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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97화 (97/325)

제97화. 사쓰마(薩摩)의 투항

큐슈 동부 전역에 대한 점령 임무와 포로 관리를 수행할 소총 병단 1개를 두고 다시 산길을 걸어 중부지역으로 진출한 조선군은 기습을 받았다.

동부 다이묘들 중 한명인 오토모 요시무네(大友義統, 대우의통)가 구로다를 비롯한 다른 다이묘들과 떨어져 행동했던 것이다.

기습은 주요했지만 방식은 무모했다.

겨우 3천에 달하는 왜병이 4만이나 하는 조선군에 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초기의 피해를 수습한 조선군이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소총병들이 구성한 사격선에 그냥 달려드는 꼴이었다. 순식간에 2천에 달하는 병력을 잃은 뒤에야 왜군은 항복했다.

그것도 후방에서 독전대를 지휘해 도주하는 병사들의 목을 베어가며 독려하던 오토모 요시무네가 사살된 후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살아남아 포로가 된 왜병의 수는 1천.

그들을 어쩔까 고심하는 가운데 기타큐슈에 머물고 있던 조선군 군관을 앞세우고 일단의 군대가 합류해 왔다.

솔직히 처음엔 적군인줄 알고 전투준비를 갖춘다고 소란을 떨기도 했다.

난데없이 후방에서 대규모 왜군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앞서 달려온 조선군 군관의 사전 보고가 없었다면 포격을 가했을 지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새로 합류한 부대는 왜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왜군 갑주에 왜군의 무기로 무장한 완벽한 왜군.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왕명이었다.

자신이 목숨으로 충성을 맹세한 왕의 명에 신립은 두 말없이 복명했다.

그렇게 신립의 휘하에 조선에서 돌아온 고니시와 가토의 항왜 병단 1만이 합류했다.

*****

큐슈 남부의 군대는 상당한 강군이다.

특히 사쓰마(薩摩, 살마)의 다이묘인 시마즈 요시히로의 군대가 강했다.

실제역사에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으면서 반란을 걱정해 사쓰마를 바라보고 앉은 채로 묻어 달라 했다는 야사(野史)가 있을 정도다.

하긴 실제역사에서도 일본의 패권자를 결정짓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2천도 되지 않는 병력으로 적진을 돌파하여 도망간 군대였다.

목적이 도주라는 것에 있어서 조금 초라하긴 했지만 수만의 적군 본대를 가로질러 다이묘를 탈출시키기 위해 그 수하들이 처절하게 싸운 전투력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겨우 40명 전후만이 간신히 탈출했던 모양인데 여하간 목적인 다이묘, 그러니까 시마즈 요시히로는 탈출에 성공했으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 전투력을 높이 샀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실제역사에서 벌어진 임진왜란 중 칠천량 해전에 참여해 원균 휘하의 조선 수군을 몰살시킨 원흉 중 한명이었다.

아울러 사천 전투에서 가토의 부대를 포위하고 있던 4만의 조명 연합군을 7천으로 몰아쳐 3만에 달하는 조명 연합군의 피해를 강요한 이들이기도 했다.

물론 전쟁 막바지에 이순신에게 걸려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돌아갔지만.

그런 시마즈 요시히로의 군대가 포함된 남부 병력이 큐슈 남중부의 히토요시(人吉, 인길)인근의 벌판에서 조선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력은 5만에 육박했다.

조선 침공을 위해 소집했던 병력에 더해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긁어낸 것이다.

조선군과 마주 대치한 큐슈 남부군의 장수들은 조선군 속에서 의외의 깃발을 볼 수 있었다.

그 깃발을 보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놀란 음성을 토했다.

“고니시와 가토의 깃발이 아닌가?”

그의 놀람에 깃발을 바라보던 시마즈가의 무사들이 놀람이 담긴 음성으로 답했다.

“맞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깃발입니다.”

수하들의 확인에 시마즈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그의 귀로 고니시와 가토가 태합을 배신하고 조선에 붙었다며 욕하는 수하들이 음성이 들려왔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고니시와 가토 두 사람은 적어도 전투를 포기하고 적에게 항복하여 배신할 이들은 아니다.”

