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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26화 (126/325)

제126화. 요하 기마전

도도히 흐르는 요하 앞쪽에 군영을 차리고 소식이 오길 기다리던 누르하치는 낭패한 모습의 후타이가 돌아오면서 상황을 파악했다.

3만 중 살아 돌아온 병사의 수가 겨우 수십이었다. 단 한차례의 전투로 자신이 가진 절반의 병력을 날려먹은 것이다.

이곳이 만주였다면 추가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겠지만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적지와 다름없는 명나라 땅 한복판이었다.

“속히 전령을 만주로 보내 추가 병력을 소집하고, 우린 곧바로 합비로 돌아가 합류한다.”

누르하치의 명에 병사들이 숙영지를 걷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이 막 이동 준비를 갖췄을 때 척후대가 조선군의 접근을 알려왔다.

사위가 고요한 야밤엔 말이 뛰는 진동이 생각 외로 먼 거리까지 전달된다.

혹시나 조선군 주둔지에 들어선 후금군이 알아차릴까 걱정되어서 제법 긴 거리를 하마한 병사들이 말고삐를 잡고 걸은 후에야 말을 달릴 수 있었던 3대가 이제야 도착했던 것이다.

이동 준비를 갖추던 후금군이 곧바로 전투 준비로 전환했다.

조선과 후금으로 나뉘었다지만 양쪽 모두 말위에서 태어나 말위에서 죽는다는 여진의 기마술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런 부대와 부딪쳐 등을 보이고 도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르하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금군이 전투태세를 갖췄다는 것을 확인한 조선군 3대도 곧바로 전투대형으로 벌여 섰다.

밤을 새워 움직였으니 피곤 할만도 하지만 조선군 3대의 병사들은 전투 직전의 긴장으로 눈빛이 살아있었다.

그런 수하들에게 니탕개가 말했다.

“정면 대결은 하지 않는다. 우린 차단조지 격멸조가 아니니까. 치고 빠지길 반복해서 힘을 빼고,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데 집중한다.”

“후!”

병사들의 힘찬 구령을 들으며 니탕개가 멀리 모여 있는 후금군을 바라봤다.

후금 쪽은 후금대로 선공을 할 생각이 없었다. 조선군을 상대하는 군대는 언제나 화력이 강한 조선군을 상대로 돌진하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엔 기다리기로 했다. 조선군이 먼저 달려들기를.

그렇다보니 양쪽이 말에 올라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참지 못한 후금군 지휘관들이 누르하치에게 권했다.

“칸. 조선군의 수가 우리보다 적고, 매번 애를 먹이던 화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밀어버리시지요.”

“그러시죠. 이러다 말이 지치면 철수하는 것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수하 장수들의 말에 누르하치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좋아. 회전을 건다. 속도로 승부를 볼 테니까. 모두 각오를 다져두도록.”

“예. 칸.”

수하 장수들의 답에 누르하치가 명령했다.

“전군. 완보.”

누르하치의 명에 후금군 2만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드디어 후금군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니탕개의 3대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온다. 대비해.”

처저적.

조선군 기마대원들이 장전된 기마총을 꺼내 왼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칼이나 창, 철퇴 등 자신이 애용하는 살수무기를 꺼내 오른손에 들었다,

적과 근접전을 벌일 경우를 대비해 기마대는 모두 왼손 사격을 훈련받는다.

오른 손으로 사격할 때와 왼손으로 사격할 때의 차이가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훈련된 기마대는 왼손으로 쏘고, 오른 손으로 칼을 휘두르는 접전에 능했다.

고삐는 칼을 잡은 오른 손에 쥐기도 하고, 때론 아예 잡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함께 먹고 자는 말은 기마대원들의 뜻에 충실히 따라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런 조선군 기마대가 기다리는 가운데 후금군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니탕개가 말했다.

“거리는 3백에서 4백보를 유지한다. 절대로 그 이하로 거리를 좁혀주지 마라.

후금군 안에는 몽골출신들도 많다. 그들은 달리면서 활을 쏘는 것에 능했다. 그러니 활이 닿을 수 있는 2백보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니탕개의 주의에 조선군 기마대원들이 다시금 구령을 붙였다.

