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몽골의 준동(蠢動)
철산의 증기연구소가 확대 개편되어 장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증기연구소에선 크기를 줄인 다양한 증기기관을 개발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 증기 기관을 적용했던 쇄석장비들조차 새로 개량된 증기 기관으로 바뀌었을 정도로 상당 수준의 개량이 진행되었다.
또한 그 개량만큼이나 성능이 향상된 증기기관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다.
대부분이 수차식이었던 방직기도 증기기관을 활용한 방직기가 개발된 이후로는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증기기관을 사용한 방직기가 가동되면서 생산량이 대규모로 확대되었다.
최근엔 누에 농가에서 생산하는 생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로인해 양잠 산업이 대규모 확장되었다.
조선의 영토에서 추운 지방이 늘어나면서 솜의 수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목화도 여러 곳에서 대량 재배가 시작되었다.
그 모든 생산품을 가공하여 옷감과 솜을 만들어내는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광해는 그것에 기반을 두어서 한 가지 신문물을 장원의 기술자들과 개발해 내었다.
거의 5년이 걸린 이 개발품은 바로 ‘재봉틀’이었다.
재봉틀이라는 존재만 알지 그 원리는 잘 몰랐던 탓에 광해의 조언이 있었음에도 만들어 내는 것에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만들어지면서 조선에선 그에 따른 또 다른 발전이 이루어졌다.
옷을 공장화한 시설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광해는 대규모의 옷감 및 솜 산업과 연계하여 곧바로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조선 의류사’라는 회사를 왕실 직영으로 만들고, 장원에서 개발한 재봉틀 5백대를 들여 기성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첫 생산품은 군복이었다.
그간은 여러 가내 수공업 수준의 생산시설을 엮어 만들어내던 군복을 대량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규격화되고, 통일된 군복의 첫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
항상 부족했던 군장류의 보급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개량한복으로 통칭되던 의복 개량사업에도 광해가 매진하기 시작했다.
현대 시대처럼 화려한 옷들은 아닐지라도 활동하기 편하고, 입고 벗기 수월한 의복들이 여러 형태로 개발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량한복을 조선 의류사의 공장을 통해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질 좋고, 활동하기 편한 값싼 의복을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활한 보급을 위해 광해가 왕실 상단에 피복전(被服廛)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옷감이나 솜은 팔지 않고 오로지 완성된 옷만을 팔았다. 주 취급품목은 조선 의류사에서 만들어낸 기성복이었지만 각 가정, 또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의복 제작사가 만들어낸 옷도 팔았다.
하지만 생소한 복식 때문인지 기성복의 소비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광해가 그렇게 생산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중전도 그런 광해를 따라 조선 의류사가 생산한 기성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왕실이 하면 무조건 따라 한다는 남간도가 대대적으로 그 옷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왕실이 입는 옷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소비가 대량으로 늘었다. 종래엔 생산된 옷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것에 힘을 받은 광해가 여러 도시에 의류 생산 공장을 지어 기성복의 보급이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했다.
노동집약산업의 하나인 의류 산업이 시작되면서 대량의 고용이 이어졌다.
광해는 그렇게 소비되는 노동력을 대도시가 아니라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이루길 원했다.
따라서 조선 의류사가 짓는 공장은 모두가 중소 도시에 위치하고 있었다.
왕실 기업인 조선 의류사의 성공에 도처에서 의류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광해가 지원했다.
원활한 자재의 수급과 판로의 개척을 지원한 것이다.
아울러 근대 시대 노동착취의 대표산업이었던 의류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산업감독청으로 하여금 관리에 만전을 기하게 하였다.
광해는 자신의 조선에서 누군가의 노력을 훔쳐 돈을 버는 일을 방치할 생각이 없었다.
증기 기관이 하루가 다르게 개량되고 다양화하고 있었지만 아직 증기 기관차에 활용될 만큼 출력이 큰 기관은 개발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출력이 작은 기관은 몇 개나 개발되어 실험을 이어가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개발된 기관은 기관차를 겨우 사람이 빠르게 걷는 정도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 정도일 뿐이었다.
