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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21화 (121/325)

제121화. 산해관(山海關)이 깨어지다

명나라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장원이라 불리는 조선 신문물개발원의 무기개발부에서 태왕의 특명으로 한 가지 무기를 개발해냈다.

비격진천뢰의 변종으로 납작한 사각형으로 눌러 만든 비격진천뢰를 반달모양으로 휘어 만든 것이다.

안에는 비격진천뢰의 산탄형처럼 다량의 쇠구슬이 내장되어 있었고, 폭발은 외부로 연결되어 나온 심지를 발화시켜 이루어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현대시대로 말하자면 크레모아(Claymore)다. 조선은 이것에 비격진천뢰 지향형이란 명칭을 붙였는데, 병사들 사이에선 줄여서 ‘지향뢰’라 불렸다.

이 신무기는 명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대량 생산되어 해병대에 보급되었다.

*****

압록강이라는 천혜의 방어기재가 존재하는 북부와 달리 홍콩은 개할지를 통한 돌격이 먹힐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우측에 흐르는 성문하가 걸림돌이긴 했지만 그곳을 포기한다 해도 상당히 넓은 지역이 벌판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림은 병력 투사에 걸림돌이 없다고 판단했다.

조선군 진영을 치기 위해서는 다소 좁아지는 길목을 통과해야 하긴 했지만 그 지역은 조선군 화포가 닿지 않는 거리여서 큰 문제는 없었다.

따라서 마림은 대규모 기마대를 투입한 돌격으로 조선군의 단단한 저지선을 뚫어내고 뒤어어 돌입한 보군으로 전과를 확대할 요량이었다.

그게 성공하면 중군과 후군까지 모조리 투입해서 조선군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돌파 작전을 가능케 할 기마대도 자신의 휘하에 있었다.

자신이 직접 지휘해 온 금군 3만 중 1만이 기마대였기 때문이다.

북부의 여진과 몽골에 대항해 키운 기마대였기에 전력도 탄탄했고, 무장과 사기도 높았다.

마림은 그들을 선봉에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돌격을 명령했다.

커다란 함성과 함께 1만의 기마대가 선봉에 선 명군이 일제히 돌진을 감행했다.

전군(前軍)으로 구성된 5만의 대병이 그렇게 조선군을 향해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곽재우는 무심한 표정이었다.

“준비는 되었나?”

곽재우의 물음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해병대 포병 군관이 고개를 숙였다.

“예, 사령. 제대로 설치해 놓았습니다.”

“처음 쓰는 것이다. 실수가 있어서는 곤란해.”

“걱정 마십시오.”

“발화는?”

“인근에 발화병들이 매복해 있습니다.”

1백 개 단위로 묶인 발화 심지를 연결하여 도처에 매복한 발화병들이 신호를 받으면 심지에 불을 붙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포병 군관의 답에 돌진해 오는 명군과의 거리를 대충 가늠한 곽재우가 명했다.

“시작해.”

“예. 사령!”

복명한 포병 군관이 신호병에게 명령하자 깃발이 오르고, 고동과 북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콰과과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멀리서 돌진해 오던 명군 선두가 우르르 무너졌다.

아직 2천보도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야포의 사격도 이루어지기 전이었음에도 선두에서 달리던 명군 기마대가 넝마처럼 찢겨 나뒹굴었다.

이것을 위해 곽재우는 3개 여단의 해병대에 보급된 3천개의 지향뢰를 모조리 사용했다.

폭이 좁아지는 길목에 말발굽(U) 형태로 매설된 지향뢰의 일제 폭발에 휘말린 마림의 기마대 1만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날아 가버렸다.

기마대의 뒤를 따라 돌진하던 명군의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춰버렸다. 상상이상의 참경에 놀라 굳어버린 것이다.

지휘관인 마림조차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으니 일반 병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명군은 그대로 군대를 퇴각시켜 20리나 물러났다.

