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95화 (95/325)

제95화. 살아난 비격진천뢰

문제는 그 고생을 하면서 도착한 오이타에서 왜군의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봐.”

신립의 명으로 일단의 통역병이 흩어져 왜인들로 부터 정보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병사들을 마을로 들여보내 샅샅이 수색했다.

왜병들이 일반 백성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해가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칼을 들고 야습을 벌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두 가시 사안이 동시에 시행되면서 오이타 전역이 소란스러웠다.

각각의 정보를 취합한 김여물이 신립에게 보고를 올렸다.

“일단 이곳에 왜병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어디로 간 건데?”

“오이타 왜인들에 따르면 애초에 이곳으로 대병이 집결한 적이 없답니다.”

“그럼 후쿠오카에서 떠났다는 동부군 1만1천은 어디로 간 거야?”

“그것까지는······. 다만 병력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또 왜?”

“병력 차출이 있었답니다. 이곳 오이타에서만도 수천 명이 추가로 군역에 동원되어 빠져나갔다는 증언들이 있었습니다.”

“수천이라······.”

“이곳에서만 그랬으니 동부지역 전체에서 모두 일어났다고 판단하시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적어도 적군의 군세가 2만은 넘을 거라는 소리구만.”

“그렇게 보아야 할 거 같습니다.”

김여물의 답에 신립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많은 수를 어디다 짱박아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느냐는 건데······. 짚이는 거 없어?”

신립의 물음에 김여물이 후쿠오카에서 획득한 큐슈 지도를 펼쳤다.

“지금까지 보인 모습으로는 대규모 회전으로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산악에 기대어 우리 조선군에 유리한 화력전이 아니라 살수 병기로 이루어지는 난전을 유도할 생각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왜군이 집결하여 있을 지역으로······. 이곳 미에마치(三重町, 삼중정)가 의심됩니다.”

말과 함께 김여물이 지도에서 지목한 지점을 내려다보는 신립의 표정이 구겨졌다.

김여물이 지목한 미에마치는 산속의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지도대로라면 5만이나 하는 대병을 집어넣을 공간이 아예 없어 보였다.

5만의 조선군은커녕 2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왜군조차 넓게 산개할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그런 신립의 생각을 알아차렸던지 김여물이 말했다.

“개활지에 일부 병력 두고, 나머지는 산속에 산개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 말에 신립은 큐슈 동부 왜군과의 전투가 살수 무장 들고, 피를 진득하게 흘려야 하는 개싸움이 될 것이 빤히 보였다.

더구나 그곳까지 진출하는 길도 모조리 좁은 산길뿐이었다.

“하아······.”

신립의 한숨소리가 길게 새나왔다.

*****

장원의 무기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형 무기에 대한 시연회가 정왜 사령부가 위치한 부산포에서 열렸다.

본래대로라면 한성 외곽에 있는 장원의 화기 시험장에서 열릴 행사였지만 광해가 정왜 사령부에 머무는 까닭에 부산포에서 개최 된 것이었다.

시연에 나선 신형 무기의 종류는 세 가지였다.

하나는 구포(臼砲)였다.

박격포의 원조라 불리는 구포는 그 형태 때문에 조선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어왔던 완구(碗口)의 개량형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용도는 말 그대로 박격포다. 소형 곡사무기인 셈이다.

사각형 나무로 만들어진 고정틀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고정틀 네 곳에 손잡이를 달아 손쉽게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사거리는 어찌 되지?”

“형태의 특성상 폭발력이 온전히 다 전달되지 못해서 5백보가 한계이옵니다.”

곡사화기의 발사 특성상 흑색화약을 사용하면서 5백보는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고생했다.”

광해의 치사에 힘을 받아 시연회를 위해 장원에서 내려온 연구원이 소개한 두 번째 신무기는 바로 그 구포에서 쏘아질 포탄들이었다.

포탄은 세 가지 종류였는데 모두 둥근 원형이었다.

