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증기 기관차
남쪽에서 유구국 점령전과 북쪽의 유라시아 대정벌이 진행 중이었지만 조선에선 전쟁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자국 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인데다 총력전도 아니고 정규군 중 일부만으로 벌어지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일상은 평소와 같았고,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개혁과 발전은 연일 새로운 시대로 조선을 이끌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소위 장원이라 불리는 조선 신문물개발원이었다.
태왕의 지도아래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개발품을 쏟아내 조선의 개혁과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그 조선 신문물개발원에서 태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개발품이 완성되었다.
사람 키의 서너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의 대형 굴착장비였다. 현대시대로 보자면 TBM(Tunnel Boring Machine)이다.
물론 여러 가지 기술적 난제와 아직 발전하지 못한 기술들이 있는 까닭에 두 가지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원리는 비슷했다.
적어도 이 시대 터널 작업방식처럼 사람이 곡괭이를 들고 파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 기술적 제한 때문에 파는 동시에 굴의 벽면을 자동으로 강화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사람이 따라 들어가 공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아주 강한 암석지대를 만날 경우 엔진의 역할을 하는 증기기관의 출력이 약해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곡괭이로 작업하는 것 보다는 훨씬 빠른 작업속도를 보일 터였다.
광해가 이 장비의 개발을 서두른 이유는 조만간 증기기관차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증기기관차는 경사로 등판능력이 젬병이다.
거의 대부분의 레일 운송수단이 그렇긴 하지만 증기기관의 경우는 특히 더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도가 가능한 평지상태로 건설 되어야 했다. 평탄지와 약 경사지에 대해서는 이미 수년전부터 철로 건설 기술을 개발해서 이미 확보하고 있었지만 산악은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급경사가 지속되는 산악의 경우엔 결국 터널이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현대 시대처럼 장거리 터널은 기술적으로 건설이 불가능했기에 최단거리로 터널을 뚫어 기차가 지나갈 길을 확보하는 선로의 선정도 중요했다.
그것을 위해 지도를 제작하는 조선 지리원에서 현재 철로가 지나갈 만한 길을 찾고 있었다.
기존 도심과 연결 가능하면서 도시의 기능을 헤치지 않으며 가능한 교량이나 터널 없이 지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물론 터널이나 교량을 건설하지 않기 위해 우회하는 길이가 길어서 오히려 비용이 더 들어갈 경우엔 과감하게 터널이나 교량의 건설을 선택하게 했다.
부산에서 한성까지의 철로 개설부지는 이미 확정되었고, 지금은 한성에서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연결되는 구간의 부지를 선정 중이었다.
의주와 단동을 연결하기 위해 강폭이 가장 좁아지는 구역을 찾아 압록강을 건널 교량의 건설 부지를 선정하는 것 까지가 1차 부지 선정의 목표였다.
광해는 부산포에서 의주까지를 1차, 의주에서 선영을 거쳐 지금은 서행궁으로 불리는 자금성이 있는 서경까지 연결하는 것을 2차 목표로 두고 있었다.
3차 건설 목표는 평양에서 경원(慶源, 지금의 은덕)을 거쳐 두만강을 건너서 백력에 이르는 철로를 놓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조선 본토와 삼강평야를 연결할 예정이었다.
이와 같은 목표의 달성을 위해 공조 산하에 철도청을 만들고 관리와 기술자들을 선발하여 배치하기 시작했다.
철도청의 기술자들은 이미 장원과 철산 제철 연구소의 지원 하에 철로의 개설 및 수리 기술을 이전받아 실험구간을 건설하고 수리하며 실질적인 현장 적응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광해와 많은 기술자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드디어 철도기관차용 대출력 증기기관이 완성되었다.
광해가 증기 연구소 연구원들을 크게 치하하고 포상하여 그간의 노고에 작게나마 보답을 하였다.
광무2년, 서기1605년 9월. 대출력 증기기관을 장착한 조선, 아니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한성에서 제작되었다.
기관차의 제작과 동시에 철로 개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부지가 확정된 부산포에서 한성까지의 구간이 우선 착공되었는데 막대한 인력과 재원이 소요되고 있었다.
사가도 섬에서 채굴된 금과 유럽을 통한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금력이 그렇게 소요되는 재원을 충당하고 있었다.
개발된 증기기관차는 철로 건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한성 외곽에 건설된 시험구간에서 시험운행에 들어갔다.
기관차가 다닐 수 있는 철로가 완성될 때까지 그곳에서 시험운행을 하며 부족한 부분과 수정되어야 할 부분을 찾게 될 것이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새로 만들어진 기관차가 실제 완성된 철로를 달리게 될 것이었다.
*****
10월 첫날의 조회에서 광해의 기억 저편에 묻어져 있던 한 가지가 거론 되었다.
“지난 마카오 해전에서 포로로 잡힌 포르투갈인들이 긴 시간 부산포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나이다. 조선에 대항한 그 죄가 크다 하나 이미 자신들이 태어난 곳과 전혀 다른 조선에서 긴 시간 갇혀있었으니 이제 그 처결을 다시 내려주시길 청원하옵니다.”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의 청원에 광해가 물었다.
“그들이 얼마나 갇혀있었던 것인가?”
“햇수로 11년이옵니다.”
대사간의 말대로 긴 시간이었다.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나섰다 포로로 잡힌 것에 반해서는 분명 과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에서 포로 석방 교섭도 없었다.
저들에게 이쪽이 포로로 잡고 있음을 알려주었음에도 그러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지만 그것이 조선이 긴 시간 그들을 포로로 잡고 있는 연유가 되었던 것이다.