거기다 객차를 붙이면 움직이긴 할지 걱정될 정도로 출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대출력을 내면서도 기관차로 운영이 가능할 정도의 크기로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이 최대 난점이었다.
그렇게 광해와 증기연구소가 증기기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던 6월. 조선 의류사에서 만든 기성복이 첫 수출길에 올랐다.
무역을 위해 조선에 왔던 한 유럽 상인이 기성복을 보고는 수입해 팔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왔기 때문에 성사된 일이었다.
따라서 선적된 배도 조선 무역선단의 배가 아니라 상인이 타고 온 네덜란드의 상선이었다.
그렇게 팔려가는 기성복을 보면서 과연 저게 유럽에서 먹힐까 싶었다.
과거 개량한복이 유럽에 전파된 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건 일부 상류층이 멀리 동방의 왕실이 입는 옷이란 소문에 호기심 삼아 소량 유통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광해의 걱정을 담은 네덜란드의 상선이 부산포를 떠나던 날, 누르하치의 후금군이 반년 가까이 끌던 타타르 일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외의 일이었다.
후금군의 전투력과 병력을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가능성이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긴급 소집된 육군 총사부 회의에 광해가 참석했다.
“어찌된 일인가?”
광해의 물음에 권률이 답했다.
“오란찰포(乌兰察布) 일대에 거주하던 타타르 일족과의 전투에서 누르하치의 군대를 몽골군이 기습했습니다.”
“몽골군? 몽골에 군대라 불릴만한 병력을 모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단 말인가?”
“부족단위로 흩어진 이들의 공격이 아니라 통합되어 군대규모로 확대된 이들의 공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권률의 답에 광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몽골 고원의 몽골 부족들이 함께 뭉쳤단 말인가?”
“예. 현재까지 보고된 내용으로만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동원된 군세는?”
“후금의 정보로는 5만입니다.”
누르하치가 이끌고 나갔던 후금군의 규모가 3만이었으니 5만의 몽골군이 동원된 데다 기습까지 당했다면 패배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정도의 군세를 모을 정도로 몽골 부족이 통합되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워낙 복잡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몽골족이었기 때문에 통합이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청에 복속당할 때까지도 서로를 믿지 못해 몽골 부족들은 흩어져 대항하다 각개 격파를 당했다.
그런 몽골 부족들이 뭉쳤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아마도 조선의 약진과 후금의 민족 대이동으로 몽골에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광해는 그 변화가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했다. 특히 후금군을 격파한 몽골군이 어디로 향하는가 하는 점이 관심이었다.
“직후 몽골군의 이동 방향은?”
“후금의 영토로 남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서간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보내 정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계속 오란찰포 일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뭘 기다리는 거지? 지켰으니 되었다는 건가? 아니면 당면한 적을 물리친 이상 여러 부족의 전사들이 합쳐져 있기가 어려운 걸까?”
광해의 중얼거림에 권률이 조심스럽게 답하고 나섰다.
“아직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는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그 말에 광해가 물었다.
“아군의 대응책은?”
“현재 지난달에 폐하께오서 명령하신 군 재배치가 진행 중입니다. 그로인해 대대적인 훈련과 개편이 함께 진행되는 터라 서간도엔 3개 단 규모의 기동부대만 주둔중입니다.”
“증강은?”
“재편중인 타격 전단 소속 기동병단 하나를 서간도로 급파했습니다.”
“상대는 5만이라면서, 유사시 대응이 되겠는가?”
“추가 증파를 위해 부대 선정이 진행 중입니다만 워낙 부대들을 잘게 쪼개서 재편 중인지라...”
인적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부대를 편성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인종으로 구성될 경우 자칫 그 부대가 반란군이 될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런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과정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휘관들에 대한 대규모 인사이동이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점령지의 경우 원활한 정착을 위해 토착 세력의 장을 장수들로 삼은 탓에 군벌의 탄생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이번 지휘관 이동으로 과거 자신의 영지가 있던 구주도에서 제1 기동 병단을 지휘하던 가토 기요마사가 관서도로 배치되는 부대의 병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휘하는 병력은 물론이고, 휘하 장수들의 대부분도 바뀐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전 조선군 지휘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언제 마무리 되지?”