“이건 비격진천뢰라 하는 것이옵니다.”

실제역사에서 등장했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에 광해가 꽤나 놀란 표정으로 연구소 연구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아군이 이미 사용 중인 폭발탄과 같은 원리이나 조금 다른 용도로 사용되옵니다.”

“어떻게 말인가?”

“이 포탄은 발포 후 3초 만에 폭발하도록 만들어져 있나이다.”

“3초?”

“예, 허공에서 폭발하는 것입죠.”

“공중 폭발탄이라 그 말인가?”

“예. 그러하옵니다. 전하.”

수차례 설명을 거듭해서야 알아듣던 육군 총사부 무장들과 달리 왕이 단박에 설명을 알아듣자 연구원의 표정이 놀람으로 가득했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물었다.

“공중 폭발탄이라면 비산 방향이 문제가 될 터인데?”

광해의 지적에 연구원은 감탄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격진천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낸 것에 대한 찬탄이었다.

“맞사옵니다. 전하.”

“어찌 처리하였나?”

“위쪽 삼분지 일을 비우고 내부에 가림막을 두어 무게를 아래로 쏠리게 만들었나이다. 그것으로 날아가는 포탄의 아랫부분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였고, 거기다 아랫부분을 다른 곳보다 얇게 만들어 폭발 압력으로 그 부분이 먼저 깨어지게 만들었사옵니다.”

“그럼······. 속에 든 쇳조각들이 아래로 쏟아지는 건가?”

“예, 설명 드린 대로 무게로 인해 폭발 방향이 아랫방향으로 고정되옵니다.”

자신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광해에게 연구원이 서둘러 다음 포탄을 소개했다.

“화염탄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래로 쏟아지게 만들어졌고, 인화물질의 종류는 기존의 화염포탄과 같지만 인화물질의 양이 두 배를 넘어갑니다.”

“저건 무언가?”

“자탄형 비격진천뢰입니다. 이건 일전에 전하께오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시었던 것을 실현 한 것이옵니다.”

과거 장원의 무기 개발자들에게 자탄형 폭탄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연구원은 그걸 언급하는 것이다.

“아! 그건가.”

“예. 전하.”

“자탄이 몇 개나 들어가나?”

“주먹만 한 게 서른 개 들어가옵니다.”

“자탄의 폭발력은 어떠한가?”

“자탄은 외피자체가 파편화하게끔 만들어져서 크기에 비해 비산파편이 상당합니다. 살상반경은 1장 정도 이옵고, 그 안에 들어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옵니다.”

연구원의 설명에 광해는 상당히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런 광해에게 연구원이 마지막 신형 무기를 설명했다.

“자탄을 개발하면서 파생된 것으로 이름은 수탄이라 지었나이다.”

그 말과 함께 연구원이 내보인 것은 근현대시대에 사용된 막대기형 수류탄이었다.

격발방식도 비슷했다.

“여기 이 격발 줄을 잡아당기고 던지면 5초 후에 터집니다. 폭발력은 자탄과 같습니다.”

“다 잘 만들어졌다. 연구원들에게 노고를 치하한다는 말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깊게 허리를 숙이는 연구자에게 광해가 물었다.

“전장 적응성 시험은 어찌 진행하게 되는가?”

“평시 화기의 전장 적응성은 훈병원이나 육군 학당에 의뢰하는 편이었으나 이번엔 실제 전투에 참여한 부대들이 있어서 그곳으로 시험 평가관과 함께 보냈나이다.”

“왜로 보낸 것인가?”

“예, 타격전단으로 보냈나이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군.”

“소신을 비롯한 장원의 연구원들 모두가 그리 바라고 있나이다.”

연구원의 답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예상 집결지의 형태상 대규모의 적군이 산진에 흩어져 은폐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 된 이상, 이전처럼 진군로 개척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신립을 비롯한 타격전단 참모들은 향후의 작전 구상에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 지휘부로 타격전단 포병대장 백규가 샌님처럼 생긴 이들 둘을 데리고 왔다.