단 한번에 1만의 기마대를 전멸시키는 조선군의 화력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

상황을 지켜보던 누르하치는 진짜로 조선과 명이 충돌하고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이번 일이 자신을 향해 양국이 벌인 간계가 아님을 인정했다.

그러고 나자 슬그머니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요동에 배치되어있던 모든 명군이 조선군과 대치하여 전투 중이었다.

뿐인가, 조선군의 상륙으로 대규모의 전란이 명나라 남부에서도 벌어져 거의 모든 명군이 남부로 몰려있다는 첩보도 연이어 도착하고 있었다.

한참을 숙고한 누르하치가 휘하의 장수들과 족장들을 모았다.

“명나라가 조선과의 전쟁으로 풍전등화다. 기름진 저들의 땅을 빼앗기에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누르하치의 말에 한 족장이 걱정을 담아 말했다.

“명은 요동에 대군을 집결 시켜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하하면 그들이 우리의 뒤를 공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명은 움직일 수 없다. 대치하고 있는 조선군이 그들을 놓아 둘리 없기 때문이다.”

“조선과 명이 합의를 해 전쟁을 끝내면 어찌 합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합의는 쉽고 빠르지 않을 것이다.”

“어찌해서 그렇습니까?”

의아해하는 족장의 물음에 누르하치가 답했다.

“조선과 명이 압록강에서만 부딪쳤다면 모르겠으나 명나라 남부에서까지 대군을 동원해 서로가 치고받는 상황이니 양측은 섣불리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합의를 이룬다 해도 저들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터. 우린 그 시간을 이용해 명의 기름진 땅을 차지한다.”

누르하치의 말에 여진부족은 물론이고 과거 명을 지배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는 몽골 족장들의 눈이 빛났다.

조상들이 이루었던 영광을 자신들이 다시금 이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몽골 부족 중 한 곳의 족장이 물었다.

“어디까지 내려갈 생각이십니까?”

그 물음에 누르하치가 엉성하게 그려진 지도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말이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누르하치의 호기로운 답에 족장들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8월, 물러가는 더위의 뒷덜미를 잡고 6만의 여진군이 명의 영토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실제 역사보다 십년 이상 빠른 전개였다.

다수의 척후대를 깔아놓았던 조선은 그런 누르하치의 움직임을 재빨리 파악했다.

보고를 받은 광해가 지급령을 내려 압록강변의 조선군과 홍콩 일대에 주둔 중인 조선군으로 하여금 명군을 자극해서,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압록강변의 경우엔 자제하던 자세를 버리고 일단의 병력을 역도강 시켜 명군의 배후를 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했다.

물론 그런 일련의 움직임이 대공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에 광해와 조선군 지휘부가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군과 명군이 대치한 지역을 크게 우회한 누르하치의 군대가 산해관을 덮쳤다.

“항복을 권유하고 거부하면 곧바로 포를 쏘고 공성 시작해.”

누르하치의 명령에 휘하 장수들과 부족장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누르하치의 군대는 과거 명나라의 지원으로 다량이 화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지원한 화포로 명나라의 관문인 산해관이 공격받기 시작했다.

연신 화포를 동원해 포격한 까닭에 산해관의 성문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이후 5백 남짓한 수비병이 사력을 다해 막았지만 노도처럼 밀어닥치는 누르하치의 여진군에 곧바로 짓밟혀버렸다.

산해관을 지난 누르하치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북경을 향해 진군을 명령했다.

성문이 깨어지기 직전에 산해관을 떠난 전령의 급보에 황궁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산해관이 깨어졌다면 북경은 지척입니다. 저들이 모두 여진의 기마대라니 들이닥치는 것은 순간일 것입니다.”

황궁의 경비를 위해 남겨진 금군을 지휘하는 친군지휘사의 말에 조정 대신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런 대신들 사이에서 병부상서를 맡고 있던 석성이 물었다.

“방어는 가능하겠는가?”

“제게 남은 병력은 겨우 3천입니다. 황궁의 경비라면 모를까, 북경의 방어라면 불가능합니다.”

