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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79화 (79/325)

제79화. 조선무역선

“어찌······. 몸이 안 좋으십니까?”

대번에 걱정 어린 조필의 말이 건네졌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닐세. 그나저나 가장 걱정했던 이야기는 없어서 다행이야.”

“국혼 말씀이시군요.”

조필의 말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말은 안했지만 그걸 가장 걱정했었네.”

광해가 왕이 되면서 명으로 사신을 보내 국혼을 파해줄 것을 청했다.

그에 대해 황제는 아직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명나라의 조정의 석 상서를 통해 설득을 하고는 있사오나 무슨 생각인지 황제가 움직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애초에 황제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조필의 요청을 받은 석성의 노력과 설득에 의한 일이었다.

그러니 파기도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만력제가 결정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움직여 보게. 그 일로 발목을 잡으려 들면 골치 아파 질 테니까.”

“예, 전하. 더 노력해 보겠나이다.”

조필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광해가 말했다.

“그나저나 은이 문제로군.”

“명에 은이 풀리려면 조선으로의 수입이 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우리가 사줄 것이 없습니다.”

조필의 말이 정답이다.

상업과 산업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조선에선 명나라로부터 사들일 고가의 제품이 마땅치 않았다.

“생사를 사들이면 어떨까? 수차식 방적기가 보급된 이후로 비단의 생산량이 늘어서 추가 생산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아예 조선의 비단을 구라파로 파는 것은 어떻겠나?”

“일단 판로가 생긴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도자기 건으로 구라파의 상인들을 접촉할 때 비단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그것으로 잠정적인 결정이 났다.

나머지는 대신들과의 최종 결정이다.

솔직히 말해 방법이 잘못 되었다. 대신들과 먼저 상의하고 조필과 실무를 의논하는 것이 순서일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사대에 중점을 두는 대신들과 먼저 상의했다간 은의 독점을 폐하자고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의 수와 무장 검열도 모조리 들어주자고 나설 게 분명했다.

갈아치우고 싶었지만 현재의 인력풀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사림의 경륜과 경험이 나라 운영에 필요했다.

지방관들도 마찬가지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계획대로면 몇 해 후, 시장을 간선제로 바꾸고 읍장까지 직선제로 선출시킬 요량이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확대해 나가서 결국엔 지방수령은 모두 국민들의 직선제로 뽑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현대시대 선관위 같은 조직을 국왕 직속으로 만들고, 투표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방법들을 고안 중이었다.

그렇게 사림을 대체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저런 생각에 잠긴 광해에게 조필이 물었다.

“걱정이 있으십니까? 전하.”

“아! 아닐세.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느라고. 자네는 요새 괜찮은 겐가? 이역만리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있는가, 그 말이야.”

“소인 전하의 은덕으로 잘 먹고, 잘 지내옵니다.”

“어찌 그렇기만 할까. 가족도 모두 조선에 두고 외로울 것을. 가족이라도 데리고 가지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기에 명보다 조선이 좋았습니다. 몇 년 후면 이제 작은 아이도 출가를 할 것이니 그때가 되면 내자는 불러갈까 생각 중이긴 하옵니다.”

선진국의 기준이 바뀌고 있었다.

명보다 조선의 문물이 더 신식이고, 거침없이 발전 중이었다.

장사꾼인 조필의 눈에도 명보다는 조선에서 크는 것이 자식들에게 더 좋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런 조필의 답에 광해가 물었다.

“작년에 출가한 아들이 큰아들이었지?”

“예. 제 좋다는 동리 처녀와 혼례를 올렸습지요.”

광해의 간택을 위한 금혼령은 그가 왕이 되면서 왕명으로 풀어버렸다.

애꿎게 혼기를 놓친 사대부의 처녀와 총각들이 한꺼번에 혼례를 서두르느라 한동안 조선이 시끌벅적했었다.

가문간의 혼례가 대부분인 조선에서 당사자가 좋다는 사람과 혼례를 올려 주었다는 조필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잘 했네.”

“제 못난 자식 놈이 전하께 깊이 감격해 하고 있나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내주셨습니다.”

조필의 큰 아들이 혼례를 올릴 때 광해가 일부 혼수품을 보내주었다.

그걸 거론하는 것이다.

“자네가 날 위해, 또 조선을 위해 한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오히려 그것밖에 못해줘서 내가 미안할 일일세.”

“어찌 그런 말씀을······. 그저 전하의 하해와 같은 마음 쓰심에 성은이 망극할 뿐이옵니다.”

깊게 허리를 숙이는 조필을 광해가 지그시 바라봤다.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김억수가 재산을 들어 바칠 때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다.

여하간 조필이 맡고 있던 상단은 명나라에 기틀을 세우고 있었고, 조필의 돈을 받지 않은 명나라 고관들이 없었으니까.

아마 그때 조필이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명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광해는 두 눈 멀쩡히 뜬 채 상단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였다. 조필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것은.

“혼례를 올린 장남이 상단의 일을 보고 있다고?”

“예, 전하. 미력하오나 제물포 지단에서 장사를 가르치고 있나이다.”

“내일 같이 오게. 내 자네 아들도 보고, 중히 쓸 터이니.”

광해의 말에 조필이 감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기뻐하는 조필을 바라보며 광해가 작게 웃었다.

*****

대신들은 광해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상국에 대한 예를 다해야 하니 군과 무장에 대해 고해바치고. 왜와의 은 교역에 대한 독점을 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유성룡과 이원익만이 달리 생각해 보아도 될 듯 하다 말했을 뿐, 대부분의 신료들은 사대의 예를 더 중요시 했다.

그런 조당의 신료들에게 광해는 조필과 상의한 내용들을 알리고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 통보했다.

