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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54화 (154/325)

제154화. 조선의 미래를 떠받칠 또 하나의 기둥

장원을 견학한 군왕들이 거제 건선단지를 보고자 청원했다. 선박용 대출력 증기기관에 충격을 받은 군왕들이 그것이 장착될 철선이 거제에 만들어져있다는 소리를 들은 까닭이었다.

너무 오래 비우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환국하자는 대신들이 설득에도 불구하고 군왕들은 조선의 신문물을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배우길 원했다.

전날 태왕이 했던 그 큰 그림에 자신이, 또 자국이 제대로 발을 들이자면 한참 앞서 달리고 있는 조선을 악착같이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군왕들의 요청을 광해가 흔쾌히 허락했다.

다시 30대가 넘는 마차가 내금위 기마대와 왕도방어 병단 병사들의 호위 속에 한성을 떠나 거제로 향했다.

광해는 이번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대신들과 대한 제국 건국을 위한 수많은 사전 정비를 논의하고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논의 되고 결정된 사항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광해는 외형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제국의 정부와 조선 정부를 분리하고자 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도 제국의 일개 지방 형태로 모두가 인식하길 원했다.

물론 자국의 태왕이 대한 제국의 황제이니 조선의 백성들 누구도 그렇게 생각지 않을 터였지만 다른 11개국은 아니었다.

대한 제국은 연합이어야 했고, 그것에 모든 나라들이 올곧이 전부를 쏟아 부어 뭉쳐야 했다. 그것을 방해할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광해의 제일 과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은 대한 제국 황제의 직할지의 신분을 득한다. 다른 11개국은 황제의 권위를 위임받아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들의 나라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한마디로 다른 11개국의 백성들이 상국인 조선에게 자국의 재물과 자원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대한 제국을 위해 자신들의 것을 내놓는 것이라 믿게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광해가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한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었다.

광해는 그 결속력 강화를 위하여 2년에 한 번씩 조선의 태자와 각국의 왕세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를 만들어냈다.

아울러 10년에 한번, 제국의 군왕들이 이번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도 만들기로 했다. 광해는 대신들의 극렬한 방대에도 불구하고, 그 회의가 개최되는 장소를 순회형태로 정했다.

다시 말해 각국의 왕도에서 한 번씩 돌아가며 치르는 것으로 정한 것이다.

대신들은 반대했지만 광해는 이것이 각국의 군왕들과 백성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들의 왕이 힘이 없어 끌려간 것이 아니라 돌아가며 열리는 회의에 참석했다는 위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힘으로 눌러 부릴 것이 아니라 함께 아울러 가기로 한 이상 그들의 자존심까지 살펴야 했던 것이다.

같은 시간. 거제에 도착한 11개국 군왕들은 늦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건선단지의 시찰을 강행했다. 건조작업들은 마무리 지어져가는 시간이었지만 11개국 군왕들의 놀람은 굉장히 커다란 것이었다.

특히 조선 무역선단에 공급할 해모수급 전열함과 왕건급 호위함, 그리고 조선무역선의 건조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우람한 선체를 그대로 드러낸 채 건조되고 있는 배들이 수십 개의 건선거 안에 빼곡히 들어찬 모습은 조선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해양으로 진출하는 국가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왕이 자신들 앞에서 그려 보였던 큰 그림에는 저 배들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인지 11개국 군왕들의 관심이 지대했다.

오죽하면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의 시찰이 어려우니 나머지는 내일로 미뤄야 한다는 건선장 나대용의 이야기에 모든 군왕들이 아쉬움 깊은 탄성을 터트릴 정도였다.

건선장의 안내로 준비되어있던 영빈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다른 군왕들과 달리 카자흐 칸국의 칸은 나대용을 붙잡고 늘어졌다.

수도 없는 질문이 던져지고 그것에서 얻은 답으로 또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 그의 관심은 하나로 집약되는 듯 했다.

저 배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건조할 수 있는가?

나대용은 순순히 답해 주었다.

“태왕 폐하의 윤허만 계시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폐하의 윤허만 있으며 된다는 말이지?”

“예.”

나대용의 답에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카자흐 칸국의 칸은 크게 웃으며 뒤늦게 영빈관으로 향했다.

다음 날 이어진 거제 건선단지 시찰에서 11개국 군왕들은 선체 전부를 철로 만든 철선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직 무장과 기관의 설치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철선은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했다.

어제 도착하자마자 시찰이 시작된 까닭인지 점심나절이 오기 전에 거제 건선단지의 시찰이 끝났다. 그런 군왕들을 이순신 함대가 맞이했다.

태왕의 배려로 부산포에서 거제로 이동해온 이순신 함대의 해상 사열을 받은 군왕들은 그 배에 직접 올랐다.

이순신 함대의 기함인 해모수급 전열함에 오른 군왕들은 부산포까지 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통영에서 대기 중이던 마차와 기마대들이 부산포로 달렸고, 이순신 함대는 군왕들을 태우고 부산포로 향했다.

배를 처음 타는 이들이 적지 않아 뱃멀미로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고생 속에서도 군왕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경험을 굉장히 좋아했다.

평생 바다라고는 본적이 없는 티베트나 위구르, 준가르의 군왕들은 특히 더 했다.

부산포에 이순신함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차와 기마대가 도착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해가 조선의 왕으로 등극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손본 도로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결단코 마차들은 배보다 빠를 수 없었다.

하지만 세세한 조선의 지리를 알지 못했던 군왕들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 채 마차에 올랐다.

