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실크로드의 재건
거제 건선단지의 시찰을 마치고 한성으로 올라온 11개국 국왕들에게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하지만 다른 날과 달리 그 휴식 기간에 그들이 거제에 가있던 동안 조선 조당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상항들과 명일 태왕과 논의하여 결정해야 할 사항들이 일목요연하게 적힌 문서들이 전달되었다.
거의 책과 얇은 책과 다름없는 그것들을 가지고 각국의 군왕들은 수행해온 대신들과 열띤 토론에 들어갔다.
내일 벌어질 회의가 각국의 이익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로인해 휴식으로 주어진 날이 가장 바쁜 날이 되었다.
이화관 각 객실의 불이 새벽까지 꺼질 줄 몰랐다.
다음 날 열린 대전회의는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는 11개국 군왕들과 그들을 조율하는 태왕의 토론이 하나의 사안을 가지고서도 한 시간 넘게 이어질 정도였다.
특히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교역로, 그러니까 실크로드의 재건을 논의하는 자리에선 언쟁까지 벌어졌다.
서로가 자국을 통해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이었다. 오죽하면 남쪽에 치우쳐 실크로드와는 관련이 없던 명과 남진의 두 왕이 다른 9개국 군왕들의 설전을 말릴 지경이었다.
그런 군왕들을 바라보면서도 광해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들이 국제 역학과 집단 경제를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언쟁은 힘없이 끝나버렸다. 광해가 지리원장을 불러 철도가 놓일 수 있는 길을 찾으라 명했기 때문이다.
증기를 쉭쉭거리며 달리던 그 쇳덩이가 물건을 실고 다닐 수 있어야 하려면 높고 험한 산은 피해야한다는 태왕의 말에 다툼이 사라졌다.
대신 저마다 철길을 내기 좋은 땅을 내놓겠다고 난리이긴 했지만. 여하간 실크로드는 조선 지리원에서 각국과 협의하여 철길을 내기 좋은 길로 몇 군데를 선정하여 그중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그 일이 하루 이틀 사이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몇 년 후에나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그동안은 마차로 이루어지는 육상교역이 진행 될 것이었기 때문에 다시금 각국 군왕들의 언쟁이 붙어버렸다.
보다 못한 태왕이 개입해서 후금과 북원, 할하를 통해 준가르, 그리고 위구르를 통해 카자흐로 들어서 유럽과 연결하는 노선을 제시했다.
남쪽의 명과 남진, 바다건너 나고야와 동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통과하는 노선이었다. 이전의 실크로드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이었다.
그렇게 모든 나라를 거쳐 가는 노선이 확정되고서야 입을 다무는 군왕들의 모습에 광해가 쓴웃음을 지었다.
연후, 북미 대륙을 향한 점령 작전이 광해에 의해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
이미 연회에서 언질을 받았던 군왕들이 눈을 반짝였고, 생각지도 못했던 대륙의 존재를 넘어 그곳을 점령하겠다는 말에 각국의 수행 대신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놀람도 새로운 대륙에서 거둘 수 있는 이익이 거론되면서 군왕들과 마찬가지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거기다 그 이익을 제국 각국이 쪼개 가질 것이라는 말에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왕에게 무언가를 귓속말로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띤 회의가 길게, 길게 이어졌다.
밤11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끝난 회의는 예정된 논의사항을 반절도 끝내지 못했다. 그로인해 다음 날 다시 회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파하여야 했다.
그렇게 회의를 파하고 돌아가던 태왕을 카자흐 칸국의 칸이 황급히 따라 나왔다.
“폐하, 페하.”
거듭된 부름에 발길을 멈추고 돌아보자 헐레벌떡 달려온 카자흐의 칸이 보였다.
“무슨 일이오?”
“소신이 폐하께 간곡히 청할 것이 있나이다.”
이젠 왕들이 칭신하는 것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런 카자흐 칸의 말에 광해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무엇이오?”
