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110화 (110/325)

제110화. 말라카 점령

조선 무역선을 습격한 해적들을 찾아 격멸하는 것 외에 이순신이 광해에게 받은 임무는 두 가지가 더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동남아시아에 조선 수군의 영구 기착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럴 만한 곳으로 광해가 지목한 곳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무역항인 말라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땅인 포라중(蒲羅中, 싱가포르)이었다.

광해는 이순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영구 점령지로 삼으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확인한 이순신은 양측이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일단 포라중이 점령하기에는 수월해보였다.

복잡한 말레이 술탄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긴 했지만 섬인 탓에 점령하는 데 어려움도 적고, 방어하는 데도 수월하다는 평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하고 무역항으로 제 역할을 해낼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에 반해 말라카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역항으로 사용되어 온 덕에 항구 시설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도 발전이 되어있었다.

특히 말레이 각지에서 생산되는 후추가 대량으로 거래되는 항구라는 경제적 이점까지 함께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말라카의 지리적 중요도로 인해 지속적으로 말레이 지역의 여러 술탄국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왔고,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말라카를 차지할 경우 조선도 그곳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군사적 부담을 지속적으로 짊어져야 함을 뜻했다.

따라서 이순신과 휘하 장수들은 두 곳을 모두 점령하기로 했다.

당장은 말라카를 점령하여 사용하고, 포라중이 제 역할을 할 정도로 개발이 되면 말라카를 떠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결정이 서자 이순신과 그 휘하 장수들은 곧바로 작전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걱정들이 나왔다.

“말라카를 식민지로 삼고 있는 포르투갈이 그냥 있을까요? 이번 작전이 그들과의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한 참모의 말에 이순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발이 없을 수는 없겠지. 한 두 차례의 해전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양국의 전면적인 전쟁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리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포르투갈의 군왕도 에스파냐를 통치하는 군왕과 같기 때문이다.”

“두 나라를 한 왕이 통치한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습니다만······. 그것이 연관이 있습니까?”

“포르투갈도 그렇지만 에스파냐는 특히 더 아시아 무역에서 큰 이익을 얻는 나라다. 명나라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거의 모든 차와 비단, 도자기를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순신의 답에 참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역과 전쟁을 연계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선에 있어 무역과 전쟁은 별개다. 왜와 7년간 전쟁을 벌이면서도 무역을 지속해왔던 기조 때문이다.

조선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왜의 해역을 봉쇄하기 이전까지 양측이 서로의 함대를 격파하는 해전을 벌이면서도 교역선은 공격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것을 경험한 조선 수군 장수들은 자신들의 왕이 유럽과도 그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무역선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 무역을 금수 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저들은 모르지. 일반적으로 전쟁 상대와의 교역은 중단되는 법이니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는 참모들을 바라보며 이순신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무역이 끊어지면 에스파냐는 물론이고 포르투갈도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들리는 말로는 그 두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이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하더군.”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무역을 끊기는 어렵겠군요.”

“그래서 전면적인 전쟁으로 까지는 비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순신의 답으로 말라카에 대한 점령은 그대로 결정되었다.

그것을 위해 작전을 수립하면서 장수들은 말라카에 기항했던 무역선단들로 부터 취합한 정보를 검토했다.

그 결과 말라카의 방어력은 생각 이상으로 탄탄해 보였다.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 이후로 수많은 말레이 술탄국들과의 전투를 거치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요새화된 도시였던 것이다.

현재 주둔 병력은 5백 명 남짓했지만 다량의 대포와 화기로 무장한 정예 병력이었다.

물론 그것에 겁을 먹을 조선 수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말라카 점령 작전의 시작은 생각 외로 신사적이었다.

동태평양 함대에서 연락선을 보내 포르투갈 말라카 총독부로 정식 통보를 보냈다.

조선 무역선단을 공격한 해적들을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조선 수군으로부터 해당 요구를 받은 말라카 총독부로써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총독부 관리를 말라카 앞바다에 진을 친 동태평양 함대로 보내 말라카가 그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설명을 했지만 조선 무역선단을 공격한 배들에 포르투갈의 배가 섞여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순신은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당시 대양 항해를 통해 무역을 하는 모든 배는 조선은 물론이고, 포르투갈도 왕실의 허가를 득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조선 무역선단을 공격한 포르투갈의 배가 포르투갈 국왕의 허락을 얻어 운영한 함선이라는 조선의 주장을 반박할 말이 말라카 총독부에는 없었다.

보름이라는 기한을 정해 해적을 내놓지 않을 경우 말라카를 강제로 병합하겠다는 동태평양 함대의 최후 통보에 놀란 말라카 총독부가 곧바로 본국은 물론이고, 인접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점령지로 사태를 적어 구원을 청하는 쾌속선을 보냈다.

가까운 동티모르에도 포르투갈의 군대와 함선이 있었고, 필리핀에도 에스파냐의 함대와 군대가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에스파냐군 지휘부는 말라카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일단의 육군을 실은 함대를 급파했다.

그 에스파냐 함대가 말라카 근해에 나타난 것은 동태평양 함대가 정한 보름을 꽉 채운 날이었다.

곧바로 기동을 시작한 동태평양 함대의 전열함들 중 일부가 그런 에스파냐의 함대를 가로막았다.

양측이 연락선을 주고받는 사이 동태평양 함대의 전열함 30척이 말라카 항구를 봉쇄했다.

조선 수군의 말라카 점령 작전의 시작이었다.

비상이 발령되어 있던 말라카는 항구를 방어하는 포대들이 발포 태세를 갖추었다.

