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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78화 (78/325)

제78화. 러시아워

대전으로 들어선 이는 조필이었다.

조선 왕의 출현에도 시큰둥하던 이들이 조필의 등장에 갑자기 상관이라도 마주친 듯 놀란 것이다.

“조, 조 대인!”

놀라는 사신들에게 빙긋이 미소를 그려 보인 조필이 광해의 발치에 깊게 엎드렸다.

“소인 조필이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일어나게.”

광해의 말에 일어선 조필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섰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말했다.

“원로에 노고가 많았네.”

“아니옵니다. 주상전하의 은덕에 큰 어려움 없이 잘 왔나이다.”

공손한 조필의 모습에 사신들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명나라 사신단의 정사와 부사 모두 이전부터 조필에게 돈을 받아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적은 돈도 아니었다.

평상시라면 이쪽에서 굽신 거려야 할 사람이 바로 조필이다.

그런 그가 조선의 왕을 극히 어려워하는 것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들은 명에서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조필의 상단이 사실은 조선 임금의 것이라던 소문 말이다.

실체가 없기도 했지만 사실, 상관이 없는 소문이기도 했다.

조필 상단은 자신들의 돈을 받은 이들이 곤란해할만한 일을 부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제 주인이 누구든 그 돈을 받아 쓸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당황해 있는 사신들을 일별한 광해가 조필에게 물었다.

“혹시 아는 분들인가?”

광해의 물음에 조필이 답했다.

“예. 몇 번 뵌 적이 있는 분들입니다.”

“귀환하거든 잘 해드리게. 모자란 것이 있다면 채워드리고. 도울 일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돕게.”

“예. 전하. 명을 따르옵니다.”

조필의 답으로 명확해졌다.

그가 움직이는 상단의 주인은 정말 소문처럼 조선의 왕이었다.

“아하하하하.”

사신들의 웃음이 어색했다.

당황한 사신들을 이항복이 모화관으로 안내해 갔다.

그런 그들을 조필이 따라갔다.

아마 그가 사신들과의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그걸 위해 급히 조필을 조선으로 부른 것인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보였다.

*****

다음 날 조필이 가져온 사신들의 요구조건은 5가지였다.

조선군의 수를 보고할 것.

조선 수군의 함선수를 보고할 것.

조선군의 무장을 검열할 수 있도록 해줄 것.

공급하는 철 생산량을 늘 일 것.

왜의 은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폐할 것.

군에 관한 것이 반을 넘었다.

명이 조선의 군사력 증강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들어줄 수는 없네.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가는 수를 줄이라 압박을 가할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현재 조선군의 규모는 명이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로 대규모였다.

그렇다고 거짓보고도 어렵다.

자칫 그것으로 트집을 잡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왜와의 전쟁으로 수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여 그 수를 특정할 수 없다 말해두기는 하였습니다만······.”

“잘했네. 그 부분은 그대로 밀고 가지.”

“함선과 무장의 검열은 어찌 하올까요?”

조필의 물음에 잠시 생각해본 광해가 답했다.

“함선은 충청 수영에 남아있는 판옥전선들을 보여주세. 무장은······. 장원에 보관중인 조선철포를 꺼내오라 하지. 수군은 물론이고 육군도 그것으로 무장하고, 금군을 사열하는 것 정도로 무마해보게.”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것이옵니다, 전하.”

명나라 사신들을 구워삶을 뇌물을 말함이다.

“어쩔 수 없겠지. 괜한 소란보다는 그편이 비용부담이 더 적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하오면 철과 은은 어찌 하겠다 하올까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도대체 명나라는 그 많은 철을 어디다 쓰는 건가? 조 대행수가 보낸 기록을 보면 저들이 생산하는 철도 이전처럼 그대로 수급되는 모양이던데.”

“기존의 철은 대부분 관부에서 소용됩니다. 그것으로 무기도 만들고 관에서 쓰입지요.”

“하면 우리가 보낸 것은?”

“일반 대중에서 쓰입니다. 요사이 명나라 전역에서 철제 제품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상당량은 밀상들을 통해 여진이나 안남(安南, 베트남), 천축국(天竺國, 인도)으로도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아옵니다. 그것으로 명나라 상단들이 큰돈을 벌고 있습지요.”