“소신의 나라에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하나 있사옵니다.”
무슨 말인지 광해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카스피 해였다. 다만 카자흐 칸국 칸의 말대로 호수는 아니다. 바닷물과 마찬가지로 염분이 있는 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시대에도 바다인지 호수인지 그 정의를 두고 연접국가들끼리 한창 논쟁중이다.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자국의 이익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치적 이견으로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카스피 해 말이오?”
“오! 아시옵니까?”
놀라는 카자흐 칸국 칸의 물음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수이나 바닷물이 담겨 있는 곳이라 알고 있소.”
“맞습니다. 이번에 제가 바다로 가서 직접 맛을 보았는데 똑같았사옵니다.”
카자흐 칸의 답에 미소를 지은 광해가 물었다.
“해서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
“배를, 전함을 갖고 싶습니다.”
“카스피 해를 지배하고 싶은 모양이구려.”
“그러하옵니다. 폐하.”
지금 당장은 영토와 어업권으로 보고 있겠지만 현대로 넘어가면 카스피 해는 중요한 자원의 보고다. 세계 원유 매장량 3위가 카스피 해라는 주장도 있는 실정이니까.
그런 카스피 해를 카자흐가 선점하면 나중에 그것이 제국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규모의 함대를 생각하시오?”
“호위함 열 척이면 카스피 해 전역을 지배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내 이것저것 알아보고 가능한 칸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진행해 볼 테니 내일 논의해 봅시다.”
“감읍하옵니다. 폐하.”
깊게 고개를 숙이는 칸을 바라보며 미소 지은 광해가 신형을 돌렸다.
“상선은 건선장을 호출하는 파발을 보내라.”
“예. 폐하.”
태왕의 명을 받은 알지가 눈짓을 하자 행렬에 딸려있던 환관 한명이 서둘러 움직여 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승정원에 들려 왕명을 전하여 파발이 거제로 떠날 수 있도록 할 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자흐 칸국 칸의 입가로 함박미소가 걸려있었다.
다음날 속개된 회의에선 제국군의 편제가 중점으로 논의되었다.
광해는 이전에 말했던 1만의 병력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제국의 명에 응해 자국 외부로 원정을 떠날 수 있는 2만의 상비군을 유지할 것도 요구했다.
따라서 각국은 자국을 방어할 병력과 별도로 2만의 상비군을 유지해야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 일이었지만 그들이 어디에 쓰일지 빤히 보였기 때문인지 그 어떤 나라의 왕도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또한 광해는 남진과 명, 나고야와 동일본에 함대를 키울 것을 요구했다. 남진과 명은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반응이었지만 나고야와 동일본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도쿄만 협정을 시작으로 묶여있던 해역봉쇄가 풀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광해는 그렇게 설치되는 4개국의 함대는 할당량을 넘어설 수 없도록 했다.
광해는 왕건함의 후기형으로 설계되다 철선계획의 진척으로 중단된 왕무함을 표준 설계안으로 확정하여 4개국의 함대를 구성하도록 했다.
배와 함대 이야기가 논의되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카자흐 칸국의 칸을 발견한 광해가 쓴웃음을 짓고는 카자흐에도 10척의 함선이 배치되도록 하는 안을 재가했다.
해당 함선들에는 이포를 장착하고 폭발탄을 배치하도록 했다. 최신 무기가 장착되는 것이었기에 각국의 왕들은 물론이고 조선의 대신들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광해의 생각을 아는지 이순신과 해군 총사 이억기만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 결정의 바탕에 철선과 작렬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폭발탄은 파괴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선체를 뚫고 들어가 폭발해야만 한다.
하지만 철선은 폭발탄이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을 목표로 철선의 외피 장갑을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향후 조선이 장비하게 되는 철선에는 폭발탄이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알기에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몰랐던 각국의 군왕들은 해군만이 아니라 육군에서 사용하게 될 이포와 폭발탄의 공급을 원했다.