“그럼 어째서 조선군에 저들이 있단 말입니까?”

“돌아섰겠지.”

“설마······. 조선군이 패장을 중용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수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마즈가 말했다.

“아무래도 조선의 새 왕이 생각보다 배포가 큰 사람인 모양이다.”

자신들의 주군이 한말에 시마즈가의 무사들이 술렁거렸다.

그런 수하들을 바라보는 시마즈의 표정이 어두웠다.

신립의 조선군에는 이전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오토모 요시무네의 패잔병들이 합류했다.

전공을 세우면 살려주겠다는 고니시와 가토의 설득이 먹힌 것이다.

그로인해 고니시와 가토 휘하의 왜군은 1만에서 1만1천으로 늘어나있었다.

그걸 허락한 신립이 의외였던지 김여물이 물었다.

“어찌 허락하신 겁니까?”

“어차피 포로를 감시할 병력을 떼어내야 했다. 왜군을 데려가고 조선군을 남기느니 왜군을 남겨 포로를 감시했겠지. 뒤에 남기나 앞에 안고 가나 그게 그거였다.”

신립의 말에 김여물은 피식 웃고 말았다.

신립다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결정을 말리지 않은 것은 왜군의 반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짜 포로들이 협력하는지 곁에서 살피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아마도 향후 왜군 포로에 대한 조선군의 태도를 결정할 것이었다.

왜군들에겐 다행히 포로들은 충실히 협력했다.

조선군이 아니라 왜인 다이묘인 고니시와 가토에게 협력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반발은커녕 태만도 없었다.

그렇게 큐슈 남부의 군대와 전투를 준비하는 조선군 군영에서 고니시가 신립을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투항을 권유해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장군.”

어눌하긴 했어도 고니시는 분명 조선말을 쓰고 있었다.

그가 조선군에 포함되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그것에 자극을 받은 가토도 노력중이긴 했지만 아직 그는 제대로 조선말을 구사하지 못했다.

그런 고니시의 요청에 신립이 물었다.

“투항 할 것 같나?”

“조건을 걸긴 하겠지만······. 가능은 하리라 생각합니다.”

왜에서는 그런 일이 적지 않았다. 서로의 군세를 꺼내 서로 으르렁만 대고 협상을 통해 판가름을 내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조건? 제 놈들이 조건은 무슨.”

부정적인 신립을 김여물이 서둘러 제지하고 나섰다.

“그래도 어떤 조건인지 들어 볼 필요는 있질 않겠습니까, 장군.”

“들어보자고?”

“예. 손해 날 일은 아니니까요.”

“그야······.”

잠시 생각해보던 신립이 고니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해봐. 대신 긴 시간은 못줘.”

“예. 서두르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고니시가 서둘러 움직였다.

백기를 걸고 달려오는 고니시를 시마즈의 무사 중 한명이 달려 나가 맞아 들였다.

“오랜만이오.”

고니시의 인사에 시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어 다행이오.”

“아직 할일이 남은 모양이외다.”

“옷은 같으나 뜻은 달리 세우고 온 모양 같소만.”

시마즈의 물음에 고니시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대 조선국 국왕께오서 죽은 목숨을 살려 쓰시겠다니 충성을 다하는 것이 무사의 본분 아니겠소.”

“무사? 다이묘가 아니라?”

시마즈의 물음에 고니시가 고개를 저었다.

“조선엔 다이묘가 없소. 관리와 장수만 있을 뿐.”

“그럼에도 협력했단 말이오?”

이해 할 수 없다는 시마즈의 물음에 고니시가 되물었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 속에 있을 때 손을 내밀어 널 중히 쓰겠다 말한다면 그대는 거부하겠소? 그 자리가 다이묘가 아니라고 말이오.”

“흐음······.”

답하지 못하는 시마즈에게 고니시가 말을 이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이오. 패하면······. 좋은 꼴은 보기 어려울 거요. 가능한 피해를 줄이고, 덜 빼앗기시오. 그게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오.”

고니시의 말을 듣고 있던 한 다이묘가 물었다.