“후!”

“기동 방향은 서쪽에서 남쪽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놈들을 끌어당긴다. 만에 하나 놈들이 그대로 북쪽으로 달릴 경우엔 뒤쫓으면서 사격해서 제거한다.”

“후!”

병사들의 구령을 들으며 접근하는 후금군을 바라보던 니탕개의 시선에 드디어 달리기 시작하는 후금군의 모습이 보였다.

“자, 우리도 천천히 물러선다.”

니탕개의 말에 조선군 3대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달려오는 후금군을 조선군이 피하는 형색이 벌어졌다.

종래엔 양측이 쫓고 쫓기는 형태로 요하 벌판을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런 양측의 거리는 3백보.

거리를 확인한 니탕개가 허리를 돌려 기마총을 쏘는 것을 시작으로 조선군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조준이 쉽지 않은 달리는 말위, 더구나 허리를 돌려 뒤로 사격하는 것임에도,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는 후금군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었다.

조준 사격이었다기 보다는 마구 날아오는 총탄에 운 없게 맞아 죽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높았다.

하긴 2만의 기마대가 뭉쳐서 달려오고 있었으니 안 맞는 게 더 희한할 지경이었다.

천천히 서쪽으로 휘어지며 달리는 조선군을 따라 후금군도 방향을 돌렸다.

북쪽으로 향하지 않고 자신들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한 니탕개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차단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움직이며 뒤를 향해 총을 쏘던 니탕개의 시선에 따라오는 후금군 뒤쪽에서 또 다른 먼지구름을 발견했다.

서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던 때라 후금군과 사선을 이룬 덕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마총과 칼을 말 옆구리에 매인 총갑과 검갑에 꽂아 넣은 니탕개가 망원경을 꺼내 그 먼지구름을 살폈다.

“깃발이······. 삼족오! 아군이다.”

검은 바탕에 붉은 원, 그 안에 검은 세발 까마귀가 그려진 조선 육군의 깃발을 확인한 니탕개의 입가로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다.

“아군이 뒤에 따라온다. 속도를 높여 계속해서 좌측으로 선회해서 아군과 합류한다.”

“후!”

병사들의 구령을 들으며 니탕개가 전력을 다해 달렸다.

투삼구와 대부분의 병력이 떠나간 조선군 주둔지엔 후금군 포로와 그 포로를 감시할 조선군 기마대 1천만 남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하늘에 떠있는 비행대의 열기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르래를 활용한 2중 밧줄에 매달린 보급바구니를 통해 연료로 사용할 코크스와 점심 식사용 주먹밥을 전달받은 비행대원들은 거의 만 하루를 하늘에 떠있는 셈이었다.

“뜨거운 국물 한 그릇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국물? 야 난, 따듯한 물만 마셔도 좋겠다.”

망원경을 눈에 댄 채 주먹밥을 먹던 경계병들의 대화가 중단되었다.

한 경계병이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어! 3대가 회전한다.”

동료의 말에 다른 방향을 정찰하던 경계병의 망원경이 회전했다.

“정말이네. 후방에서 접근하는 1대와 합류할 생각인 모양인데.”

“근데 아무래도 1대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회전을 다하기 전에 전장에 도착하겠는데.”

“그러게 아무래도 3대의 회전이 완료되기 전에 도착할 거 같다.”

“1대가 총과 칼을 꺼내 들었다.”

“그러네. 어! 근데 깃발이······. 깃발이 앞으로 숙여졌어. 전속돌파! 그냥 돌입할 생각이야!”

경계병들의 외침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운영병이 끼어들어 예비 망원경을 가져다 눈에 붙였다.

그런 운영병의 눈엔 3대의 뒤를 쫓느라 정신없던 후금군의 옆구리를 그대로 파고드는 1대의 모습이 보였다.

돌입 전에 무작위로 쏜 총에 후금군 기마대 일부가 우르르 무너진 틈으로 1대가 그냥 파고들었다.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쿵’하는 충격음이 들리는 것 만 같았다.

