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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60화 (160/325)

제160화. 순찰조의 위기

애초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순찰대 본부로 달려갔던 이들에 의해 소식을 전달받은 것은 공교롭게도 해당 순찰대 본부를 점검하러 들렸던 개마돌격기마 병단장인 정기룡이었다.

그가 호위 병력으로 따라온 기동대 1개 대, 1백 명과 비번인 순찰조 20명까지 대동하고 사건현장으로 왔을 땐 구상덕이 순찰조를 이끌고 추격을 나선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현장을 확인한 정기룡이 각 구간에 설치된 순찰대 본부가 아니라 북방 제3도로 전체를 관장하는 순찰 지휘소로 기마대원을 보내 검시관들을 요청하고는 나머지 대원들과 함께 구상덕의 추적대가 남겨둔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솔직히 자신들까지 나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정기룡이 심심하다는 것이 실질적인 이유였다.

물론 그것을 정기룡이 수하들에게 입 밖으로 내어 말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명분은 구상덕의 순찰조를 지원한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틀 만에 도착한 국경석 앞에서는 천하의 정기룡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심심하다고 넘을 수 있는 선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던 정기룡이 결국 국경석을 넘었다.

이틀 후, 후금과 북원을 가르는 경계석에 닿았다. 후금과의 경계석을 넘은 상황에서 북원과의 경계선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정기룡은 후금과 북원을 가르는 국경석 앞에서 멈춰 숙영지를 세웠다.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출발이 늦어진 것은 지휘소의 회군 명령을 소지한 기마포교 셋이 달려온 까닭이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달려온 그들의 명령서를 읽은 정기룡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의 결과는 거부였다.

우선 명령서를 발송한 이가 북간도 포도분청 포장(捕將, 4품 포도청 무관직, 현재의 지방경찰청장) 이었기 때문이다.

직품이 4품으로 개마돌격기마 병단장인 정기룡과 같다하지만 그의 지휘를 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근거로 명령을 거부하기로 작정한 정기룡의 결정을 북간도 포도분청의 전령이 전달받는 동안 숙영지의 경계병이 먼지구름을 발견하고 상관에게 보고했다.

경계병의 보고에 기동대장이 나와 망원경으로 살핀 결과 몽골 기마대에 쫓기고 있는 아군 기마포교들이 확인되었다.

곧바로 숙영지에 비상이 걸렸고, 정기룡을 위시해 전원이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전투태세가 갖춰지자마자 정기룡은 먼지구름을 향해 전속이동을 명령했다.

“전속 기동하여 아군을 구원한다.”

정기룡의 명에 기마대원들이 일제히 말을 달려 후금과 북원의 국경석을 넘었다.

잠시 후, 마주 달려오던 순찰조 기마대원들도 이쪽으로 달려오는 조선군 기마대를 발견했다. 그것은 뒤를 쫓던 몽골 기마대도 마찬가지였다.

조선군 기마대의 수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던지 몽골 기마대는 급히 반전하여 도주해갔다.

정기룡의 기마대와 무사히 합류한 순찰조의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다. 각자 허벅지 또는 등판에 두세 발씩 화살을 맞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추격전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대변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둘은 구상덕을 비롯한 순찰조의 위험을 알리는데 급급했다.

그런 두 사람을 안정시켜 응급 치료를 받게 한 정기룡이 치료 중 의식을 잃은 기마포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또 다른 기마포교에게 물었다.

“선도할 수 있겠나?”

“예. 당연합니다.”

허벅지에 무명천으로 만들어진 붕대를 감은 병사의 답에 정기룡이 의식을 잃은 기마포교를 데리고 귀환할 2명의 기마포교를 남겨두고 곧바로 이동했다.

언덕의 바위를 진지삼아 버티고 있는 구상덕의 순찰조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저들이 수와 기마의 기동성을 살려 끊임없이 바위지대를 노려왔기 때문이다.

번갈아 재장탄을 해가며 사격을 해대서 그런 몽골 기마대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사전에 제작하여 휴대하는 종이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마포교 1인당 휴대탄의 수는 32발. 8발 들이 리볼버 탄장을 4번 채울 수량이었다. 이들 중 8발을 장탄한 채 순찰에 임하니 예비탄은 24발인 셈이었다.

