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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98화 (98/325)

제98화. 압박(壓迫) 전략

12월, 광해의 비답이 큐슈에 도착했다.

투항한 다이묘들을 장수로 삼되 그 직급의 배정을 신립에게 일임했다.

향후 항왜들은 모두 신립의 타격전단에 배속하라는 왕명도 추가로 내려왔다.

저들의 사정을 잘 아는 고니시를 배석시킨 채 신립이 김여물을 비롯한 참모들과 상의하여 투항하겠다는 다이묘들의 직급을 정했다.

그렇게 정해진 직급을 가지고 고니시가 그때까지도 대치하여 머물고 있던 왜군 진영으로 향했고, 남부의 다이묘들은 그렇게 정해진 자신들의 직급에 동의했다.

광해5년, 12월 22일.

시마즈 요시히로를 비롯한 남부 다이묘들의 투항으로 조선군의 큐슈 원정이 마무리 되었다.

*****

큐슈의 점령과 정리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특히 정벌전을 치르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던 서부와 중부가 손쉽게 협조해 온 덕에 정리가 수월했다.

하긴 항왜 병단으로 참전한 고니시와 가토가 큐슈 서부와 중부의 다이묘들이었으니 반발할 이유가 없긴 했다.

그렇게 큐슈의 점령이 마무리되자 조선군은 지체 없이 정왜 전쟁의 3단계인 시코쿠 점령으로 돌입했다.

큐슈엔 점령군으로 1개 기마총병 병단과 1개 소총 병단을 남겨둔 조선군이 시코쿠 지역에 대한 상륙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서태평양 함대의 포격으로 시작된 상륙작전지는 시코쿠 섬의 서편에 위치한 우와지마(宇和島, 우화도) 포구였다.

이 지역은 본래 고니시의 격장지계에 놀아나 출전했던 도도 다카토라의 영지였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할 왜군은 다이묘인 도도 다카토라와 함께 2차 부산포 해전에서 모두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조선 침공을 위해 최대치의 군사를 동원한 까닭에 남아있던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왜군의 저항은 미미했다.

저항이 미미했던 것은 상륙지인 우와지마뿐만이 아니었다.

시코쿠 지역 전체가 동일했다.

큐슈에서 탈출해 왜인들이 본토라 부르는 혼슈의 주고쿠(中国, 중국) 지역으로 철수한 다이묘들과 병사들이 귀환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구키의 해적함대까지 간몬 해협에서 동태평양 함대에 포착되어 격침당하는 바람에 시코쿠 지역 다이묘들이 귀환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배가 없었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뗏목을 만들어 띄웠다가 2천이나 하는 병력을 잃은 뒤로는 아예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배를 만들지 못했던 것은 간몬 해협을 틀어막고 있던 동태평양 함대의 일부 함선들이 기타큐슈에서 아와지 섬까지 위력정찰을 다니며 건선설비나 건선 중인 배가 보이면 무조건 포격하여 잿더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시코쿠의 병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력이 철수할 당시 시모노세키로 이동한 이후, 계속 그 인근에 머물고 있었다.

그 탓에 잔여 병력이 얼마 없던 시코쿠 지역에 대한 조선군의 정벌은 규슈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저항보다는 항복으로 피해를 줄이려는 영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조선군의 선봉에 고니시와 가토는 물론이고, 시마즈를 비롯한 큐슈 지역 다이묘들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것이 시코쿠에 남아있던 왜인들이 항복하는데 부담감을 줄였다.

광해6년의 봄이 완연해 지는 3월. 조선군의 시코쿠 정벌이 완료되었다. 작전개시 2달만의 성과였다.

신립의 표현대로면 우와지마에서 나루토(鳴門, 명문)까지 시코쿠를 관통 진군하는 것으로 그냥 점령이 끝난 셈이었다.

부산포에 차려진 정왜 사령부의 예상보다도 수개월은 빠른 결과였다.

*****

광해6년 4월 초.

왕의 특명을 받은 서태평양 함대와 수군 수송함대가 일본 본토 서쪽 해안 깊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는 니가타(新潟, 신석) 코앞에 있는 사도가 섬이었다.

