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90화 (90/325)

제90화. 큐슈 남부 흔들기

센다이 강 초입을 바라보던 이순신이 부장에게 명령했다.

“연락선을 내려 병력을 상륙시켜라.”

동태평양 함대는 별도의 육군 전력을 싣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전열함은 극단적인 선원 감량을 통해 포수들의 수도 최소한으로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태평양 함대가 상륙시킬 수 있는 병력은 일부 선원들과 그 포수들뿐이었다.

그것에 부장이 불안감을 피력했다.

“함을 운영할 필수요원의 수가 감소되는데다 그들의 지상전투력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사.”

부장의 반대에 이순신은 담담했다.

“위력 시위를 할 뿐이다.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며 내륙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

“그리 하실 걸 굳이 왜 하려 하십니까?”

조심스러운 부장의 물음에 이순신이 미소 지었다.

“궁금한 것이 많아.”

“소, 송구합니다. 총사.”

고개를 숙이는 자신의 부장을 이순신이 지그시 바라봤다.

이제 스물여덟이라는 이 젊은 장수는 이순신이 직접 고른 부장이었다.

워낙 궁금증이 많아, 너무 많이 묻는다고 고위 장수들에게 소문이 나서 부장으로 데려가려는 이들이 없었다.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다.

끊임없는 질문에 답한다는 것은 결국 답변자의 지적 능력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다.

하급자에게 상급자가, 그것도 군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당연히 부장으로 삼고 싶어 할 장수가 없을 만도 했다.

그렇다고 무과에 급제한지 이제 겨우 1년 남짓한 이에게 함장을 맡길 수 도 없었으니 선상직 사관이 놀게 될 처지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침 정경달이 서태평양 함대 사령으로 나가며 비게 된 부장의 자리로 이순신이 직접 데려온 것이 이 궁금증 많은 부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궁금증이 많아 질문이 많다는 걸 빼면 꽤나 유능했다.

하긴 멍청한 녀석이 수군학당을 수석으로 졸업할리는 없을 테니까.

이전이라면 모를까 바뀐 조선에서 무관은 창칼만 잘 쓰고, 활만 잘 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기초적이지만 국어와 산수도 통과해야 한다.

소총술, 함포술도 성과를 보여야 하고, 선상 지휘과목도 통과해야 했다.

제법 심도 있는 모의 전술을 겨루는 과목도 있고, 전략 작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과목도 배워야했다.

몸을 쓰는 일은 물론이고, 전장을 바라보는 시야에다 머리도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모든 것을 배운 이들과의 경쟁에서 수석을 차지한 녀석인 것이다.

그런 부장에게 피식 웃어 보인 이순신이 답을 해줬다.

“흔들어야 할 놈들이 있으니까. 아마 소식이 들어가면 엉덩이가 뜨겁다고 달려올 놈들이 있을 거다. 그러니 더 요란스럽게, 더 왁자지껄하게 일을 벌인다.”

그 말을 모두 다 이해한 것인지 부장, 손일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곧바로 명령을 시행했다.

“상륙단을 꾸린다. 포수와 항해원에서 일정 인원을 차출해라! 연락선 준비!”

선원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내리는 부장의 명에 인원을 추린다고 갑판장들이 분주해졌다.

그와 같은 상황이 깃발 신호를 받은 30척의 동태평양 함대 전열함에서 모두 일어나고 있었다.

잠시 후.

무장을 갖춘 조선 수군 병사들이 강가에 상륙하자 인근의 왜인들이 놀라 도주하느라 일대 소란이 일었다.

그들의 뒤에서 조선 수군 병사들이 허공으로 총을 쏘아 공포심을 높였다.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수만의 조선군 병사들이 센다이 강 초입에 상륙했다고 말이다.

수천이 수만으로 둔갑되었지만 공포에 물든 소문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러라고 도주하는 왜인들 뒤에서 병사들에게 총을 쏘고 괴성을 지르게 하였던 것이니 소정의 결실은 이룬 셈이었다.

센다이 강을 영지에 두고 있던 남부의 다이묘들이 모여 있던 사쓰마에도 당연히 소문이 전해졌다.

