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결정을 독촉하다
기억속의 태왕과의 만남을 회상한 하야시라잔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물음에 답했다.
“조선의 태왕은 생기기는 부드럽고, 온화해보였으나 말에 힘이 있고, 대신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부드러운 이를 대신들이 두려워 할리가 없으니······. 패왕이란 뜻인가?”
“그가 벌인 수많은 전쟁을 보아도 그리 판단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패왕이 자신의 뜻을 거부한 속국을 그냥 둘리가 없겠지.”
“요구대로라면 큰 전쟁을 준비 중일 터, 후방의 안전을 먼저 도모하는 것이 상리이오니 자칫 조선군이 우리 동일본으로 먼저 향할까 두려울 다름입니다.”
사신의 신분으로 조선을 다녀오며 하야시라잔이 목격했던 조선군의 모습은 자신들, 동일본의 군대와 완전히 다른 신세계의 군대였다.
그런 경험이 처음엔 척화파에 속했던 하야시라잔을 누구보다 조선을 두려워하는 주화파의 거두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하야시라잔의 답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조선과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면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이 내려진 듯하자 휘하 다이묘들도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도 조선과의 전쟁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오사카 성에 쏟아지던 그 어마어마한 포격모습이 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까닭이다.
“하면 병사들을 얼마나 준비해야 합니까?”
“조선이 요구한 수는 2만이다.”
“다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기왕 응하는 것 꼬투리를 잡히지 말자. 다만 우리가 얻어낼 것은 최대한 얻어내야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에 휘하 다이묘들 중 한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해상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배가 아니라면 적어도 화란과의 교역이라도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도쿄만 협정에 의거하여 동일본은 여전히 바다로 나가지 못했다. 그에 따라 동일본은 작은 어선조차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것을 조선이 철저하게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막부의 명을 어긴 어부들의 어선일지라도 발견되면 해안을 수시로 순찰하는 조선군 함선이 가차 없이 포격하여 격침시켜버렸던 것이다.
당연히 외국의 상선도 동일본엔 기항 할 수 없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그로인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최근엔 조선에 적극적으로 사대를 취하고 있는 나고야의 약진이 시작되면서 경제적 격차가 추가로 벌어지고 있었다.
과거에도 일본 주요 지역이었던 주부지역을 차지하고 앉은 나고야 왕국이었기에 동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간토와 도호쿠 지역에 비해 경제력이 좋았다.
문제는 그 격차가 자꾸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것을 만회할 방법을 외부와의 교류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바람을 성사시키기 위해 조선의 사신과 함께 하야시라잔이 다시금 조선을 향해 동일본을 떠났다.
비슷한 일이 나고야 왕국에서도 벌어졌다. 대신 그들은 별다른 조건 없이 조선이 요구한 2만의 병력보다 부족한 1만 만을 내놓았다. 그것도 정예 상비군인 나고야 병단들이 아니라 농민들을 급조해 만든 오합지졸들이었다.
그런 병력을 확인한 조선사신이 크게 화를 내었다.
감히 태왕 폐하를 기만하려 하였으니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길길이 뛰는 조선 사신을 나고야 국왕과 대신들이 간신히 말렸다.
결국 나고야 왕국은 그렇게 준비한 1만의 농민군에 정예군인 나고야 제2병단을 얹어주어야 했다.
앞으로는 숙적인 동일본과 마주하고, 뒤로는 강성한 조선의 관서도와 접경을 이룬 나고야 왕국의 입장으로서는 조선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고야 왕국의 결정을 들고 조선의 사신이 한성으로 돌아갔다.
*****
후금의 누르하치는 조선 사신이 가져온 태왕의 칙서를 받고 몽골을 상대로 병력을 내라는 것엔 흔쾌히 동의했다.
당장 그 일로 몽골의 압력을 후금 홀로 감당하지 않아도 되게 되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요구한 5만의 병력 수에는 난색을 표했다. 거듭된 전쟁으로 그만한 병력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누르하치가 거느리고 있던 병력은 2만에 불과했다. 임시 왕도로 삼은 합비에 별도로 1만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들까지 동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예 후금을 지킬 병력이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사신은 요지부동이었다. 2만의 병력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결국 누르하치가 부족장들을 소집해 조선의 요구에 대해 논의했다.
후금에 복속된 여진족들과 몽골 부족들은 여전히 부족단위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부족장들에게 내리는 벼슬을 구실로 조금씩 중앙집권화를 꾀하고는 있었지만 그 속도가 느렸다.
외몽골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내정에 전력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누르하치는 자신들의 점령지에 거주하는 한족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 위안일 지경이었다.
부족장들은 여전히 여진과 몽골 전사들을 추가로 내놓을 수 없다고 버텼다. 워낙 많은 수의 전사들을 내보냈다가 상당수가 죽음을 맞아 돌아오지 못하게 된 탓에 남자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누르하치도 그 말에는 달리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부족들이 내놓은 전사를 죽음으로 인도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누르하치는 후금 치하의 한족들을 모아 부족한 병력을 충당하기로 했다.
무장한 한족 군대가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들을 후금의 품안에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조선의 손에 쥐어줘 몽골로 보낼 것이란 점이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린 연유였다.
후금이 병력을 모은다고 분주하던 때 명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특히 남창의 조정을 향해 군사행동에 나섰던 방해군의 혼란이 극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겨우 2만의 병력으로 5만의 방해군을 효율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남창 조정의 군대로 인해 고심이 많았던 방해군 지휘부에선 내부 격론이 벌어졌다.
