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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12화 (112/325)

제112화. 나고야 왕국

다음 달인 7월, 거제 건선단지에서 차기 조선연안 함대의 주력함으로 건조될 함선의 설계안에 대해 광해의 제가를 요청해 왔다.

전장 30M, 전폭 8M에 2개의 마스트와 선수 돛을 지닌 날렵한 형태의 배였다.

유럽에서 만들었던 프리깃과 유사하지만 철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조선만의 건선 방식을 도입해 만들어진 배는 3층 구조의 비교적 간단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선창과 선실, 그리고 포갑판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간엔 선수포와 선미포를 제외하고는 상갑판에 포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조선군 군함 설계 사상과 달리 4문의 구포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근접한 적선에 대해 구포 사격을 통한 인명살상용 무기인 셈이었다.

무장 화포는 신형인 이포가 설치되게 되어있었고, 장비수는 한 측면 당 15문으로, 선수포와 선미포를 포함하여 총 34문이 장착되었다.

구포까지 포함하면 모두 38문의 화포가 장비되는 셈이었다.

요구 선원의 수는 120명으로 76명의 포수를 빼면 44명의 선원이 배를 책임져야 해서 악명이 높았던 조선 수군의 피로도는 여전했다.

건조비용은 하백급의 3분의 1, 해모수급의 4분의 1에 해당했다.

조선은 이 배의 종류를 호위함으로 구분하고, 고려의 태조였던 왕건의 이름을 따서 왕건(王建)급이라 명명했다.

조선 수군은 이 배를 2백 척이나 요청해 두고 있었다.

얼마 전 부터 사가도 섬에서 개발된 금광에서 금이 산출되고 있었다.

광해는 그 금을 철고 은행에 비축하면서 발행된 통화의 안정성을 담보했다.

그렇게 비축되는 금의 양만큼 보관 중이던 은을 풀어 새로 건조되는 왕건급 호위함들의 건조비로 삼았다.

거제 건선단지가 왕건급 호위함들의 건조에 다시금 분주해졌다.

*****

조선이 연일 확장과 개혁 및 발전으로 분주하던 시기, 동일본의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실제 역사였다면 오사카를 무너트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우리가 흔히 쇼군으로 아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의 직에 올라 막부를 열어 에도시대를 시작했을 텐데, 마에다 가문이라는 강적이 남게 된 지금의 동일본에선 그것이 원활하지 않았다.

막부를 열겠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을 마에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주부 지역의 다이묘들이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과거처럼 막부체제가 아니라 조선처럼 왕권 강화를 통해 중앙 집권의 국가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연접한 관서도의 발전을 지켜보며 피부로 느낀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지배 체계를 중시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오랜 시절부터 개발되어 있던 주부 지역에 자리를 잡은 마에다 가문을 비롯한 주부 지역의 다이묘들과 아직은 미개발지가 더 많았던 간토와 도호쿠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 가신들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처음엔 양측의 의견 차이에 불과했던 이문제가 종래엔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더구나 마에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주부 지역의 다이묘들이 왕권 강화를 천명한 것에 자극을 받은 왜왕가가 그 사태에 발을 들였다.

왜왕가가 그간 피신해 있던 에도에서 마에다 가문의 영지인 오와리(지금의 나고야 일대)로 이전해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반대하면서 양측의 골이 깊어졌다.

종래엔 주부 지역 다이묘들 사이에서 지들끼리 천황이라 부르는 왜왕가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마수에서 구출해 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양측의 전력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쪽이 더 우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쪽이 마에다를 중심으로 한 주부 지역 전체를 손쉽게 찍어 누를 정도의 차이도 아니었다.

그것이 양측의 대립이 길게 이어지는 연유가 되고 있었다.

더구나 동일본의 경제 여건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국제 무역항이었던 나가사키는 물론이고, 최근의 일본 경제를 떠받쳤던 이와미 은광과 에도 시대일본의 경제를 크게 일으켰던 사도가 섬의 금광까지 조선이 차지한 까닭이다.

