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몽골 할하부
탕!
다시금 총성이 울리고 달리던 이들 중 또 한명이 쓰러졌지만 나머지 둘은 그대로 마랍지타를 향해 달렸다.
그런 그들의 손에 어느새 뽑아든 칼이 들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마랍지타의 목을 확실히 따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알아차렸던지 총을 쏘는 누군가도 분주해졌다.
탕!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사격 간 시간에도 정확히 달려가던 몽골 전사를 맞췄다. 풀썩 쓰러진 몽골 전사는 이전과 다르게 다리를 맞아 죽지는 않았다.
그가 절룩이며 다시 일어서는 동안 마지막 한명이 마랍지타가 쓰러진 곳에 막 도착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이가 칼을 높이 들어 올려 막 내리꽂으려던 순간.
탕!
머리가 터지며 젖혀진 몽골 전사가 풀썩 쓰러졌다.
그것을 보면서도 다리를 절며 마랍지타가 쓰러져 있는 지역으로 다가서는 몽골 전사의 눈엔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런 그의 시야로 한 사구 언덕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보였다. 자신들을 사냥한 바로 그자일 터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몽골 전사가 등 뒤에 걸려있던 활을 황급히 내렸다.
하지만 거리가······.
도저히 활이 닿지 않을 거리였다. 그것에 이를 악무는 몽골 전사의 귀로 마지막 총성이 울려왔다.
탕!
퍽.
귀에 들리는 섬뜩한 음향을 끝으로 몽골 전사의 감각과 사고가 정지했다.
털썩.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마지막 몽골 전사가 힘없이 사막에 쓰러지자 사구에서 일어선 그림자가 빠르게 달려왔다.
하얀 천으로 두 눈을 제외한 얼굴의 거의 모든 부분을 가린 이는 최근에 조선의 장원에서 나형 소총에 사거리 증대를 위해 화약량을 늘인 저격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나2형 저격총을 들고 있었다.
그가 쓰러진 마랍지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품에서 피리를 꺼내 길게 불었다. 자신처럼 주변을 정찰하고 있을 다른 요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마랍지타를 옮기자면 자신 혼자로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
눈을 뜬 마랍지타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하얀 천으로 된 천정이었다. 천천히 시야를 옮기자 야전침상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안도했다. 저런 야전침상을 사용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조선군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군대에서 때가 잘 타는 하얀 막사라면, 조선군 의무대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막사의 문으로 쓰이는 천이 위로 들쳐지더니 의무병이 들어섰다.
“어! 깼습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의무병이 ‘깨어났어요’라고 외치며 밖으로 나갔다. 의무병의 고함이 들려 온지 얼마 후,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 중엔 2111첩보정찰대장은 물론이고, 2전단 병력 중 가장 서북쪽에 해당하는 적봉(赤峰, 츠펑)에 주둔 중인 21병단장까지 끼어있었다.
까마득히 높은 병단장의 출현에 놀란 마랍지타가 일어나 앉으려 애를 쓰자 병단장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으니 누워 있도록.”
비로소 안정을 찾은 마랍지타에게 병단장이 물었다.
“몸은 괜찮나?”
“예. 괜찮······.”
답을 하다말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말을 중단한 마랍지타의 모습에 병단장이 곁에 서 있던 의무관을 돌아봤다.
“물을 줘도 되는 거면 좀 주지.”
그 말에 의무관이 황급히 주변의 물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마랍지타에게 먹였다. 누운 채 의무관이 기울여주는 물컵에서 물을 받아 마신 마랍지타가 밭은기침을 했다.
“쿨럭쿨럭쿨럭.”
그 모습에 놀라는 병단장에게 의무관이 재빨리 답했다.
“갑자기 물을 마셔서 그렇습니다. 금방 괜찮아 질것입니다.”
그 말대로 마랍지타의 기침은 금세 멈췄다. 그런 그에게 병단장이 물었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추격 때문에 사막으로 들어섰던 모양인데, 고생했다.”
“아닙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거야 내가 아니라 귀관의 동료들에게 해야겠지. 고비사막에 정찰을 나갔던 2111대 12오가 귀관을 구해서 데려왔으니까.”
병단장의 말에서 비로소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와있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된 마랍지타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그런 그에게 병단장이 물었다.
“확인된 정보가 있는가? 사막까지 추격이 붙었으니 고급 정보일 거라고 자네 대장이 장담하던데······. 맞나?”
병단장의 물음에 슬쩍 그 곁에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2111대장을 일별한 마랍지타가 답했다.
“예. 카라코룸이 다시 열렸습니다.”
마랍지타의 답에 병단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랍지타가 거론한 카라코룸이 몽골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람을 애써 가라앉히며 병단장이 물었다.
“카라코룸을 다시 연 자는 누군가?”
“에케 바카투루라는 자로 그가 할하부(喀爾喀, 객이객)를 장악하여 몽골을 통합하고 있었습니다.”
“통합정도는?”
“몽골 고원 전역은 통합이 완료 된 듯합니다. 거기다 몽골인들 말로는 과거 오고타이 한국이 세워졌던 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부족들도 합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알았다. 고생했다. 원하는 것이 있나? 목숨을 걸고 중요한 정보를 가져온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줄 수 있다.”
병단장의 물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의식을 잃기 전에 했던 다짐이었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마랍지타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알았다. 쉬도록.”
그 말을 남긴 병단장이 의무 막사를 나가자 그를 따라왔던 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뒤에 남은 의무관이 홀가분한 표정이 된 마랍지타에게 말했다.
