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태왕(太王)
나고야 왕국은 에도에 머물고 있던 천황에게는 책봉 사신을 보내지 않았다.
에도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권이었기 때문에 사신을 보낸다고 책봉이 내려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 작용한 일이었다.
그럼으로써 나고야 왕국은 동일본은 물론이고, 고래로부터 내려오던 일본에서 탈퇴한다는 의미를 삼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선의 책봉이 중요했다.
나고야 왕국의 입장에 의해 청해진 책봉에 조선 조정은 조금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자고로 왕은 왕을 책봉할 수 없는 까닭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아시아 일대에서 타국의 왕을 책봉해온 일은 중국의 황제만이 가능했다.
사대의 예가 굳어진 지금의 시대에는 그것이 더 명확했다.
문제는 최근에 생긴 역학관계의 변화다.
과거라면 대국인 명나라의 힘에 감히 대적할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조선은 달랐다.
군사력은 물론이고, 경제력에서조차 조선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젠 조정의 대신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다.
더구나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예를 따져 나고야 왕국의 책봉 주청을 내쳐야 한다는 주청을 광해에게 올릴 만큼 담이 큰 신료가 아무도 없었다.
조당은 수많은 설전을 거친 결과 책봉사신을 받아들여 책봉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조선을 위해, 또 왜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라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아마도 조선의 대신들이 명나라와의 역학관계에서 조선을 앞에 놓은 최초의 사례가 아니었나 싶었다.
여하간 결론이 떨어진 일이니 담당 부서인 예조가 바빠졌다.
조선왕이 타국의 왕을 책봉할 수 있는지,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예조의 관리들이 몇날 며칠 동안 과거의 사례를 모조리 뒤져 고구려의 예를 찾아냈다.
태왕, 또는 대왕으로써 제후 왕을 두고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글쓴이 주 : 여러 의견이 있지만 실제로 광개토대왕 시절 고구려의 유주자사가 남긴 비문에 자신들의 자손이 후왕(侯王)의 벼슬에 이르길 바란다는 내용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구려도 책봉을 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글쓴이는 이것을 취해 글을 썼음을 알려드립니다.)
조선이 이 땅에 세워졌던 나라들을 계승하였으니 고구려 태왕의 예를 취하여 책봉하여도 무방하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사대에 목을 매던 과거라면 생각도 못했을 이 해석을 광해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내 조선 태왕의 이름으로 광해가 나고야 왕국의 국왕 마에다 토시나가에게 정이대장군 겸 나고야 왕의 직을 내려 보냈다.
나고야 왕국의 왕세자 겸 책봉 사신으로 조선에 입조한 마에다 토시츠네가 절을 하고 책봉 교서를 공손히 받아 돌아갔다.
광해가 돌아가는 그에게 한성 제1전략물자 창고에 보관되어있던 조선철포 1백문과 다량의 초석을 주어 돌아가는 배편에 실어 보냈다.
대량의 화약무기를 제공한 이상 나고야 왕국에서도 많은 양의 화약이 필요해진데 반해 그들이 초석을 구하는 방법이 재래식이었기 때문이다.
각 감영의 감독 하에 각도마다 대규모 염초밭을 운영 중인 조선과는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신기술에 해당하는 염초밭의 기술을 전수할 생각은 없었던 조선은 초석을 제공하는 것으로써 나고야 왕국의 화약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 조선의 배려에 마에다 토시츠네가 크게 기뻐하여 배위에서 태왕이 머무는 궐을 향해 두 번, 세 번 절을 하였다.
나고야 왕국은 왕이 직접 포구까지 나와 조선 태왕의 책봉교서를 받들었다.
조선의 태왕이 자신에게 정이대장군의 위와 나고야 왕의 책봉을 내린 것에 마에다 토시나가는 크게 기뻐했다.
이로써 일본엔 두 명의 정이대장군이 존재하게 되었다.
얼핏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보여도 이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이대장군 직을, 나아가 그의 막부를 조선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아울러 조선이 인정하는 정이대장군은 마에다 토시나가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
나고야 왕국의 국왕을 책봉한 이후 조선의 조당에서는 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동일본에 머물고 있는 왜왕에게도 책봉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주장을 논의하여 내려진 결론을 대신들이 아침 조회에서 광해에게 청했다.
대신들의 말을 광해가 처음 들었을 때 이게 사대에 목을 매던 조선의 조당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상당히 놀라야 했다.
자신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차피 내디딘 걸음 거침없이 나아가자는 듯이 보였을 정도였다.
“왜왕에게도 책봉을 요구하자?”
“그러하옵니다, 전하.”
조당을 대표한 영의정의 답에 광해가 물었다.
“그리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나고야의 왕을 책봉하여 우리 조선이 그들을 인정하였음을 선포하였으니 왜왕에게도 책봉을 내려 동일본이라 칭하는 이들도 우리 조선의 아래에 두어 양측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조선에 이롭다 사료되었나이다.”
“양측의 균형을 유지하자?”