동래 감영에 마련된 영빈관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군왕들은 그곳에서 하루를 머문 후 한성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

해가진 초저녁, 광해가 조선군 원수 이순신과 육군 총사 권률, 해군 총사 이억기, 그리고 해병대 총사 곽재우와 마주 앉았다.

그들 앞에 광해가 그렸다는 세계지도가 놓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지리원이 유럽 각지에서 모은 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그린 세계지도가 놓였다.

범위와 그려진 땅의 크기는 절대적으로 광해의 지도가 더 넓고 많았다.

조선군을 이끄는 4명의 최고위 장수들은 도대체 이 놀라운 군왕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가 바다 건너 커다란 땅덩어리가 그려진 곳을 가리켰다.

“북미다.”

“북미······요?”

이순신의 물음에 광해가 답했다.

“이 대륙에 붙인 이름이 미주다. 아름다운 땅이란 뜻이지.”

실제로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그리 불렀으니 그냥 그리 이름 붙인 것이었다. 유럽인들은 신세계라 부른다던데 광해까지 그렇게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주라······. 아름다운 곳인가 봅니다.”

그건 모른다. 실제역사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광해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영상과 사진으로 본 것이 다였을 뿐이다.

뭐, 그래도 아름다운 곳이 없다곤 하지 못하니까.

“그렇지. 아름다운 땅이다. 기름진 땅과 대량의 자원이 있는 곳이니까.”

자신의 물음과 조금 다른 의미의 답이 돌아왔지만 이순신은 그것을 의아해 하지 않았다. 언제나 새 땅을 차지할 때 광해는 늘 이곳엔 무엇이 있고, 저곳엔 무엇이 많아 조선에 보탬이 될 것이라 말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순신에게 광해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중에서 우리가 먼저 차지할 곳은 북미다. 여기서······, 여기까지.”

현대시대로 보면 알라스카에서 캐나다, 미국까지의 북미 전체를 광해가 가리켰다.

“지도에 그려진 조선의 크기에 비하면 굉장히 넓은 땅이군요.”

“원수의 말대로요. 명과 후금, 그리고 남진이 차지한 땅보다 크니까.”

광해의 답에 이순신은 물론이고 나머지 세 장수들의 표정에도 놀람이 담겼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가 말했다.

“난 이 땅을 도모할 생각이오. 물론 조선 혼자 할 생각은 없소. 이 점령 작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과 다수의 인원을 필요로 할 테고 그것을 조선 혼자 감당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오시면······?”

“제국의 역량을 투입할 생각이오. 이미 다른 11개국 국왕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굉장히 적극적이더군.”

광해의 답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이순신이 물었다.

“저들의 식민지 건설을 허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각국이 각자의 식민지를 건설하는 방향이 아니라 제국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형태가 될 거요. 그곳에서 나오는 이익을 제국의 각국이 나누어 갖는 방식을 취할 생각이오.”

“저들의 얼굴이 활짝 핀 연유가 이것이었군요.”

이순신의 말에 광해가 미소 지었다.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을 알기에 이순신이 지도에 관심을 가졌다.

“이 지도대로면 여기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만.”

시베리아와 마주바라보고 있는 나우칸 지역을 가리키는 이순신에게 광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쪽 지역은 굉장히 추운 지역이라 지상으로의 이동에 어려움이 클 것이오. 그것보다는 배를 타고 이렇게 북해도 위쪽으로 연결된 천도(千島, 일본명 치시마, 쿠릴열도)를 따라 올라가 웅다(熊多, 시기적으로 아직 발견되기 이전이라 글쓴이가 지어낸 지명, 캄차카) 반도를 거쳐 다시 길게 연결된 현월열도(弦月列島, 시기적으로 아직 발견되기 이전이라 글쓴이가 지어낸 지명, 알류산열도)를 거쳐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더 수월 할 것이오.”

마지막에 광해가 짚은 곳은 현대시대 알라스카 만의 대도시인 앵커리지가 존재하던 자리였다. 광해는 그곳을 북미대륙으로 진출하는 조선의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었다.

광해의 설명에 이순신이 물었다.

“이곳이 웅다 반도로 불린 이유가 있습니까?”

“곰이 많이 살아서 그렇소.”

태왕이 어찌 아느냐는 말은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물으면 철산 제철단지부터 시작해서 지금 군이 주력무장으로 사용하는 나총까지 물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곳이 현월열도라 불리는 것은······?”

“말 그대로 늘어선 모양이 초승달 같이 생겼기 때문이오.”

광해의 답에 이순신을 비롯한 장수들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군요. 말씀을 들으니 정말 초승달과 똑 닮았나이다.”

이순신의 말에 광해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내가 장군들을 모은 것은 본격적인 북미 대륙 점령 작전 이전에 바로 이곳들을 점령하기 위해서요.”

“조선군만의 단독 작전입니까?”

“제국이 하나라 하나 각국의 기득권을 무시할 생각은 없소. 당연히 그곳을 우리가 먼저 차지해서 상대적인 기득권을 가질 생각이오.”

광해의 말에 이순신은 앞날이 눈앞에 보일 듯이 그려졌다. 태왕의 명에 의해 점령한 말라카와 마드라스는 대규모 무역의 거점들이 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걷어지는 이익이 한해 조선 해군을 운영하는 비용을 넘어선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런 선견지명을 가진 태왕이 선점하라 명하는 지역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북미대륙에 건설될 식민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물산이 해당 노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막대한 부를 조선에 안겨줄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작전 계획을 수립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조선의 미래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을 놓은 일이 될 것이오. 온힘을 다해주시오.”

“각골명심하여 봉행하겠나이다. 폐하.”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리는 4명의 장수들을 광해가 신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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