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도쿄만 협정
“조선은 반대의 제의를 풍신수길에게 해볼까 생각 중이었소만.”
“전쟁 중인 상대와 협상이라······. 농이 지나치십니다.”
“농이라······. 그대의 주군은 전쟁에 병사 하나 내보내지 않았다고 들었소. 당연히 경제적인 손해도 크지 않았을 테고, 조선이 누굴 상대하는 게 더 수월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소? 힘을 비축한 그대의 주군? 코가 석자는 빠진 풍신수길?”
그 말을 던져놓고 빙긋이 미소 짓는 정경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사신의 표정이 굳었다.
정경달의 말이 협상을 위해 그냥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도쿠가와의 사신에게 정경달이 말을 이었다.
“풍신수길이 안에서 밀고, 조선군이 밖에서 상륙하는 형태로 작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도 세워지고 있는 중이었소. 아! 알고 있는지 모르겠소만 조선군에 큐슈의 다이묘들이 조선군 장수의 직을 제수 받고 참전해 있소이다. 충성심이 아주 깊어서 조선에 계신 주상 전하께오서 흡족해 하고 계시는 일이지요.”
협상은 그 말에서 중단되었다.
코가 석자는 빠진 사신은 다시 찾아 올 테니 기다려 달라면서 급히 돌아갔다.
그 다음날, 조선군이 요코하마에 상륙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왜군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막강한 서태평양 함대의 포격과 상륙거점을 확보한 조선 육군의 화력에 밀려 패퇴했다.
수송함대가 상륙활동을 지속하여 요코하마에 조선군 1개 병단을 토해놓았다.
그 사실이 전해진 것인지 도쿠가와의 사신이 헐레벌떡 달려온 것은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사신은 이전과 달리 혼자가 아니었다.
“이분은 본다정신이란 분으로 저희 주군의 책사이십니다.”
사신에 의해 본다정신이란 이름으로 소개된 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 왔다.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 본다정신)라 합니다.”
“정경달이오.”
서로 간단한 인사가 오고간 직후 혼다 마사노부가 말했다.
“공격을 멈춰주시지요.”
“왜 그래야 하오?”
“서로가 한배를 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배를 탄다, 어찌 말이오?”
“내일 부로 주군께서 서쪽을 향해 진군을 시작할 것입니다.”
“명분만 세우고 조선군의 피로 풍신수길을 무너트릴 생각이라면 거부할 생각이오만.”
“주군께서 오사카를 직접 칠 것입니다.”
직접적인 전투로 피를 흘리겠단 소리다. 그 말에 정경달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대화를 할 자세가 보이는 구려. 어디 한번 이야기를 진행해 봅시다.”
그 후 이어진 대화는 상당히 길었다.
특히 한 부분에선 혼다 마사노부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왜 기다려야 한단 말입니까?”
“내게 이 말씀을 주신 우리 주상 전하의 뜻을 그대로 전하자면 ‘중심이 사라진 나무는 슬쩍 밀기만 해도 쓰러진다’ 라고 하셨소.”
“무슨 뜻입니까?”
“조선군이 압박하고, 당신네 주군이 협조하지 않으면 결국 고립된 저들끼리 흔들려 무너질 거란 소리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당장 시코쿠의 다이묘들이 영지를 잃고 주고쿠 지역에 발이 묶였소. 그것도 혼자의 몸이 아니라 가신들과 무사들, 그리고 대규모 병사들까지 데리고. 어찌 될 거 같소?”
정경달의 물음에 혼다 마사노부가 한참 동안 고심하다 말했다.
“자중지란을 겪을 거라 보시는군요.”
“군대는 재화로 유지되오. 그게 끊겼소. 그들이 부족해진 재화를 어디서 만들겠소?”
다시금 던져진 정경달의 물음에 혼다 마사노부가 답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긴 하겠지만 만족할 정도가 될 거라 생각하시오?”
정경달의 물음에 혼다 마사노부는 답을 하지 못했다.
코앞인 아와지 섬에 조선군이 버티고 앉아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 준비에 막대한 자금이 소모 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코쿠 지역 다이묘들이 만족할 만큼 그들을 챙길 거란 확신은 없었다.
결국 혼다 마사노부는 정경달이 제시한 전략을 들고 주군의 답을 받아오겠다며 돌아갔다.
도쿄만에 머물며 주변을 공략하던 동태평양 함대의 작전이 잠정 중단되었다.
요코하마에 상륙한 조선 육군의 점령 활동도 중지 되었다.
사실 광해는 내년, 그러니까 서기1598년 가을까지 본토에 대한 전면적인 상륙작전은 보류시킨 상태였다.
내년 8월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역사와 달라진 것이 많으니 그조차 변동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일단 광해는 기다리기로 했다.
어떤 조직이든 중심이 사라지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더구나 후계구도가 공고하지 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겐 그의 죽음이 치명적이라는 걸 실제역사가 증명한 사실이기도 했고.
따라서 광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이었다가 그의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서게 될 작자들을 모조리 조선쪽으로 끌어당길 생각이었다.
조금이라도 적게 피를 흘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었다.
전쟁은 누군가는 죽는 일이다.
후방에서 안전하게 지휘한다고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굳이 더 큰 위험으로 내몰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광해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해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정경달의 제의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자신들이 거부할 경우 조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손을 잡을 것이 분명 하다는 사신의 보고가 주요한 결정이었다.
