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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88화 (88/325)

제88화. 기타큐슈 상륙전

며칠 동안 후쿠오카 일대에 모여 있던 대규모 왜군이 빠져나갔다.

때를 맞춰 철수했던 이순신의 동태평양 함대가 다시 간몬 해협을 틀어막았다.

그것으로 조선군은 혼슈라 불리는 왜의 본토와 규슈와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렸다.

때를 같이하여 대마도에서 다시 조선군을 실은 수송함대가 서태평양 함대의 호위 하에 큐슈에 상륙작전을 펼쳤다.

상륙지는 본토와의 연결지점인 기타큐슈였다.

큐슈에 남겨진 왜군들에게 본토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심리적인 충격을 가하기 위해 선택된 상륙지였다.

기타큐슈가 혼슈와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뱃길이었던 탓에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 수천의 왜병들이 몰려와 있었다.

왜군의 화포인 석화시를 배치하고, 다수의 조총부대가 포구 일대에 진지를 쌓고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확인한 정경달이 부장을 돌아봤다.

“육군이 상륙할 수 있도록 일단 포구 정리부터 하지. 거리 1천보에서부터 상륙포격을 가하되, 포탄은 산탄으로. 포구부터 안쪽으로 점진 사격해서 상륙 거점을 확보한다.”

“예. 사령!”

복명한 부장이 자신의 명을 선원들에게 크게 외치는 것을 들으며 정경달이 기타큐슈 포구를 바라봤다.

대마도와 아와지 섬을 넘어 왜놈들의 본토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는 일이었다.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펴졌다.

그러는 사이 부장이 보고를 올렸다.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사령.”

“방포.”

담담한 정경달의 명을 부장이 크게 외쳤다.

“방포하랍신다!”

곧바로 깃발이 오르고, 정경달의 대장선을 시작으로 기타큐슈 포구에 대한 서태평양 함대의 포격이 개시되었다.

콰과과과쾅!

해모수급 전열함은 1척당 측면포의 수가 40문에 달한다.

그런 해모수급 전열함 50척으로 이루어진 서태평양 함대의 일제사는 한번에 2천 발의 폭발탄이 발사됨을 뜻했다.

오늘의 지상포격을 위해 대량의 산탄포탄을 보급 받은 서태평양 함대는 정경달의 명에 의해 오로지 산탄포탄으로만 포격을 가했다.

상륙작전을 위해 포구의 시설들을 써야 했기에 화재로 소실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폭발음과 왜병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수십 발의 조준사격을 당한 포구 일대의 왜군 포진지가 엉망으로 무너졌고, 도처에 조총부대가 구축했던 소총진지도 엉망이 되었다.

방어전은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조선 수군의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조총 한발, 화살 하나 쏘아보지 못한 채 포구에 방어진을 펼치고 있던 왜병들이 숱하게 죽어나갔다.

피해를 이기지 못한 왜병들이 포구에서 안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왜병들을 따라 서태평양 함대의 포격도 점차 안쪽으로 이동해갔다.

사거리의 연장을 위해 서태평양 함대도 차츰차츰 포구로 가까워져갔다.

결국 포구에서 2백보까지 접근한 서태평양 함대의 포격으로 포구 일대의 왜병은 모두 죽거나 그 안쪽으로 도주해 들어갔다.

그렇게 포구에서부터 1천8백보 가량의 상륙거점이 확보되었다.

포구일대에 왜병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정경달의 지시가 떨어지고 이내 수송함대의 조선무역선이 붙어 병력을 상륙시키기 시작했다.

최초 상륙병력은 2척에서 내린 6백 정도의 병력이었다.

그들은 포구에 일단의 진지를 건설하여 반격에 대비한 방어진지의 확보에 주력했다.

그러는 사이 조선무역선들이 차례차례 토해 놓은 병력이 2천을 넘어갔다.

그들로 전술부대의 구성을 완료한 조선 육군이 안쪽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그에 맞선 왜군은 조선 수군의 포격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 방어선을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군의 방어선으로부터 1천보.

정왜 사령부가 사전에 배포한 왜군과의 교전 교리에서 안전거리로 규정한 거리였다.

왜군이 보유한 어떤 화기로도 조선군에 타격을 입힐 수 없으면서도 조선군 야포의 사거리에 충분하게 들어오는 거리였다.

