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인구 증가
모든 선거가 직접 선거는 아니었다. 지역에 관계없이 이장은 직접선거로 뽑는 것이 맞지만 읍장과 시장은 간접선거다.
백성들이 직접 뽑은 이장들이 그들 속에서 읍장을 뽑고, 그렇게 뽑힌 읍장들이 다시 자신들 속에서 시장을 뽑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마을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뽑은 이장이 읍장 또는 시장으로 당선될 수도 있었다. 그로인해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곳이 생기지만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걸 굉장히 좋아했다.
자신들의 마을에서 인물이 나왔다는 논리였다. 거기다 그 인물을 자신들의 손으로 뽑았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여하간 읍장이 되었든 시장이 되었든 처음은 어느 마을의 이장으로 백성들이 직접 뽑은 자였기 때문에 첫발은 직접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내딛게 된다.
그것이 조선식 간선 선거의 묘미였다. 제 아무리 명성이 높고, 재물이 많아도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으면 소용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실제 역사의 자유당 정권 때처럼 돈을 주고 표를 샀다간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그저 몇 년 옥살이, 또는 얼마간의 벌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금권 선거, 관권 선거 등 부정 선거범은 왕명으로 금한 것을 어긴 대역 죄인으로 취급되었다. 태왕이 직접 심문하는 친국이 열리고 만신창이 끝에 참형장에서 목이 날아간다.
지은 죄에 비해 과하다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광해는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이들을 용납할 생각이 결단코 없었다.
그런 저런 방법으로 수없이 선출되어 권력화 하는 정치집단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정당이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나 그 꽃이 나라를 살찌우고 기름지게 만드는 것을 광해는 현대시대에 살 며 본적이 없다.
오히려 집단화된 이기주의에 젖어 제 잇속과 자신들의 이익을 국가나 국민보다 앞에 두는 것은 수없이 보아왔지만 말이다.
그런 현대의 정치인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던 광해는 왕실이 중심을 잡고 선거를 통한 백성들의 참여로 조선식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선식 민주주의’라는 부분이 마치 현대시대에 있을 때 뚱땡이가 통치하고 있던 북한이 생각 난 탓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회 도중에 갑자기 태왕이 웃은 탓인지 대신들이 말을 멈추고 그런 태왕을 올려다봤다.
“흠흠. 별것 아니니 계속하라.”
선거 과정에 대한 절차에 대해 보고하던 자신의 발언 중 태왕의 웃음이 새어 나온 까닭인지 호조 판서는 뒷말을 이으며 연신 태왕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 호조 판서의 보고가 다 끝나자 광해가 대사간을 바라보며 물었다.
“입법의원 제도는 정비가 다 되어 가는가?”
“검토가 마무리 되어가옵니다. 폐하.”
입법의원.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다. 다만 광해가 조선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입법의원 제도의 경우 입법권만 있고, 국가 예산 감독 및 정부 기관의 사정 권한은 주지 않는다.
국가 예산의 적절성은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감당하는 왕실이 검증하고, 입법의회가 만들어낸 법을 지키는지에 대한 감독권한은 포청과 사헌부, 어사대, 사간원으로 이어지는 사정기관들이 담당한다.
권력기관의 수는 적을수록 좋고, 권력은 편중되기 보다는 흩어져 있는 것이 부정과 비리가 자라기 어렵다고 광해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토된 내용을 고하라.”
광해의 명에 대사간이 답했다.
“입법의 기준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범위로 한정하고, 선출은 기존의 선거 방식과 같이 하는 것으로 취합되고 있나이다.”
“기존의 방법을 적용하면 어느 선에서 선출할 생각인가? 마을마다 한명씩 입법의원을 낼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도 단위에서 내되 각도의 백성수를 감안하여 선출될 수를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나이다.”
현재 조선의 인구는 2천만을 훌쩍 넘어 3천만에 유박해가고 있었다.
인구는 증가세였다. 서부 3도를 확보할 때까지만 해도 정복활동을 통한 증가가 주를 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자체적인 인구증가가 급격했다. 이 시대의 자녀수가 한 가정 당 평균 다섯 정도였다. 의료기술의 발전도 다른 기술들만큼이나 연일 개선되고 발전하고 있어 과거보다 산모와 영아 사망률이 낮아졌다.
거기다 평균 수명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광해가 즉위하던 10여년 전만해도 조선의 평균수명은 35세 전후였다.
하지만 지금은 30대에 죽는 이들이 드물었다. 평균적으로 40대를 넘겼고, 50줄에 들어서야 사망률이 급격히 올라갔다.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대규모 병, 의원들이 체계적으로 갖춰지면서 의료인들의 전문성과 진료의 질이 높아진 결과였다.
거기다 약제의 대량 유통을 통한 저가격 정책은 백성들이 아플 때 손쉽게 병원이나 의원을 찾고, 약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의료만이 아니다. 생활 전반이 달라졌다.
풍족한 물산은 백성들의 식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었다. 밥을 산처럼 쌓아 고봉밥을 만들고 간장에 짠지만 올려놓고 먹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던 시대도 아니었다.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에 구애를 받지 않게 된 세상이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고. 자신을 가꾸고,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퍼져있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급속도로 수명을 늘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모여 최근 조선의 인구는 폭증세였다. 다행히 식량 부족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삼강평야와 송눈평야가 막대한 식량 생산량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덕이었다.
