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광해 장가가다
여진의 불안에 대한 대비책으로 광해는 남간도와 함경도, 평안도 북부 3개도에 주둔중인 군에 경계를 강화를 지시했다.
하지만 사실 정왜 전쟁이 시작된 광해1년 4월 이후로 조선 전군은 전시 상태에 있었기에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한성의 도로망이 대대적인 확충을 시작했다.
또한 대중교통활성화 대책이 시행되면서 순환마차가 도입되었다.
역마차를 기점으로 시통, 읍통, 리통마차로 대변되던 대중교통체계에 한성만의 대중교통체계가 추가로 도입된 것이다.
한성을 8개 구역으로 나누어 그곳을 끊임없이 도는 순환마차는 현대시대로 말하면 지하철 내지 순환버스였다.
이미 사대문 밖에 건설된 도시들도 완전히 대규모로 성장한 까닭에 그들 지역을 연계해 운행했다.
그럼에도 부족한 교통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중마차 운송을 시작했다.
일종의 택시였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원하는 이를 태우는 이 대중마차는 1백대로 시작했다.
한성의 교통량 증가로 도로에 차선을 도입했다.
차선을 긋고 그로인한 교통 교육을 실시했다.
한성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차선 제도의 효용성이 입증되자 왕명으로 조선 전국에 걸쳐 실시되었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마부 면허제도가 도입되었다.
기존에 마차를 몰던 마부들도 일제히 시험에 응시해 면허를 따야만 했다.
2달의 유예기간을 주어 따지 못한 마부는 마차를 몰수 없도록 왕명으로 명했다.
도로에서 사고가 빈발했다.
교통량이 늘어나고, 운행되는 마차의 수가 폭증한 결과였다.
왕명으로 포청에 교통 포반을 설치하여 교통사고 관련한 문제만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도로 순찰을 늘리고, 교통 법규를 준수하도록 계몽을 시작했다.
대한신보가 교통 법규 계몽의 선봉에 나섰다.
연일 사고를 다루고, 그에 대한 피해의 심각성과 방지 방법들을 소개했다.
봄이 무르익은 4월의 부산포에서 구라파를 상대로 한 첫 도자기 수출이 시작되었다.
서반아의 무역선 5척이 1만점의 조선 도자기를 싣고 부산포를 떠났다.
이제 유럽으로부터도 막대한 은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서반아의 상선 8척이 3만 필의 조선 비단을 싣고 부산포를 떠났다.
철고은행 부산포 지점의 금고가 꽉 차서 인근의 창고를 빌려 서반아 상인들이 대금으로 치르고 간 은을 보관해야 했다.
그걸 지키기 위해 부산포 포청 분소에서 10여명의 포졸이 투입될 정도였다.
명으로부터 생사의 수입이 증가했다.
조선의 방직소에서 명나라의 생사로 비단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에는 명나라 산(産) 조선 비단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었다.
조선에선 중등품으로 취급되었다. 비단 중 최고는 엄격한 품질 관리 하에 생산된 조선 생사로 만들어진 조선 비단이었다.
수출은 조선 비단과 명나라 산 조선 비단을 반반 섞어 출하했다.
가격은 5 대 3으로 조선비단이 더 비싸게 팔렸다.
그렇게 조선과 구라파의 직접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
봄과 여름이 교차하던 5월. 명황제로부터 조선국왕의 책봉을 받아든 홍순언이 조선으로 돌아왔다.
광해가 왕위에 오른지 5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속을 썩이던 국혼문제는 오히려 악화되어 돌아왔다.
올해 안에 밀어두었던 혼례를 올리라는 황제의 교지가 딸려온 것이다.
만력제의 생각을 광해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혼인동맹이란 믿음이 쌓이기 전이나 종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때 써먹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난날 조선은 명나라 주변국 그 어디보다도 충실하게 명을 섬겨 온 나라였다.
그런 조선으로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며 여동생을 보내려는 이유가 좀처럼 짐작되지 않았다.
혹시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일까 싶었던 광해는 결국 황제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신단의 방문때 이미 아직은 명과 각을 세우고 다툴 수 없었다고 이미 판단한 뒤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왕의 일로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들기도 싫었다.
피할 수 없다면 미뤄두느니 당겨서 빨리 치르는 것이 나았다.
그렇다고 전쟁 중인 나라를 떠나 왕이 명으로 들어 갈수도 없는 노릇. 광해가 사신을 보내 국혼을 조선에서 치르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공주를 인접국에 보낸 전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인지 명은 생각 외로 순순히 조선의 요구를 수용했다.