그 거리에서 멈춰선 조선군이 하역된 야포를 방열하기 시작했다.

선봉에 선 2개 단이 보유한 40문의 야포가 방열되고, 이내 포격이 개시되었다.

콰과과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왜군의 방어선 곳곳에 조선군의 산탄포탄이 떨어졌다.

이미 서태평양 함대의 상륙포격에서 산탄포탄의 위력에 혼쭐이 난 왜군 병사들이 포탄을 피한답시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을 망원경으로 확인한 조선군 지휘관의 명령이 소총부대에 떨어졌다.

“전진.”

명령을 받은 최선봉의 1개 대가 약진을 시작했다.

그들이 4백보를 이동해 사격자세를 취했다.

“발사!”

타다다다탕!

요란한 소총 사격음 사이로 이리저리 포탄을 피해 도주하던 왜병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최대사거리의 사격에서도 살상력을 보인다는 것에 실전지휘관들이 놀람을 표시했다.

곧바로 일제사가 시작되었다.

더 확실한 제압사격을 위해서는 거리를 좁혀야 했지만 조선 육군의 교전 교리 상 그것은 불허되어 있었다.

왜군의 석화시나 대조총의 사거리 안으로의 접근은 불가피할 경우가 아니라면 시도하지 않도록 강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육군의 교전 교리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군의 피해를 감수한 작전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유연한 작전의 구사를 방해한다는 장수들의 의견이 다수 있었지만 광해는 교전 교리를 어기다 다수의 피해를 입은 것이 확인될 경우 왕명을 위반한 죄로 엄히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확립된 조선 육군의 교전 교리였다.

막말로 1시간에 병사 백 명의 피해로 점령할 수 있는 땅을, 열흘간 수천발의 포탄을 소비하며 적을 말려 죽여서 얻더라도 아군 병사를 잃지 않았다면 후자가 더 낫다는 논리였다.

병사들의 생명을 극도로 우선시하는 정책이었다.

그것에 기반해 개발된 교전 교리대로 조선 육군이 차츰차츰 전진하면서 왜군의 저항을 분쇄했다.

상륙한 조선군의 수가 불어나면서 전진하여 나서는 병력도 대에서 단으로 결국 병단으로 확대되었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왜군이 병력을 걷어 철수했다.

방향은 왜군들이 모여 있다는 후쿠오카 방향이었다.

조선군이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왜병을 토벌하기 위해 기타큐슈 시내로 진입했다.

왜인들이 불안한 눈길로 그렇게 진입해 들어오는 조선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태평양 함대와 수송함대가 기타큐슈 상륙 작전에 임해 있던 시간, 이순신의 동태평양 함대는 간몬 해협의 남쪽에 머물고 있었다.

혹시나 접근해올지도 모를 왜군 함대에 대한 경비차원이었다.

그런 동태평양 함대 견시수의 망원경에 멀리 접근하던 한 함대가 포착되었다.

기타큐슈에 남아있던 병력을 빼와달라는 한 다이묘의 부탁으로 다시 접근해오던 구키의 해적함대였다.

발견을 먼저 한 것처럼 움직임도 동태평양 함대가 빨랐다,

모든 돛을 펼친 동태평양 함대가 이순신의 지휘 하에 속도를 올렸다.

그들의 접근을 구키의 함대가 늦게 발견했다. 이내 배를 돌려 구키의 함대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바보처럼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의 도주였다.

노를 사용할 수 있는 왜선의 경우 차라리 역풍 방향으로 도주하는 것이 범선으로 구성된 동태평양 함대를 따돌리는데 유리했을 터였다.

범선에 대한 교전경험이 적기에 벌어진 일이다.

“놓치지 마라.”

이순신의 명을 부장이 복명하면서 동태평양 함대가 추적의 고삐를 조였다.

속도의 차이가 현격했다.

노까지 동원했음에도 왜선들이 5~7노트 정도에 불과한 반면 동태평양 함대의 최고속도는 10노트에 달했다.

도주하던 구키의 함대는 결국 따라잡혔다.

속도를 이용해 앞질러 나간 동태평양 함대의 선두가 차단전술을 전개해 앞을 가로막고 일제 포격으로 구키의 함대를 공격했다.

