들도 천도가 이루어지면 각각의 대사관과 숙사를 갖게 될 예정이었다.

각 제후국에서 보내온 1만의 병력은 곧바로 조선군 훈병원으로 입소하여 훈련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조선군식 훈련으로 단련시켜 제국군을 만들어 낼 계획이었다.

이것을 위해 훈련단계부터 조선군이 투입되었다. 동질감 형성을 위해서였다. 그로인해 1만의 조선군은 이미 받았던 기초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겪어야 했다.

*****

조선에서 그렇게 미래회의가 열리던 시기, 광해는 희망봉 일대의 권리를 넘겨달라는 조선의 요구에 대한 포르투갈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거부해 왔사옵니다. 폐하.”

외교부 장관의 보고에 광해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직히 광해는 저들이 공동운영을 역제의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럴 경우 광해는 그것을 받아들일 의향도 있었다. 유럽과 교역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르투갈과 맞서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저들은 조선의 저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타깝지만 광해는 이참에 조선의 저력을 확실히 유럽에 각인시키는 기회로 삼기로 하였다.

광해의 시선이 곧바로 곽재우에게로 향했다.

“곽 총사.”

“예. 폐하.”

“준비는 되어 있소?”

“예. 일전에 명하신 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나이다. 명만 주소서. 곧바로 출병하여 저 간악한 양이의 것들을 쳐 죽이고 희망봉 일대를 폐하의 강토로 만들어 바칠 것이옵니다.”

여전히 거친 곽재우의 답에 쓰게 웃은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병대를 믿겠소.”

“충!”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리는 곽재우에게서 시선을 돌린 광해가 이순신을 바라봤다.

“상륙작전은 해병대가 맡겠지만 저들과의 해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생각되오만.”

“상해에 기항해 있는 기동함대를 투입해 지원 하겠나이다. 폐하.”

“그리합니다. 어차피 벌어진 싸움이니 저들에게도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명확히 보여주시구려.”

“예. 폐하.”

희망봉 일대의 점령이 결정 난 그 회의로 부터 며칠 후, 해병 강습함대가 포항을 떠나 원정길에 올랐다.

해병 강습함대에는 해병 제7여단과 해병 원정여단 1만의 병력이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상해에서 해군 기동함대와 합류하여 뱃머리를 남서쪽으로 잡았다. 이 원정군은 말라카와 마드라스를 거쳐 희망봉까지 항진할 계획이었다.

마카오를 통해 전달된 조선의 요구를 거절했던 포르투갈도 조선의 움직임에 대한 대비를 갖추고 있었다.

3천명의 병력을 태운 함대를 희망봉으로 보냈던 것이다. 세력이 연일 줄어들어가는 포르투갈은 이 일대의 장악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희망봉과 그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동방 무역을 위해 지나가는 유럽 상선들에게 보급을 도맡으며 막대한 이득을 취해 왔고, 아울러 동방무역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빼앗겼을 때 포르투갈은 그렇지 않아도 연일 쇠퇴하는 자숙의 영향력을 추가로 상실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 포르투갈도 희망봉과 그 일대의 점령지에 대한 방어의지가 팽배했다.

그 의지를 표현이라도 하듯이 포르투갈은 희망봉 일대에 건설된 항구에 초선포를 추가로 설치하고, 항구 접안 시설에 대한 방어 시설도 확충했다.

아울러 추가 배치된 3천의 병력을 골고루 배치하여 방어병력의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또한 해안엔 20여척의 크고 작은 군선을 배치해 조선군의 해상 공격에도 대비했다.

그런 희망봉을 향해 조선 원정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