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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58화 (158/325)

제158화. 북방 제3도로 상인 습격 사건

병력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 부분을 병무부가 광해에게 주청했다.

“병력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징집병의 근무기간을 회복시키거나, 중단해야 합니다. 폐하.”

현재 조선 인구는 국토부 추산 3천만 명이다. 세수를 위해 3년마다 인구조사를 시행하면서도 정확한 숫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있는지도 몰랐던 소부족들이 합류하는 현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여하간 3천만의 인구를 토대로 매년 25만 가량의 징집 병력이 소집된다. 그러니 16개월로 줄어든 이들의 근무기간만 과거처럼 회복시켜도 부족한 수는 채우고 남는다.

그것을 거론하는 병무부 장관의 주청에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군의 전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그대로 유지한다. 어차피 제국이 성립되면서 위험도가 줄어들었으니 일단 통폐합 가능한 병력을 추려본다.”

그 말과 함께 바라보는 광해의 시선에 결국 이순신이 나섰다.

“올해 부족분으로 감안하면 12만을 줄여야 하옵니다. 해군의 경우 향후 전개될 작전들을 생각하면 현재 전력으로도 부족한 실정이니 줄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결국 해병대와 육군에서 감축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옵니다.”

당장 육군 총사 권률과 해병대 총사 곽재우의 표정이 굳었다. 태왕과 원수의 대화중이었기 때문에 끼어들지 못했을 뿐, 할 말이 상당히 많아보였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의 불만을 알면서도 광해가 이순신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느 선에서 감축을 생각하시오?”

“육군은 2개 전단 10만을 해병대에서 2개 여단 1만을 생각하옵니다.”

곽재우가 움찔하긴 했지만 육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감축병력이 거론되었다는 것에 담담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육군 총사인 권률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런 권률을 일별한 광해가 이순신에게 물었다.

“그래도 1만이 부족하오만.”

“1만은 복무 임무의 중요도와 복무기간을 감안하여 선별해서 전역신청을 거부하는 것으로 채우고자 합니다. 폐하.”

“1만은 전역자의 수를 줄여서 채우자는 소린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흠······. 해병대는 동의하는 것 같고.”

자신의 말에 쓰게 웃는 곽재우를 지나쳐 광해가 권률을 바라봤다.

“어찌 생각하시오?”

“불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이야기해보았으면 하오만.”

광해의 말에 불가를 외치던 권률의 입이 다물렸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권률의 말문이 다시 열렸다.

“2개 전단을 줄이려면······. 4전단과 6전단밖에 없습니다. 전담하는 방어영역이 없거나 다른 전단으로 임무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옵니다.”

두 전단의 이름이 거론되자 해당 전단의 전단장들과 병단장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어 말을 하지 못했다. 제국의 황제이자 조선의 태왕이 버티고 앉아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광해가 권률에게 말했다.

“4전단이면 특수전단인데······. 그 병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나보다 권 총사가 더 잘 알 것이고.”

“예. 하여 4전단의 병단들을 존속하게 되는 전단들에 흩어 배속시킬까 하옵니다.”

“하면 실제로 줄어드는 병력은 그 병단들이 배속되는 전단들의 병력이라는 소린가?”

“4전단의 병력을 배속 받게 되는 전단들은 그러하옵니다. 폐하.”

권률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광해가 물었다.

“하면 6전단은? 그들이 북해도나 대만도를 비롯해 멀리 말라카 등의 해외영토를 방어하던 부대인 것으로 아는데.”

“해외 5도를 담당하는 5전단으로 임무를 배당할까 하옵니다. 나고야와 동일본이 제국의 품으로 들어옴으로써 위험요소가 낮아졌으니 병력을 분산배치해도 임무 수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권률의 말대로다. 다만 아직은 동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변수로 남아있긴 했지만 그가 결국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나고야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해외 5도에 배치되는 5전단의 병력이 줄어들어도 문제해결은 가능할 터였다.

“그렇게 합시다. 군은 조속히 병력감축안 마련하여 보고를 올리시오.”

“명을 받사옵니다. 폐하.”

이순신을 비롯해 장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는 가운데 광해의 음성이 이어졌다.

“아울러. 감축으로 약화되는 군사력 강화방안을 시행하고자 하오.”

광해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모였다. 그런 시선을 받으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예비군 제도를 시행하고자 하오.”

“철산 예비군을 다시 부활시키고자 하시는 것이옵니까?”

궁금한 듯 묻는 이순신에게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이들을 대상으로 구성하고자 하오.”

“다시 소집하시는 것이옵니까?”

“그것이 아니라 매년 일정 시간동안만 훈련을 받아 전투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요. 유사시 즉시 소집해서 별도의 훈련과정 없이 전장에 투입할 예비 병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만.”

“전역자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오나 훈련은 어느 정도나 생각하시옵니까?”

“일 년에 두 번 정도에 나누어 3일에서 5일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하오.”

“그것으로 전투력이 유지 될지 확신이 가지 않사옵니다.”

“현역처럼 완벽할 필요는 없소. 우리의 목표는 훈련과정 없이 투입할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니까. 지역방어에서도 현역 병력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전력 공백을 유사시 그들을 소집해 투입함으로써 매울 수도 있을 거요.”