곧바로 명나라의 공주를 데려오기 위해 사신단을 구성하여 다시금 명으로 보냈다.
홍순언이 자청하여 그 아들과 함께 다시 명으로 떠났다.
그들과 함께 돌아올 명나라 공주의 호위를 위해 충청 수영의 판옥전선 5척이 사신단을 호위해 따라갔다.
그 배에는 경호를 위해 파견된 내금위의 별감 10여명도 함께 탑승해 있었다.
여름의 정점에 도달하던 7월. 명나라의 서안 공주가 제물포에 도착했다.
12마리의 말이 끄는 국왕 전용 마차가 제물포에 내린 명나라 공주를 태우고 궐이 있는 한성으로 달렸다.
공주의 시종을 위해 명나라 환관 3명과 10명이 넘는 시녀, 그리고 호위병으로 50명에 달하는 명군이 딸려왔다.
먼저 한성으로 달려온 홍순언의 아들이 전한 말로는 그들은 돌아가지 않고 명나라 공주와 함께 조선에 영구히 머물 것이라 알려왔다.
시작부터 광해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조선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하긴 정략결혼이란 게 다 그렇지 뭐.”
포기보다는 투덜거림에 가까운 음성이 광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명나라 공주가 궐에 도착하자마자 국혼이 거행되었다.
이전처럼 거창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대놓고 선전하고 거창하게 식을 치를 정도로 광해의 마음에 드는 혼인도 아니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성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하는 성혼이니 모든 것이 관심 밖이었다.
피치 못해 전쟁 중에 올리는 국혼이었기에 허례허식을 폐한다는 명분으로 광해의 국혼이 그렇게 간소하게 치러졌다.
조선에 왔으면서도 중국식으로 붉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탓에 국혼 내내 얼굴한번 보지 못한 명나라 공주의 행태에 광해의 비위가 더 거슬렸다.
그래서였는지 광해는 첫 날 밤을 치를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상선인 알지의 간곡한 청에도 불구하고 이젠 중전이 된 명나라의 공주를 교태전에 그대로 둔 채 광해는 첫 날 밤을 자신의 침전에서 수많은 계획서들과 씨름하며 뜬 눈으로 세웠다.
다음 날 아침, 중전은 대비전으로 문안을 오지 않았다.
황제의 여동생이라는 자존심일 것이었다.
광해의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마치 자신마저 무시당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감히!”
대비인 의인왕후는 그런 광해에게 푸근히 웃었다.
“은혜하세요. 은혜로 다가서면 상대도 은혜로 나옵니다. 명에서 멀리 조선까지 왔으니 두렵고 불안할 것입니다. 모쪼록 주상께서 은혜로 덮고, 은혜로 감싸야 할 것이에요.”
“송구하옵니다. 대비 마마.”
고개를 숙이는 광해에게 대비가 말했다.
“정녕 그리하거든 속히 원자를 제 품에 안겨주세요.”
“워, 원자요?”
“주상의 연치가 벌써 스물 둘이세요. 너무 늦어요. 그것을 주청 드리는 신하들이 없다는 것이 이 어미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대비의 말에 광해가 쑥스럽게 웃었다.
그런 광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비가 작정을 했던지 생각지 못한 말을 입에 담았다.
“침전에 궁녀들도 들이지 않으신다면서요. 설마 소문처럼 진짜 남색을 즐기시는 건가요?”
“아, 아니 무슨 말씀을······.”
“궐에 주상이 남색에 빠져 여인을 멀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건 아시는 가요?”
“상선에게 듣기는 하였습니다만······. 사실이 아니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소서.”
“하면 무엇이 문제인 겁니까? 이리 되실 때까지 여인을 곁에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 이 어미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바, 바빴습니다. 아시지 않사옵니까, 소자가 장원과 궐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요.”
“그 또한 이제 그만 두어야지요. 왕자일 때야 신문물에 관심이 많아 그러할 수 있다하나 이젠 군왕이 되신 지도 수해가 지나갑니다. 다루어야 할 국사가 산적하고, 돌보아야 할 백성들이 수백만이에요. 국사에 전념하셔야지요.”
장원의 일이 국사와 같다는 것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대비가 하는 말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걱정이었으니까.
“예. 명심하겠나이다. 어마 마마.”
대비가 아니라 어마 마마라 불러서였던지 대비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백성도 중하나 주상의 용체를 돌보세요. 주상이 곧 조선이고, 나라입니다.”
