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후사(後嗣)
밤새 갑작스런 고열을 일으킨 광해로 인해 궐내가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아침까지도 고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운신이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확대 문무백관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다는 결정이 떨어졌다.
궐내에서 어의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왕좌가 비어있는 대전에 모인 문무백관들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태왕은 아직 후사를 보지 못했다.
태왕과 중전의 금슬은 좋았지만 어쩐 일인지 회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왕의 춘추가 스물여덟이었다.
조선의 의술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병으로 죽는 이들이 수두룩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태왕에게 후사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그 동안은 길게 이어진 전쟁과 북방영토의 확장으로 정신들이 없어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문제가 불현듯 수면위로 솟아오른 순간이었다.
아직 조선은 안정기에 접어들지 못했다.
본토의 9도는 여전히 개혁과 개발이 천지개벽할 수준으로 진행 중이었고, 해외 5도는 그런 9도를 무서운 기세로 따라오고 있었다.
특히 남간도를 비롯한 북방 점령지의 사람들은 조선의 태왕이 아니라 신인이라 불리는 광해를 신봉하고 있었다.
해외 5도 사람들도 태왕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이 깊었다. 그들 특유의 정복자에 대한 경외감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여전히 유학적 관점이 남아있던 조정 신료들을 중심으로 서둘러 후궁을 들일 것을 주청하자고 제의했다.
조선에서 광해라는 존재가 갖은 중요도를 알고 있던 다른 대소신료들이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곧바로 저희들끼리 후궁으로 마땅한 조건을 따져 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왕이 병석에 누워있는 가운데 후궁의 일이 본격적으로 조당에서 논의되는 웃긴 상황이 벌어졌다.
광해의 병은 다행히 심한 감기몸살이었다.
하긴 이 시대엔 그것만으로도 죽어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가볍다 말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외과적 수술을 포함한 조선의 의술이 많은 부분에서 발전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당장 페니실린도 아직 실현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푸른곰팡이에서 찾아냈다는 기본 상식만 전달할 수 있었던 광해로써는 그 이상의 정보를 전달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망원경에서 나아가 초보적인 현미경까지 개발된 상황이었지만 아직 그 이상의 진척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긴 약학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 학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건강관리는 필연적이었다. 광해도 그것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었지만 불현듯 찾아온 감기 몸살은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병은 사흘 만에 차도를 보였다.
부었던 목도 가라앉고, 운신이 힘들 정도로 심했던 몸살기도 사라졌다.
열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이전처럼 고열은 아니었다.
문무백관들은 여전히 한성에 남아있었다. 귀환해도 좋다는 태왕의 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회의를 다시 열어야 했지만 광해는 서둘지 않았다.
약도 없는 시절에 괜히 감기를 옮겨 조선의 고위 관리들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실수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대신들의 알현 요청도 거부되었다.
이레.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어의의 판단을 받고서야 광해가 그때까지도 한성에 머물고 있던 이들을 불러 모아 확대 문무백관회의를 다시 열었다.
남겨두었던 안건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신들에게서 후궁을 들이라는 주청이 올라왔다.
“전하, 자고로 후사는 만사요. 나라와 종묘사직을 안정화시키는 초석이옵니다. 하오니 서둘러 후궁을 들여 후사를 보시옵소서.”
“후사를 보시옵소서.”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외치는 소리에 광해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당황감도 잠시, 신색을 바로 한 광해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후궁을 들일 생각은 없소. 아직 나도 중전도 한창의 나이이니 서둘 것도 없소.”
“전하. 외람되오나 중전 마마의 춘추가 벌써 서른하나시옵니다. 서둘러 후궁을 보심이 마땅한 줄 아뢰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온 대소신료들이 한 생각으로 주청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광해는 저들의 말대로 할 생각이 없었다.
왕의 계보가 복잡하게 꼬이는 문제를 그의 대에서 잘라내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후궁을 들여 후사를 본 상태에서 정비가 아들을 낳을 경우 벌어지는 환란과 혼란은 이제 끝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궁을 주렁주렁 들여 궐내의 역학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외척이 발호할 기회를 줄 생각도 없었다.
왕도 또 높은 벼슬의 사람들도 이젠 부인을 하나만 두어야 할 시대를 열어야 했다.
그것을 왕인 자신이 먼저 열기로 한 것이다.
“그만!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를 금하니 입에 담지 말라!”
“하오나······.”
다시 입을 열려는 영의정을 손을 들어 제지한 광해가 말했다.
“향후 왕실은 후비나 후궁을 들이지 않는다. 이것을 종실의 법으로 정해 왕실이 지켜나갈 것이다. 이는 지엄한 왕명이니 감히 반하지 말라.”
광해의 선언에 대소신료들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전하. 후사의 공고함은 왕실의 존엄과 국가의 흥망성쇠와도 직결된 문제이옵니다.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대소신료들이 물러서지 않을 것 같자 광해는 그것으로 회의를 파하고 대전을 빠져나왔다.
저들의 걱정을 안다.
후사가 중요함을 왜 모를까. 하지만 그것에 기대어 후궁을 들이면 자신이 걱정하는 모든 일은 다시금 시작된다.
