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월경(越境)
제3도로의 경우엔 전체길이가 1천3백리(약 510km)로 1개조의 순찰 거리가 대략 33리(약 13km)에 달했다. 그 거리의 제약이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불행히도 순찰조의 눈이 미치지 않던 순간에 습격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약탈을 동반한 습격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끝이 났다.
순찰조가 해당 지역을 지나가다 발견한 마차에는 상인 부자의 주검이 처참한 모습으로 버려져 있었다. 상황을 확인한 순찰조가 곧바로 흔적을 쫓아 범인들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20명으로 이루어진 순찰조 중에서 2명은 순찰본부로 상황을 알리로 달려갔고, 2명은 혹시 모를 야생동물에 의한 시신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장에 남았다.
따라서 흔적을 쫓아 추격에 나선 기마대는 16명이었다.
포도청 소속의 기마포교들인 이들의 무장은 기마총과 창칼, 그리고 곤봉으로 무장한 중무장 상태였다. 전투력은 어떨지 몰라도 무장만큼은 어떠한 조선군 기마대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순찰조가 급속 추격에 나섰지만 어쩐 일인지 상대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한 명당 여러 마리의 말을 끌고 나온 모양입니다.”
흔적을 살피던 몽골 출신 기마대원의 말에 순찰조장인 포령(捕領, 8품 포도청 무관직) 구상덕의 표정이 굳었다. 추격이 하루 이틀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파악한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변하는 것은 없었다.
“일단 추적을 계속한다.”
구상덕의 명에 포교들이 다시 일제히 말에 올라 추격을 다시 시작했다.
포교들의 경우 군 기마대보다 복장상태가 다소 편안하다. 군에 소속된 기마대의 경우엔 목깃이 길게 올라오는 기마대용 방탄조끼와 얇은 철판을 덧댄 허벅지 보호대와 종아리 보호대, 그리고 팔뚝 보호대를 차야 한다.
그 무게만 20근(12Kg)에 달한다. 물론 과거에 입던 두정갑이 33근(약20Kg)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훨씬 가벼워진 것이긴 했지만 여전히 무거운 건 사실이었다.
그에 반해 포도청 기마대의 경우엔 10근(6Kg)짜리 업심갑만 차면되니 움직임이 날렵했고, 기마들의 피로도 적었다. 물론 제 한 몸 달랑 타는 몽골 전사들보다는 더디겠지만.
그래도 지구력 면에서는 그다지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기에 추적은 제대로 이루어졌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틀. 추적이 이어진 시간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추적을 이어가던 구상덕이 순찰조를 정지시켰다.
3백보(약 545M)마다 뜨문뜨문 놓인 하얀색 덧칠된 경계석은 만주4도를 담당하는 2전단 병력이 지리원의 깐깐한 문관들의 닦달 속에 고생고생해서 설치했다는 국경석이 분명했다.
흔적은 그 경계석을 넘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구상덕은 갈등했다. 제국의 성립으로 한 지붕 12식구가 되었다지만 국경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포도청의 관할 구역은 조선 안이다.
각 도에 산개된 포도분청끼리도 관할구역 침범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건만 국경이라니. 구상덕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어떻게 합니까?”
수하들의 물음에 한참 고민하던 구상덕이 답했다.
“국경을······. 넘는다. 제국의 한식구니 이해하겠지.”
조장의 명에 걱정스러운 표정의 포교들이 국경석을 넘어 후금의 땅으로 들어섰다.
추격은 국경석을 넘어서도 하루가 넘게 이루어졌다. 사흘째 정오 무렵엔 후금과 북원을 가르는 경계석에 닿았고, 흔적은 그 너머로 이어져있었다.
순찰조는 그 경계석도 넘었다. 이제 와서 중단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반나절을 더 이동해서야 흔적이 이어진 경로 상에 게르를 치고 머물고 있는 소부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규모는 대략 30호 정도. 작은 부족이었다.
상대가 범인들인지, 아니면 범인들이 거쳐 간 평범한 부족인지 알 수 없었던 구상덕은 몽골 출신 기마포교를 보내 저들의 정체를 파악하기로 했다.
자신들이 중무장 상태인 이상, 북원의 땅에 들어와 함부로 민간인의 거주구역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자칫 그것이 문제를 크게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구상덕의 명령을 받은 기마포교가 해당 마을을 방문하는 동안 마을에서 대략 2천보 정도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에 남은 순찰조는 만일에 대비했다.
구상덕은 상황을 알아보러 마을로 간 기마포교에게도 낌새가 조금만 이상해도 즉시 돌아오라 명해 두었다.
하지만······.
2천보 남짓 떨어진 마을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던 구상덕의 입술이 악물렸다.
몽골 마을의 전사들이 부족장으로 보이는 이와 대화를 나누던 기마포교를 불현듯 창으로 찔러 죽였기 때문이다.
“전투준비!”
자세한 상황은 볼 수 없었지만 동료가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육안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했던 기마포교들이 일제히 성난 표정으로 기마총을 꺼내들었다.
그 상황에서 마을의 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는 50정도, 그들이 칼과 활을 들고 말을 달려 언덕으로 향해 왔다.
순찰조장은 그들의 저항에 무력진압을 명령했다. 죽이겠다고 달려 나오는 이들을 상대로 당연한 명령이었다.
제대로 된 조선군과의 전투를 가져본 적이 없어 보였던 이 소부족의 저항은 겨우 10분 정도 만에 끝이 났다.
애초에 기마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창칼과 활로 상대한다고 나선 것이 무모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 다음에 일어났다.
전사들을 사살한 기마대가 부족의 마을로 접근하자 부락의 아녀자들과 노인, 아이들이 저항을 해온 것이다.