더구나 개발이 많이 진행 되어 있던 땅의 상당수가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산업과 농업 모두에서 뒷걸음질 친 셈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물산의 흐름이 끊기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었다.

개방되고 확장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출로만 버텨나가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현상이 동일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경제적 부흥을 바라는 주부 지역과 체제의 안정이 먼저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의 갈등이 그런 동일본의 상황에 의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그냥 두었을 때 결국 파국이 올 거라는 것은 양쪽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양측의 이견을 좁히기 위해 가신 중 한명을 사신으로 삼아 마에다 가문의 영지인 오와리로 보냈다.

문제는 이 사신이 오와리로 가는 도중에 죽어버렸다는 점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쪽에서는 오와리가 손을 썼다고 주장했고, 마에다 측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명분을 쥐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고 맞섰다.

결국 양측은 그 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며칠 후, 에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에 올라 막부를 열었다.

마에다 가문을 비롯한 주부 지역의 다이묘들의 반대를 무시한 처사였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대를 모았다.

조선과의 전쟁을 끝낸 직후, 흩어놓았던 병력을 다시 모은 것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오와리로 주부 지역 다이묘들이 모여 장시간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마에다 가문의 당대 당주인 마에다 토시나가의 사신이 관서도로 향했다.

관서도의 관찰사였던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그런 마에다 토시나가의 사신을 맞았다.

“저의 주군이신 마에다 토시나가님께서 각별한 안부를 전하라 하시었습니다.”

사신의 인사에 호소카와가 답했다.

“돌아가거든 내 안부 인사도 전해주게.”

“여기 주군의 서신입니다.”

사신이 내민 서신을 받아든 호소카와가 그것을 펼쳐 읽었다. 무슨 내용인지 그것을 읽는 호소카와의 표정에 놀람이 가득했다.

서신을 다 읽은 호소카와가 사신에게 물었다.

“정녕 이리 할 생각이란 말인가?”

“주부 지역 다이묘들의 뜻이 모아진 일입니다. 제 주군께선 그 일에 대해 호소카와 타다오키님의 지원을 간곡히 청하셨습니다.”

“흐음······.”

사신의 말에 호소카와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외교의 관한 일은 결국 자신이 아니라 한성의 조정, 나아가 왕이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것은 조선에 결코 해가 될 일이 아니었다.

“곧바로 한성으로 보내 대 조선국 국왕 전하의 비답을 받아보겠네.”

“조선까지 가야 합니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걸세. 정기선 편으로 보내면······. 열흘이면 비답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겨우 그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놀라는 사신에게 호소카와가 답했다.

“우리 조선의 교통체계가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 내 거처를 마련해 줄 터이니 주상 전하의 비답이 오는 동안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호소카와님.”

사신을 감영에 딸린 객사로 보낸 호소카와가 한성의 왕에게로 가는 보고서를 작성해 지급으로 보냈다.

곧바로 파발이 오사카 항구로 달렸고, 그곳에서 정기선으로 전달된 보고서는 한성으로 보내졌다.

호소카와의 보고서가 한성에 도착한 것은 오사카에서 발송 된지 정확히 나흘만이었다.

광해는 곧바로 삼정승과 예조 판서, 그리고 육군 총사와 수군 부총사를 궐로 불러들였다.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으로 유성룡, 우의정 이원익, 그리고 예조판서 유영경이 들었다.

왕명을 받고 부산포에서 달려온 수군 부총사 이억기가 육군 총사 권률과 함께 입시했다.

그들을 불러 모은 광해가 호소카와가 보내온 보고서를 돌려 읽게 했다.

“저들이 왕국을 세우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놀란 영의정의 물음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일세. 주부 지역이 동일본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왕국을 세우겠다는군. 거기 보면 알겠지만 왕으로 마에다 토시나가를 세우겠다는 소리도 있더군.”