“수는 얼마나 되는가?”
“3백이 넘사옵니다.”
정확히는 362명이었다. 중간에 병에 걸려 죽거나 향수병을 이기지 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이들의 수였다.
“짐이 돌보지 못하였다. 과하였으니 그들의 처우를 밝혀 처결하라.”
“어찌 처결 하오리까?”
이번에 나선 이는 형조 판서였다. 수용소의 관리와 처결은 형조의 관할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카오에 포르투갈 대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에게 인계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폐하.”
일제히 허리를 굽히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광해는 국제적인 교류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선이 포르투갈과 조금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었다면 이렇듯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야 포르투갈의 포로였지만 다음엔 조선의 포로가 다른 나라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광해는 자신의 백성이 타국에서 위험에 그렇게 장시간 노출 되어 있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울러 교류가능한 모든 국가와 대사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외교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예조가 맡아 최선을 다하라.”
광해의 명에 예조판서가 깊게 허리를 굽혔다.
“명을 받잡나이다. 폐하.”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무대에 조선이 진출하는 계기였다.
부산포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있던 포르투갈 포로들은 자신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한데 그런 그들 중에 예상치 못한 것을 청한 이들이 생겼다. 포르투갈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머물게 해달라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연유를 물은 조선 관리에게 그들이 한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조선에서 더 나은 미래를 찾고자 합니다.>
대부분은 포르투갈에 친척 하나 두지 못한 고아 출신들이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그 죗값대신 선원이 된 이들이었다.
포로수용소측은 이 사실을 형조에 알려 처결을 물어왔고, 보고를 받은 형조판서는 곧바로 광해를 찾아 비답을 청했다.
“죄를 지어 선원이 되었다는 이들에 대해선 그 죄가 무엇인지를 따져 조선에서 중범죄로 구분하는 것을 범한 이는 받지 말고 송환하라. 그 외의 이는······. 받아도 좋을 것이다.”
“무례한 양인들이 조선의 미풍양속을 헤치지 않겠나이까?”
“문화가 다름이다. 그들을 통해 백성들이 또 다른 세계의 문화를 배우는 기회가 되겠지. 정이 문제가 되거든 그때 법으로 다스려도 될 것이니 사전에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피가 섞일 수 있나이다.”
혼혈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형조 판서에게 광해가 답했다.
“왕자 또한 피가 섞였다. 그렇다고 업신여길 터인가?”
“어, 어찌 소신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입에 담았으니 죽여주시옵소서!”
황급히 바짝 엎드리는 형조 판서를 내려다보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그대의 뜻을 안다. 눈 색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이의 피가 섞이는 것이 걱정이겠지.”
“마, 맞사옵니다. 소신 그것을 걱정하여······. 감히 참람한 말을 지껄였사오니 살펴 주소서.”
“안다. 하나 그것을 가르면 지금 북쪽에서 연합군이 벌이고 있는 유라시아 대원정에서 돌아올 포로나 전향자들은 어찌 하려하는가?”
서북쪽 유목민들 중에 색목인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였기에 형조 판서는 아무런 답도 못하고 그저 바짝 엎드릴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광해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구별은 말게. 외모는 그저 외모일 뿐이지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니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조선의 강역에 사는 사람이면. 그 출신이 색목인이든 왜인이든, 여진이든, 몽골이든 아니면 한족이거나 배달족이든 모두 조선인이니. 잊지 말라.”
“각골명심하겠나이다. 폐하.”
“그럼 되었으니 물러가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폐하.”
지은 죄가 있어서였던지 형조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엎드린 자세 그대로 뒷걸음질 쳐 조심스럽게 침전을 벗어났다.
하긴 의도야 어땠든 감히 태왕의 면전에서 그 소생인 왕자의 피 섞임을 지적한 셈이었으니까.
그 일로 왕자에게 생각이 미친 광해가 알지를 불렀다.
“상선.”
“예. 폐하.”
“중궁전으로 갈 것이다. 차비를 갖추라.”
“왕자 아기씨를 보러 가시려 하시옵니까? 폐하.”
“그래. 이야기가 나왔더니 몹시 보고 싶구나.”
광해의 답에 알지가 미소를 지었다.
“속히 서둘러 차비를 갖추라 이르겠나이다.”
“오냐.”
답하는 광해의 입가로 미소가 가득했다.
아직 광해의 슬하엔 왕자 한명 뿐이다. 중전인 서하 공주는 첫 출산이후 두 번째 회임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조정과 왕실 전반에 걸쳐 걱정이 많았다.
왕실의 자손은 많아도 걱정이지만 적어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후궁의 문제를 다시 주청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행해지지는 않았다.
태왕의 명으로 후궁의 문제는 거론이 금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광해는 후사를 반드시 왕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그것이 반드시는 아니었던 것이다.
능력도 안 되는 왕을 앉혀 나라가 어찌 되었는지 수많은 역사를 보았던 광해로써는 애써 일으켜 세운 조선을 다시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이항복이 추려낸 왕실 인재들을 종학(宗學)에 두고 왕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일종의 예비후보군이랄까.
왕자가 자라나 그 자질이 모자란다 싶으면 광해는 그들 속에서 차기 국왕을 지목해 태자로 삼을 요량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이제 두 살인 왕자의 자질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아! 중전의 말로는 왕자가 천재라고는 한다. 벌써 한글을 읽는다나. 광해가 듣기로는 그냥 옹알이던데 중전은 그걸 다 알아듣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