섬에 접근하자마자 서태평양 함대가 포구를 포격했다.

직후 1개 소총단(團), 1천 병력이 조선 수군 수송함대에서 상륙했다.

훗날 일본 최대의 금광이 개발되는 사도가 섬이 그렇게 조선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바다 건너에서 니가타의 왜군들이 그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사도가 섬을 지원하지 못했다.

더 이상 바다를 건널 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에는 없었다.

작은 고깃배조차도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격침시키는 조선 수군의 해역봉쇄 조치 때문이었다.

*****

부산포의 정왜 사령부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향후 왜에 대한 정책을 결정짓는 자리였다.

육군 장수들은 조선 본토의 병력을 최대치로 투입하고, 점령한 큐슈에서 대규모 병력을 차출하여 끝까지 밀어붙여서 왜국 전역을 조선의 치하로 만들길 원했다.

하지만 수군 총사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점진적인 방법을 취할 것을 제의해왔다.

서신으로 개진한 이순신의 의중은 한가지였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쫓는다 합니다. 하물며 일국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물러서고, 숨을 쉴 공간을 주어야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점령지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이순신이 보내온 이분지계(二分之計)에 따르면 혼슈를 에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반분하자는 것이었다.

그 외의 지역은 모조리 조선이 점령하되 왜인들이 본토라 부르는 혼슈의 절반을 남겨둠으로써 저들이 전력으로 저항하지 않게끔 하자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을 육군 장수들이 반대했다. 그런 육군 장수들에게 광해가 말했다.

“나도 수군 총사의 생각과 같다. 적의 숨통을 트여 저항을 줄이고, 아군의 피해를 감소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을 좇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한다.”

“하오나 그리 되면 후환을 남기는 셈이옵니다. 과연 그리 남은 반쪽의 왜가 언제까지 그냥 있겠나이까. 결국은 저들이 칼을 들어 우리 조선을 겨눌 것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육군 장수들이 한목소리로 후한을 이야기 했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마 그럴 것이다. 저들은 수시로 우리를 저울질 할 것이고, 분란을 조장하며 틈을 노릴 것이다.”

“하온데 어찌 그냥 두라 하시옵니까?”

“범이 사냥을 하지 않으면 발톱이 뭉그러지고, 기세를 잃는 법이다. 종래엔 사냥하는 법을 잊고, 늑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겠지.”

“대비태세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군이 최선을 다하여······.”

육군 총사 겸 정왜군 사령을 맡고 있는 권률의 말을 광해가 잘랐다.

“지금의 생각은 그러하겠으나 눈앞에 적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 굳이 온 나라가 적을 대비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게 될 터. 지난 몇 년 전, 우리 조선이 그러했으니. 다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면 그것에 대한 경계로 남겨두려 하시는 것이옵니까?”

“어찌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 남겨둘까.”

“하오면······?”

조심스러운 권률의 물음에 광해가 답했다.

“저들이 남음으로써 조선의 점령지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왜인들이 도주할 곳이 생긴다. 안에 남아서 고름이 되지 않고, 그들이 떠나갈 곳이 생긴다는 뜻이다. 고는 점령지가 안정이 되는대로 조선의 법을 통용시킬 것이다. 따라서 왜인들도 이주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설사 남은 저들의 반쪽이 될지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국외 이주를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그 말에 장수들은 물론이고, 곁에 백석해 있던 이항복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시대의 백성은 노동력의 근간이다. 지금 세상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백성이 타국으로 자유롭게 이주하게 풀어두는 곳은 없다.

“전하 그것은······.”

당장 반대하고 나서는 이항복을 손을 들어 제지한 광해가 말을 이었다.

“올곧이 하나가 될 수 없다면 품고 있어봐야 품안의 폭탄일 뿐이다. 애지중지할 것과, 그러니 않아야 할 것을 혼동하지 마라.”

딱 잘라 말하는 광해로 인해 반대는 뭉개졌다.

침음과 걱정으로 내려앉은 장내를 훑어본 광해가 말했다.

