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명나라 사신단
서신을 내려놓은 광해는 생각 외로 담담했다.
살부찬위.
선조가 죽은 이래로 언젠가는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드디어 수면위로 올라왔다.
“어찌 생각하는가?”
광해의 허락으로 서신을 읽은 이항복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모리배들이 감히 험한 말을 입에 담았나이다. 명나라 조정에 사신을 보내 그들의 압송을 요청해야 하옵니다. 잡아들여 그 입을 찢고, 사지를 끊어 죄를 물으소서.”
이항복의 격한 말에 광해군이 희미하게 웃었다.
“저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네. 그런 건... 하지만 그 말에 흔들릴 명나라 조정과 황실은 문제가 되겠지. 당장 교역에 문제가 생길 경우 타격이 클 테니까.”
자신이 걱정하는 부분과 전혀 다른 곳을 걱정하는 광해를 이항복이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교역도 중할 것이나, 그보다 명이 간섭을 해 올 것입니다.”
“조사를 빙자한 사신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는가?”
“예. 저들은 분명 사신을 보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무언가를 조선에서 빼앗아갈 궁리를 할 것이옵니다.”
이항복의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망명한 사림들의 바람처럼 명이 군대를 보내 조선의 왕위를 바꾸려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항복의 예상처럼 명이 조선을 흔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가려는 처세는 과거의 전례에 비추어 분명 시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홍순언의 서신이 당도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명은 황명을 받은 사신이 방문할 것임을 알려왔다.
그 소식을 듣고 광해는 고심했다.
명과의 관계를 어찌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찍이 사대를 거두어야 했지만 조선의 경제는 아직 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명과의 분쟁을 감당할 여력을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소강상태라고는 하나 왜와의 전쟁도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명과의 분쟁은 조선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광해는 당분간 명과의 관계를 현 상태와 마찬가지로 지속시키기로 결정했다.
*****
광해4년 9월.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도착했다.
그들은 배를 이용하여 천진을 출발해 조선의 바다로 들어왔다.
그들을 경비 중이던 충청 수영의 탐망선들이 발견했고, 이내 충청 수영의 판옥전선 2척이 나아가 호위해 제물포 포구로 들어왔다.
한성과 가장 가까운 포구라 어차피 그곳으로 인도할 요량이기도 했지만 사신단이 직접 제물포 포구를 지명했다.
아무래도 명나라 사신단은 포도아의 범선을 격파했다는 조선의 범선과 그 제작 시설을 확인할 요량인듯 싶었다.
하지만 이미 제물포 선거의 시설들은 모조리 뜯어 거제 건선단지로 옮긴 뒤였다.
더구나 범선은 더 이상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로 올라오지 않는다.
실제로 조선의 서쪽 대양을 책임지는 서태평양 함대의 작전구역에서도 서해는 빠져있었다.
더구나 동태평양 함대는 확장된 부산포를, 서태평양 함대는 거제를 기착지로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범선을 목격하는 일이 잦은 남해나 동해와 달리 서해에선 조선의 범선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제물포에선 그 두함대의 전열함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제물포는 막대한 화물이 오고가는 항구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당장 사신들이 타고 온 배가 접안한 제물포 포구엔 교역선으로 사용되는 판옥선 100여척이 몰려있고, 그 중 40척이 하역작업 중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것을 확인하고자 온 건 아니었으니 처음부터 명나라 사신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신들의 눈에 보인 조선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과거에도 두어 번 조선을 다녀간 적이 있던 사신단의 정사는 너무나 많이 변한 조선의 모습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포구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초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목재로 지은 큰 저택이 아니면 벽돌기와집이 대세를 이루는 시기라 제물포는 물론이고 조선 전역에서 초가집을 보기 어려웠던 시기다.
특히 잘 닦인 도로의 모습에 큰 놀라움을 가졌다.
사신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운송 수단도 왕실의 문장인 오얏꽃 문장이 수놓아진 6두 마차였다.
그걸 전후로 호위해 서 있는 병력도 모두 기마대였다.
광해가 즉위한 이래 내금위는 큰 개편을 맞았다.
내금위와 함께 내삼청으로 불리던 겸사복, 우림위가 모두 내금위로 통폐합되었다.
현재 내금위장은 북위별시위 기마군관을 지냈던 태평이 맡고 있었다.
그 휘하엔 조선인 소총병과 여진인 기마대로 구성된 내금위가 있었다.
당장 지금 사신단을 맞아 나온 내금위 기마대도 여진인 출신들이다.
물론 조선에선 더 이상 여진인 출신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남간도 출신 조선인, 또는 만주어 능숙한 조선인 정도로 불린다.
이것도 대부분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구별과 차별을 왕명으로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별은 쉽다.
아직까지 여진인들의 변발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광해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기에 사림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광해가 ‘날 위해 싸운 여진인들이 너희의 상투를 문제 삼는다. 어찌, 상투를 자르라 왕명을 내릴까?’란 말을 조회에서 하면서 쏙 들어가 버렸다.
이때의 광해는 정말 한다면 피를 뿌려서라도 하고야 마는 시절이었고, 그걸 막을 힘이 사림과 조당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공무 중이었으니 내금위의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는 그들의 머리를 사신들이 확인할 길은 없었다.