“다음 달이면 재편이 완료되어 재배치가 실행됩니다. 그때까지만 아무 일 없이 버텨준다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군 전체가 재배치 중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재배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나?”
“예. 계획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장 개량은?”
“가총은 전량 회수되어 전략물자 창고로 보내졌고, 전군에 대한 나총의 보급이 완료되었습니다.”
“총은 그렇다 치고, 포는?”
“일포의 수량이 워낙 많아서······. 아직 이포의 보급은 8할 정도입니다. 재배치 전까지는 완전 교체를 완수할 예정입니다.”
“구포와 수탄은 충분히 보급 된 것인가?”
광해의 물음에 권률이 답했다.
“구포의 경우엔 백인대라 불리는 대 단위까지 배치를 완료했습니다. 수탄은 병사 개인당 3개씩 소지가 가능한 수량을 1차적으로 보급했고, 예비 물량을 생산 중입니다.”
“철모는?”
“폐하께오서 지시하신 철모의 개발이 완료되긴 했는데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개량을 진행 중입니다.”
군대의 재편과 함께 무장 개량은 물론이고, 장구류의 대대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로 철모를 보급하기로 했다.
증기 기관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압연 과정이 폭넓게 활용되기 시작한 제철 과정으로 인해 상당히 얇은 철판의 생산이 가능해 졌고, 공작기계에서 프레스도 만들어져서 철제품을 찍어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그로인해 철모만이 아니라 현재 금속탄피의 적용 여부도 실험하고 있었다.
탄피를 생산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게 되면 광해는 총탄은 물론이고 포탄도 금속탄피를 갖춘 탄으로 교체할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화약무기의 고질적인 문제인 습기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실행하기 까지는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방탄복은?”
“폐하께오서 말씀해주신 대로 조끼 형태로 만드는 것은 성공했사온데 아직 유연성부분에서 기준에 부합되지 못해서 개량이 진행 중입니다.”
말이 방탄복이지 현대시대의 케플러 섬유를 활용한 본격적인 방탄복은 아니다.
솜과 비단, 그리고 면을 겹쳐 만든 조끼 안에 얇은 철판을 넣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심장을 비롯한 장기가 있는 상체를 보호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아울러 안에 얇다지만 철판이 있는 이상 화살이나 창칼에 대한 일부 방호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정면과 등판에 관한 것이고 옆구리의 경우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솜과 비단, 그리고 면 같은 천 위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확실한 방호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적지 않을 터였다.
조만간 화약무기가 전장을 지배할 것이다. 이미 유럽은 시작이 되었고, 동양에서도 조선이 대량의 화약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따라오는 것은 순식간 일 터였다.
그런 전장 상황에서 병사들을 보호하는 것은 철모와 방탄조끼 같은 군장류였다. 아직은 이르다 싶기는 했지만 빠른 것이 늦은 것 보다는 나을 것이란 생각에 철모와 방탄조끼의 개발을 시작했던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군화까지 개량하고 싶었지만 아직 고무를 손에 넣지 못했다.
유럽 상인들을 통해 신세계,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무나무를 들여와 말라카 인근의 말레이 지역에 심어 재배를 시험하고 있었지만 일이년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중이었다.
광해는 대만도에 속한 해남에 고무나무를 옮겨 심어 대량재배지로 삼을 생각이었다. 실제역사에서도 해남에서 대량의 고무를 생산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렇게 재배된 고무나무에서 고무가 생산되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전통적인 방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몽골군은 물론이고, 추가적인 후금군의 움직임도 주시하도록.”
“예.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두고 있겠습니다.”
“아울러 재편 작업을 필두로 한 모든 것들을 서둘러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예. 폐하.”
권률의 답을 듣는 광해의 표정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