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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43화 (143/325)

제143화. 무너진 부활의 꿈

앞으로 나선 2111대장은 몽골족 포로들의 집요한 질문에 직면했다.

어디서 살았는지, 어떻게 조선에 오게 되었는지, 조선의 생활은 괜찮은지, 정말로 차별은 없는지, 자신들의 부족까지 받아 줄지.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그것을 2111대장이 순순히 답해줬다. 귀찮을 뿐, 곤란한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의 와중에 질문이 나왔다.

“근데 왜 이름이 유림이오?”

“아! 본래 불렸던 이름은 벨구테이. 차음을 따서 한자음으로 부르면 별리고태(別里古台)인데 부르기 어려워서 유림으로 지었습니다.”

요새 여진인들 사이에서 이름을 차음한 한자음만 따서 짓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조선식으로 뜻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것이 유행이다.

그 이야길 전해 듣고서 지은 이름이 유림이었다. 성도 태왕을 닮고 싶어서 이 씨로 지었다. 그러니까 성명을 다 대면 이유림이었던 것이다.

다만 조선군에 지원할 때 서류를 작성하던 조선 관리가 이름이 뭐냐고 묻기에 ‘유림이요’라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성이 유 씨 이름이 림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호적이 만들어져 관아에 신고 된 후였기 때문에 바로잡기에 늦어버렸다. 그 일로 유림은 안도 유시의 시조가 되어버렸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몽골 포로들이 고개를 끄덕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도 합류하게 되면 이름을 고쳐야 하오?”

“아! 그건 상관없습니다. 차음해서 한자로 부르기도 하고 여기 73병단장님처럼 본래 이름을 그대로 이름을 쓰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유림의 답에 몽골 포로들이 통역하던 몽골출신 조선군 장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이순신은 침묵했다. 그간의 강경한 자세와는 조금 다른 태도였다.

그런 이순신을 추옌이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선 강하게 밀고 뒤에선 부드럽게 감는 다라. 하, 역시 전술가라는 건가.’

추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순신은 묵묵히 몽골 포로들의 질문과 2111대장인 유림의 답이 끝나길 기다렸다.

외몽골의 고비사막 일대에 거주하던 부족 출신인 유림의 존재에 대해, 또 그의 직책에 대해서까지 답을 들은 몽골 장수들과 부족장들의 표정이 묘했다.

그런 이들에게 묵묵히 기다려왔던 이순신이 말했다.

“결정했을 것으로 알겠다. 그럼 수하들에게 돌아가 그 결정을 이야기해라. 따를 자, 따르지 않을 자를 분류하되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 소란을 일으키는 이들은 가차 없이 목을 베어 효수할 것이다.”

그 말을 포로들에게 남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에게 명했다.

“저들을 포로들에게 보내고, 한 시간 후에 분류작업 시작하도록.”

이것도 의외였다. 곧바로 답을 듣고 장수와 부족장들을 분류할 줄 알았던 추옌을 비롯한 연합군 장수들은 무언가에 한방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산처럼 쌓인 보급품을 목격한 것은 부족장들과 고위 장수들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몽골 포로들이 다 목격했다.

심지어 치중대에선 그런 포로들에게 주먹밥을 풍족히 풀었다. 몽골군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포로에게 풍족한 먹을거리라니.

굶겨서 힘을 빼놔도 부족할 상황에서, 아니 자신들이 먹을 것도 부족한 전장에서 포로에게 먹을 걸 준다는 것은 몽골군으로써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대에 자신들과 같은 몽골족 출신들이 있고, 비슷한 성향의 여진족도 상당수 존재했으니 그걸 모를 리 없었음에도 그리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를 포로로 잡힌 몽골 전사들이 모를 리 없었다.

‘풍족함’ 그리고 ‘무차별’

두 가지 기조를 분명하게 느낀 것이다.

그런 포로들에게 장수들과 부족장들이 돌아간다. 가서 말할 것이다. 전향한다, 또는 전향하지 않는다.

반응이 두려울 것이다.

그것은 장수들과 부족장들의 고심을 더 깊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결정이 무엇이 되었든 자존심에 가볍게 입을 놀릴 상황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없는 말로 설득하고, 후한 조건으로 꼬여내는 것보다 장수들과 부족장들에게 더 무겁고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뒤늦게 연합군 장수들이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순신을 바라보는 연합군 장수들의 시선에 경탄이 담겼다.

특히 추옌의 눈빛이 더 그러했다.

포로들의 선택은 너무나 예상 외였다.

10만의 포로가 모조리 전향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많아야 절반 정도를 예상했던 연합군 장수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추옌의 놀라움이 컸다.

후금이 몽골 부족들을 설득할 때의 상황을 부왕의 곁에서 직접 보았던 그로써는 몽골부족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포로로 잡힌 10만의 몽골전사들은 모두가 연합군에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아니 협력만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 거주하는 이들이 되겠노라고 나섰다.

서쪽 멀리 떨어져 있던 오이라트와 타타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두고 이순신이 연합군 중 어디로든 갈 수 있으니 선택하라고 말했을 때 포로들이 선택한 곳은 한 곳 이었다.

조선.