“충분히 가능한 정책 같사옵니다. 폐하.”

이순신의 긍정적인 반응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세한 시행 계획을 짜서 함께 올리시오.”

“그리 하겠나이다.”

그것으로 군부의 병력부족문제를 일단락 짓자 이번엔 관찰사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병력 이야기가 나와서 그랬는지 이번에 거론된 문제는 대부분이 치안문제였다.

3개의 북방도로와 발해로의 안전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순찰 병력이 부족하다보니 범죄에 자꾸 노출 된다는 것이다.

관찰사들의 불만대로면 열 번 여행하면 한번은 마적들에게 공격당해 재물을 빼앗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광해의 시선을 받은 포도대장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중요 화물들의 경우엔 집단으로 움직이고 경호도 붙는 까닭에 문제가 없사오나 적은 인원이 여행하거나 홀로 움직이는 화물마차들을 주 공격대상으로 삼는 탓에······.”

“그걸 말이라고 하나! 홀로 움직이든 열이 움직이든 공격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날카롭게 올라간 광해의 음성에 포도대장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마적들을 소탕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진과 몽골은 물론이고 일대에 흩어져 살던 탕구트계 야인부족들도 여전히 약탈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걸 말이라 하는가! 교육부 장관.”

“예. 폐하.”

“이시간부로 조선의 모든 땅에 공고를 붙이고 계몽을 시작하라. 타인의 재물을 약탈하거나 목숨을 빼앗을 경우 그 이유를 막론하고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명을 받잡나이다.”

황급히 허리를 숙이는 교육부 장관에게서 시선을 돌린 광해가 포도대장을 바라봤다.

“기동 순찰조 구성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일대를 모조리 수색해서라도 범인들을 잡아내라.”

“예! 폐하.”

“병력이 부족하다면 군에 지원을 청하라. 포도청의 지원 요청이 있거든 군은 신속히 협력하여 뿌리를 뽑아라!”

“명을 받잡나이다!”

장수들의 복명에 힘이 들어갔다. 광해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묵과하지 말라!”

“충!”

문무 대신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그날의 회의는 그곳에서 파했다. 광해의 분노로 가라앉은 분위기상 다시 회의를 이어가기도 어려웠거니와 이미 시간도 저녁 7시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다시 이어진 회의는 이전처럼 논쟁과 다름없는 열띤 토론들로 채워졌다. 그 형태가 회의가 끝나는 날까지 이어졌다. 형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회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5일간 이어진 대회의가 끝나고 태왕이 주체하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멀리서 달려온 관찰사들과 장수들을 위문하는 자리였다.

조선인 관찰사와 왜인 장수, 한족 관료가 여진과 몽골의 관리들과 함께 어울러 웃고 떠드는 모습을 광해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들이 모두 조선말로 대화하고, 농담을 던지고 함께 웃는다. 누구도 자신이 조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광해는 뿌듯했다. 저 모습을 어떻게든 지켜서 후세에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후세로 이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광해는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조선에서의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

관찰사들이 돌아간 지 열흘, 본격적인 포도청의 북방 도로들의 순찰이 개시되었다. 이것을 위해 포도청은 1개조에 20명으로 이루어진 기동순찰조 320개, 6천4백 명의 기마 포교를 투입했다.

현재 포도청이 투입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이로 인해 타 지역의 예비 병력까지 모조리 소집된 된 셈이었다.

그렇게 대대적인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실제 도로의 순찰 실상을 들여다보면 충분한 병력이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발해로와 3개의 북방도로로 나누어놓으니 한 도로에 80개조가 투입된 셈이다. 문제는 이 80개조가 휴식조 1개를 포함해 4개조로 나누어 주야로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시 작전 중인 순찰조는 1개 도로 당 20개 조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무순에서 철산 단지를 연결하는 광산로가 가장 짧은 북방도로였는데 거리가 1천1백리(약 430Km)였고, 온성에서 백력을 연결하는 북방 제1도로와 신의주에서 서경을 연결하는 발해로는 2천리(약780Km) 길이었다.

그 긴 길을 20조각으로 내어 한 구간씩을 맡았으니 한조가 순찰할 지역의 길이가 광산로는 68리(약 27Km), 북방 제1도로와 발해로는 1백리(약 39Km)가 넘는다.

순찰대가 기마대로 구성되어 있다지만 12시간의 순찰시간동안 왕복주파하기도 버거운 거리였던 셈이다.

당연히 순찰조가 없는 곳에서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것을 순찰조가 인지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고, 대응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 해체된 4전단에서 1전단으로 이동 배속된 개마돌격기마 병단이 투입되었다.

전투병력을 도로경비에 투입했다며 병단장인 정기룡이 투덜거렸지만 태왕의 지시에 의한 일이었음으로 임무수행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로인해 광산로 같은 경우는 순찰거리가 34리(약 13km)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북방 제1도로와 발해로는 여전히 50리(약 20km)에 달했다. 그래도 강화된 도로 순찰에다 계몽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덕이었는지 북방도로에서의 약탈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사건은 그런 변화 중에 발생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한 몽골 계열의 소부족의 전사들이 한성에서 물건을 사서 북방 제3도로를 통해 통료로 향하던 상인을 습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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