조필의 답에 광해가 물었다.

“하면 철의 교역량을 늘려 달라는 건?”

“명나라 상단들이 손을 쓴 걸 겁니다. 요사이 명나라 황제의 태정을 이용해 환관들이 철과 소금 사업을 독점하면서 그 쪽엔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그건 늘려주도록 하지. 이쪽에서도 돈을 버는 일이니 거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예, 전하.”

고개를 조아리는 조필에게 광해가 물었다.

“하면 이제 은문제가 남는군. 그걸 거론한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요사이 명에 은이 상당부분 부족 한 듯 합니다. 서반아와의 차 무역을 통해 어마어마한 양의 은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대량의 은이 우리 조선으로 빠져나오니······. 아무래도 그 부족분을 충당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명에 은이 부족해진 것은 상당량을 조선이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물건을 사주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철 교역과 왜와의 은 교역을 독점하며 조선이 벌어들이는 은의 양이 절대적으로 더 많았던 것이다.

거기다 최근 들어 역전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었다.

우후죽순처럼 발전한 조선의 상계가 다양한 상품을 명으로 수출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오죽하면 이젠 비단도 수출한다.

경제의 풍요가 조선에서 비단의 수요를 확대했다.

광해의 명에 선전이 비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한 다음엔 수도 없는 비단 제작상이 등장했다.

판매는 이전처럼 선전이 조선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비단을 도맡다 시피 해도 제작은 수십 곳의 제작상이 따로 했던 것이다.

그들 간의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상품의 질이 높아졌다.

종래엔 조선 비단이 명나라 비단의 품질을 넘어 선 것이다.

작금엔 철이 조선과 명간의 교역품 중 6할에 불과할 뿐이고, 4할은 다른 물품들이 채웠다.

비단, 생사, 도자기, 인삼, 등등 요사인 모시까지 수출된다.

시원한 조선의 모시에 매료된 명나라 갑부와 고관들이 적지 않았다.

다수의 노동력이 군대로 빠져나간 상황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장원에서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한 수차식 방직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을 활용한 방직기에 착안해 광해가 언질을 건넸고, 장원의 기술진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수차식으로 방직기를 개발해 낸 것이다.

현대의 방직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인력으로 옷감을 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생산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 옷감의 대량 생산에 기반을 두고 광해가 옷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일종의 패션 개량인데, 그로인해 가장먼저 나온 것은 활동하기 편한 개량한복이었다.

요사인 그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도처에 많이 보였다.

왕인 광해조차 공무가 아닌 경우엔 개량한복을 입었다.

초기엔 체통이 무너졌다며 대신들의 반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걸 일일이 들을 생각이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광해가 하면 모두가 왕실 문화인 줄로만 아는 남간도 사람들이 따라했고, 종래엔 조선 구도 전체에 퍼져버렸다.

활동하기 편한데다 왕이 입는 옷이었으니 거리낌도 없었기 때문이다.

요샌 그 개량한복까지 수출되고 있었다.

명나라에선 조선 왕실의 활동복으로 소개되었다고 했다던가?

그렇게 다양한 상품들이 명으로 팔리고 있었다.

그로인한 교역 수익의 편중이 더 심화 된 것이다.

“곤란하게 되었군.”

“명나라의 은 품귀가 지금보다 더 심화되면 표면으로 문제들이 돌출되어 나올 겁니다. 그전에 무언가 대책을 세우긴 해야 알듯 하옵니다. 더구나 연일 도자기 사업이 확장일로라 더 심화 될 것이 자명하옵니다.”

도자기 사업.

광해가 새롭게 시작한 일은 아니다. 그저 기존에 조선에서 생산되던 도자기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을 뿐이다.

전통적인 조선의 자기는 백자다.

맑고 투명한.

그 고고한 기품에 반해 조선의 백자를 찾는 명나라 갑부와 고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광해는 명이 아니라 유럽을 겨냥했다.

임진왜란 때 끌고 간 조선의 도공들을 부려 화려한 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팔아먹었던 왜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광해가 도공들을 불러 화려한 자기를 만들기를 요구했다.

왕실이 사용할 색채 자기를 요청한 것이다.

왕실 자기.

도공들에겐 꿈에라도 이루고 싶은 일이다.