“저들이 올곧이 우리만을 상대로 똘똘 뭉치는 것도 단기간일 뿐이다. 알겠지만 사람들은 안정화가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저들 속에서도 또 분파가 생길 거란 뜻이다.”

“그렇긴 하겠사오나 그만큼 아국의 점령지에서도 소요가 일어날 것이옵니다.”

“세상에 분란 없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 그 소요가 모두를 품고 끌어안고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저들이 칼을 들면 어찌 하옵니까?”

“그때가 언제가 되더라도 온 나라가 대비하고 있었을 터. 무엇이 문제인가. 군을 보내 저들을 짓밟고, 죄를 물으면 그만인 것을.”

단호한 광해의 답에 장수들의 입이 다물렸다.

여하간 광해가 군을 신뢰한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반대하고 물고 늘어지면 불충이었다.

“전하의 명이 계신다면 그것이 언제라도 군은 저들을 불바다로 만들어 그 죄를 물을 것이옵니다.”

권률의 말을 장수들이 일제히 따라 했다.

“죄를 물을 것이옵니다.”

모조리 복명하여 고개를 조아린 장수들을 바라보며 광해가 미소를 그렸다.

“고가 그대들을 믿소.”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전하.”

완전히 뜻이 같은 것은 아니겠으나 그렇게 장군들을 하나로 묶은 광해가 곧바로 이순신이 제시한 작전을 실행하도록 명령했다.

그에 따라 ‘이순신의 둘 쪼개기’라 명명된 작전의 첫 단계인 압박 전략이 시행되었다.

*****

4월이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조선 수군 수송함대를 거느린 서태평양 함대가 에도를 코앞에 둔 도쿄만(東京湾)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요코하마(横浜, 횡빈) 포구에 숨겨 두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왜선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가 서태평양 함대의 일제 포격에 걸려 단시간 만에 전부 격침되었다.

왜선의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서태평양 함대가 만(湾) 입구의 요코하마 포구와 도쿄만과 연결된 다마강(多摩川) 주변의 포구들을 포격하여 잿더미로 만들었다.

직후, 에도에 머물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신이 도쿄만에 머물고 있던 조선군 함대로 찾아왔다.

그 사신을 맞은 이는 서태평양 함대의 사령인 정경달이었다.

오늘을 위해 사전에 역관을 준비해 두었지만 도쿠가와의 사신은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아마도 일부러 그런 인사를 뽑아 보낸 모양이었다.

“우리의 주군은 조선을 향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풍신수길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랬소? 조선은 알지 못했소이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여 저희 주군께오서 한 가지 제의를 하고자 하십니다.”

“무슨······?”

“풍신수길을 협공하길 원하십니다.”

정왜 사령부가 보내온 작전 계획과 같은 말을 하는 사신을 재미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정경달이 물었다.

“협공한 후엔 어찌 하자는 거요? 둘이 다시 싸워 결판을 내자는 거요?”

“그, 그럴 리가요. 분할을 제의하셨습니다.”

“분할?”

“조선군이 점령한 지역이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큐슈와 시코쿠, 그 외 잡다한 섬 몇 개 정도 더 있소만.”

“그렇군요. 주군께서는 현재 조선군이 점령한 곳에다 본토에서 주고쿠 지역과 간사이(関西, 관서) 지역을 추가로 할애할 의향이 있으시다 말씀하셨습니다.”

모조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이 차지한 지역이다.

물론 간사이 지역 옆의 도카이(東海, 동해) 지역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권이긴 했지만 그 쪽은 가신이라기보다는 협력하는 큰 세력의 다이묘들이 자리한 지역이었다.

협상의 여지가 열려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주고쿠와 간사이 지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들로 다이묘들이 구성되어 저항이 강력할 것이 자명했다.

특히 간사이 지역은 거의 전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지와 다름없어서 가장 격렬한 저항에 부딪칠 공산이 컸다.

다시 말해 조선군은 피를 흘려야만 차지할 수 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협상의 여지가 있는 지역을 맡겠다는 의미다.

속내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간계였다.

그것에 미소 지은 정경달이 사신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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