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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27화 (127/325)

제127화. 억새밭 전투

조선군에 실전 배치된 비행대 2개 중 하나는 여전히 압록강변에 머물고 있는 조선군 본대에 있었다.

그들이 오늘도 해가 뜨자마자 비행에 나섰다. 한데 그렇게 비행에 나서자마자 지급통이 내려왔다.

<명군 기마대 철수 시작>

그 한 줄을 확인한 광해가 덫 줄 당기기의 일환으로 조선군 기마대 5천을 추가로 도강시켰다.

사전에 남하한 정동군 소속 보군을 괴멸시키기 위해 기동하고 있을 조선군 기마대와 후금군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지금 철수를 시작한 명군 기마대를 차단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잠시 후, 하늘에 올라간 비행대의 열기구에서 또 하나의 지급통이 내려왔다.

<아군 기마대 군진 이탈 확인! 아군 군진에 포로 다수 발견. 너무 멀어서 소속 확인 안 됨. 그 이상은 거리상 정찰 불가.>

지급통의 내용상 무언가 사달이 벌어져 조선군과 후금군이 충돌했다는 것을 직감한 광해가 명령을 번복했다.

“1만의 기마대를 추가로 내보내라. 차단이 아니라 격멸이다. 철군 중인 명군 기마대를 속히 추격하여 격멸하라!”

광해의 명에 기마대를 수습하느라 군진 전체가 분주했다. 그러길 얼마, 1만의 기마대가 먼저 출발한 5천 기마대의 뒤를 따라 압록강을 건넜다.

이로써 조선군이 압록강으로 동원한 9개 병단에 소속된 기마대 4만5천 전체가 압록강을 건넌 셈이었다.

압록강을 건너 달려가는 기마대를 바라보던 광해가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무언가 사달이 벌어진 것을 안 이상 추후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회의 가 벌어질 때 뒤늦게 조필의 급보가 도착했다.

매수해두었던 환관으로부터 소식을 받은 조필이 마카오에서 홍콩을 거쳐 긴급으로 보낸 서신이 이제야 도착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후금이 조선을 배신했다는 걸 확인한 장수들이 이 기회에 아예 후금을 밀어머리자고 주장했다.

그런 장수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몽골은 복잡한 세력구도를 가지고 있다. 건주와 해서 여진도 마찬가지지. 그들 내부의 분란과 소요를 감당할 해방구가 필요하다. 난 그걸 후금이 맡길 원한다.”

“우리가 점령해서 힘으로 찍어 누르면 분란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한 장수의 말에 광해가 미소를 그렸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찍어 누르기 위한 힘을 계속 주어야 할 거다. 군력이 그만큼 동원되어야 한다는 의미지. 더구나 그 압력을 받는 지역은 온전히 조선의 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 말은 품안에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걸 감수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 후금의 저 망종을 그냥 두고 보실 요량이십니까?”

“일단 약속은 저들이 깨었으니 그럴 수는 없겠지.”

“하오시면······?”

기대어린 장수들의 표정에 쓰게 웃으며 광해가 말했다.

“후금에 약속했던 땅 중에서 바다 건너 조선과 마주보는 땅은 모조리 가져 온다.”

과거 백제가 산동 반도를 비롯해 일대를 지배했다는 가설이 있다. 광해는 그것을 실현해 낼 생각이었다.

광해의 결정에 장수들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그런 장수들에게 광해의 명령이 연이어 쏟아지고, 그 명을 수행하기 위해 장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압록강을 건넌 조선군 기마대가 합류했다. 그로써 1만5천으로 병력을 불린 조선군 기마대가 앞서 가고 있는 명군 기마대를 쫓아 달렸다.

유정은 요란하게 일어나는 먼지구름으로 조선군의 추적이 붙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추적이 따라 붙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빨랐다. 조선군의 눈을 속인다고 강변 주둔지에 허수아비들을 잔뜩 세워두고 왔는데 헛수고였던 모양이었다.

유정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조선군을 뒤에 달고 남하를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결전을 걸어 요격을 시도할 것인지.

