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신무기
5척의 해모수급 전열함과 10척의 왕건급 호위함을 거느린 해병강습함대를 30척의 크고 작은 재래식함으로 막는 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화포를 장비한 배도 아니고, 불화살과 도선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유구국의 함선들은 해병강습함대에 접근하지도 해보지 못한 채 조선군 함선의 포격을 뒤집어 써야했다.
그렇게 30척의 유구국 함선들을 모두 격침시킨 해병강습함대가 유구국 해안에 접근해 상륙포격을 감행했다.
30분간의 포격으로 해변가에 몰린 유구군이 격멸되었다고 판단되자 곧바로 강습상륙이 시작되었다.
본래 조선무역선에 실리는 연락선은 10인승, 2척이었다, 하지만 해병강습함대에 배치된 조선무역선은 1척의 연락선과 20인승 강습상륙선 4척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되어 있었다.
강습상륙선의 경우 돛이 없고, 인력으로 돌리는 바람날개만 달려있었다. 아울러 침저선이 아니라 평저선이다. 해변까지 그대로 밀고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위해 바닥면에 얇은 철판을 대어 선저를 강화했다.
그런 강습상륙선들이 내려지고 해병대의 강습상륙이 유구국의 본섬인 유구섬(오키나와)에 시작되었다. 2백 척에 달하는 강습상륙선이 일거에 상륙 시킬 수 있는 병력은 구포와 구포탄 및 여러 장비들을 함께 싣기 때문에 3천명이었다.
그들이 호위함대의 상륙포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유구섬의 해안에 상륙했다. 조선 해병대 최초의 독자상륙이었다.
그것으로 조선해병대의 유구국 점령 작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유구국의 점령 작전이 시작되던 때 조선에선 대규모 광산 개발공사가 한창이었다. 전량 명에서 수입해오던 역청탄을 생산할 무순(抚顺, 푸순) 광산이 개발되어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무산 철광처럼 노천 탄광으로 이루어진 이 무순 탄광은 채굴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더구나 그렇게 채굴되는 역청탄의 질이 굉장히 좋았다.
효율성을 위해 코크스 생산설비를 탄광 인근에 설치하여 이동간의 환경오염과 이동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탄광의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도시가 무순에 건설되고 있었다. 탄광 기술자들과 조만간 이동해올 코크스 기술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살아갈 도시였다.
대량의 코크스가 이동할 수 있도록 무순과 철산 단지를 연결하는 도로에 대한 공사도 시작되었다. 총연장 1천1백리, 현대 도량형으로 대략 432Km에 달하는 도로였다.
막대한 노동력과 물자, 자금이 소요되는 이 도로 공사가 가장 우선시해서 건설되고 있었다.
역청탄의 보급이 안정화되면서 명과의 전쟁 이후 축소되었던 철산 단지의 철 생산량도 완전히 전쟁 이전으로 회복되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제철 단지의 확대가 추진되고 있었다. 증기 압연 시설이 확충되면서 얇은 철판은 물론이고, 강관 등 수많은 압연 제품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수출하기로 광해가 결정을 내린 것에 따라 시설 확대가 결정된 것이었다.
요즘 철산 제철 단지에서는 광해의 특명으로 화학연구소와 함께 압연과정으로 생산된 다양한 크기의 강판을 도금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함선용 강판에 동, 그러니까 구리 코팅을 입히기 위한 연구였다.
구리 코팅을 입힌 철선의 선저에 달라붙는 따개비 따위의 생착률을 저하시켜 정비기간을 연장시키고 운항 속도의 저하를 막는다는 현대의 정보를 광해가 떠올린 까닭이었다.
그렇듯 철선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광해는 선조 22년 최초로 철제 판옥선을 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철선 개발부를 운영 중이었고, 막대한 재정 지원도 지속하고 있었다.