현대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인구는 여러 문제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경제력의 성장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이 된다.
어떤 한 물건을 만들어 팔 때 열 명에게 파는 것과 백 명에게 파는 것, 또 천명에게 파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에 의한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품질의 향상이 일어난다. 그것을 위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다시 소비가 촉진된다. 이러한 일들이 혼합되면서 경제가 부흥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품이 생산되었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일자리가 늘었으며 품질을 향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것을 위해 일자리가 또 생기고, 소비는 더 늘었다.
인구가 증가한다고 실업률이 올라가거나 빈민층이 증가하는 일이 아직은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산업감독청의 철저한 감독 하에 조선 전지역은 고임금 정책이 실시되고 있었다.
사업으로 발생된 이익은 철저하게 근로자와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의 제일 목표는 지금의 기조를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마음껏 일하고, 제대로 된 이득을 취하는 것. 그로인해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을 지켜내는 것이 목표였다.
모든 사회 전반에 걸쳐 기득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은 누구라도 가능했고, 어떤 산업이라도 진입이 가능했다.
그것을 나라가, 왕실이, 선도 기업들이 지원했다. 백성이 일정 기준만 준비한다면 기술과 자금, 영업방법 모든 것을 제공 받을 수 있었다.
한집이 팔아먹던 것을 경쟁자가 생기면 두 집이 나누어 먹어 이익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했다.
한집이 팔던 것을 두 집, 세 집이 팔면서 전문성이 커지고 해당 품목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쪽으로 유도했다.
소비가 제한된 품목은 나라와 왕실이 적극적으로 나서 외국에 팔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수요처를 늘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조선의 물품들이 유럽 각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울 것도 없었다.
대형선박들로 구성된 대규모 무역선단을 대량으로 운영하면서 항해의 안전성을 높였다. 과거처럼 열 척이 가서 한두 척이 돌아오는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로인한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 조선 물건이면 품질은 두말 할 필요가 없고, 가격에서까지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연히 높은 가격에 희소성을 내세워 과거처럼 유럽의 부유층만 노리지도 않았다.
소수의 귀족과 부유층에 한정되었던 비단이나 인삼, 도자기에서 유럽의 평민층에서도 구입이 가능한 대량의 기성복과 약재 등 그 수출 품목이 연일 확대되고 있었다.
입법의원에 관해 대화를 하다 경제부분으로까지 생각이 미치자 광해가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고는 물었다.
“수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가?”
“현재까지 모인 의견으로는 백성 오십만 명 당 한명이옵니다.”
대략 현재의 조선 인구를 3천만으로 잡으면 60명의 입법의원이 생기는 셈이다. 적은 감이 없지 않긴 했지만 너무 많을 필요도 없었다.
백성들에게 필요한 법을 만들자는 것이지 그들에게 국정 전반의 운영을 맡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용해보고 적다고 판단되면 그때 수를 늘이면 된다. 많이 뽑아놓고서 줄이긴 어려워도 적게 뽑고 차차 늘려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
“나쁘지 않군. 시행 시기는?”
“폐하께오서 함께 검토를 지시하신 관제 개혁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의견들이 모이고 있나이다.”
“부서의 조정과 명치 등에 대해 충실히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대사간의 복명에 광해는 새롭게 변화될 조선의 관제를 비롯한 정치 지형이 기대되었다. 거기다······.
“아! 검토하라던 천도 문제는 어찌 되었는가?”
광해의 물음에 대사간이 답했다.
“평양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천도의 영향이 적을 것으로 판단되었사옵고, 국내성은 지리적으로는 합당하나 그 여건이 미비하다는 평가이옵니다. 하여 새로운 곳을 물색하는 것이 가하다 사료되었나이다.”
“국내성의 여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는?”
“산에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용이치 않고, 평야 지대를 두고 있지 않아 확장성에도 부족하다는 평가이옵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조선이 바라보는 왕도의 기능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적의 침입에 상당한 방호력을 가지면서도 적당한 조건을 갖추면 되었던 과거와는 완벽히 달라져서 확장성과 연결성이 중요시 되었던 것이다.
“지리원장.”
광해의 부름에 지도제작을 담당하는 조선 지리원의 원장이 대신들의 맨 끝에서 공손히 답했다.
“예. 폐하.”
“요새 철도부지 찾는다고 고생하던데. 일감 하나 더 줘야겠는데. 천도부지 찾아봤으면 하는데 할 수 있겠나?”
“광영으로 알고 성심을 다하여 찾겠나이다.”
“많은 시간은 주지 못해. 알겠지만 철산에 간 11개국 국왕들이 한성으로 돌아와 조선 연합에 대해 마무리 지으면 곧바로 관제개혁과 천도 발표가 있을 테니까.”
“최선을 다해 서두르겠나이다.”
“기다리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지리원장의 답을 들으며 광해가 무반 대신들의 맨 첫자리에 서 있는 조선군 원수, 이순신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