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96화 (96/325)

제96화. 미에마치 산악전

쾅!

공중에서 폭발한 비격진천뢰에서 자탄이 아래로 쏘아졌다.

말 그대로 쏟아진 것이 아니라 쏘아졌다. 폭발의 힘으로 아래를 향해 고속 사출된 것이다.

그 힘을 받은 덕인지 자탄들은 우거진 숲을 뚫고 지상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쿠구구구쿵.

연속적인 폭음과 함께 자탄들이 폭발했다.

한데.

크악!

비명이 숲에서 튀어나왔다.

시험 사격을 관전하던 신립을 비롯한 지휘부는 물론이고, 포를 쏜 포병들도 화들짝 놀라 숲으로 달렸다.

아군의 포탄에 아군 병사가 다쳤을 수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숲으로 달려온 사람들의 시선엔 의외의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 죽거나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왜병들이었다.

신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김여물이 말했다.

“염탐을 위해 접근한 놈들 같습니다.”

“여기 사격 전 통제 안했나?”

신립의 물음에 백규가 재빨리 답했다.

“통제 했습니다. 이쪽 방향으로 신무기 사격 예정되어있다는 정보도 병사들에게 모두 전달하였습니다.”

“그럼 아군의 통제 이후에 들어왔다는 소리로군.”

“그런 듯합니다.”

백규의 답에 신립이 피식 웃었다.

아군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그 외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왜 웃으십니까?”

김여물의 물음에 신립이 답했다.

“고마워서. 이게 몇이야? 하나, 둘, 셋, 넷, 어이구 여섯이나 되네. 흩어진 넓이가 대략 오, 육장 정도 되니까 숲이 우거진 산속에서도 이정도 범위에선 살상력을 발휘한다는 게 증명된 셈이네. 그것도 왜놈들이 직접 지들 몸으로 확인까지 시켜줬으니 얼마나 고맙냔 말이지.”

그제야 신립의 말뜻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던 신립이 말했다.

“그건 그거고, 주변 정찰 및 경계 신경 써야겠다. 쥐새끼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정도면.”

“예. 경계에 만전을 기하도록 다시 조이겠습니다. 장군.”

김여물의 답에 신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우린 부대 구성 다시 짜볼까. 신무기들이 도착했으면 써먹어줘야지.”

무언가 돌파구가 보였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전보다 활기차진 걸음으로 지휘부 막사 쪽으로 돌아가는 신립의 모습에 김여물이 희미하게 미소를 그려보였다.

직후, 조선군 타격전단은 곧바로 병력차출을 시작했다.

승냥이 기마총병 병단의 기마대원들 중에서 2백을 뽑고, 소총 병단에서 1백, 포병에서 40명을 뽑았다.

몇 시간 동안 포병들을 모아두고 시험 평가관들이 구포의 사격원리와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소총병들은 또 한명의 시험 평가관의 교육 하에 수탄 사용법을 숙지했다.

교육이 끝나자 차출된 병력을 신립은 둘로 나누었다.

그렇게 나뉜 이들 각각에게 구포 5문과 비격진천뢰를 자탄형과 산탄형을 각기 20발씩을 주었다. 거기다 수탄이라는 손으로 던지는 폭탄 2백발을 풀어서 소총병들에게 주었다.

그들을 좁은 오솔길 양쪽의 산속으로 들여보냈다.

기마대원들의 경우야 당연히 살수 무장이었지만 소총병들은 가형 소총을 휴대시켰다.

총검은 장착하지 않도록 해서 그나마 숲이 우거진 산속에서 이동성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도록 했다.

접전은 오로지 살수 무장을 갖춘 기마대원들이 도맡도록 조치한 것이다.

포병대원들 4명과 소총병 4명이 한조를 이루어 구포의 이동을 담당했고, 포병들이 구포를 발사하는 동안 소총병들이 그들의 엄호를 맡는 방식이었다.

나머지 소총병들은 포탄을 옮기고, 전투시 기마대원들과 포병대의 엄호에 임하도록 했다.

엄폐, 은폐물로 가득한 숲속의 상태를 감안하여 평야지역과 달리 적에 대한 제압사격이 아니라 아군을 보조하는 엄호사격에 국한 시킨 것이었다.