그 기간이 무려 15년에 달했다. 그 긴 기간 동안 끊임없이 개발과 연구를 지속한 덕에 철선 선체의 제조기술에 관한한 조선은 상당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순수 철선으로 제작된 시험용 범선이 대만도까지의 시범운항을 성공리에 마치기도 했다.
다만 이 선체는 순수 시험용으로 개발된 것으로 실제 보급선이 되지 못한 이유는 속도에 때문이었다. 선체 전체를 철제로 만들어 무거워진 범선을 돛대들만으로는 제대로 된 속도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최대속도가 7노트, 그러니까 시속 13Km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과거의 판옥전선에 비하면 나쁜 속도는 아니었지만 대양을 항해하는 범선들의 속도가 12노트 이상을 기록하는 시대에선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럼에도 광해가 철범선의 제작과 시험 운항을 승인했던 연유는 증기기관을 장착할 수 있을 때를 대비해서였다.
가능성도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기관차용으로 사용 가능할 정도의 대출력 증기 기관이 완성 직전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완성되면 광해는 출력을 더 늘려 철선용 증기 기관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기관만 완성되면 언제라도 철선이 생산될 수 있는 기술을 이미 확보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따른 무기 개발도 별도로 진행 중이었다.
광해가 원하는 것은 대구경 장사정포였다. 제철 기술과 합금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과연 이시대의 기술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철제품들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해는 적어도 10Km 정도의 사거리를 가진 대구경 함포를 원했다. 이것으로 실제역사에서 폭발탄 도입으로 활성화 되었던 장갑순양함 형태의 함선을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조선이 폭발탄을 사용한지 이미 20년에 다가와 간다. 아직 다른 나라에서 폭발탄을 개발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의 개발이란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바, 아예 사용하는 곳이 없다면 모를까 이미 조선이 사용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모방해 개발하려는 노력이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이미 조선이 톡톡히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목선은 폭발탄에 취약했다. 조선이 건조하여 운항 중인 함선들도 목선이라는 것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선체 상당수에 철제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4할을 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선체의 외피의 경우 일부만 철제일 뿐 대부분의 외피는 여전히 목재였다.
지금의 상황에서 상대가 폭발탄을 사용할 경우 조선 해군도 해전이 벌어질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광해는 그것을 용인할 생각이 없었다. 아울러 적 지상군이 폭발탄을 사용할 것에 대비하는 계획도 진행 중이었다.
장갑마차와 병사 개개인의 방호력 증강이었다.
1차로 계획 되어있던 철모와 방탄조끼는 보급이 완료되었지만 장갑마차의 경우는 지지부진 했다.
아무리 얇은 철판을 사용한다지만 철판으로 차제를 만들고 지붕까지 씌운 마차는 6마리가 아니라 8마리의 말을 붙여도 제대로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 아무리 마차가 방탄 성능과 폭발탄에 대한 방호능력을 구비한다고 해도 말의 보호가 불가능했다. 마갑을 두텁게 씌우면 기동력은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말 발목에 대한 보호가 불가능했다. 비포장 된 개활지를 달려야 하는 이상 발목은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폭발탄은 그런 말의 발목을 그대로 날려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증기기관을 단 장갑차였지만 증기기관의 크기와 화력을 제공하기 위한 연료의 탑재를 고려할 때 불가능한 생각으로 판단되어 폐기되었다.
결국 지상전에서 장갑화 된 차량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광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기억 짜내어 내연기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설사 그렇게 정보가 모인다 해도 짧은 기간에 개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구조가 비교적 간단한 증기기관의 개발에 20년 가까이 걸린 것처럼 내연기관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특히 내연기관의 경우는 수반되어야 하는 기술개발들이 함께 병행 되어야하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렵고 부족해도 미리 시작해둔다면 증기기관이나 다른 개발품들처럼 조선이 그 어떤 나라보다 먼저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일련의 기술 개발과 혁신을 위한 장기 개발 계획 회의가 장원에서 태왕인 광해의 주최로 열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광해는 생각지도 못한 개발품의 제의를 받았다.