아울러 말라카 주둔군들도 완전 무장을 갖춘 채 항구와 그 인접 시설들에 대한 방어 형태를 취했다.

항구에서 1천5백보 거리에 함대를 배치한 이순신이 대장선에서 말라카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봉쇄 함선들은 모두 제 위치에서 장전 완료했습니다.”

부장인 손일원의 보고에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지.”

이순신의 명에 손일원이 크게 소리쳤다.

“전함, 방포하라!”

손일원의 고함에 기다리던 깃발수가 방포 깃발을 올리고, 이내 대장선을 시작으로 30척의 해모수급 전열함들이 일제히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1천5백보를 날아온 폭발탄들이 가장 먼저 노린 것은 해변에 쌓은 포진지였다.

수백발의 폭발탄이 그런 포진지들을 집중적으로 두들겼다.

처음엔 나름대로 방어력을 유지했던 포진지들이 수백발의 폭발탄의 폭발력에 약화되더니 결국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지가 무너진 포대에 곧바로 날아든 폭발탄이 터지면서 포와 포수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갔다.

20여문이 설치되어 말라카 항구로 무단 접근하던 적선들에게 죽음을 안겨주던 포르투갈의 해안포들이 침묵당하는 순간이었다.

해안포의 제거가 완료되자 이순신이 함대를 5백보 정도 항구로 접근 시켰다.

이후 재포격이 개시되었다.

이번엔 산탄포탄으로만 사격이 이루어졌다. 점령하여 재사용할 항구 및 인접 시설에 대한 파괴 정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에 항구 곳곳에 배치되어있던 포르투갈 병사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함선 당 보유하고 있는 화약량과 포탄량의 절반을 소비하자 포격이 중단되고, 동태평양 함대에 속한 조선무역선이 항구로 접근했다.

일부 살아남은 포르투갈군이 사격을 가하자 조선무역선에 장비되어있던 선수포가 그들을 향해 포격했다.

곧바로 포르투갈 병사들이 침묵 당하자 이내 배를 붙이고 병력의 상륙이 시작되었다.

그물 사다리가 배 밖으로 걸쳐지자 특유의 붉은 군복을 입은 해병대원들이 무더기로 그물 사다리에 매달려 배 아래로 내려갔다.

상륙한 조선군 해병대가 항구 점령을 위해 각지로 퍼져나갔다.

곳곳에서 방어하는 포르투갈 병사들과 조선 해병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사격 속도와 사거리의 우위를 가진 조선 해병대가 빠른 속도로 포르투갈 병사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한발 쏘고 재장전해야 했던 포르투갈의 병사들과 달리 8연발 리볼버 탄창이 채용되어있던 나총을 쓰는 조선 해병대는 8발을 다 쏠 때까지는 별도의 장탄 행위가 필요치 않았다.

그 차이가 현격했다.

더구나 건물 속에 숨어서 사격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수탄도 사용되었다.

포르투갈 병사가 숨어 있던 건물 바로 아래까지 당도한 해병대원이 창문 안으로 수탄을 던져 넣자 곧바로.

쾅!

폭음과 함께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내 해병대원들이 문을 박차고안으로 뛰어 들어가 죽거나 부상당한 포르투갈 병사들을 제압하고 건물을 접수했다.

대포를 끌어와 숨어있던 건물을 부수거나 수많은 목숨으로 거리를 좁혀 건물을 장악하던 이시대의 시가전 방식이 아니었다.

적병들이 모래주머니로 벙커를 쌓은 곳은 병사들이 들고 온 구포가 설치되고 곧바로 공중 폭발탄인 비격진천뢰가 발사되었다.

산탄형과 자탄형이 공중에서 터지면서 아래에 있던 포르투갈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지원군이 도달할 때까지 시가전을 펼치며 장기전으로 버티겠다던 말라카 주둔군의 작전이 먹히지 않았다.

곳곳에서 조선의 신무기와 훈련이 잘된 조선군 병사들에 의해 포르투갈의 방어진지가 깨어져나갔다.

말라카 항구의 방어진지가 무너지고 말라카 총독부가 점령당하는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말라카에서 포성이 울리는 동안 필리핀에서 달려온 에스파냐 함대는 10척의 동태평양 함대 소속 전열함에 가로막혀 있었다.

돌파하고 말라카로 진입하지니 마카오에서 보여준 조선 전열함의 막강한 화력이 두려웠다.

더구나 수적적인 열세도 에스파냐 함대에 있었다.

그들은 4척의 중캐럭과, 2척의 무장 상선을 동원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하던 에스파냐의 함대는 배를 돌렸다.

같은 군왕을 모신다지만 포르투갈은 그전까지만 해도 경쟁을 펼쳤던 다른 나라였다.

그런 포르투갈을 위해 의미 없는 희생을 치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돌아간 필리핀의 에스파냐의 함대와 달리 동티모르에서 뒤늦게 달려온 포르투갈의 함대는 곧바로 동태평양 함대에 달려들었다.

겨우 2척의 캐러벨일 뿐이었지만 그들은 용감했다.

물론 용감하다는 것이 승리와 현명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콰과과과쾅!

차단 작전 중이던 동태평양 함대의 전열함에서 발포가 이루어지고 달려들던 포르투갈의 함선 2척은 곧바로 화염에 휩싸여 격침되었다.

한 측면 당 40문의 야포를 장비한 해모수급 전열함, 10척이 이룬 포선으로 무모하게 달려든 결과였다.

불타고 부서져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리는 포르투갈 선원들과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조선 수군 전열함들에서 연락선을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