그 총탄들이 다 소모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구상덕의 순찰조가 진지로 삼은 바위 무더기 인근에 쌓인 말과 몽골 기마대 시신들이었다.

수백구가 넘는 그 수는 몽골 기마대의 지휘자가 다수의 피해를 각오하고 몰아쳤다가 집중사격으로 당한 피해였다.

그 이후에 몽골기마대는 와락 달려왔다 사방으로 마구 뛰어다니며 화살을 날려 위협해 댔다. 그런 공격으로 11명 중 3병이 화살에 맞아 죽거나 중상을 입은 채 전력에서 이탈했다.

8명이 악착같이 사격해대며 적을 막길 잠시, 한 명의 기마포교가 외쳤다.

“탄 끝!”

그것이 신호처럼 여기저기서 총탄이 바닥났다는 것을 뜻하는 ‘탄 끝’이 외쳐졌다. 눈살을 찌푸린 채 총을 쏘던 구상덕도 결국 탄이 바닥났다.

총성이 멈추자 몽골 기마대원들이 오히려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조선 기마포교들의 꿍꿍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몽골 기마대 지휘자의 명에 수십 명이 말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바위 더미 쪽으로 접근했다.

포도청엔 수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 탓에 조선 기마포교들은 접근해 오는 몽골 기마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빈 총을 내려놓고 움켜쥔 창을 굳게 잡을 뿐이었다. 함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저만치 떨어져 있는 몽골 기마대의 화살 공격에 그대로 노출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구상덕이 바위틈으로 상황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일어서지 마라. 적군의 화살 공격에 노출될 것이니 적이 난입하면 철저하게 바위에 몸을 숨긴 채 상대해 격살한다.”

“예.”

답하는 기마포교들의 눈빛에 결사의 의지가 섰다. 기마포교들이 여진이나 몽골, 그도 아니면 조선군 기마대 출신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정규전은 아닐지라도 저마다 실전경험들이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면 지금쯤 제정신들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게 숨 막히는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바위 뒤쪽으로 뛰어드는 적이 생겼다.

뛰어들며 칼을 휘두른 몽골 기마대의 선택은 좋았지만 불행히도 조선군 기마포교들은 모두 거의 눕다시피 기다리고 있었다.

퍽, 컥.

짧은 음향과 비명 속에 아래에서부터 위로 찔러오는 칼에 하복부를 깊게 찔린 몽골 기마대원이 무너졌다.

그것을 신호삼아 사방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한 몽골 기마대원들이 바위를 넘어왔다. 그들과 자세를 낮춘 조선 기마포교들 간의 육박전이 벌어졌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가운데 쏟아지는 피와 함께 숨이 끊어져 널브러지는 이들이 늘어갔다.

그 속에는 조선 기마포교들도 섞여 있었다. 잠시의 격투가 끝난 후, 온통 피칠갑을 한 채 거친 숨을 헐떡이며 돌아본 구상덕의 시야에 자신과 마찬가지의 모습인 조선 기마포교 4명이 들어왔다.

살아남은 이들의 수는 그들이 다였다. 그래도 그들이 30명이 넘는 몽골 기마대를 격투로 이겨낸 것이다. 조선군 기마대 수준의 근접 격투훈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다수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몽골 기마대 지휘자가 뒤늦게 기마대를 돌진시켰다.

조선 기마포교들이 총탄이 떨어졌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

거친 함성과 함께 수백의 몽골 기마대가 돌진해오는 가운데 바위에 몸을 기댄 조선 기마포교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간 부족한 조장 때문에 고생 많았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죽음을 직감한 구상덕의 말에 살아남아 있던 기마 포교들이 피식 웃었다.

“진짜 죽을 고생 많았습니다. 그러니······.”

그 말끝에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은 4명의 기마포교들이 일제히 답했다.

“저승 가서 더 잘 해주십시오.”

수하들의 말에 피식 웃은 구상덕이 빠르게 달려오는 몽골 기마대를 바위틈으로 확인하며 말했다.