“며칠 쉬면 괜찮아 질 걸세. 탈수 증상 외에는 특별한 부상은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마랍지타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의무관도 나가자 넓은 의무막사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자 피식 웃음이 감돌았다.
막상 전역할 방법이 생겼을 때 덜컥 겁을 먹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하아······. 전역은 무슨······.”
씁쓸한 마랍지타의 음성이 의무막사를 감돌았다.
*****
2전단에서 올라온 보고를 들고 찾아온 권률과 침궁에서 마주한 광해의 표정이 무거웠다.
“그 말은 몽골이 살아났다는 뜻인가?”
“적어도 외몽골이라 불리는 몽골 고원의 부족들은 통합이 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흐음······.”
광해의 입에서 절로 이 앓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실제역사에서는 내몽골 지역의 몽골 부족들과의 폭넓은 동맹관계를 형성한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그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결국 내몽골 전역을 복속시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조선이 내몽골 일부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기를 느낀 내몽골 지역의 몽골족들의 대부분이 이미 누르하치의 후금에 복속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변화가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몰랐지만 외몽골지역에서 괄목할만한 지도자가 나온 모양이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던 광해의 머릿속으로 오이라트, 한자음으로는 위랍특(衛拉特)이라 불렸던 이들이 떠올랐다.
한때는 몽골의 한 부류였던 그들이 지금시기쯤 강성해지기 시작해서 결국 준가르(準噶爾, 준갈이)라는 강력한 왕국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서쪽에 있는데 외몽골이 통합된다면······. 서로 부딪쳐 상잔할 수도 있었다.
실제역사에서도 그들이 최종적으로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은 외몽골을 차지하고 있던 할하부를 격파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되면 손안대고 코프는 격이니 더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과거 몽골의 전성기 시절처럼 하나로 합쳐진다면······. 그렇게 되면 예상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도 있었다.
상황을 판단하기에 정보가 부족했다.
“추가적인 정보의 확보가 가능한가?”
“외몽골에 대한 정찰을 대규모로 확대하겠습니다.”
“좋아. 결정은 그렇게 정보가 더 모이면 내리지. 참! 외몽골의 정보를 취합할 때 서쪽에 있는 위랍특의 정보를 중히 다루도록 지시하게. 그들과 다시 일어섰다는 몽골의 관계에 따라 상황이 바뀔 것 같으니까.”
“명심하여 봉행하겠나이다. 폐하.”
복명하는 권률의 답을 듣는 광해의 표정은 굳게 굳어져 있었다.
*****
몸이 회복되어 마랍지타가 본대로 복귀한 지 4일 째 되던 날, 작전에 투입된 일부 병력을 제외한 제2111대 요원들 모두가 소집되었다.
그 자리에서 2111대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외몽골에 대한 정찰을 대규모로 실시하라는 육군 총사부 특명이 떨어졌다.”
대장의 말에 모여 있던 요원들 여기저기서 신음 같은 음성들이 새어나왔다. 가장 멀고 잠입하기 힘든 정찰지가 바로 외몽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요원들의 반응을 모른 척 넘어간 대장이 자리에 앉아있는 마랍지타를 바라봤다.
“마랍지타 준사.”
“예. 준사, 마랍지타.”
곧바로 복명한 마랍지타에게 대장이 말했다.
“이미 경험해 보았으니 동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장의 물음에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군대가 어디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던가.
“알겠습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마랍지타가 동료들을 바라보며 돌아섰다.
“외몽골은 잘 알겠지만 더럽게 멀고, 최근 들어서는 잠입도 쉽지 않습니다. 뭐, 우리가 가는 곳들 중 쉬운 곳이 어디 있겠나 싶긴 합니다만.”
마랍지타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동료들에게 마랍지타의 말이 이어졌다.
“가장 문제는 정보 취득 중 발각 되었을 때 탈출 경로입니다. 다수의 기마대를 운용하는 외몽골의 특성상 벌판으로의 도주는 죽음의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유일한 가능성을 가진 탈출로는······, 고비사막입니다.”
설명하는 마랍지타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동료들의 표정이 설명하는 마랍지타만큼이나 굳어져 있었다.
그런 동료들에게 설명하는 마랍지타의 음성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 5개 오. 25명의 2111첩보정찰대 요원들이 외몽골을 향해 주둔지를 떠났다. 그 속에는 길잡이를 자처한 마랍지타가 포함되어 있었다.
*****
몽골의 일로 후금이 위기에 처하고 그로 인해 조선이 분주히 움직일 때 명은 내부의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홍콩에 진주한 조선군과 대치하고 있던 해방군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황실, 아니 이젠 왕실로 내려앉은 명국 국왕의 명을 거부하고 심수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군의 장수들은 과거 황실과 조정의 전령을 죽여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것을 추궁당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로 인해 조선과의 화의로 전쟁이 끝나고 명나라 황제가 조선으로부터 남명왕의 책봉을 받은 이후에도 방해군 장수들은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종래엔 방해군 내부에서 거병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렇게 언제까지 끌고 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해군 내부에서 거병이 논의되고 있다는 첩보를 받은 명나라 왕실과 조정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조선과의 화의 이후, 징병이 조금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병력을 2만 남짓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10만을 훌쩍 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방해군에 비하자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명나라 왕실과 조정은 방해군 장수들을 회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 사절을 심수로 내려 보냈다.
문제는 그렇게 국왕의 교서를 주어 내려 보낸 이의 직책이었다. 관리들의 비리를 캐고 치죄를 담당하는 도찰원의 좌도어사였던 것이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그를 보내 사면을 약조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방문을 받아야 했던 방해군 장수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