지난 전쟁을 겪으며 조선군의 그 두 무기체계가 갖는 진가를 톡톡히 경험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광해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지상전에서 폭발탄에 대비한 방호는 아직 조선군이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광해는 일총의 공급을 제안했다. 일총이란 제국 제식 일번형 소총의 준말로 광해의 특명에 의해 장원 소총 개발조에서 조선군이 초기에 사용했던 가형 소총을 역개량 한 것이었다.
역개량이라고 해서 많은 부분이 바뀐 것은 아니었고 강선만 제거되었다. 그 간단한 제거가 총기 자체의 성능을 대폭 깎아먹었다.
유효사거리는 4백보, 최대사거리는 6백보로 동일했지만 명중가능 사거리가 형편없이 깎였다.
여러 차례 시행된 시험사격에서 확인된 최대 명중 거리는 2백보였다. 다만 그것은 저격수가 거둔 성과였고, 일반적인 소총수들의 경우엔 1백보가 평균적인 명중거리로 나왔다.
유효사거리만 놓고 보면 조선군이 현재 제식 무장으로 사용 중인 나총과 같았지만 정확도가 문제였다. 나총은 유효사거리 자체가 조준사격이 가능한 사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재 유럽에서 사용되는 화승총인 아쿼버스에 비해서는 명중률과 사거리가 월등히 좋았다. 그래서인지 제원을 설명들은 각국의 군왕들이 환호성을 질렀을 정도였다.
그들에겐 일총의 제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 신무기였기 때문이다.
광해는 다음 날 올라올 건선장을 불러 다시 정확히 함대에 대해 논의하고 장원의 기술자들을 불러 제가형 소총의 실제 모습과 시험사격을 약속했다.
그 약속을 남기고 회의는 다른 날 보다 일찍 파했다. 일찍 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른 날과의 상대적인 것이었을 뿐 시간은 이미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각국의 군왕들은 이화관으로 돌아갔지만 이번엔 조선의 대신들이 태왕을 붙들고 늘어졌다.
저들에게 화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광해가 차근차근 배경을 설명하여 설득하고서야 대신들도 안도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비로소 대전을 나설 수 있었던 광해가 침전이 아니라 중궁전으로 향했다. 그런 태왕을 수행하는 환관들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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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열린 회의는 거제에서 왕명을 받고 달려온 건선장 나대용이 참석해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전달된 내용으로 태왕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로인해 거제를 출발할 때 왕무급 호위함의 설계도와 모형을 챙겨왔다.
그것을 대전 한복판에 설치된 탁자에 꺼내놓고 나대용이 설명했다.
전장 35M, 전폭 8M, 3층 포갑판을 갖춘 왕무급 호위함은 길이가 5M 정도 길어지고 돛대가 2개에서 3개로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왕건급 호위함과 선체구조와 무장이 동일했다.
다만 길어진 길이만큼 탑승병력을 20명 정도 늘였는데 이것은 모두 선원이 아니라 해병으로 채워졌다. 선내 규율유지 및 선상전투시 대응과 간단한 상륙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모형을 가리키며 설명한 까닭에 도면을 볼 줄 몰랐던 이들도 나대용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들었다.
광해는 나대용에게 선체를 모두 목선으로 만들 수 있도록 설계 변경을 명하였다. 기존의 왕무급 설계가 일반적인 조선 함선의 구조대로 철을 4할 가량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건 사실상 다른 5개국은 불가능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설계 변경이 끝나면 선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들을 추려 5개국에 파견 나가 선소를 만들 준비를 갖추라고는 명도 내렸다.
또한 광해는 그렇게 탄생한 함대들과 연합하여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방법들을 해군이 고안하라는 명도 해군 총사인 이억기에게 내렸다.
바야흐로 17세기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을 대한제국 연합함대의 태동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