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서전(緖戰)
몽골군의 장기는 기마의 기동성과 활의 장거리 투사 능력을 엮어 사용하는 것이다. 거기다 여러 필의 말을 가지고 다니면서 옮겨 타는 까닭에 지구력도 길다.
적이 지칠 때까지 끌고 다니며 활로 원거리에서 괴롭히고, 힘이 빠진 적을 습격하듯 휘몰아치는 것이다.
이것저것 사료(史料)와 후금군의 전투 경험담 등을 토대로 몽골군의 전술을 확인한 이순신은 몇 개의 전술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전술마다 번호를 붙여 각 부대를 훈련시켜두었다.
아무리 보름간 손발을 맞추고, 지휘체계를 통일하느라 애를 썼다지만 21만에 달하는 다국적군의 특성상 조선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동에서 훈련을 하면서 미리 정해진 전술대로 움직이도록 숙달시켰던 것이다. 사전에 정해진 위치, 미리 알려둔 전투방법대로 병력이 움직여지는 것을 원한 것이다.
전장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 같아서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움직여야 했지만 통일성을 위해 기민함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그런 연합군의 특성에 조선군의 기동성과 일사불란함을 묻어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런 이순신의 생각이 바탕이 되어 몽골군을 상대로 회전을 건 연합군의 병력배치는 전방에 장창병, 그 뒤에 조총병을 배치했다.
검병과 도부수는 뒤에 대기시켰고, 좌우로 포병대가 사선으로 배치되었다. 소수의 기마대가 그런 포병대의 옆에서 만일에 대비했다.
한데 연합군 진영에서 조선군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있긴 있었다. 좌우로 빠져 사선으로 배치된 포병대들 속에 조선군 포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군이 이 전투에 동원한 야포는 7기동전단이 보유한 이포 1천5백문이었다. 그 포들이 후금과 명, 남진, 그리고 나고야가 보유한 각종 화포들 5백문과 섞여 배치되어 있었다.
거기다 5백문에 달하는 구포가 조총병 바로 뒤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치되어 있는 포병의 수는 겨우 수는 겨우 2천 남짓에 불과했다. 그들을 제외한 제7기동전단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하나, 후금의 만주팔기와 몽골팔기의 모습도 군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약간 높은 지대에 개설된 지휘부 막사에 서있는 이순신의 표정엔 별다른 표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지휘부 막사 곁에는 급조해 지은 망루가 세워지고 견시수가 올라가 있었다. 아울러 비행대가 이미 하늘로 올라간 열기구와 연결된 밧줄을 지상에 고정한 채 대기 중이었다.
잠시 후, 열기구로부터 지급통이 내려왔다. 그것을 황급히 개봉한 비행대장이 이순신에게 보고했다.
“북쪽에서 일단의 기마대 합류. 깃발들이 많고 호화로운 것이 지휘관급들로 보인답니다. 아울러 수만의 병력 추가 접근 중!”
비행대장의 보고에 이순신 곁에 서 있던 참모가 말했다.
“카라코룸의 지휘부와 병력이 합류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상보다 빠르군.”
이순신의 답에 참모가 말을 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군의 접근을 지켜보던 이들이니 서두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순신의 시선으로 끝없이 펼쳐진 벌판이 보였다. 지금 그 벌판을 온통 새카맣게 뒤덮고 있는 것은 연합군이었다.
제7기동전단과 후금의 만주팔기와 몽골팔기를 빼고도 자그마치 14만의 대병이었다. 거기다 치중대와 함께 후방으로 빠진 3만의 병력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전방에 집단으로 늘어선 장창병들도 까마득히 멀어서 망원경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구별하기 어려웠다. 장창병들 뒤에 서 있는 조총병들이 보였고, 그 뒤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조선군 구포병들의 모습도 보였다.
오늘의 초전에서 가장 기대가 큰 이들이 바로 저 구포병들이다.
아군의 배치 모습을 확인하는 가운데 열기구에서 지급통이 또 내려왔다. 그것을 확인한 비행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적, 기마대 기동 시작! 수는 대략 2만!”