“뭘 만들자고?”
“연발총입니다. 과거 연노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총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소속이······?”
광해의 물음에 개발 제의를 했던 연구원이 황급히 답했다.
“무기 개발부 소총 개량조입니다.”
재밌고, 놀라웠다. 연발총, 그러니까 기관총을 개발하겠다고 나선 까닭이었다.
하긴 전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는 무기로써 기관총만한 무기도 없다. 그것이 광해의 관심을 확 잡아 끈 이유였다.
“개념 설계는 되었나?”
“예. 여기······.”
태왕이 관심을 보인다는 것에 흥분했던지 연구원이 황급히 도면 하나를 칠판에 펼쳐 걸었다. 먹필로 대충 그려진 도면은 누가 봐도 초기 도면이었다.
아! 먹필이 무엇이냐고?
일종의 만년필 비슷한 것이다. 사실 목표는 볼펜이었지만 그게 은근히 굉장히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이었다.
그로인해 개발된 제품이 먹필이다. 먹물을 펜 안의 먹물통에 넣어 아주 미세한 틈으로 내려 보내 글씨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진 것으로 볼펜과 만년필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했다.
너무 오래 한곳에 머물면 내려온 먹물의 양이 많아져 번짐이 생기고, 먹물을 자주 보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세필 붓에 비해서도 훨씬 가는 글씨를 쓸 수 있었다.
또한 먹통을 분리해 뚜껑을 닿아 두면 소지한 채 외출도 가능해서 어디서라도 그를 쓸 수 있었다. 이것이 먹필의 가장 큰 장점으로 널리 보급된 이유였다.
여하간 그렇게 먹필로 작성된 도면을 가리키며 연구원이 설명했다.
“여기 이 톱니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 이 손잡이와 연결되어 톱니가 회전하면서 총구를 돌리고 마찬가지로 총탄을 보급합니다.”
개틀링 기관포와 판박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한 구조의 다연장 기관총이었다.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겠나?”
광해의 물음에 설명하고 나섰던 연구원이 아니라 다른 이가 나섰다. 연구원이 속한 소총 개량조의 조장이었다.
“그전에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할 기술이 있습니다. 폐하.”
“그게 무언가?”
“금속 탄피이옵니다. 저기 도면에서 보시다시피 총탄이 대량으로 삽탄된 대형 통형 탄창이 탄을 공급하는데 총열에 장탄되기 까지 여러 이음새를 통과하면서 총탄 자체가 압력과 스침을 다수 받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종이탄피가 견디기엔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럼 그것만 해결되면 가능성은 있다는 뜻인가?”
“정확한 것은 시제품이 만들어져야 하겠습니다만······. 예. 탄피 문제가 해결된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소총 개량조장의 답에 광해의 시선이 포탄 개량조장에게로 향했다. 조선군이 사용하는 모든 포탄과 총탄이 개발되는 곳이 바로 포탄 개량조였기 때문이다.
광해의 시선을 받은 포탄 개량조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재 금속 탄피의 개발은 뇌홍부분에서 멈춰있습니다. 금속탄피의 하단 중앙부분에 뇌홍을 위치시키고 격발되도록 만들고 있는데 아직은 불발탄의 확률이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유는?”
“민감도 입니다. 민감도가 너무 높으면 병사들이 소재한 상대에서도 폭발할 우려가 있고, 민감도를 낮추면 공이가 때려도 폭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를 찾아야 하는데 그럴 만큼의 민감도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언제쯤 가능할 것이라 보나?”
“격차를 많이 줄였기 때문에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완성될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포탄 개발조장의 답에 광해가 소총 개량조장을 돌아봤다.
“올해 안에 금속 탄피의 문제는 해결된다니까 시험개발 시작하도록.”
광해의 명에 소총 개발조장의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잡습니다. 폐하.”
그렇게 향후 전장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또 하나의 신무기가 조선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