조선의 요구를 무시하자는 측과 그랬다간 조선군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으니 일단은 그 요구를 수용하자는 측이 맞섰던 것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부딪치는 양측의 의견 사이에서 방해군 총병 마림이 물었다.
“거부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겠나?”
“우리가 장악하고 있는 광동과 광서, 그리고 복건에서 징병을 하면 10만 정도는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을 합해 대비한다면 아무리 조선이라 해도 쉽게 우리를 넘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격장군 조계정의 말에 참장 정벽이 반론을 펼쳤다.
“수가 많다하나 조선군의 화포를 이길 방도가 없습니다. 거의 세배에 달했던 우리가 홍콩에 진주했던 조선군에 내내 휘둘렸던 것을 벌써 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그것은······.”
“그만. 우리끼리 싸우자고 모인 게 아니다.”
마림의 말에 조계정이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자 좌중의 장수들이 모두 총병을 바라봤다. 그가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했기 때문이다.
“조선에 반하는 일은 어렵다. 조선과 결전을 하고자 해도 우리의 화포가 저들의 화포에 비해 거리가 짧고, 파괴력도 약해서 대규모의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남창이 어찌 나올 줄 알고. 조선과는 결전을 피하는 것이 옳다.”
“하면 그들의 요구를 따르실 생각이십니까?”
“따를 수밖에 없겠지. 대신, 조건을 걸 생각이다.”
“조건을 거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우리가 남창을 향한 진군을 멈추고 병력을 내는 대신 우리의 건국을 인정해 달라 할 참이다.”
‘건국’이란 단어가 나왔기 때문인지 장수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장 정벽이 벌떡 일어서 마림을 향해 깊게 군례를 올렸다.
“참장 정벽. 국왕 전하께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장수들이 저마다 일어서 마림을 향해 허리를 굽혀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 장수들의 모습에 마림이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
한성에 동일본의 사신과 방해군의 사신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접변사로서 예조의 관리들과 함께 그들을 맞은 이항복의 보고에 광해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조건이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로다.”
“내치오리까?”
이항복의 물음에 잠시 생각해보던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질서를 이룰 때이지 부수고 망가트려 다시 짤 때가 아니다.”
“하오시면······?”
“동일본은 해금령을 풀어 달라 하였다고?”
“예. 사신으로 온 임라산이란 자의 말에 의하면 동일본의 경제 상황이 많이 힘든 모양이옵니다. 조선을 비롯해 외국과의 교역을 재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사옵니다.”
“해금령이라······.”
그 말을 되뇌며 골똘히 생각해보던 광해가 말을 이었다.
“해금령은 풀어줄 수 없다. 대신 조선이나 외국의 상선이 동일본의 항구에 기항하는 것은 허락할 수 있다. 개항 할 수 있는 항구의 수는 2개. 위치를 선정하여 제가를 청하면 살펴보고 허락 하겠다고 답하라.”
“명을 받잡나이다.”
허리를 숙이는 이항복에게 광해가 물었다.
“방해군 놈들은 나라를 세우겠다고?”
“예. 폐하. 광동과 광서, 그리고 복건을 통할하여 남진(南秦)국을 세우겠다고 청하였사옵니다.”
진이란 국명은 최초로 중국에 통일 국가를 세웠던 진시황의 나라 이름이었다. 남부의 작은 지방을 차지한 방해군이 쓸 정도의 이름은 아니었다는 것에 광해가 쓰게 웃었다.
하긴 진을 쓰든 상고사의 은을 쓰든 나라이름에 상관할 이유는 없었다. 광해는 명나라가 두개로 쪼개지든 열개로 쪼개지든 조선의 패권만 보장된다면 그들의 내부 분란에 개입할 생각이 여전히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고른 후,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이 없다면, 허락 하겠노라고 전하라.”
“명을 받잡나이다. 폐하.”
이항복이 광해의 명을 받아 사신들이 머물고 있는 이화관으로 향했다.
다음 날, 동일본의 사신과 방해군의 사신은 태왕의 칙서를 받아 자국으로 돌아갔다. 방해군의 사신은 조만간 입조하여 책봉을 받으라는 태왕의 명도 함께 가지고 귀환했다.
방해군의 청을 조선이 허락하면서 당장 명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졌다. 그것을 위해 조선의 사신이 명나라 조정이 자리하고 있는 남창으로 향했다.
남창의 명나라 조정의 입장에서 태왕의 칙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것이었다.
“저들과 나라를 나누어 가지란 말씀이시오?”
당황한 석성의 물음에 조선의 사신이 답했다.
“폐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조선은 명의 내부 분란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 방해군이 북진을 더해 남창의 조정을 멸하려는 것을 그간 견제하여 말려왔으나 더 이상은 그리할 생각이 없다. 그대들이 짐의 명을 좇지 않는 것은 자유이나 결코 남창을 지켜주기 위해 조선이 군병을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신의 입을 통해 태왕의 뜻을 전해들은 석성과 명나라 조정의 대신들은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마디로 태왕의 의지를 좇지 않으면 방해군이 총력을 기울여 남창을 치는 것을 조선이 묵과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조정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울분과 두려움, 그리고 서운함이 마구 뒤엉킨 그 침묵에 조선의 사신이 말을 더했다.
“결정,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