후금의 장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반발은 나오지 않았다. 대충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군의 위용을 동맹군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겪은 이후, 연합군 내 병사들 사이에서 조선 앓이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조선군에 투신 할 수 없는지 공공연히 조선군에 물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포로들이 조선을 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이순신은 태왕이 위임한 전선 사령관의 직책을 이용해 그들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연합군의 인적구성과 병력이 훌쩍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

오란찰포로 물러난 에케 바카투루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할하부를 포함해 사방으로 전사를 더 보내라는 전령을 보냈지만 그 명이 먹힐지 확신 할 수가 없었다.

또 하나, 설사 전사들이 충원되어 온다 할지라도 그들이 도착할 시간동안 어떻게 버틸지도 관건이었다. 그 생각에 골몰하던 에케 바카투루에게 적군이 다가온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에카 바카투루는 오란찰포를 버리고 도주할지 아니면 맞서 싸울지를 결정해야 했다.

잠시의 갈등 끝에 에카 바카투루가 전투를 결심하고 전사들을 소집했다. 후일을 도모하자는 장수들도 있었으나 에카 바카투루는 그 권유를 뿌리쳤다.

몽골에 있어 전투가 어려워 도주하는 것은 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켜야 하는 부족이나 도시를 두고 도망가는 것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만일 에카 바카투루가 그간 자신에게 협력해 왔던 오란찰포를 버리고 도주하면 다시는 그를 믿고 게르를 내어줄 부족은 없을 터였다.

그러니 에카 바카투루는 도주할 수 없었다.

흙집과 게르가 반반 뒤섞인 도시의 코앞으로 나선 에카 바카투루는 점점 다가오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통일된 복색에 이상한 모자를 쓴 군대였다.

에케 바카투루가 그들을 향해 기마대를 몰았다. 저들이 화포를 방열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몽골 기마대를 바라보는 신립은 몽골 지휘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지 알려주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기마대 앞으로! 총 잡고, 칼 뽑아!”

신립의 명에 기마대원들이 일제히 외쳤다.

“총 잡고, 칼 뽑아!”

외치면서 왼손으로 총을 뽑아 들고, 오른 손으로 칼을 빼든 기마대원들을 확인한 신립이 맨 앞으로 나서면서 외쳤다.

“돌격!”

와아아아.

거친 함성과 함께 조선군 기마대가 기동병단의 군열에서 돌출되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란찰포는 기동전단에 의해 점령되었다. 기마총과 칼을 모두 사용하는 조선군 기마대와의 전투에서 에케 바카투루의 몽골군은 악전고투 끝에 완벽하게 패배했다.

기마총을 활용한 장거리 전투와 칼과 철퇴 등 살수 무기를 동원한 근거리 전투에서까지 완벽하게 조선군 기마대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몽골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몽골 제부족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에케 바카투루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마치 죽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굴었다.

하긴 무장은 둘째 치고 병력 수에서도 이길 수 없는 전투임을 직감했을 테니까.

몇 시간 후, 30만으로 세를 불린 연합군이 오란찰포로 진주했다. 연합군이 점령한 내몽골의 첫 도시였다.

*****

북쪽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연합군이 몽골군을 격파하고 유라시아 정벌을 지속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조선은 추가적인 일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구국(琉球國)에 대한 문제가 다뤄졌다.

해외 5도에서 대만도에 도달 할 때 이용되는 항로의 중간에 위치한 유구국은 과거부터 한중일 삼국의 중간 교역지로 각광을 받던 지역답게 홍콩에서 출발해 대만섬을 거쳐 해외 5도로 가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최근 조선 조당에서는 그곳을 장악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해외 5도의 경제개발이 상당부분 진척되면서 조선과 해외 5도간 이동하는 물량의 증가만큼이나 홍콩과 해외 5도를 오가는 물량도 폭증하는 추세였다.

그로인해 홍콩과 해외 5도를 잇는 항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유구국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조와 공조는 물론이고, 항로의 안전을 지켜야 했던 군부에서까지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런 조선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던 것인지, 아니면 돌아가는 국제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인지, 최근 들어 유구국에서 보낸 책봉 사신이 줄기차게 조선을 찾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의 책봉을 받아 속국으로라도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가 그런 유구국으로 사신을 보냈다. 그들이 기대하고 있던 책봉을 허락한다는 사신이 아니었다. 유구국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항복을 권하는 사신이었다.

유구국 조정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 항복하자는 이들과, 조선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으니 거부하고 항전하자는 이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다.

신하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니 국왕을 비롯한 왕실이 손을 들어줄 이들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유구국은 조선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했다.

돌아온 사신으로부터 그것을 보고받은 광해가 곧바로 해병대 총사인 곽재우에게 유구국의 점령을 명령했다.

광해의 명을 받은 곽재우는 곧바로 해병강습함대에 출동을 명령했다.

그 명령을 받은 해병강습함대가 해병 2개 여단과 대량의 보급품을 싣고 포항을 떠나 유구국을 향해 출발했다.

조선의 요구를 거부한 직후, 유구국은 가지고 있는 모든 배를 동원해 만든 함대로 동쪽 해상에 대한 방어임무에 나서있었다.

30여척의 크고 작은 배로 이루어진 유구국의 함대는 적을 맞아 바다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야로 바다를 가르며 날듯이 달려오는 대형 범선들이 들어섰다.

조선 해병강습함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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