겨우 2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눈앞에서 보는 기마대 2만의 위용은 상상 이상이다. 더구나 저들은 그 병력으로 돌파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몽골 기마대는 상대의 2백보 인근까지 접근해서 화살을 대량으로 퍼붓고, 그들을 요격하러 나온 상대를 피해 도주한다. 물론 그냥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말위에서 달리며 뒤를 돌아 활을 쏜다.
그것이 유명한 파르티안 샷(parthian shot)다. 그것에서 오는 피해를 이기지 못하고 상대가 물러나면 다시 접근하면서 활을 퍼붓는다.
이것을 반복하면서 상대의 피해를 강요하고 체력을 깎아먹는다. 결국 상대가 지치고 군열이 무너지면 비로소 돌진하여 끝장을 본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러 필을 끌고 다니는 말들과 다른 이들은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기마궁술에 있었다.
몽골군은 일단의 부대를 내보내 연합군을 상대로 그 전술을 시행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몽골의 전술을 이순신이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가운데 이번엔 망루의 견시수가 고함을 쳤다.
“거리 4천!”
사전에 측량을 통해 거리를 확인해둔 지표물을 보며 적이 접근한 거리를 확인한 견시수가 외친 것이다.
그것에 이순신이 짧게 명령했다.
“포병 대기.”
이순신의 명을 받은 참모가 손짓하자 이내 신호병들이 깃발을 흔들며 북을 치고, 고동을 불었다.
북소리와 고동소리에 지휘부 쪽을 돌아본 제7기동전단 포병대장인 백규가 외쳤다.
“장탄 산탄포탄. 전포 장전!”
이내 포병지휘부 신호수의 깃발신호를 본 양측의 조선 포병들이 일제히 장탄했다.
이전처럼 포신에 화약을 쏟아 붓고 장전대로 그 화약을 다지고 다시 격목을 넣고 다시 다지고, 탄을 넣고 흙을 채워 또 다지는 따위의 행동은 사라졌다.
후장식인 이포의 뒷부분 포덮개를 열고 장약과 탄이 종이탄피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탄을 넣고, 심지 구멍에 심지꽂이로 심지를 심으면 모든 장탄 행위가 끝난다.
전장식에 비해 거의 4분의 1정도로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다른 나라의 포병들이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순식간에 장탄을 마친 조선군 이포들이 발사 명령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백규가 포병대 지휘부 옆에 세워진 포병망루의 보고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언덕 위 지휘부에 있는 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몽골군은 천천히 완보로 조선군 군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긴 적의 투사무기가 날아오지 않을 거리부터 기마대가 속도를 올려서 말의 힘을 뺄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걸어오던 몽골군의 선두가 한 커다란 나무를 통과하는 것을 확인한 지휘부 망루의 견시수가 외쳤다.
“거리 3천!”
이순신이 망설임 없이 명했다.
“방포.”
이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북소리와 고동소리가 다시 울리고 색깔이 다른 깃발 두개가 휘둘렸다.
지휘부의 깃발 신호와 포병 망루의 거리보고를 동시에 받은 백규가 명령했다.
“전포 방포!”
백규의 명에 포병 깃발수가 적기를 올리고 휘두르자 이내 1천5백문의 조선군 이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꽈과과과광!
천지를 떨어 울리는 포격음이 벌판을 가득 채우고 1천5백발의 산탄포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퇴복좌기가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고 포의 방열지지대가 나머지 충격을 해소해 제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이포의 모습에 또 한 번 다른 나라의 포병들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런 이포의 후면 포덮개를 열고 청소를 위한 막대로 포신을 닦자 곧바로 포탄을 장탄하고, 심지를 심고서는 포장들이 백규를 바라봤다.
“각 포 자유사!”
백규의 명령에 포병 깃발수가 적기를 마구 흔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각 포의 포장들이 장탄과 동시에 별도의 명이 없어도 포를 쏘기 시작했다. 거리 3천에 맞춰둔 이포들이 대량의 포탄을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몽골군도 화포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수없이 치른 전쟁에서 화포를 가진 군대와 전투를 벌인 것도 수없이 많았고.