난데없이 옆구리를 물어뜯긴 후금군의 군진이 흐트러지면서 속도를 상실했다.

비로소 별도의 조선군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금군이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애를 썼지만 너무 늦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말발굽 소리에 미처 또 다른 조선군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 대가는 뼈아팠다.

거기다 반전한 3대마저 후금군을 몰아치기 시작하면서 수적 우위마저 상실한 후금군이 대규모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마총과 살수무기를 동시에 쓰는 조선군의 전투방식에 후금군이 휘말렸다.

다가서면 창칼로 맞서고, 떨어지면 총으로 쏘는 조선군의 전투방식은 상당한 파괴력을 보였다.

리볼버 탄창 안에 든 8발을 다 쏠 때까지는 장탄이 필요 없는 기마총의 효과를 조선군이 톡톡히 보았다.

더구나 후금군의 수는 조선군보다 많지 않았다. 아무리 달리면서 쏘아서 빗맞는 총탄이 많다고 해도 조선군 병사 개개인이 1발씩만 후금군을 맞혀도 상대를 전멸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피해를 감당하지 못한 후금군이 뒤로 빠졌다.

특히 누르하치를 보호하는 친위대가 빠른 속도로 전장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도주했다.

그런 누르하치를 보호하려는지 일단의 후금군 기마대가 뒤에 남아 끝까지 분전했다.

그들을 전멸시킨 조선군에게 투삼구의 명령이 떨어졌다.

“정지! 정지해서 군열을 가다듬어라. 우린 아직 상대해야할 명군이 남아있다.”

투삼구의 외침이 효과를 보았는지 도주하는 적을 따라 달리던 기마들이 정지해서 돌아왔다.

추후 진행된 전장 정리에서 확인한 전과는 놀라웠다.

사살되거나 조선군의 칼에 맞아 죽은 후금군 기마대의 수가 1만5천. 싸우기를 포기하고 두손을 든 포로가 3천. 살아 도주에 성공한 후금군의 수는 겨우 2천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전사한 조선군의 수는 채 2백을 넘지 않았다.

완전한 난전으로 접어들기 이전에 적을 사살할 수 있었던 기마총이 톡톡히 효과를 본 덕이었다.

“움직이면서 총기 정비하고 장전 마쳐놔. 2대와 합류한다. 가자.”

니탕개의 외침에 조선군 기마대가 크게 구령을 붙였다.

“후!”

*****

명군은 불안했다.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총소리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군 주둔지와 요하 사이에 군진을 세웠던 탓에 어제 밤에도, 또 오늘 낮에도 양쪽에서 모두 총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이렇게 대량의 사격을 가능케 하는 군대는 조선군이 유일했다.

그것이 군진을 세운 채 기다리고 있던 명군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정말 후금군이 우릴 돕겠다고 했단 말인가?”

불안한 정동군 보군 장수의 물음에 남창에서 파견 나온 금군 장수가 답했다.

“예. 장군. 폐하와 약조까지 맺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조라······. 여진 놈들의 약조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이번엔 믿어도 좋을 듯합니다. 이 작전이 성공해야 저들도 얻는 것이 생기니까요.”

“저들이 점령한 땅을 주기로 했다는 것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금군 장수의 답에 정동군 장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걸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땅을 치고 원통해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지금 당장은 간악한 조선 놈들을 쳐부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금군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동군 장수가 북쪽을 바라봤다.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이럴 때 총병의 기마대라도 내려와 주면 좋겠는데.”

“언제 합류하시기로 하신 겁니까?”

“합류는 요하를 건너서 하기로 했지. 본래대로 진군했다면 오늘 오후쯤엔 우리가 요하에 도착했을 테니까.”

“그럼 총병께서도 회군을 시작하였겠군요.”

“시기상으로 보면 아마도······. 그러니 합류하자면 적어도 하루에서 이틀은 걸릴 거란 소리니까.”

다시 말해 총병인 유정의 기마대 1만은 오늘은 합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정동군 장수는 자꾸 북쪽으로 가는 시선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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