타격대라 이름붙인 그들이 들어간 얼마 후부터 산속을 따라 폭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적의 매복을 발견하여 구포로 토벌을 시작한 것이다.

쿵쿠궁쿵.

자탄의 폭발음이 흐릿하게 들려오는 산쪽을 신립이 팔짱을 낀 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무기를 들려 보냈다지만 소총병들을 들여보낸 것이 계속 걱정 되었기 때문이다.

“괜찮으십니까?”

“여기 있는 내가 안 괜찮을 게 있나. 안에 들어가 피 튀길 애들이 걱정이지.”

“걱정······, 되십니까?”

“당연히.”

짧게 답하고 여전히 팔짱낀 자세로 산속을 주시하고 있는 신립을 김여물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전의 신립은 병사들의 소모에 큰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병사들을 전선에 밀어 넣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전쟁은 죽고 죽이는 일이니 죽음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승리를 위해서는 다소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과감할 필요가 있다는 전략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인해 수하 장수들에게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큐슈 정벌전 상황 하에서 보여주는 신립의 모습들은 병사들의 목숨을 꽤나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김여물은 보기 좋았다.

그렇게 지휘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흘에 걸쳐 이루어진 개척 전투 끝에 오솔길 양쪽 산속의 토벌이 끝났다.

길이가 길기도 했지만 전투가 상당히 많아서 왜병들이 얼마나 많은 수를 매복조에 투입했는지 알 수 있는 결과이기도 했다.

보고를 받은 신립은 곧바로 오솔길과 양쪽 산 쪽 모두에 척후대를 추가로 진입시켜 재확인하면서 본대를 진출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미에마치는 진짜 시골 깡촌이었다.

마을도 작고, 딸려있는 논밭도 손바닥만 해서 이걸로 먹고는 사는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 작은 산속 분지 마을에 일단의 왜병들이 은신해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숨어있는 것은 아니어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어 이쪽을 바라보는 왜병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신립이 곧바로 포병을 동원하여 제압사격을 지시했다.

그 결정에 김여물이 우려를 표시했다.

“장군, 마을을 포격하면 죄 없는 백성들도 죽거나 다칠 겁니다.”

“그거 무서워서 시가전으로 가면 내 생때같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친다.”

“하오나······.”

“무얼 걱정하는지 알아. 나도 대도시라면 이렇게 나가진 않았겠지. 하지만 작은 마을이다. 피해가 있겠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거다. 이 상황에서 내 선택은 왜국의 백성보다는 내 병사다.”

단호한 신립의 음성으로 그가 결심을 굳혔다는 것을 알아차린 김여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장군.”

고개를 숙이는 김여물의 어깨를 두드려준 신립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백규에게 말했다.

“뭐해, 안 쏘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백규가 방열을 끝낸 포병대에 사격을 명령했다.

곧바로 요란한 폭음과 함께 포병대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콰과과과쾅!

마을 입구의 폭이 좁은 지역에 방열한 것이라 20문도 되지 않았지만 파괴력은 확실했다.

사용탄은 모두가 산탄포탄이었다.

가득이나 포연으로 잘 보이지 않는데 불까지 내서 연기가 가득차면 시야가 완전히 가로막힐 것을 염려한 조치였다.

콰광쾅쾅.

곧바로 폭발탄의 폭음이 들려오며 마을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때론 무수히 많은 폭발탄의 폭발여력을 견디지 못한 오막들이 무너지기도 했다.

30분간의 포격으로 마을을 정리했다고 판단한 신립이 곧바로 기마대와 소총병들을 투입해서 완전 소탕을 지시했다.

2백여 기의 기마대와 5백의 소총병이 마을 안으로 돌입해 잔당을 소탕한다고 요란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순간, 주변 산속에서 화살들이 날아왔다. 마을에 접한 산속에 왜병들이 빼곡히 보였다.

곳곳에서 조선군이 피해를 입었다.

그것을 확인한 신립이 본대를 마을 안으로 진입시켜 소총과 구포로 대응 사격을 가했다.

20문의 구포가 마을을 둘러 싼 채 산을 포격하는 형태였다.