총을 쏜 것은 아니지만 물리력이 사용되었다. 곤봉이 사용하여 진압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부락민이 다치고, 피를 보았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그 과정에서 몇몇 노인이과 소년 두엇이 죽음을 맞았다. 칼을 휘두르는 통에 기마포교들이 과하게 손을 쓴 것이다.
그들의 죽음에 아녀자들이 구슬프게 우는 와중에 일단의 기마대가 접근하는 것을 척후병이 발견했다.
곧바로 전투준비를 갖춘 순찰조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천 가량의 기마대였다. 전쟁을 위해 나선 것은 아니었던 듯한 명당 여러 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무장은 충실했다.
아마도 인근에 사는 큰 부족에서 직전에 있었던 소부족 전사들과의 충돌에서 발생한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난데없이 북원의 땅에서 조선군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물론 군대가 아니라 포도청 기마포교들이었지만 북원의 몽골족 입장에서는 그게 그것이었다.
처음엔 서로 대화가 되는 듯도 했다. 조선 포도청에서 나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한 구상덕이 소부족과 충돌한 이유를 설명했고, 저들의 지휘관쯤으로 보이던 이도 대충 이해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락의 아녀자 한명이 자신의 죽은 아들의 시신을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나와 울부짖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더구나 울부짖은 여인의 말이 사실과 달랐다.
가만히 있는 자신들의 부락을 조선인들이 공격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저항하지 않는 아이를 죽였다며 구상덕을 비롯한 기마포교들을 저주하는 내용의 말도 쏟아냈다.
대번에 분위기가 사나워졌다. 삽시간에 누가 침만 뱉어도 전투가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양측의 긴장도가 올라갔다.
그 상황에서 여인이 돌을 들어 기마포교 중 한명에게 던졌다. 말이 놀라 뛰는 와중에 여인이 말의 발에 채여 나동그라졌다.
순간 무어라 고함소리가 들기고 일단의 몽골기마대가 달려 나왔다. 다행히 몽골 기마대의 지휘관이 손을 들어 중지를 시켰지만 놀란 조선 기마포교들이 일제히 기마총을 들어 올린 탓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다행히 여인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더 좋지 않았다. 피를 흘리며 여인이 조선 기마포교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자신에게 한 짓과 같이 아무 잘못도 없는 부족을 공격했다면 울부짖은 것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구상덕의 표정이 구겨졌다.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보기에도 저 모습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지휘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활을 꺼내 재는 전사가 생겼다. 기마포교들은 군과 달리 철모도 쓰지 않았고, 보호 장구도 미비했다.
자신들이 차고 있는 얇은 엄심갑이 화살에 대한 방호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몇 발이나 막아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천천히 말을 뒤로 몰며 구상덕이 순찰조원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명령하면 활을 재고 있는 놈들부터 사살한다. 첫발 사격 후, 곧바로 언덕으로 후퇴한다. 헛된 사격으로 총알을 낭비하지 마라. 직전의 전투로 장탄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랬다. 각기 리볼버 탄창에 남은 총탄은 3발 내지 4발이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재장탄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러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재장탄을 위해서는 총신은 물론이고 리볼버 탄창도 청소를 해야 했다. 종이탄피를 사용하는데다 장탄 화약이 흑색화약이라 탄매가 끼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걱정스런 한 기마포교의 물음에 구상덕이 답했다.
“언덕엔 바위가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얼핏 살펴보았었는데 진지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그곳에서 농성하는 동안 두셋이 본부로 달려가 구원을 청한다.”
“차라리 전부 함께 퇴각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말은 저들의 말에 비해 긴 추격으로 지쳐있다. 그러니 속도에서 불리하다.”
“그건 본부로 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한 기마포교의 물음에 구상덕이 답했다.
“말을 많이 가져간다. 한명 당 3마리씩. 그 정도면 갈아타며 달릴 수 있을 테니 저들에게 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마포교들 중 상당수가 여진, 또는 몽골 출신이다. 달리는 상태에서 말을 갈아탈 능력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하들을 확인한 구상덕이 상대 기마대의 지휘자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우리가 천천히 물러나겠다. 동의하나?”
“동의 할 수 없다. 저 여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너희가 무장을 해제하고 우릴 따라 부락으로 가자.”
상대의 조건은 순찰조가 수용할 수 없었다.
구상덕의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순간 화살 하나가 날아와 구상덕을 맞췄다.
팅.
다행히 화살은 엄심갑을 맞고 튕겨나갔다. 공격중지를 외치는 몽골 기마대 지휘자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 조선군 기마포교들의 사격이 벌어졌다.
활을 들고 있던 몽골기마대 십여 명이 우르르 말에서 떨어지는 순간 순찰조 기마대는 황급히 뒤돌아 언덕으로 달렸다.
그런 그들의 뒤에서 몽골 기마대 지휘자의 고함이 터져 나오고, 화살이 빗발쳐 쏟아졌다. 달리던 순찰대원 몇이 목에 화살이 박히거나 화살을 맞은 말이 땅을 구르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들을 구원할 시간이 없었다.
“서지 마. 달려!”
구상덕의 외침에 주춤했던 기마대원들의 속도가 높아지고 이내 언덕에 도착했다.
구상덕의 지명을 받은 기마대원 둘이 동료들의 말을 2필씩 건네받아 고삐를 움켜쥐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나머지 기마포교들은 황급히 바위 무더기 속으로 뛰어들어 방어사격 자세를 취했다. 구상덕이 수를 확인하니 자신을 포함해 11명이었다.
그렇게 기마포교들이 도착한 언덕을 향해 혼란을 수습한 몽골 기마대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재장탄. 나머지는 사격!”
4명의 재장탄을 지시한 구상덕의 명령에 따라 나머지 기마포교들이 달려오는 몽골 기마대의 선두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탕타당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