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57화 (157/325)

제157화. 병력 부족 사태

예상대로 회의의 시작과 함께 그간 육조가 펼쳐왔던 각종 정책에 대한 각도의 불만과 개선요구사항이 쏟아졌다.

그런 각도의 불만에 대해 새롭게 9부로 개편된 행정부 관리들이 타당한 연유를 설명하거나, 개선요구사항을 일부, 또는 전체를 수용했다.

열띤 토론과 논쟁 속에서 하나하나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군왕의 앞이라 조심하고 또 할 말을 감추는 회의가 아니었다.

모든 문제를 다 드러내어 회의석상에 올려놓고 난상토론을 거쳐 가장 적당한 해결책이라 판단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실무적인 내용들이 거론되고 설명되는 덕에 광해도, 또 각도의 관찰사들도 실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물론 그로인해 회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긴 했지만.

회의가 중반에 도달했을 때 마드라스와 말라카를 대신하는 해토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조선 무역선단들로 부터 추가적인 기착지 확보의 요청이 적지 않습니다.”

“추가적인 기착지?”

“장거리 항해에서 물과 식량의 보급은 꽤나 중요한 문제인데 홍콩과 말라카, 마드라스를 잇는 무역항로는 안전한 보급 기항지가 마련된 것에 반해 이후의 항로에 대해서는 안전한 기항지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포르투갈이 조성해놓은 기항지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조선이 관리하는 안전한 기항지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해토부 장관의 이야기를 광해는 즉각적으로 알아들었다. 현재 조선이 관장하는 해외 기항지는 마드라스에서 끊긴다.

조선 무역선단으로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는 동안 안전 기항지가 없는 것이다.

광해가 외교부 장관을 바라봤다.

“현재 포르투갈 대사는 부임했나?”

“대사관계를 맺기로 약조하고 상호 대사를 파견하여 정식 외교수립절차를 밟기로 하였사옵니다만 무슨 연유인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나이다.”

“그러는 이유는?”

“최근 벌어진 조선의 약진을 그들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명나라가 조선의 속국이 되었다는 것을 조필 대행수가 귀띔을 해주었음에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모양이라 합니다.”

유럽식으로 생각하면 하루아침에 종주국이 식민지가 되고 식민지가 종주국이 된 셈이니 선뜻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거기다 결정과정에 필수인 의견 교환에 들어가는 본국과 마카오간의 소통시간도 문제일 것이고.

“일단 마카오에 있는 포르투갈 대사에게 사신을 보내 희망봉과 그 주변 기항지를 조선에 넘기라고 요구하라. 거부는 군사행동을 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명분을 세우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하지 않을 지요? 일전에 유구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도 명분 없이 군사행동을 먼저 시작했다고 불법이라 말하는 나라들이 존재하옵니다.”

“무시한다. 깡패국가라 불러도 좋고, 무자비한 야만국이라 손가락질해도 좋다. 조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조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머뭇거리지 말라.”

단호한 광해의 지시에 외교부 장관이 허리를 숙였다.

“각골명심하여 봉행하겠나이다. 폐하.”

외교부 장관의 답에 광해의 시선이 해병대 총사인 곽재우에게로 돌아갔다. 태왕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가 지체 없이 답했다.

“해병대는 폐하가 명령하시면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출동하여 점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명만 하소서.”

작달막한 체구에 다부진 표정의 곽재우는 오십을 훌쩍 넘은 지금도 그 거친 기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희망봉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작은 평지가 있소. 외교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인수받는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해병대가 나서야 할 것이오. 그 때를 대비해 두시오.”

“폐하의 명이 떨어지면 해병대가 밀고 들어가 모조리 쳐 죽이고 조선의 강토로 만들 것이옵니다. 걱정하지 마소서.”

그 성정만큼이나 거친 언사에도 광해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리다.”

“충!”

곽재우의 우렁찬 복명에 빙긋이 미소 지은 광해가 잠시 중단된 회의를 속개시켰다.

회의에서는 한성과 신의주간 철로 건설 부지가 확정되었다는 국토부의 보고를 받은 광해가 공사 착공을 지시했다.

아울러 신의주에서 서경까지 발해로의 확장을 위해 확보해놓은 부지가 철로 개설부지로 활용되어도 무방하다는 국토부의 보고가 있었다.

모두가 국토부 산하로 편입된 지리원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 보고에 철로부지가 속하게 되는 서간도와 하북도 관찰사가 즉각적인 착공을 요청해와 광해가 윤허하였다.

추가로 국토부에 제국 내 각국이 건설해올 도로와 조선의 도로를 연결 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11개국 군왕들은 광해와 약속을 하나 했다. 귀국하자마자 가장먼저 도로를 닦겠다고 말이다. 연결 최우선 목표는 조선과의 연결이었다.

그에 맞춰 조선도 준비를 갖춰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철로 건설도 마찬가지여서 철로건설 가능 부지를 탐색하기 위한 지질원의 조사단들이 이미 각국의 군왕들의 귀로에 합류해 떠난 상태였다.

광해는 지리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유라시아 횡단 철도를 러시아가 아니라 제국 안에서 건설 할 생각이었다.

이후 북간도와 동간도 관찰사가 공히 추가적인 대규모 도시 건설을 요청했다. 도시로 이주한 이들의 풍요로운 생활상이 소문나면서 미처 이주를 시키지 못했던 소부족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양 도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다. 개척해 놓은 삼강평야와 송눈평야를 경작할 노동력이 부족했던 양 도의 입장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특히 동간도의 백력으로는 루스 차르국(러시아 제국의 전신)의 백성들(추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하 러시아인으로 쓰고자 합니다)이 다수 넘어오고 있었다.