손써볼 여지도 없이 화염포탄에 벌집이 되어버린 구키의 해적함대가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남해에서 조선 수군을 위협했던 행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왜군 해적함대의 종말이었다.

그들의 괴멸로 사실상 왜군은 움직일 함대가 사라진 셈이었다. 큐슈 지역이 완전히 고립된 것이다.

*****

이 당시 큐슈에 남아있던 것은 3군에 소속되어 있던 구로다 나가사마를 비롯한 큐슈 동부의 다이묘들과 4군을 형성했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도진의홍)를 비롯한 큐슈 남부의 다이묘들, 그리고 6군을 구성했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를 비롯한 큐슈 북쪽의 다이묘들이었다.

거기다 미처 회군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군의 기타큐슈 상륙에 쫓겨 다시 돌아온 본토의 병력 일부였다.

대마도에서 사로잡힌 고니시와 가토를 비롯한 이들이 큐슈 서, 중부 일대의 다이묘들이었기 때문에 남겨진 이들이 큐슈의 잔존 전력 전체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총병력이 4만 7천에 달했으니 이들만으로도 결코 적은 병력은 아니었다.

그 지휘부가 모여 심각하게 논의를 나누고 있었다.

“상륙을 시작했다고는 하나 아직 우리에 비해 열세일 거요. 전군을 몰아 회전으로 나아가 밀어붙이면 조선군을 바다로 밀어낼 수 있소.”

고바야카와의 주장에 동조하는 다이묘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히 구로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조선 수군의 함포 사격에 의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타큐슈의 탈환 작전은 극심한 피해를 양산할 거요. 그것에 찬성할 수 없소.”

“하면 어찌 하자는 소리요? 이렇게 앉아 있다가 저들이 병력을 충원해 들어오면 그땐 어찌할 생각이오?”

“앞마당에서의 전투는 앞마당의 방식대로.”

“무슨 소리요?”

“우리는 우리식으로 대처하기로 하였소.”

“설마 이탈하겠다는 소리요?”

당황하는 고바야카와의 물음에 구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우린 곧바로 이동해 영지로 돌아갈 생각이오.”

“구로다!”

고바야카와의 성난 외침이 있었지만 구로다는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따라 동부의 다이묘들이 모조리 일어섰다.

북부의 다이묘들이 배신행위라며 비난하고 나섰지만 남부의 다이묘들은 묵묵히 회의장을 나가는 동부 다이묘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지금 보이는 동부 다이묘들의 행동을 비난하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20년간을 그렇게 각자의 안위를 지키며 살아온 난세였다. 달리 전국시대라 부르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의리, 명예 따위에 휘둘려 움직였다간 언제 날아가는지 모르고 영지가 날아가고, 가문이 절단 나던 시기를 살아온 것이다.

그것이 남부의 다이묘들이 떠나는 동부 다이묘들을 비난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렇게 구로다를 비롯한 동부의 다이묘들과 그들이 지휘하는 병력 1만1천이 후쿠오카를 떠났다.

후쿠오카 일대에서 철군해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가는 동부지역 군대를 바라보는 남겨진 왜병들의 표정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큐슈를 말할 때 사쓰마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사쓰마는 큐슈의 중심이었고 맹주였으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큐슈를 정벌할 때 가장 애를 먹었던 것도 사쓰마였고, 지금도 큐슈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보유한 것도 사쓰마였다.

그 사쓰마의 당대 다이묘인 시마즈 요시히로가 후쿠오카를 떠나는 동부 지역 군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곁에서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하가 물었다.

“무슨 생각일까요?”

“앞마당의 방식이라고 했으니, 조각조각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던 과거의 관례를 따르겠다는 소리겠지. 아마 저들은 북부에서 조선군의 전력이 깎여 나가길 기다릴 거다.”

“북부의 피로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소리군요.”

“승리라······.”

“어렵다 보십니까?”

수하의 물음에 시마즈 요시히로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전쟁은 생물이다. 움직이는 놈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는 없다.”

비관적이다.

승리할 수 있다면 저런 소리를 늘어놓는 주군은 아니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수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 어찌 움직일지에 관해서 물었다.

당장 자신을 포함한 사쓰마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모두 궁금해 하고 있기도 했고.

“주군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린 법. 우린 남는다.”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면서도 남겠다는 시마즈의 결정에 수하가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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