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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53화 (153/325)

제153화. 두개의 제국 옥새를 쥐다

지금의 상황 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왕······.”

“소신이 폐하로부터 책봉을 받기 이전에 사용하던 중원 제국의 옥새이옵니다. 이제 제국의 주인이 되시었으니 당연히 이것 또한 폐하의 것이 아닌가 하옵니다.”

도대체 어제 중전이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기에 저러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고 저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금 전해진 광해의 눈짓에 이항복이 조심스레 받아 광해에게 다시금 들어바쳤다.

그것을 광해가 받자 이번엔 명과 티베트, 나고야, 동일본, 그리고 후금의 칸과 왕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자신들의 왕이 부복한 상황에서 배석한 해당국의 대신들이 뻣뻣하게 서 있을 리 만무했다.

모조리 부복한 가운데 광해가 두개의 옥새를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조선의 대신들마저 부복하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광해가 선언했다.

“온 나라가 하나로 합쳐졌으니 경사이다. 이후로 모든 나라의 백성이 형제이니 그 차별을 두지 말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우렁찬 외침이 대전을 꽉 채웠다.

조선으로 중원 통일 왕조와 몽골의 정통성이 이어진 일대 사건이었다. 이것으로 조선 연합은 정통성까지 확보하여 진정한 일대의 지배자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조선을 포함한 12개 나라의 사서가 이 날을 실질적으로 조선이 일대를 완벽하게 지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날 광해는 다시 연회를 베풀어 군왕들과 우의를 다졌다. 다만 이날의 연회는 배석자들을 없이 오로지 군왕들과 광해만이 자리했다.

심지어 시중을 드는 궁녀들과 환관들조차 부르지 않는 한 연회장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여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 아는 이들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날 연회에 가보지 않은 땅까지 태왕이 그려냈다 하여 한동안 소란이 일었던 세계지도가 들어갔다는 점만 알려져 있었다.

그 연회를 끝내고 나오는 각국 군왕들의 얼굴이 무엇엔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것은 자국에서 조선으로 향하던 때의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화관으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명왕은 전날 자신의 여동생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

밝게 웃는 얼굴로 품에 아기를 안은 채 자신을 맞은 서안 공주는 명에서 보았을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조선의 태왕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취하려는 자신을 말린 서안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이리 오세요. 오셔서 조카 얼굴은 한번 보셔야죠.”

서안 공주의 말에 가까이 다가선 명왕이 조선의 왕자를 보았다.

“이름이······?”

“호에요.”

왕의 이름에 쓰이긴 너무 흔한 자였다. 본디 왕의 이름으로 쓰인 자는 백성들이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쓸 수 없기에 황실이든 왕실이든 가능한 그 혼란을 막고자 쓰임이 적은 자를 택하여 왕자의 이름을 짓는다.

한데 조선의 태왕은 그런 배려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명왕의 생각을 짐작했던지 서안 공주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오서 왕명과 겹치는 이름을 백성들이 쓰는 것을 권장하는 것으로 바꾸신 덕에 우리 왕자도 부르기 좋은 이름을 갖게 되었죠.”

“왕실의 이름을 백성들이 쓴단 말입니까?”

“쓰지 말라는 것이 더 웃기지 않소. 라고 폐하가 답하시더군요. 제가 오라버니와 똑같은 질문을 드렸었거든요.”

서안 공주의 답에 명왕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면 후일 왕자가 태왕이 되었을 때 같은 이름을 가진 백성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 참람한 일을 어찌······. 혹시 우리 왕자를······?”

대번에 왕자의 앞에 ‘우리’자를 붙인 명왕의 눈에 의심이 들어섰다. 명나라 왕실의 피가 섞였다고 후사로 세우지 않으려는 것이냐는 의심을 품은 것이다.

그런 명왕에게 서안 공주가 말했다.

“후사가 번잡해진다하여 후궁조차 들이지 않으신 폐하세요. 왕자가 자질이 없어 후사를 물려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으셔도 되요.”

서안 공주의 말에 명왕이 물었다.

“하면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물려주지 않을 것이란 소리가 아닙니까?”

“자질이 부족한데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야······. 하면 후사는 어찌?”

“종친들 중에서 하나를 택해 물려주신다 하시더군요. 그리되면 제가 팔자에도 없는 양자를 들여야 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요.”

“믿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일단 오라버니가 있죠.”

자신을 믿는다는 서안 공주의 말에 명왕의 눈이 커졌다. 누가 자신을 믿는다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본 탓이다.

그런 명왕을 바라보는 서안 공주는 제 오라비가 안쓰러웠다. 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총명하다는 소리도 들었던 이였다.

왜 태정을 시작했는지 정확한 오라비의 속내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을 이제는 털어내고 제대로 된 군왕으로 다시 서길 바랐다.

“오라버니. 늦었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그때가 정말 늦은 것은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남아있다는 뜻이니까요.”

“······.”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 명왕에게 서안 공주가 말을 이었다.

“조선의 국모이기 이전에 명나라의 공주로써 드리는 말씀이에요. 조선을 배우세요. 조선을 넘어설 수는 없을 지라도 도태되지는 마세요. 다른 뭇 나라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이제 명은 오라버니의 손에 그 운명이 달렸어요.”

“······.”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 오라비가 무슨 생각일지 서안 공주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진심을 다해 말을 할 뿐이었다.

“훗날 오라버니의 조카가 다스릴 나라에요. 오라버니의 명이 조카를 지켜주시고, 힘이 되어주세요. 오라버니의 손으로 이곳 조선으로 보낸 이 서안의 부탁이에요.”