한참의 숙고 끝에 유정은 요격을 결심했다.

어차피 보군과 합류하려면 요하를 건너야 하는데 조선 기마대의 추적이 붙은 상황에선 요하를 건널 때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도강을 위해 강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공격을 받느니 벌판에서 회전을 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정의 명을 받은 기마대가 곧바로 반전해서 거꾸로 치고 올라갔다.

척후대의 보고를 통해 명군이 반전하여 거꾸로 올라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조선군 기마대는 전투대형으로 벌여서며 무장을 꺼내들었다.

왼손엔 기마총, 오른손엔 살수무기를 든 조선군 기마대가 말을 달렸다.

양측의 충돌은 기마총의 요란한 사격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타다다다탕!

우르르 무너지는 선두로 인해 명군의 기동이 저해를 받으며 속도가 줄었다.

그런 명군 기마대 안으로 조선군 기마대가 파고들었다.

속도를 잃은 목표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은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목표를 맞춰 떨어트리는 것보다 쉬웠다.

연속적으로 총소리가 울리고 명군 기마대가 줄줄이 말에서 떨어졌다.

피해를 악착같이 감수하며 달려들어도 조선군 기마대의 검술이나 창술은 명군과 차이가 나지 않았다.

몇 번 받아치고 틈이 벌어지면 곧바로 총탄이 날아들었다.

여기저기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모두가 명군 기마대뿐이었다.

30분.

1만과 1만5천이 붙어 1만이 전멸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전투대형으로 넓게 벌려선 조선군의 전격전에 명군이 휘말리면서 온 벌판으로 전선이 확장된 탓이었다.

살아남아 도주한 명군도 없었고, 포로로 잡히지도 않았다. 워낙 전투가 짧고, 전격적으로 치러진 탓에 도주나 항복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진행된 전투의 와중에 정동군 총병, 유정도 전사했다.

순식간에 명군 기마대를 짓밟은 조선군이 주인을 잃은 말들을 수습한다고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

명나라 보군 장수가 그렇게 기다리던 유정의 기마대는 이제 합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북쪽에서 유정의 정동군 기마대가 격파된 시간. 투삼구의 1대와 니탕개의 3대가 명나라 보군 근처에 대기 중이던 호정이의 2대와 합류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불안한 대기를 이어가던 명군 주둔지로 다시 밤이 찾아왔다.

명군이 군영을 차린 곳은 벌판의 한복판이었다. 주둔지로 1백보 정도는 뻥 뚫린 시야가 확보되는 데다, 그 외로도 억새가 무성한 벌판이라 유사시 화공으로 적을 공격하기에도 좋았다.

그런 주둔지 전체에 명군이 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경계를 강화했다.

명군 주둔지를 확인한 투삼구가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억새가 무성하다지만 말을 타고 진격하면 억새 외올 올라오기 때문에 곧바로 드러난다. 먼에 하나 그때 화공을 펼치면 우린 꼼짝없이 불에 타 죽을 가능성이 높고.”

“저 자식들이 저기서 꼼짝도 안하는 이유가 있었구먼.”

니탕개의 투덜거림에 투삼구가 말을 이었다.

“그래. 주변을 살피기 좋고, 화공을 펼치기도 좋다. 더구나 작은 냇가 까지 끼고 있어 식수 걱정도 없으니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고 봐야지.”

“그래서 어쩔 생각인데?”

“말에 붙어서 몸을 낮추고 진격하면 어떨까 싶긴 한데······.”

투삼구의 말에 호정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우리말이 키가 작긴 하지만 그 위에 올라가면 바짝 엎드려도 등짝이 억새 위로 올라올 거다. 눈에 띌 거란 말이지. 거기다 말들이 뛰는 진동도 그렇고.”

“진동은 걸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등짝이 보이는 건 각오해야지.”

두 사람의 대화에 니탕개가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걷자.”

“지금 뭘 들었어. 진동 때문에 걷는다니까.”