‘어명’이라는 두 글자로 대신들의 반대를 틀어막은 광해가 이항복을 모화관으로 보내 그 사실을 명나라 사신들에게 알렸다.

물론 이항복은 조필을 대동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미 조필을 통해 상당한 금원을 받아 챙긴 사신들은 수긍했다.

다음날, 명나라 사신들은 대궐 인근에 있던 내금위 훈련장에서 조선철포와 가형 소총 일부, 그리고 창고에서 먼지 쌓인 승자총통까지 꺼내 무장한 내금위를 검열했다.

형식적이 검열임에도 그들은 꼼꼼히 기록하였다.

그것에 대해 조필이 물었을 때 군부의 요구사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형 소총에 대해 문의했을 때 조필이 재빨리 나서서 답했다.

“승자총통을 발사하는 것에 불편하여 이렇게 몸체를 달아 만든 것입니다. 사격 능력은 별반 다를 것이 없습죠. 굳이 믿지 못하신다면 직접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조필의 말에 사신들은 고개를 저었다.

“어찌 조 대인의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그리 알겠습니다.”

사신들은 군부에 전해줄 조사서의 가형 소총란에 ‘승자총통과 다를 것이 없다’라고 쓰는 것을 확인했다.

제물포에서 이루어진 수군의 검열은 충청 수영의 판옥전선과 장갑귀선으로 이루어졌다.

“범선이 있다던데······?”

사신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조필이 답했다.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불을 뿜고, 적선을 포로 쏘아 사정없이 부셨다고요. 아마 장갑귀선을 양이인들이 잘못 본 모양이지요. 생긴 것이 특이하니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조필의 말마따나 장갑귀선의 형태는 특이했다.

물론 미심쩍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트집 잡을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받았던 사신들은 두말없이 보고서에 장갑귀선에 대해 적었다.

“군세는 어찌 됩니까?”

“아시다시피 조선은 왜와 전쟁 중입니다. 벌써 3년을 넘기고 있지요. 필요에 따라 증강되었다가 또 흩어지길 반복하니 그 수를 특정하기 어렵다 하더군요. 장수들조차 병사수를 잘 대지 못해 전하의 호통을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그렇다 해도 대강이나마 수를 적어야 하니······.”

“장수들의 말로는 수만은 족히 된다 하더군요.”

“수만······.”

폭이 너무 넓었다.

하지만 조필의 표정 상 그 이상의 정보는 나오지 않을 듯싶었다.

결국 사신들은 보고서에 ‘수만’이라 써 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 명군에서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신의 말에 조필이 미소를 지었다.

“설마요. 제가 사신들께 그런 소리가 들리게 두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나라 군부에도 손을 써 두겠다는 뜻을 밝히는 조필의 말에 사신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다면야. 우린 그저 조 대인만 믿겠습니다.”

“그럼요. 제가 언제 실망시켜드린 적이 있었던가요.”

“암요, 암요. 없지요. 없어.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사신들의 얼굴에선 의심이나 불안감을 찾을 수 없었다.

열흘 후, 사신들은 돌아갔다.

며칠간의 검열 이후 진탕 마시고 놀다 돌아간 것이다.

조필은 명나라 사신보다 이틀 먼저 떠났다.

사신들이 명나라로 귀환하기 전에 사전 작업을 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해4년의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선 11월.

거제 건선단지에서 화물 운송용 범선으로 개발된 시제선이 완성되었다.

전열함 설계안의 토대가 되었던 유럽의 마닐라 갤리온을 기반으로 개발된 화물 운송용 범선은 극단적으로 폭이 넓었다.

길이 35M, 폭 13M에 달하는 이배의 적재 가능 화물량은 1천5백 톤에 달했다.

무장병력의 수송 시엔 완전무장한 병력 3백 명을 실어 나를 수 있었고, 야포 13문을 장비하여 기본적인 자체무장도 갖추었다.

광해는 시제함을 직접 시찰하고, 조선무역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울러 1년 안에 1백 척을 완성하라는 명도 내렸다.

건선장 나대용은 사색이 되었어도 수긍했지만 왕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환관은 엎드려 불가함을 아뢰었다.

그 막대한 건조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광해는 한발 물러서 50척으로 수를 줄였다.

대신 내년 7월까지로 완성 일자도 함께 줄어들었다.

거제 건선단지는 곧바로 제작에 돌입했다.

다수의 자재가 들어가는 일이라 사전에 준비했던 건선용 목재가 부족해졌다.

대양함대에 대량의 자재가 사용된 뒤로 추가로 건선용 목재를 생산하여 숙성 중이었지만 아직 사용하기엔 마땅치 않았다.

그에 따라 부족한 목재를 채우기 위해 명과의 교역선으로 사용 중이던 판옥선 백여 척을 해체하여 사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었고, 광해의 제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교역선으로 활동하고 있는 판옥선의 수는 그간 증가한 교역량만큼이나 늘어서 5백 척에 달하고 있었다.

줄어든 교역선의 수는 명나라의 배들을 임차하여 쓰기로 하였다.

그로인해 약간이나마 더 많은 은이 명나라로 흘러들게 되었다.

*****

서기1596년, 광해5년이 밝았다.

연초에 열리는 정례 확대 고위관료회의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정보들이 보고되었다.

건주여진의 대족장 누르하치가 작년에 명으로부터 용호장군(龍虎將軍)에 제수되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가 명나라의 벼슬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니 특별할 게 없었지만 그 벼슬을 근거로 건주여진을 넘어 해서 여진의 부족들을 슬금슬금 통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에 대해 해서 여진의 대부족들과의 충돌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남간도와 접촉하는 여진인들 중 상당수가 해서 여진이다.

그들의 불안이 남간도 일대의 불안으로 이어질까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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