비격진천뢰가 터지면서 자탄이 쏟아지고 산탄형 비격진천뢰가 터지면서 그 아래 왜병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결국 다수의 피해를 남기고 왜병들이 산속 깊은 곳으로 도주했다.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던 신립은 곧바로 병력 투입을 결정했다.

보유한 수탄을 모조리 소총병에게 풀고, 구포도 다시 10문을 준비시켰다.

얼마 남지 않은 자탄형과 산탄형 비격진천뢰를 모두 산속으로 들어갈 구포에 몰아주었다.

선봉은 기마총병 병단의 기마대원 1만이 섰다. 그 뒤를 소총병 1만이 따랐다.

총검의 장착은 불허되었다.

총검을 장착하고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산속의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김여물을 비롯한 참모들도, 신립 자신도 산속으로 도주한 왜병을 해결할 방법으론 결국 접전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립의 고갯짓에 준비된 병력이 산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제한된 수량이긴 해도 구포와 수탄이 제 역할을 해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속 왜병의 토벌이 보름을 넘기며 계속 되었다.

종래엔 개마 돌격기마 병단까지 하마해서 산속으로 투입되었다.

그런 노력 끝에 중과부적을 견딜 수 없었던지 왜병들이 투항하기 시작했다.

보급을 받으며 전투를 지속한 조선군과 달리 쫓기며 제대로 먹지 못한 왜병들은 그 작은 몸이 바짝 말라있을 정도로 굶주려 있었다.

투항과 전투가 번갈아 벌어지며 산속의 싸움이 길어지고 있었다.

수탄과 구포는 톡톡히 제역할을 해냈다.

왜병들은 모여 있으면 구포나 수탄에 당했고, 흩어지면 가형 소총이나 기마대원들의 칼에 죽어나갔다.

물론 조선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산속에서 벌어진 전투는 역시 살수무장의 효용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활도 소총만큼의 화력을 내는 공간이 산속이었다. 그로인한 조선군의 피해가 상당했다.

산속 토벌전이 벌어진지 한 달.

결국 동부 다이묘들의 중심인 구로다 나가사마가 뼈에 가죽만 발라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비슷비슷한 모습의 동부 다이묘들과 함께 투항해 왔다.

그것으로 길고 지루했던 큐슈 동부의 산악전이 끝을 맺었다.

전투가 끝난 후 집계된 피해는 양쪽 모두 막대했다.

왜군이 전사 1만3천에 포로가 1만, 조선군도 2천에 달하는 전사자와 비슷한 수의 부상자가 나왔다.

전체 기간 한 달 보름이 걸린 큐슈 동부 정벌전이 끝이 났다.

그 기간 동안 동태평양 함대는 완벽하게 간몬 해협을 틀어막고, 아울러 큐슈 남부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흔들어서 사쓰마를 비롯한 남부군을 고착시켜두었다.

만에 하나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난전에 능한 사쓰마의 강군이 동부의 산악으로 투입되어 조선군은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으며 더 오랜 시간 전투를 벌여야 했을 터였다.

신립의 보고로 해당사항을 접수한 부산포의 정왜 사령부는 이순신이 광해에게 개인적으로 제출한 작전계획을 다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큐슈 남부 위협작전은 개념 설립 초기에 정왜 사령부 육군 장수들에게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하던 것이었다.

육군 장수들은 왜국의 본토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상, 수군은 전력 투사를 집중하여 육군의 전투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육군 장수들은 동태평양 함대가 간몬 해협에 밀집해서 차단 작전에 더 집중할 것을 요구했었다.

자칫 본토에서 지원 병력이 상륙할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끝까지 사쓰마 남부에 대한 위협작전을 주장했고, 결국 광해가 중재로 나서 일단의 함대를 남기고 남부로 이동하는 것을 전재로 이순신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육군 장수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규모 병력을 충원, 남부를 화력과 힘으로 밀어붙인다던 기존의 작전 계획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투입병력 5만 중 2천의 전사.

처음엔 2천 '밖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장수들이 광해가 크게 낙담하는 것을 지켜본 이후엔 2천 '이나'로 바뀔만큼 장수들이 병사들의 피해에 민감해졌던 것이다.

이전이라면 그 정도 피해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터인데, 이제 조선은 전쟁에 나간 병사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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