“어찌 진다고만 하시오? 우린 사쓰마의 군대요.”

자부심 강한 그의 말에 주변에 서 있던 다이묘들과 무사들이 ‘훙’하고 소리를 내어 동의를 표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고니시가 고개를 저었다.

“무기가 다르오. 조선군은 철포와는 상대도 할 수 없는 총을 가졌고, 석화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화포를 가졌소. 접근하기도 전에 몰살당할 거요. 북부나 동부의 군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고니시의 말에 한참을 고심하던 시마즈가 물었다.

“다이묘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거요?”

“장수의 직분이요. 지금의 군대를 보유하게 될 거요. 물론 지배력은 약화되겠지만 병권(兵權)은 쥐고 있게 될 거란 소리요.”

전국시대를 거치며 다이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병권이었다.

살고 죽는 문제였으니 그보다 중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영지가 없는데 어찌 군대를 먹여 살린단 말이오?”

“보급은 나라에서 책임지오. 대신 장수는 나라의 명에 복종해야 하오.”

“나라의 명······. 조선 국왕의 명 말이오?”

“그렇소.”

고니시의 답에 시마즈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흐음······.”

솔직히 당주가 잇는 다이묘의 직위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형인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 도진의구)가 실권을 쥔 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선의 장수가 되나 명목뿐인 다이묘로 지내고 있는 지금이나 그의 처지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모시는 왕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것은 주군을 바꾸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시간을 주시오?”

“긴 시간은 줄 수 없소. 조선군의 대장은 기다려 주지 않을 거요.”

고니시의 말에 시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끌지 않겠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고니시가 조선군 군영으로 돌아갔다.

직후 남부군 지휘부 내에서 격렬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시마즈 요시히로가 투항을 결심하면서 결정이 나버렸지만 강력한 반발도 튀어나왔다.

4군의 주장을 맡았던 모리 요시나리였다.

최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큐슈 정복 전쟁에 패해 그를 섬기기로 하고 항복한 대다수의 남부 다이묘들과 달리,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 무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모리 요시나리는 투항은 태합 전하에 대한 배신행위라면서 시마즈를 비롯한 남부 다이묘들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떠났다.

그렇게 군중을 떠나는 그를 따라 2천의 병력이 떨어져 나갔다.

그들을 따라 수천의 기마대가 조선군 군영에서 이동해 가는 것을 시마즈가 지켜보았다.

기마총병 병단에서 3개 단, 3천기(騎), 6천 병력을 내어 떨어져나가는 왜군을 추적 섬멸하도록 명령을 내린 신립이 고니시를 돌아봤다.

“결정 들어봐야지.”

“예. 다시 다녀오겠습니다.”

곧바로 조선군 군영을 나서 다시 왜군 군영으로 향하는 고니시를 신립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리 애를 쓰는 건 동족애겠지?”

“그리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자고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요.”

김여물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신립의 시선에 왜군 진영에 다다른 고니시가 보였다.

남부 다이묘들이 제시한 조건은 간단했다.

장수의 권위를 인정해 줄 것. 다이묘들의 재산을 빼앗지 않을 것. 백성들을 해치지 않을 것.

그 3가지 조건에 대해 신립은 한 가지는 받아들이고, 한 가지는 보류, 한 가지는 거부했다.

백성들에 대한 안정 보장은 받아들여졌으나 다이묘들의 재산 보장은 불허되었다.

적당한 재산은 모르겠지만 과한 재산은 몰수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로 임명하여 그 권리를 보장 하는 것은 왕명으로 가능한 것이기에 답할 수 없으니 비답을 받는 것으로 갈음했다.

결국 광해의 답이 내려올 때 까지 전투가 정지되었다.

그 사이 왜군 진영을 떠났던 모리 요시나리의 군대를, 추적에 나섰던 조선군이 섬멸하고 그의 영지를 초토화 시켰다.

조선군에 대항할 경우 어떤 처분이 내려지는지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본보기였다.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고, 사람들은 모조리 노비가 되어 조선군 군영으로 끌려왔다.

그것을 지켜보는 큐슈 남부지역 다이묘들의 시선이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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