“예, 전하.”
전쟁을 통해 점령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도 나쁘지 않았다.
양측 모두 조선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조선은 두 나라를 뒤에서 어느 정도는 조정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나쁘지 않군. 그대로 예조에서 진행하라.”
광해의 허락에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런 신하들에게 광해가 질문을 던졌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일들을 명이 알게 될 것이다. 어찌 해야 하겠는가?”
“군신의 예로써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니 형제의 예로 대하소서.”
“명을 형제로 대하라?”
“중전 마마께오서 황제 폐하의 제매이시니 형제의 예도 틀리지 않다 사료되옵니다.”
중전이 가진 명 황실에서의 위치를 이용하는 영악한 계산이다. 물론 그 계산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조선의 힘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겠지만.
여하간 나쁘지 않았다. 조당의 신료들이 명이 아니라 조선을 앞에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하라. 그 또한 예조에서 미리 살펴 준비하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전하.”
다시금 일제히 허리를 숙이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광해는 오랜만에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한성 조당의 결정을 가진 사신이 왜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
나고야 왕국의 선포와 그들에 대한 조선의 책봉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조선에 항의해야 한다는 가신들의 주장에 사신을 보내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었다.
육로는 새로 문을 연 나고야 왕국에 의해 가로막혔고, 뱃길은 이용할 수 없었다.
도쿄만 협정으로 인해 바다로는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신들이 조선이 나고야 왕을 자처하는 마에다 토시나가에게 정이대장군 직을 책봉하면서 도쿄만 협정은 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배를 지어 조선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칫 그것을 빌미로 조선이 동일본을 향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고야 왕국을 자처하는 주부 지역이 그에 앞장서고 조선군이 동일본으로 상륙한다면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에 조선의 사신이 당도했다.
사신에게서 나고야 왕국의 책봉에 대해 설명을 듣길 원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생각지 못한 조선 왕의 교지에 큰 충격에 빠졌다.
<왜왕은 입조하여 책봉을 받으라>
당장 배석해 있던 가신들이 난리가 났다.
“어찌 조선의 왕에게 천황 폐하가 책봉을 받는 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반대가 터져 나왔지만 조선의 사신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 사신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었다.
“혹시 명나라의 황제가 청한 일인가?”
“아닙니다. 아국인 대조선국의 태왕 전하께오서 명한 일입니다.”
“태왕?”
“왕 중의 왕이시니 태왕 전하이시지요. 과거 고구려의 사례를 따라 그리 칭하시었습니다.”
가신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럴 수 없었다.
일본의 절반을 차지했고, 북방으로도 땅을 넓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 비해 작았던 나라가 아니었다.
더구나 힘의 논리에 의해 동일본이 조선에 눌리고 있었다. 아직도 오사카성에 퍼부어지던 조선 화포의 충격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시지 않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로 조선의 사신을 객관으로 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신들에게 물었다.
“어찌 하였으면 좋겠는가?”
“가당치 않은 말이니 그냥 내치소서. 주군.”
막부에서 외교를 담당하던 하야시라잔(林羅山, 임라산)의 말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었다.
“그냥 내치자는 말인가?”
“자고로 책봉은 예이 온데, 조선은 그 예에 합당치 않습니다.”
“어찌하여 말인가?”
“조선의 왕은 왕, 그가 태왕이 되었다 한들 그 위(位)가 천황 폐하와 견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일본에서 유학의 권위자로 통하는 하야시라잔의 말이었다.
사방에서 그 말이 옳다고 난리가 났다.
그런 가신들을 둘러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었다.
“하여 사신을 내치면 조선이 어찌 나오겠는가?”
순간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런 좌중을 향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했다.
“내가 본 조선은 그것을 참지 않을 것이다. 하면 전쟁이 나겠지. 오와리에 들어앉은 마에다 토시나가가 좋아라하며 선봉을 설 것이고, 우리 동일본 어딘가에는 조선군이 상륙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조선군이 오와리의 것들과 함께 들어올 수도 있을 테고. 막아 낼 수 있겠는가?”
“명을 주시면 제가 죽음으로 그들과 맞서겠습니다.”
한 무장 가신의 말에 여기저기서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그런 이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물음이 던져졌다.
“죽음으로 맞서라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다시금 쥐죽은 듯 조용해진 좌중을 바라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면 이길 수도 없는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나보고 하라는 뜻인가?”
살짝 짜증이 묻어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물음에 가신들이 바짝 엎드릴 뿐 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예니 뭐니를 따지던 하야시라잔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물러가라!”
짜증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에 가신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그렇게 홀로 남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심이 깊어졌다.
다음 날, 오와리 지역을 살피던 간자들로 부터 뜻하지 않은 첩보가 당도했다.
나고야 왕국군을 자처하는 주부 지역 군대가 오와리 지역에 모여 대규모 훈련 중인데 일만에 가까운 철포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첩보에는 조선에서 건너온 화포 수 백문도 함께 관측되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그 첩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크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