“전단장님. 전입보고 받으십시오.”

“전입?”

“방금 전에 도착한 보급대에 딸려온 인원인데, 장원의 시험 평가관이랍니다.”

“시험 평가관이면······. 신무기 시험하는 이들 아니었나? 걔들이 왜 여기까지 와?”

“새로 개발한 무기를 전장에서 직접 시험하길 원하여 정왜 사령부의 동의를 받아 왔답니다.”

“제기랄 전장이 시험이나 하는 곳인 줄 아나······. 그래서 가져온 게 뭔데?”

신립의 물음에 긴장한 표정의 시험 평가관 중 한명이 나서서 답했다.

“구포와 그 구포에서 사용될 포탄, 그리고 수탄입니다.”

“이름만 들어서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아! 구포는······.”

이후 이어진 시험 평가관의 설명에 신립을 비롯한 타격전단 참모들의 눈이 빛났다.

“그 자탄형 비격진······, 뭐라는 거 지금 시험사격 볼 수 있나?”

신립의 물음에 시험 평가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 가능합니다.”

“백규야.”

“예. 전단장님.”

“포격 시험 가능하도록 준비 도와주고.”

“예. 알겠습니다.”

백규에게 시험 평가관들을 달려 보낸 지 20여분 후, 시험사격 준비 완료 보고가 들어왔다.

곧바로 포병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지휘부가 보는 가운데 구포의 시험발사가 진행되었다.

포탄은 산탄형 진천비격뢰였다.

시험 평가관들로부터 발사 방법을 배운 포병들이 장전을 완료하고 신립을 향해 돌아섰다.

“방포준비 끝!”

“방포.”

신립의 명에 곧바로 포장이 불을 댕겼다.

쿵!

묵직한 폭음과 함께 비격진천뢰가 하늘로 높게 치솟았다. 그걸 바라보며 김여물이 말했다.

“야포 포탄보다 높게 나는군요.”

“성벽 같은 엄폐물을 지나쳐 타격하고자 만들었다니까 높이 날아야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중에서 비격진천뢰가 터졌다.

쾅!

그리고 그 밑으로 무언가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자탄이라는 건가?”

신립의 물음에 곁에 서있던 시험 평가관이 재빨리 답했다.

“예. 서른 발이 들어있습니다.”

“폭발시간은?”

“모탄에서 분리되면서 점화되기 때문에 그로부터 5초······.”

시험 평가관이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진 자탄들이 폭발했다.

쿠구구구쿵.

폭발탄의 폭발음보다는 작았지만 파괴력은 상당했다. 폭발 반경 일대에 급조해 세워놓은 허수아비들이 무수히 쓰러지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것에 만족했던지 신립이 명령했다.

“숲 쪽에 목표지역 설정하고 다시 한발 쏴보지.”

산속 환경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다.

곧바로 포병대원들 넷이 구포의 고정틀 네 면에 나있는 손잡이를 잡더니 구포를 들어 옮겼다.

“이동성은 어떤가?”

“보기는 작아보여도 무게가 2백 근(120Kg)입니다. 긴 거리를 이동할 경우엔 수레를 권장하고 단거리의 경우엔 지금 보시는 것처럼 병사 네 명이 들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장거리를 사람이 움직이자면?”

“그건······.”

생각해 보지 않은 경우인지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시험 평가관을 대신해 백규가 나섰다.

“손잡이에 줄을 걸어 그걸 봉에 매고 둘이 한 봉을 걸머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덟 명이 하나를 옮긴다는 말이군.”

“예. 무게가 문제니까 그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백규의 답에 신립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숲에서 오백 보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한 구포가 장전을 끝냈다.

구포 발사조 포장의 수신호로 그것을 확인한 신립이 발사하라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내리자 이내 불을 댕기고 방포했다.

쿵!

다시금 묵직한 포성이 울려나오고 자탄형 비격진천뢰가 하늘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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