곧바로 시마즈 요시히로를 비롯한 남부의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영지로 회군하기로 결정했다.

북부에 모여 있다가 정작 남부에 상륙한 조선군에게 빈집과 다름없는 자신들의 영지가 도륙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남부 다이묘들의 군대는 사쓰마 군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후쿠오카에서 철군했다.

자신들의 영지가 위험에 처했으니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후쿠오카와 가라쓰 포구 일대에 남은 왜군의 수는 고바야카와를 비롯한 북부의 다이묘들이 거느린 병력 1만6천과 기타큐슈에서 도주해온 3천의 본토 병력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 육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마 기마돌격 병단을 앞세운 조선군 2개 소총 병단이 상륙거점인 기타큐슈를 벗어나 서진을 시작한 것이다.

*****

조선군과의 전투를 준비 중인 큐슈 북부의 왜군 진영이 분주했다.

“장정들의 수가 부족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고바야카와가 짜증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늙은이들이라도 끌어다가 수를 채워. 적어도 2만은 반드시 채워. 조선 놈들에게 우리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는 채워야 한다.”

“예. 주군!”

답을 한 수하가 뛰어가자 고바야카와가 혀를 찼다.

“쯧, 시켜야나 움직이는 멍청한 놈! 그나저나 이렇게 모아서 정말 쓸데는 있는 건가? 모아달라니 모으고 있긴 하네만 농민군은 믿을 전력이 되지 못할 텐데.”

고바야카와가 질문을 던진 이는 또 다른 북부의 다이묘인 타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 입화종무)였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무쌍의 장수라 치켜세우는 무장이기도 했다.

그런 명성만큼이나 개인의 전투력만이 아니라 전장을 지휘하는 능력도 제법 뛰어난 자였다.

“쓸데가 있으니 모아 달라 하지 않았겠나.”

“그러니까 도대체 어디다 쓸 거냐는 소리야? 늙은이들이고, 젊은 놈들이고 농민군 놈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흩어질 게 뻔한데.”

“흩어지면 가족을 죽인다고 위협을 해놔야지. 초기에 흔들리는 몇 놈의 목을 벨 독전대도 뒤에 좀 두고. 그러면 어지간히는 버텨줄 거고.”

“버텨?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소린가?”

“대신 죽어주기도 해야지. 그들을 방패로 삼아 우리 주력을 조선군 앞으로 데려가야 하니까.”

타치바나의 답에 고바야카와가 고개를 꺄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조선군이 화포로 쏜 포탄이 터진다는 건 알고 있을 테고.”

“그야······.”

“사람은 생각보다 질겨. 바로 옆에서 터지면 어쩔 수 없지만 거리를 좀 두고 터지면 앞서 있는 사람이 모두 다 막아주지.”

“그럼 설마······!”

“방패. 뭐, 인간을 방패로 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렇게 죽어나간 이들은 농민이야. 나중에 빚어지는 소출의 감소는 어찌 감당하고?”

“지면 소출이고 뭐고 걱정할게 아무것도 없어. 일단 이기고 봐야지. 그리고 이기고 나면 채울 방도도 생길 테고.”

“어떻게?”

고바야카와의 물음에 타치바나가 피식 웃었다.

“조선군 포로들을 쓰면 된다. 그러니 너무 많이 죽이지 말라고 휘하 무사들에게 말해둬.”

“그렇다면야... 농민군으로 방패를 삼아 접근하고 난전으로 간다······. 구미는 당기는군.”

“알잖아. 조선 놈들은 단병에 약해. 장수 몇 놈 조총부대로 부수고 들어가면 우리 병사들은 닭장 속의 늑대가 될 테니까.”

“기마대는? 조선의 기마대는 무적이라 들었다. 진중에 아쿠마란 소문도 파다하고.”

고바야카와의 걱정에 타치바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한 놈들이 괜한 짓을 벌여서······. 일단 그 공포를 누그러트려야지. 개전초기 일기토를 신청할 생각이다.”

“일기토?”