16세기 말부터 시베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던 러시아 농민들이 풍문이 전하는 황금과 은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나라를 찾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해 온 결과 백력에 도착했던 것이다.

동간도 관찰사는 그들에 대한 처우도 어찌할지에 대해 물어왔다.

“수가 많은가?”

“현재까지 대략 2천 명가량 되옵니다. 문제는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 전반기에 도착한 수가 통틀어 겨우 수십 명에 불과했던 것이 작년 10월부터 폭증하기 시작해서 매월 수백 명을 넘고 있습니다.”

17세기 초면 러시아 일대가 왕위를 둘러싸고 혼란으로 점철되던 시기다. 가짜 드미트리 사건이 연이어 이어지며 폴란드가 모스크바까지 점령했던 시기도 바로 이쯤이다.

그런 혼란이 16세기 말부터 시베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농민들의 이탈을 불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그렇게 이탈해 백력으로 넘어올 러시아인들이 더 있을 것이란 소리였다.

그간 민족과 외형을 가리지 않았으니 그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원한다면 철저한 이주교육을 수료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데 일조할 테니 우리로써는 나쁠 것이 없으니까.”

“명을 받아 절차를 시행하겠나이다.”

“그리하라.”

광해의 윤허가 떨어지자 동간도 관찰사는 꽤나 만족한 미소였다. 아무래도 러시아인들을 일부러 불러들일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동간도는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북간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북간도엔 인근에 살다가 합류한 여진인이나 몽골부족이 적지 않았지만 동간도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광해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전쟁을 벌여 뺏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편법은 눈감아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광해 자신이었다 해도 단시간에 노동력을 늘일 방법이 그뿐이라면 주저하지 않았을 테니까.

여하간 북간도와 동간도 관찰사의 요청에 대해 광해가 승인함으로써 국토부에서 건설단을 보내 북방 제1도로를 따라 추가 도시들을 건설하기로 했다.

동간도 관찰사는 가능한 삼강 평야 인근에 도시가 집중되기를 바랐다. 그 의견에 국토부 장관이 건설단과 협의하여 가능하다면 그리 하겠다고 답했다.

장관과 관찰사는 같은 2품의 관리다. 서로 협력하여 일을 해결하라는 의미에서 같은 품계로 정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회의에서 양측의 의견충돌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가 많았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누를 수 없으니 대립이 격화되는 것이다.

태왕이 자리한 대회의에서조차 그러니 평시라고 다를 리 없었다. 과거에는 1품의 관리들인 정승들이 돌아가며 개입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젠 유일한 1품 관리인 총리대신이 해결해야 할 터였다.

실무진들에게 일을 맡겨놓고 느긋하던 과거의 삼정승 시대와는 다른 현장에서 총리대신이 일을 하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당장 지금도 가능한 광해는 양측의 충돌에 개입을 최소화했다. 총리대신의 중재 능력을 키우려는 일종의 시험무대 같은 것이었다.

소란과 언쟁, 그리고 협상으로 이어지는 회의가 늦은 밤에 끝이 나자 관찰사들은 한성의 자택이나 이화관으로 향했다.

5일로 예정된 대회의는 이제 겨우 하루가 진행되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은 관찰사들에 앞서 군부의 장수들의 불만과 개선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업무의 특성상 대부분이 병무부에 집중되었다. 특히 군제 개혁의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병력부족현상이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노비의 신분으로 군역에 종사하다 다시 직업군인으로 나섰던 이들의 대량전역과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이 겹치면서 조선군 전체에 대해 병력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긴 전쟁이 끝나자 피로감에 군을 떠나려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빈자리를 매울 만큼 신규병력이 모여야 했는데 연일 발전이 천지개벽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는 조선은 일자리는 많고, 일손은 부족했다.

당연히 일자리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에 군으로 가겠다는 이들의 수가 적었던 것이다.

더구나 전쟁에 동원되는 일이 많다보니 광해 등극 초기와 달리 군을 기피하는 기조가 생겼다. 아무리 상대에 비해 피해가 적다고는 해도 전쟁이란 누군가는 죽는 일이다.

팔팔하게 살아서 참전한 이가 관속에 누워 돌아오거나 화장을 해 뼛가루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무부도 당장 해결 방법이 없었다. 이미 모병제로의 전환이 상당히 진행되어서 현재 군역으로 징집된 병사들의 근무기간은 16개월이었다.

이것도 계획대로 진행되면 1년에 2달씩 줄어서 3년 후엔 12개월로 고정된다. 향후 징집병들은 단계적으로 포도청으로 전환배치 될 예정이었다.

병무부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대책은 복무기간 단축을 정지시키고, 포도청으로의 전환배치 계획도 연기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 병력을 모두 충당할 수 없었다.

현재 조선군의 편제상 육군의 총병력이 군수 사령부 병력을 포함해 37만, 해군이 해군본부 소속 지원병들까지 합해 약 8만5천, 해병대가 강습함대를 포함해 약 5만6천으로 총 51만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해야 했다.

“어느 정도나 부족한 건가?”

“현재까지는 5만 가량입니다. 하지만 전역신청자들의 전역을 모두 허가하면 그 수는 12만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내년에 근무 연한이 끝나는 이들의 전역신청까지 합하면 부족한 병력은 15만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였다. 현대시대의 병력부족 현상을 수백 년도 앞서 겪게 되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광해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