그것을 용인할 생각이 광해는 없었다.
침전으로 자리를 옮긴 광해를 따라온 도승지 이항복의 표정이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그런 이항복에게 광해가 말했다.
“경도 내게 후궁을 들이라 청할 기세로군.”
“후사의 시급함이 그리 중하기 때문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바짝 엎드려 청하는 이항복에게 광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소.”
“하오나 후사란······.”
“그 세상에서 여인들의 위치 또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것은······. 하오나 여인들의 처지가 변하는 것과 왕실의 후사와는 그 문제가 다르옵니다.”
“같소. 왕이 후궁을 두는데 어느 양반이 후처를 들이지 않을까. 한 집안에 힘이 드센 여인들이 많아지면 결국 집안은 갈 길을 잃고 흔들리는 법이오.”
“하오나 왕실과 세간의 집안은 다르옵니다.”
“같소. 역대의 군왕들 중에서 후궁에게 휘둘린 이들이 어디 한둘이오? 또 그런 후궁의 뒤에서 모략질과 당파 놀이로 국정을 농단한 이들은 한둘인가. 멀리 갈 것도 없지. 당장 명의 황제도 후궁의 품에서 놀아나느라 정사를 멀리하고 있으니까.”
“저, 전하······.”
“그러니 후궁을 들여 무한한 후환을 궐내로 들여놓을 생각이 없네.”
“하나 후사가 없음은······.”
“나와 중전이 노력해야겠지. 후사가 생기도록.”
자신의 말에 당황하는 이항복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던 광해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될 때를 대비하긴 해야지. 종실에서 양자로 들일만한 재목이 있는지 살펴보게.”
“저, 전하!”
“그냥 살펴만 보란 소리야. 소문내지 말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후보를 추려보자는 소릴세. 그중 하나를 추려 내가 만약에 대비해 둘 터이니.”
“전하······.”
그저 전하만 찾는 이항복에게 광해가 고집스러운 미소를 그려 보일 뿐이었다.
온 궐이 후궁의 문제로 소란스러웠다. 중전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전히 중궁전에 명나라 군대와 명나라 환관과 시녀들이 머물고 있었지만 그들의 임무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보다 많은 수의 조선군과 환관, 내시들이 중궁전의 일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귀와 입을 통해 상황을 전해들은 중전의 표정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시대에서 애를 갖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여인의 책임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왕실도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중전의 나이는 이 시대에선 중년으로 취급받을 만큼에 이르러 있었다.
“마마······.”
안타깝게 부르는 중궁전 큰 상궁의 부름에 중전인 서안 공주가 물었다.
“전하께서는 무어라 하시었다 하더냐?”
“후궁을 들이지 않을 것이니 다시는 입에 담지도 말라 하시었다 하나이다.”
큰상궁의 답에 서안 공주의 표정이 환해졌다가 다시 시무룩하게 변했다.
단지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사가 없다는 것은 그녀로써도 걱정이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런 중전이 안 되어 보였던지 중궁전 큰 상궁이 말했다.
“전하의 엄명이 계셨다니 너무 심려치 마소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사안이 너무 무겁구나.”
“마마······.”
“되었으니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중전의 말에 상궁들과 시녀들이 방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홀로 남은 중전의 시름이 깊었다.
후궁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다음 날 다시 열린 확대 문부백관회의에서 남아있던 사안들이 결정되어 시행되었다.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태왕이 개최한 연회에서 다시 후궁의 문제가 거론되었다.
광해가 화를 내고 퇴장하는 상황이 도래했으나 대신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런 대소신료들에게 다음날 각자의 소임지로 돌아가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뒷일을 조당의 신료들에게 맡긴 각도의 관찰사들과 장수들이 각자의 소임처로 돌아갔다.
하지만 후궁의 문제는 여전히 한성 조당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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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첫날, 동태평양 함대가 그간 머물고 있던 말라카를 출발했다.
말라카와 포라중에 주둔하는 해병대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뒤의 일이었다.
양측의 해상 방어를 위해 별도의 함선들도 도착했다.
말라카 별영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이 함대는 3척의 해모수급 전열함과 최근 수군에 배치되고 있는 왕건급 호위함 5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직후 함대에 배속되어있던 해병들을 모두 태운 후, 말라카를 떠난 동태평양 함대는 광해가 내린 두 가지 밀명 중 나머지 하나를 수행하기 위해 인도를 향해 항진했다.
아직 유럽의 동인도 회사들이 제 힘을 쓰지 못하는 시기였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2년 전에 이미 설립되었지만 아직은 큰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네덜란드도 최근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다지만 아직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못했다.
이 시점에 조선은 이미 말라카를 차지해 말레이 지역에 대한 점유권을 굳히기 시작했다.
광해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도를 선점할 계획이었다.
그렇다고 근대의 영국처럼 아예 인도 전역을 식민지로 다룰 생각은 아니었다.
조선은 인도 북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굴 제국과 연계해 인도를 개척해 나갈 계획이었다.
물론 강력한 무력을 통해 무굴 제국의 속국화는 진행할 생각이었다.
무굴제국이 조선의 계획과 다르게 제 마음대로 움직이게 둘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그 첫발을 동태평양 함대가 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