“아니. 아예 말에서 내려서 걷자고. 지난밤에 애들 데리고 침묵 보행 해봤는데 생각 외로 조용하더라. 고삐를 바짝 잡으면 말들이 투레질도 잘 안하고 조용히 움직일 수 있다.”

당시 조선군 군영 안에 들어있던 후금군 기마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침묵 보행을 펼쳐야 했던 것은 2대도 다르지 않았기에 호정이도 호응했다.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침묵 보행으로 갈대밭을 지나자. 놈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억새가 흔들리는 건?”

“침묵 보행정도의 속도와 은밀성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정도로 밖에 안보일 거다. 거기다 해가 뜨기 전에 움직이면, 더 완벽할 거고.”

니탕개의 답에 투삼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좋다. 침묵보행으로 접근해서 갈대밭 끝에서 기마 후 곧바로 돌격이다.”

“전격전. 좋지!”

“쏘면서 돌입 후, 모조리 베고 부순다. 속도와 충격이 중요하다. 일단 개활지로 나가면 다시 갈대 안으로는 들어서지 않는다. 자칫 적의 화공에 걸려 들 수 있다.”

“애들한테 주의를 충분히 줄게.”

“좋아. 애들 한데 확실히 박아두고. 동트기 직전에 출발하자.”

“후!”

짧은 구령을 남기고 장수들이 흩어졌다.

긴장된 밤이 지나고 해가 뜨자 명군 병사들이 나른한 아침을 맞았다.

날이 밝은 이상 야습을 당할 걱정이 사라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명군 주둔지의 긴장이 확연하게 내려갔다.

그 속에서 일부는 밥을 짓고, 또 얼마는 인근 냇가에서 물을 길러 세수를 하고, 다른 이들은 걸터앉아 칼이나 갑주를 손질하고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경계병들의 눈엔 접근하는 그 어떤 병력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온 들판을 채운 억새만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들리고, 억새밭 끝에서 일제히 무언가가 억새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무장한 병사임을 알아차린 명군 경계병의 눈으로 억새를 박차고 달려 나오기 시작하는 기마대의 모습이 잡혔다.

“저, 적이다!”

비로소 경계병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온 명나라 군영이 혼란으로 휩싸였다.

그런 명나라 군영으로 조선군 기마대가 들이닥쳤다.

전투준비는커녕 지휘관들이 갑주를 걸치기도 전이었다.

탕타다탕.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군영으로 파고든 기마대원들이 여기저기서 총과 칼로 혼란 속에 빠진 명나라 보군들을 쓰러트렸다.

개중엔 달려온 말에 부딪쳐 나가떨어지는 병사들도 속출했다.

3만의 기마대가 숙영지 전체를 부수며 달렸다. 6만의 명군 보군이 그 사나운 기세에 휘말렸다.

일정한 대형도, 지휘도 받지 못한 채 명나라 보군이 처참히 짓밟혔다.

일부에서 척가군이 황급히 원앙진을 구성해 대항해 왔다.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원앙진이었지만 조선군 기마대에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타다다탕.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선두에서 적의 투사무기를 막아줘야 하는 방패병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나무로 만든 방패로는 기마총을 막지 못했다. 그로인해 원앙진이 그 알몸을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이들에게 다시금 조선군의 기마총 사격이 쏟아졌다.

장창대가 기마대를 상대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렇게 원앙진이 무너지면서 그 유명한 척가군의 저항도 순식간에 무력화 되었다.

조선군 기마대가 거침없이 움직였고, 그때마다 명군 병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철저하게 조선군 기마대는 다시 억새밭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30분. 좁은 명군 주둔지를 온통 말로 짓밟고,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른 끝에 명군은 항복했다.

항복할 때까지 살아남은 명군의 숫자는 겨우 6천 남짓이었다. 자그마치 5만4천의 장정이 만주 벌판에 싸늘하게 식은 몸을 뉘인 것이다.

수많은 시신과 전리품을 정리하는 투삼구의 조선군 기마대에 광해의 명을 품은 전령이 도착했다.

전령이 전한 태왕의 명을 가지고 투삼구가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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