“나 타치바나가 왜 무쌍인지 조선 놈들에게 알려줘야지. 그것으로 아시가루의 기세도 올리고.”

“좋아!”

고바야카와의 기세가 살아났다.

타치바나의 실력은 그가 보기에도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바야카와의 기분이 한순간에 가라앉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선군이 진군 해 오고 있답니다.”

왜군 진영이 분주해졌다.

조선군과 큐슈 북부의 왜군은 후쿠오카 남부의 요시하라(大字吉原, 대자길원) 벌판에서 조우했다.

왜군이 3만 9천, 조선군이 3만으로 병력적 우세는 왜군에게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파고들면 왜군의 절반 이상인 2만이 무기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농민들로 급조된 병력이라는 점이었다.

조선군의 지휘 장수는 타격전단장 신립이었다. 그의 곁에는 부장 김여물이 함께 하고 있었다.

광해의 재신임을 받아 타격전단장의 자리에 오른 이후, 신립은 김여물을 곁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었다.

공무는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에도 어지간하면 김여물을 대동했다.

달고 다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곳에선 가능한 그의 말을 따르려 노력했다.

그로인해 타격전단 병사들은 김여물에게 신립의 마누라란 별명을 붙였다.

곁에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대는 모습이 딱 드센 마누라 같다는 뜻에서였다.

그래서인지 신립이 김여물을 상대로 남색을 벌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얼토당토않은 소문이었지만 신립은 상관치 않았다.

이전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아마 그전 같았다면 소문을 낸 병사들을 색출해 낸다고 난리를 쳤을 테니까.

요즘은 병사들이 보는 곳에서 공공연히 김여물에게 오늘 밤 기대한다는 농담을 날려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그런 행동에 오히려 병사들이 소문을 믿지 않게 되었다.

사실이라면 저리 공공연히 떠들어댈 인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그 수하 병사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군과의 전투에 있어서 신립은 조선군의 교전 교리를 충실히 따랐다.

하긴 교전 교리를 신봉하는 김여물이 그렇지 않을 때 잔소리를 쏟아 붓기도 했겠지만 말이다.

개마 돌격기마 병단은 좌측에 떨어트려 놓고, 소총 병단을 뒤에 세운 채 그 앞에 포병대를 길게 배치했다.

개마 돌격기마 병단을 포함해 3개 병단을 동원한 조선군이 보유한 야포는 6백문에 달했다.

그 대량의 야포를 방열한 조선군을 향해 왜군은 몸에 익은 전투 방식대로 결전을 걸어왔다.

왜군은 조선군에서 2천보를 떼고 맞서 전열을 갖췄다.

그간 일본군들끼리의 전투는 그 거리면 충분했다.

기마대가 돌진하기 적당하고, 조총병들의 사격 접근, 보병들의 진군에도 알맞은 거리였던 것이다.

더 멀면 기마대와 보병 모두 전투 돌격에 무리가 생기고, 더 가까우면 전술을 구사하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조총이나 활, 석화시 같은 화포에서도 안전한 거리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입증된 거리였기에 왜군 장수들은 그 거리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전열을 갖추는 것에 열중하던 왜군 진지를 바라보며 신립이 김여물을 돌아봤다.

“저거 바보들이지?”

“야포의 사거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왜 몰라. 수군 애들한테 맨날 얻어터졌다면서.”

“수군 해전 교리 상 정규 포격전 거리는 1천보니까요.”

“그래서 2천보면 안전하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여물의 답에 신립이 싱긋 웃었다.

“그럼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줘야겠네.”

“진중 사격하시게요?”

“좋잖아. 시작하기 전에 왜놈들 수도 좀 줄이고, 사기도 꺾고.”

“괜히 그러다 도주하면 골치 아파 집니다. 시가전은 적만이 아니라 아군도 다량의 피해를 양산하니까요.”

“마을 안으로 도주해들어가면 그냥 마을째 포로 뭉개버리면 되지 않을까?”

“전하께 점령하고 낫더니 살아남은 왜놈이 한명도 없다는 보고를 드리시려고요?”

김여물의 물음에 신립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