평시라면 3만에 달하는 금군이 황궁인 자금성과 북경을 철통같이 지켰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방해군에 포함되어 홍콩으로 내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로인한 절망적인 친군지휘사의 답에 석성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하면 어찌 하면 되겠는가?”

“서둘러 피신 하셔야 합니다. 그조차도 망설일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석성을 비롯한 명나라 조정의 대신들은 파천을 결정하고 만력제를 포함한 황실 가족을 마차에 실은 채 북경을 탈출했다.

그것도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야밤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자칫 그들과 함께 백성들이 피난할 경우 걸음이 지체될까 걱정한 까닭이었다.

3천의 금군과 조정 대신들의 가족만이 그렇게 북경을 탈출하는 황실의 뒤를 따랐다.

날이 밝자 북경 백성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병사 하나 없이 빈 몸으로 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란 백성들이 부랴부랴 피난길에 나선다고 짐을 꾸리느라 난리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밤을 새워 달려온 누르하치의 군대가 북경성문 밖에 도달해 있었다.

북경성 어디에도 깃발과 기치가 없는 것을 확인한 누르하치는 곧바로 기마대를 북경성으로 투입해 점령을 지시했다.

곧바로 황제와 그 일행이 도주하면서 열어둔 성문을 통해 누르하치의 기마대가 북경성 안으로 진입했다.

막 짐을 꾸려 집밖으로 나서던 북경성의 백성들은 그렇게 들이닥친 여진군과 맞닥트렸다.

노략질이 몸에 밴 누르하치의 여진군 병사들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있던 북경 백성들을 보고선 어찌 나올지 뻔한 일이었다.

곧바로 피가 뿌려지고, 칼을 휘두르는 여진군을 피해 백성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보고를 받은 누르하치가 황궁을 제외한 북경에 대한 약탈을 허락했다.

암암리에 벌어지던 약탈이 북경성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온 성안에 피가 낭자하고, 비명으로 가득했다.

친위부대와 함께 자금성에 들어선 누르하치에게 수하 장수가 보고했다.

“황제가 도주한 모양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입니다.”

“빠르군.”

“아무래도 산해관이 깨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던 모양입니다.”

“아쉽군. 손쉽게 명을 무너트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어쩔 수 없겠지. 추적은?”

“후타이가 1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병사들에게 오늘밤 안으로 약탈을 끝내라고 전해라. 내일은 곧바로 우리도 뒤를 따라 움직인다.”

“예.”

복명한 수하 장수가 나가자 누르하치가 비어있는 황좌에 앉았다.

그곳에 앉아 내려다보는 세상이 제법 괜찮았는지 누르하치의 입가로 만족함이 가득한 미소가 깃들었다.

그날 밤. 수하 장수들과 부족장들을 모아 누르하치가 후금의 건국을 공표하고, 스스로 칸의 자리에 올랐다.

실제 역사보다 13년이나 빠른 일이었다. 강성해진 조선이라는 변수의 등장이 촉발한 변화였다.

그렇게 칸의 자리에 오른 누르하치에게 장수들과 부족장들이 충성을 맹세했다.

다음 날. 누르하치의 군대, 아니 이제 후금의 군대라 불리게 되는 기마대가 피와 시신들로 가득한 북경성을 떠나 남진을 다시 시작했다.

남경으로 파천한 명 조정은 그런 누르하치의 군대를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조선군과의 대치로 인해 방이정동군, 흔히 정동군이라 부르는 북부의 군세는 압록강변에 매였고, 방해군은 홍콩에 발이 묶였다.

그렇게 양쪽에 보내놓은 군세를 합하면 물경 30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그 막대한 군대를 보유하고서도 명은 고속으로 남진하는 누르하치의 후금군을 막을 병력이 없었다.

명나라 조정에선 멀어진 압록강 보다 홍콩에 내려가 있는 방해군을 불러올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방해군 총병인 마림은 그것에 호응할 수 없었다.

연락선을 통해 광해의 지급령을 받은 홍콩의 조선군이 공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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