“조선의 지원을 청한다는데 설마 전쟁까지 가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옵니다.”

예조 판서의 말에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조선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을 시작 할 것 같진 않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북방에 대군이 나아가 있나이다. 이런 때에 다시 왜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곤혹스럽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옵니다.”

거듭된 예조 판서의 걱정에 광해의 시선이 권률에게로 향했다.

군부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왕의 시선에 권률이 답했다.

“타격 전단과 철산 돌격기마 병단이 북방에 나가 있긴 하오나 왜와의 전쟁을 수행할 전력은 충분하옵니다. 당장 본토의 구도에서만 9개 기동 병단을 추가로 왜로 보낼 수 있나이다.”

각도에 2개씩 배치되어 있는 기동 병단들 중에 1개씩을 차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권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억기가 나섰다.

“서태평양 함대와 수군 수송함대는 언제라도 병력을 실어 나를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군부의 두 축인 육군과 수군의 최고 지휘관의 답을 들은 광해가 예조 판서를 바라봤다.

“그렇다는군.”

그 말에 예조 판서가 입을 다물자 광해가 물었다.

“저들의 청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그냥 두면 저들끼리 전란이 벌어져 혼란이 가중될 터 굳이 도울 필요가 있겠나이까?”

영의정의 말에 좌의정 유성룡이 나섰다.

“저들의 힘을 분산 시켜놓는다는 점에서는 지원할 필요가 있다 사료되옵니다.”

두 정승과 달리 조용한 우의정에게 광해가 물었다.

“경은 어찌 생각하나?”

광해의 물음에 이원익이 답했다.

“도와도 큰 이익이 없고, 두어도 큰 손해가 없으니 저는 무엇을 선택해도 상관없을 듯 하옵니다.”

삼정승의 의견에 광해가 권률과 이억기를 바라봤다.

“군부의 의견은 어떠한가?”

“저들의 힘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는 마에다 토시나가란 자를 돕는 것이 유리하다 사료되옵니다.”

“소신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아무리 약한 나무도 겹치고 뭉치면 단단해지는 법이오니, 저들에게 합쳐질 기회를 주지 마소서.”

이억기의 의견까지 취합한 광해가 결정을 내렸다.

“도승지는 명을 받으라.”

“하명하소서, 전하.”

배석해 있던 이항복의 답에 광해가 말했다.

“관서도의 관찰사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 명해 마에다 토시나가의 청을 들어주라 이르라. 향후 지원책에 대해 예부는 육군과 수군 총사부와 협의하여 일을 진행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항복을 비롯한 신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이내 그 명이 담긴 교지가 파발과 정기선을 연결하여 관서도의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고 마에다 토시나가의 사신이 오와리로 돌아갔다.

해외 5도에 배치된 조선군의 무장은 나총과 야포였다.

과거 왜에서 사용되었던 조총은 모조리 수거되어 구주도의 제3전략물자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그 수가 물경 2만정에 달했다.

그중 5천정의 조총이 반출되어 서태평양 함대의 일부가 호위하는 조선무역선 2척에 실려 오와리 지역의 포구로 이송되었다.

마에다 토시나가에 대한 조선의 군사 지원의 일환이었다.

그렇게 조선 국왕의 전갈과 지원을 받은 주부 지역이 광해10년 9월, 나고야 왕국을 선포했다.

오와리 지역을 이르던 미장국(尾張国)이 잠시 국명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그 외의 지역 영주들의 반감을 감안해 새로운 국명을 선택해 반포한 것이었다.

초대 국왕은 주부 지역 다이묘들의 천거를 받아 마에다 가문의 당주였던 마에다 토시나가가 등극했다.

아들이 없던 마에다 토시나가는 그의 이복동생이었던 마에다 토시츠네(前田利常)를 양자로 들여 왕세자로 삼아 조선의 한성으로 보냈다.

마에다 토시나가의 책봉을 청하는 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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