“예, 그래서 열심히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이다.
매일 아침 침전 주위를 돌며 조깅을 하고 있었으니까.
처음 그걸 시작했을 때 크게 놀라던 대전별감들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지근 호위를 위해 무장과 의관을 차려입고 따라붙는 별감들과 알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뭐, 약도 별로 없는 조선에서 살아남자면 건강은 필수였으니까.
괜히 머리는 빌려도 건강은 못 빌린다면서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과 비서들을 대동하고 청와대를 뛰었다는 한 대통령이 생각나는 일이긴 했지만······.
그와 같을 생각은 없다.
빌린 머리 덕에 IMF 사태를 맞게 되어 나라를 말아먹은 그 대통령처럼 될 생각은 없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종두법의 연구를 허준에게 명해 두었는데 아직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보고가 없었다.
생각이 그에 이르자 자꾸 딴 곳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걸 알아차렸던지 대비가 미소를 그렸다.
“너무 오래 잡고 있었군요. 돌아가서 국정을 살피세요.”
“송구합니다, 어마 마마.”
깊게 고개를 조아린 후 광해가 대비전을 물러나왔다.
대비전에 들 때만 해도 어스름했던 하늘이 환하게 밝아있었다.
일찍 시작되는 여름의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대비전을 물러나온 광해가 찾아간 곳은 내의원이었다.
아직 의원들이 입궁할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허준은 그곳에 있었다.
“역시 여기 있을 줄 알았소.”
“저, 전하.”
놀라 일어서는 허준에게 광해가 물었다.
“어찌 밥은 먹고 하는 거요?”
“황공하옵게도 잘 먹고 잘 지내옵니다.”
“건강을 챙기시오. 어의가 건강해야 고를 오래오래 보필해줄 게 아니겠소.”
“소신, 명심하여 받들겠나이다.”
감격한 표정으로 깊게 읍을 하는 허준의 모습에 광해가 미소를 그려보였다.
“그나저나 어찌 되어가고 있소? 말이 없어 궁금하여 이리 찾아왔소.”
“종두법 말씀이옵니까?”
“그래요. 그거.”
서둘러 묻는 광해를 허준이 바라봤다.
허준의 입장에서 광해는 참으로 알면 알수록 놀라운 왕이었다.
새로운 신문물을 발명해 내기로 백성들 사이에 유명세를 타고 있긴 했지만 의학에도 상당한 지식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해부하는 일을 앞서서 허락하여 제도화하고, 외과적 수술들을 당연시 했다.
그를 위해 필요한 약제들의 개발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했고, 그렇게 개발된 약제들을 동물들에게 먼저 시험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도 왕이었다.
공구나 다름없다며 의원들조차 난색을 표하는 외과 수술기구들을 앞장서 개발하기도 했고, 종래엔 마마가 귀신이 옮기는 병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것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것을 방지하는 방법까지 들고 나왔다. 그때의 놀람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던 허준에게 광해의 물음이 다시 던져졌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거요?”
“아, 아니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것이 있어 확인 중이옵니다. 수일 내로 전하께 고해 올릴 정도의 결과가 나올 것이옵니다.”
“그렇소? 다행이오, 다행이야.”
기뻐하는 광해의 모습에 허준도 빙긋이 미소 지었다.
마마라 불리기도 하는 천연두는 조선에서 가장 큰 역병이었다.
한번 창궐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서야 끝이 나는 탓에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기도 했다.
이제 그것에 종지부를 찍을 날도 머지않았다. 모두 왕이 고안해낸 종두법 덕이었다.
의원들도 알지 못했던 그걸 알아낸 왕이 허준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허준의 표정으로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광해는 괜히 종두법을 처음 만들어 냈다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영국의 의사와 지석영 선생에게 미안해졌다.
조선에서 종두법은 지석영 선생이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뭐, 솔직히 말하면 종두법도 모두 다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소의 전염병인 우두가 옮았던 사람들이 천연두를 가볍게 지나간다는 것에서 종두법이 시작되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걸 어의 허준을 불러 연구를 지시한 것에 불과했다.
다른 거의 모든 조선의 신문물이 그러했듯이 사실 종두법도 그렇게 지식만 전수했을 뿐, 그걸 실현해 낸 것은 허준을 비롯한 조선의 의원들이었다.
여하간 그 덕에 조선 전 기간에 걸쳐 큰 피해를 입혔던 천연두가 박멸될 길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