조선 구도 전체에서 도공들이 자기를 만들어 바쳤다.

품평하여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었더니 더 화려한 색채, 더 멋들어진 자기들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세계 제일을 거론해도 무방할 조선 도공들이 마음먹고 만든 제품들 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자기들이 많았다.

그것들 중 광해의 마음에 드는 것을 왕실에서 쓰게 하고, 나머지를 추려 조필 상단을 통해 명나라에 공급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요사이 명나라에선 조선 도자기가 없어서 못 파는 형국이었다.

그로 인해 조선의 도자기 사업이 양과 질, 양측에서 연일 발전 중이었다.

조필이 그걸 거론한 것이다.

“도자기의 경우는 명나라에 대한 판매를 점차 줄이고, 대신 구라파(歐羅巴) 상인들에게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정말 될 까요?”

“날 믿고 그리하게.”

“예, 전하. 하오면 명나라를 통하는 것 보다 조선에서 직접 수출하는 것이 어떨까요?”

조필의 말에 광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이젠 조선이 개항을 해서 직접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교역을 틀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제물포는 지금처럼 명나라 무역에 쓰고, 구라파와의 교역엔 부산포를 개항해 준비토록 하겠네.”

“도자기 교역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부산포로 오도록 하겠나이다.”

“그렇게 하게.”

광해의 답에 조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명나라와의 도자기 교역을 줄여도 이미 다른 물품의 교역량이 많아 은의 반출은 지속될 것 입니다.”

그러니 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쌀의 수입을 더 늘리면 어떻겠나?”

“지금도 너무 많은 양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무산의 나 행수에게 듣기로는 감자가 남아서 썩을 정도로 쌀이 제공되고 있다하옵니다.”

사실이다.

그로인해 요사이 남간도의 주식이 감자에서 쌀로 바뀐 지 좀 되었다.

풍족함이 온전히 사회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결과였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식량자족은 달성해야 했기에 미곡전이 조선의 농부들에게서 대량의 쌀을 사들이고는 있었지만 가격은 폭락했고, 공급량은 소비량을 초과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곡전의 농지들 중 절반정도를 다른 작물 재배에 활용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하긴 쌀만 주식으로 삼았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감자에 고구마, 옥수수까지 보급된 뒤다.

광해가 나서서 고추와 고추장을 보급한 덕에 작금의 조선에 고추장을 이용한 음식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시전에 나가면 매콤한 떡볶이도 판다.

고춧가루로 담그는 김치도 흔한 반찬이 된 지 몇 해 되었다.

빵을 만드는 방법을 유럽에서 들여온 후 시내에 빵집 하나 없는 곳이 드물어졌다.

그로인해 요사이 조필이 명나라에서 대규모로 재배한 밀을 수입하고 있었다.

그렇게 밀이 흔해지자 국수가 시장에 대량 보급되었다.

국수가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은 시전 좌판에서 5원이면 국수를 사먹을 수 있었다.

전통적인 주식이었던 쌀의 경우 소비는 줄어들고, 소출은 늘어나니 당연히 남아도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수 사람들이 농부에서 상인이나 공장의 노동자로 전환되었음에도 그랬다.

축산업도 늘어났다.

소득이 늘어나니 육류의 소비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많아지고 도처에 새로운 음식이 넘쳐났다.

쌀밥이 유일한 식량원이었던 시대가 어느 순간에 지나가버린 것이다.

사회 발전 속도가 너무 빨랐다.

조선인들의 수익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광해가 막대한 수익에 기반하여 백성들의 고임금 정책을 실시한 이유도 있었지만 소득분배 5원칙에 의한 성과급 지급이 소득 상승을 가속화 시켰다.

주체할 수 없이 늘어나는 교역량에서 거두는 수익 중 2할이 온 나라 백성들에게 품삯에 더해 풀리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요사인 개인 마차를 모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어 광해가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탐라를 통해 제한적으로 말이 공급되던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다.

남간도를 통해 여진의 말이 무한대에 가깝게 공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성은 요즘 출퇴근 시간 도로의 수용량을 넘어서는 마차들로 혼잡했다.

조선시대에 자가용과 러시아워라니······.

어느새 그 생각이 떠오른 광해가 미간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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