하지만 결단코 저렇게 많은 화포를 동원한 군대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날아온 포탄이 폭발하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유럽까지 퍼진 폭발탄의 소문이 몽골 고원 깊숙이는 파고들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일부 그 소문을 접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저 소문들이 으레 그렇듯이 과장되게 부풀려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경험해본 화포가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하지만 정작 전장에서 마주한 조선군의 화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에 말들이 놀라 날뛰었다. 완보로 걷는 와중이었으니 다행이지 달리는 중이었으면 대형 사고를 면키 어려웠을 정도로 말들이 많이 놀랐다.
그렇게 놀란 말들을 진정시킨다고 소란을 떨던 몽골군의 군열로 포탄이 날아들었다. 직격당한 이들이 포탄의 운동에너지에 피 떡이 되며 비명을 지르고, 부상을 입은 말들이 구슬프게 울었다.
뭔가가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3천 보 거리에서 통타를 당한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날아온 포탄들이 폭발하면서 군열 사방에서 본격적인 아비규환의 장이 벌어졌다.
포탄이 아래에서 폭발한 탓에 배가 터진 말이 주저앉고, 다리가 날아간 기마병이 비명을 질러댔다. 폭심에서 떨어져 있는 기마대도 폭발과 함께 날아든 쇳조각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선두를 조금 지난 부분에 집중된 포격으로 천 단위의 기마대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몽골군 군열 속으로 조선군 포병대가 사격한 2탄, 3탄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곳곳에서 포탄이 폭발하면서 혼란이 극대화되고 있었다.
결국 몽골군 지휘관이 전진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뒤로 물러나온 병력은 1만도 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동안 절반의 병력이 날아간 것이다.
그 막대한 피해에 몽골군 장수들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투에서 병사들의 전사 이유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활과 같은 장거리 투사무기에 의한 것이다. 대략적인 비율은 꽤나 높아서 7할에 가깝다.
생각 외로 칼과 같은 살수무기에 직격당해 죽는 경보다 장거리 투사무기에 죽어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것은 현대전으로 넘어오면서도 비슷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도 절반에 달하는 이들이 포격에 의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괜히 나폴레옹이 전장의 꽃이 포병이라 말한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 포병의 화력을 제대로 보여준 조선군 포병의 위력에 함께 서 있던 다른 연합군 포병들이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사거리야 워낙 조선의 화포제조 기술이 뛰어나니 그렇다쳐도 자신들이 한발이나 쏘았을까 싶은 시간에 거의 3발을 쏘아대는 포병들의 능력은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마치 기계가 돌아가듯 착착 오차 없이 각자의 임무를 소화해내는 조선군 포병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첫 3발에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급속사격이 가능한 수는 3발. 나머지는 그렇게 쏠 수 없었다.
공냉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포의 경우 포신이 어느 정도 열이 식지 않은 상태에서 장탄할 경우 포강 내부의 열로 인해 포탄이 안에서 폭발하거나 포신이 과도한 열을 견디지 못하고 변형이 발생할 우려도 있었다.
사실 이것은 포병이라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포병만으로 서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이 장창병 뒤에 대기하고 있던 총병들 중 나고야 병단에 소속되어 있던 6천의 조총병을 반으로 나누어 좌우에 배치된 포병의 뒤로 재배치했다.
사전에 연습한 적이 없던 배치에 참모가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총병들 중 나고야 병단의 총병이 가장 훈련이 잘 된 병력입니다. 그런 이들을 빼시면 중군이 얇아져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훈련한 전술도 아니고······. 병사들이 혼란을 겪을까 두렵습니다.”
“조선군 군사고문단에게 훈련받은 이들이니 조선군의 명령에 잘 적응할 걸세. 그리고 중군은 괜찮아. 적은 어차피 포병이 있는 양 날개로 올 테니까.”
“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구포도 대기 중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순신의 말에 참모가 입을 다물자 열기구에서 지급통이 내려왔다. 그것을 비행대장이 풀어 읽고는 급히 외쳤다.
“적군 기마대 재 출병. 수는 대략 3만!”
지휘부 막사에 다시금 긴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