“그래, 저 위에선 네들을 떠받들어 모시며 살아가마. 그러니······. 우리 숨어있다 죽지는 말자.”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하들을 확인한 구상덕이 괴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와아아아악.”

그런 그를 따라 4명의 기마포교들도 괴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들의 지척까지 달려온 몽골 기마대가 칼을 높게 들었다.

저것이 내려쳐지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 자명했다. 한데 그 순간.

타다다다당.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선두에 서서 달려오던 몽골 기마대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놀라서 돌아본 구상덕과 조선 기마포교들의 눈에 삼족오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조선군 기마대가 보였다.

구상덕의 순찰조가 맞닥트렸던 몽골 기마대는 북원의 큰 부족들 중 하나였던 텐그라 족이었다. 타타르의 일족이었던 그 부족의 전사들이 월경한 조선군과 부딪쳐 수백의 전사자를 남기고 패주해 돌아왔다.

복수를 외친 부족의 전사들이 모두 말을 달려 나갔다. 이전처럼 한 사람당 한필의 말만을 타고 나간 것이 아니라 서너 필의 말을 끌고 나갔다.

전쟁을 위한 출병이었기 때문이다. 동원된 전사들의 수만 해도 5천에 달했다.

그런 그들의 출병은 소득 없이 끝났다. 어느새 부상병과 전사자의 시체까지 모조리 챙겨 퇴각한 조선군 기마대의 뒤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몽골 기마대가 엉망진창이 되어있던 소부족의 생존자들을 수습해 자신들의 부락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자식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여인의 말에 부락 전체가 분노했다.

텐그라 부족의 요청으로 북원의 족장회의가 열렸다.

아직 부족 연합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북원의 상황 상 북원의 왕은 그런 부족연합의 대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 왕이라는 자가 할하처럼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대부족의 족장이 힘으로 올라선 자리가 아니라 조선군의 손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에서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연유가 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 복수를 외치는 부족장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조선군과 대적하겠다니 제정신이오? 저들은 콧김을 뿜어대며 달리는 쇳덩이 마차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요! 부딪치면 필패란 말이오!”

전쟁불가를 외치는 북원의 왕에게 한 부족장이 외쳤다.

“죽음이 두려우면 물러나시오. 우리도 겁쟁이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거요! 당장 조선의 화포를 이길 수 있겠느냔 말이오?”

북원왕의 말에 일어서 따졌던 부족장의 말문이 막혔다. 복수를 주장하는 부족장들도 조선군 화포의 위험성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에 과거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전사들을 이끌었던 부족장들이 끼어들었다.

“부딪치면 필패요. 그건 부정할 수 없소.”

“맞소. 저항은 필요해도 전쟁은 아니 되오.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는 일이될 거요.”

그들의 지원에 힘입은 북원왕이 다시금 전쟁 불가를 말했다.

“저들은 연합군으로 참전해서 조선군의 전투력을 곁에서 직접 본 자들이오. 조선군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의 말이니 믿어야 하오.”

분위기가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그것에 북원왕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라 회의장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눈살을 찌푸린 북원왕의 과함에 경비병이 입구 천막을 걷고 들어왔다.

“여인들이 찾아와 전하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여인들이 날?”

“예. 전하.”

경비병의 답에 북원왕이 말했다.

“지금은 바쁘니 물리고 나중에 오라 말하······.”

“만나 봅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들어는 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과 함께 일어나 입구 쪽으로 걸어간 이는 이번 사태의 시발점인 텐그라 부족의 부족장이었다.

그의 행동을 따라 다수의 부족장들이 움직이자 북원왕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선 게르의 입구엔 썩어 들어가는 소년의 시신을 부여안은 여인을 필두로 한 수많은 여인들이 서 있었다.

“왕이시어. 무엇을 하십니까? 죄 없이 죽어간 내 아들은 여기 이렇게 썩어가고 있는데 살아 있는 왕께선 지금 따듯한 게르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썩은 소년의 시신을 내보이는 여인의 눈은 복수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런 여인의 뒤에선 아낙들이 일제히 회쳤다.

“우리의 아들들이 죄 없이 죽어가는 데 왕은 따듯한 게르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시오?”

부족장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그 상황에서 부족장들의 시선이 북원왕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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