*****

그 말을 건네는 서안 공주의 눈빛을 명왕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사소 즉흥적이긴 했어도 오늘 명의 옥새를 조선의 태왕에게 들어바친 연유였다.

오늘 자신이 한 결정이 부디 잘못된 것이 아니기를 마차 안에서 명왕이 빌고, 또 빌었다.

다음 날. 각국의 군왕들에겐 장원에 대한 시찰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이 장원을 돌며 연신 놀람과 경탄을 터트리던 그 시간 광해는 대신들이 입조한 가운데 지리원장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의주에서 위화도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 평원이 나옵니다. 그곳과 강을 마주한 강 건너 평원 지역을 연결하여 새 왕도로 삼으소서.”

“그곳을 낙점한 연유가 있는가?”

“평원이 존재하고, 강을 맞닿으며 강 건너에 확장할 평원이 또한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옵니다. 아울러 강 건너 땅 북쪽으로 산이 있어 산성을 축조하여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되었나이다.”

“그것은 국내성도 다르지 않았다.”

“하오나 평야지대가 국내성은 너무 비좁았나이다.”

“확장성은 그렇다 하나 연결성은?”

“소신이 청한 지역이 바로 발해로가 지나가는 길목이옵니다. 철길 또한 그곳을 따라 건설될 것이니 연결성은 충분하다 사료되옵니다.”

“항구의 기능이 가능한 도시가 주변에 있겠더냐?”

“서해는 뻘이 많고 수심이 얕은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예로부터 대형선은 들지 못하였나이다. 소형선이라면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나 바다로 길게 뻗은 신도를 개발하여 바다로 나갈 항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사료 되었사옵니다.”

현대시대로 보면 딱 신의주 자리다. 그리고 그 앞에 자리한 진흥(振兴, 전싱),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단동(丹东)이라 부르는 단둥시 전싱구를 아울러 왕도로 개발하자는 뜻이다.

물론 현재의 단둥시와 강 건너 룡천 일대의 평원으로 확장도 가능할 터였다. 도로와 철로, 거기다 항구까지 갖춘 곳이니 일국의 수도가 자리 잡기에 나쁜 지역은 아니었다.

“실사단을 보내 금명간에 현장을 확인하여 고하라.”

광해의 명에 대신들이 허리를 굽혔다.

“명을 받잡나이다. 폐하.”

복명하는 대신들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아울러 조선 연합의 이름을 달리 하고자 한다.”

“명왕의 간언에 따른 것이라며 그리하지 마옵소서.”

영의정의 말에 광해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가 있는가?”

“자칫 명왕의 말을 폐하께오서 좇았다는 말들이 나올 수 있나이다.”

명왕이 과거 황제였기에 가질 수 있는 의심이다. 아직 그 영향을 받는다고 말이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새신들이 적지 않았다.

자존심일 터다. 명에 사대를 했던 과거가 지금에 발목을 잡는.

하지만 자존심은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좁고 얕게 쓰는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격지심일 뿐이니까.

“그가 명왕이니 옳은 말을 하더라도 무시하란 소린가? 그것이 일국의 재상이 입에 담을 소린가! 그것은 옳지 않다. 말한 것이 틀렸다면 명왕이 아니라 누구라도 버릴 것이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길거리에서 마주친 세살 아이의 말도 들어 쓸 것이다. 경들도 잊지 말라.”

태왕의 음성이 무겁게 내려앉자 영의정이 입을 다물고 대신들이 허리를 굽혔다.

요사이 대신들을 대함에 있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나 광해는 패왕이었다. 선왕을 군력으로 밀어내고, 온 나라를 한손에 틀어쥔 패왕.

여전히 군부는 충성을 다했고, 백성들은 하늘같이 섬겼다.

감히 대신들이 태왕의 명을 거부할 수 없음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태왕의 음성이 내려앉자 덜컹, 대신들의 마음도 함께 내려앉았던 것이다.

“며,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답하는 대신들을 바라보는 광해의 표정이 차가웠다. 일국의 대신이라는 자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좁고 얕은데 따른 불만이었다.

그런 광해에게 좌의정 유성룡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신들이 부족함을 깨닫고 더 정진하겠나이다. 노여움을 푸소서.”

“노여움을 푸소서.”

허리를 굽히는 대신들이 외침에 광해가 말했다.

“경들의 말을 믿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허리를 깊게 숙이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하여 조선 연합의 이름을 대한(大汗) 제국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솔직히 이 명칭을 정할 때 광해는 고심했다. ‘한’자를 ‘韓’으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한을 상징하는 그 말은 배달민족이라면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니까.

하지만 기껏 대제국을 건설해 놓고 나라이름에 삼한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특히 조선이 세운 대제국의 이름을 대한이라 말하면서 조선이 유목민족의 나라임을 강변했다.

그로써 티베트를 제외한 6대칸국은 물론이고, 후금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는 것도 계산에 넣었다. 그런 고심으로 내놓은 이름에 대신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신명을 받쳐 따르겠나이다.”

일제히 외치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하나 그것은 제국의 이름일 뿐, 조선이란 국명은 버리지 않는다. 제국의 황제는 또한 조선국 태왕의 직분을 겸하여 행한다.”

말장난 같은 일이지만 이것으로 외형상은 제국과 조선이 분리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광해는 다른 나라들이 제국에 충성하는 것을 조선에 충성하는 것과 분리시키고자 했다.

반감을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작은 외형의 차이가 하나라도 분란을 더 적게 만들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제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시행한 일이었다.

대신들로써는 조선이란 국호가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각골명심하여 봉행하겠나이다.”

대신들의 답을 들으며 광해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굳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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