그 소식을 들고 다시금 방문한 혼다 마사노부와 정경달은 긴 토의 끝에 서로의 작전구역과 경로, 전투 일자 등을 상세히 협의하여 결정했다.
또한 향후 조선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이의 관계, 양측의 조건 등을 협의하여 하나의 협정을 만들어 냈다.
이 협정은 곧바로 조선의 부산포와 에도로 보내져 광해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의를 받은 후 곧바로 체결 절차를 밟았다.
협정의 양 당사자는 조선 측에선 육군 총사 겸 정왜군 사령 권률이, 왜군 측에선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에도까지 직접 방문한 정경달이 권률을 대신해 수결하였고, 그가 보는 앞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직접 협정에 수결을 하였다.
이 협정을 조선과 일본 공히 도쿄만 협정이라 기술하였다.
양 당사자의 협정을 왜왕과 조선의 왕인 광해가 비준하지 않았던 것은 도쿠가와의 입장을 배려한 조치였다.
그 당시만 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눌린 그는 이 협정을 대놓고 일본 정계에 제시할 정도의 힘을 가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협정이 끝까지 숨겨졌던 것은 아니었다.
향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이 협정은 공식적으로 공개되고 종래엔 조선과 왜국 공히 국왕의 추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이 협정이 사사건건 일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그로인해 훗날의 일들을 반추하여 일본 역사에서는 이날의 협정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신 날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이 일을 성사시킨 혼다 마사노부를 역적이라 기술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게 광해6년 7월이 저물어갔다.
*****
서기1597년 7월을 기점으로 조선과 일본과의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이시기 유럽은 용광로같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풍랑으로 인한 직전 년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펠리페 2세의 에스파냐가 대규모 원정함대를 구성하여 다시금 잉글랜드를 노리고 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는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서 독립하기 위한 움직임도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펠리페 2세는 그런 아일랜드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은 상태라 원정 함대엔 아일랜드를 지원할 육군 병력도 싣고 있었다.
에스파냐의 함대는 초선포를 대량으로 장비하고 있었다.
이미 희망봉 해전으로 그 우수성을 입증한 에스파냐의 함대는 잉글랜드 함대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에스파냐의 함대는 영국의 해안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적은 잉글랜드가 아니라 대자연이었다.
풍랑에 휩쓸린 에스파냐의 함대는 다수의 피해를 입고 또 다시 원정에 실패한 것이다.
실제역사로 인해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광해는 침묵했다. 사전에 언질을 줄 수 있었지만 고의적으로 침묵을 택했던 것이다.
타국의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
왜를 지원한 펠리페 2세에 대한 일종의 복수였다.
그로인해 에스파냐는 초선포라는 신무기를 확보했음에도 실제역사와 마찬가지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에스파냐의 난파선을 습득한 잉글랜드가 어부지리로 초선포를 습득하는 상황이 왔다.
조선에 비해 부족한 제철 기술이었지만 철포의 생산 기술을 갖추고 있던 잉글랜드는 초선포를 복제해 내는데 성공했다.
파괴력과 정확도는 부족했지만 비슷하게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제 바다에서 조선의 경쟁자는 잉글랜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광해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적어도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타이틀을 잉글랜드가 가져가게 둘 생각은 없었다.
8월. 한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여 가던 시기, 부산포까지 내려온 호조와 공조의 관리들과 광해의 토의가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안건은 구라파와의 교역에 조선이 직접 조선이 뛰어드는 것이었다.
세출이 대규모로 늘어날 것이란 점에 흥분한 호조의 관리들은 대규모 무역선단을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확장 가능한 생산능력을 따져야 했던 공조의 관리들이 연간 50척을 제안했다.
그것엔 현재 찾아오고 있는 구파파의 상선들에 상품을 제공할 분량을 뺀 수치였다.
광해가 공조 관리들이 제안한 숫자를 조용히 읊조렸다.
“연간 50척이라······.”
현재 조선과 구라파의 무역은 대략 왕복에 8개월이 소요되고 있었다.
거기다 함선들의 정비기간과 선원들의 휴식을 고려하면 결국 1년에 한번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무역선단을 일단 무역선 10척으로 구성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호조 판서의 제의에 공조의 관리들도 동의를 표했다.
무역선의 수는 그렇게 정한다 해도 호송이 문제였다.
해적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그냥 무역선들만 보내서는 그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신대륙과 유럽을 연결하는 상선 함대를 운영해야 했던 에스파냐와 마찬가지 고민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해결방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역선들이 자체 무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안전을 위해서는 수군의 동반이 필수적이다.”
광해의 말에 당장 호조의 반대가 튀어나왔다.
“군선의 유지엔 막대한 재화가 들어가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오니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해도 수익이 남질 않겠는가.”
광해의 말에 호조의 관리가 조심스럽게 반대를 피력했다.
“그렇게 얻은 수익이 우리가 가만히 앉아 부산포를 찾아온 구라파 상인들에게 팔아 챙기는 이득과 같다면 굳이 고생스럽게 나설 연유가 없다 사료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그 관리의 생각과 같았던지 호조와 공조의 판서들과 관리들이 일제히 외쳤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관리들의 반대에 광해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흐음······.”
아직 무역로 선점의 효과를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하긴 이제 막 개항한 나라의 관리들이 그것을 알길 바라는 것이 욕심일 지도.’
마음을 다잡은 광해가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