사신들이 마차에 오르자 내금위 기마대가 앞길을 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마차가 달리자 배에서 자신들의 말을 끌어내린 명나라 호위병들도 함께 달렸다.
10명 정도인 명나라 보군들과 하위 벼슬아치들은 그들을 위해 마련된 별도의 마차에 황급히 올라 그 뒤를 따랐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사신들은 또 한 번 놀랐다.
흙길이 아닌 포장된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디까지 이어진 것이오?”
사신의 물음에 이항복이 답했다.
“한성 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엔 부산포로 다시 이어진다. 그 중간 중간 각 지로 뻗어나가는 지방도로까지 합하면 설명하기도 복잡했다.
그래서 단순히 한성까지 만을 언급했음에도 사신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혼합 석회로 포장된 도로는 흙길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포장도로라고는 해도 조선시대에 현대와 같은 고르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반 흙길을 달릴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다.
더구나 그렇게 요철이 존재하는 도로를 달리는 마차의 진동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에 사신들은 또 놀랐다.
그 이유를 묻는 사신에게 이항복이 답했다.
“용수철입니다. 판형 용수철이라는 것을 써서 마차의 몸체와 객실을 연결해서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지요.”
이항복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사신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항복은 그런 그들을 보며 웃지 않았다. 자신도 충격완화 마차에 처음 타보고 그 원리에 대해 설명 들었을 때 저들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왕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조선의 변화는 그렇게 하루가 달랐고, 놀랍기 그지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자신도 이해하기 벅찬 것들 투성이인데, 타국의 사신에게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사신들도 다시 묻지 않았다.
명에서 사신으로 온 이들치고 거들먹거리기는 해도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내려는 자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사신들이 놀랐다고 마차에 전해지는 충격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버티기 어려울 만큼 심하던 것이 그런대로 버틸만하게 변했다고나 할까.
거기다 푹신한 방석까지 놓인 뒤로는 나름 마차여행이 할 만한 것이 되었다.
그 전에는... 가마를 주로 이용한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제물포에서 한성으로 가는 도로 중간 중간 기마포교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궁금했을까, 사신이 물었다.
“호위를 위해 둔 것이오?”
그 물음에 이항복이 사신이 열어둔 창밖으로 길가에 서 있는 기마포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도로의 순찰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조선 땅에서 감히 왕실의 마차로 이루어지는 행렬을 위협할 이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항복의 말에 사신들은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게 달린 끝에 사신단이 한성에 들어선 것은 3시간 뒤였다.
과거처럼 모화관 앞에서 조선의 왕이 사신을 맞는 행사도 없었다.
곧바로 궐로 들어간 사신단의 행렬은 미리 연락을 받고 대전 앞에서 기다리던 광해의 영접을 받았다.
관례에 어긋남을 꼬투리 잡는 것을 잊었을 정도로 사신들은 놀라 있었다.
이게 조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한 한성의 모습 때문이었다.
길고 반듯한 도로를 따라 집들이 정연하게 지어져 있었다.
또한 우마차가 다니는 도로와 사람이 걷는 도로가 완전히 구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우마차 도로를 건널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에도 놀랐고, 그걸 지키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에도 놀랐다.
고의적인지 아니면 길이 그런지 대궐로 향하며 대규모 상가 지역도 지나왔다.
상인들이 목 놓아 손님을 부르는 상가도 번듯했고, 물건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왕이 비명에 죽고, 그 자식이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나라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하긴 제물포에서 한성으로 오는 내내 무수히 많은 화물마차를 보았다.
그 많은 물자가 움직이는 만큼 상업이 활성화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그 모든 놀람은 궐내에서도 끝이 나지 않았다.
호위를 위해 서 있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총을 들었다.
군복이야, 다른 나라의 병사들이 거적을 입고 있던, 발가벗고 있던 상관할 바가 아니니 조금 특이해도 관심 밖이었지만 총은 아니었다.
“금군이 모두 총병이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인사도 나누기 전에 궁금한 것부터 물어오는 명나라 사신에게 광해가 답했다.
“칼도 차고 있습니다.”
그 말에 궐 이곳저곳에 서 있는 내금위 병사들의 허리춤을 본 사신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좀 작지만 칼은 칼이니까.
사신들이 본 것은 총검이다.
그렇다고 그걸 세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던 광해는 이항복이 수십 차례도 더 말했던 관례를 깡그리 엎고 사신들을 그대로 대전 안으로 안내했다.
놀라 있던 사신들도 미처 상견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 그대로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후에 아차 싶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봤지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을.
이후 명나라 사신들은 이항복의 걱정대로 이것저것 꼬치꼬지 캐물었다.
묻는 방향이 진짜 잘 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물고 뜯을 것을 찾는 것이 명확히 보일 정도였다.
그런 사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광해가 물었다.
“갖고 가고자 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허험험험.”
요란스럽게 헛기침을 해대는 사신들에게 광해가 말을 이었다.
“시간 낭비 맙시다.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것이고, 아니라면 때려 죽여도 못하는 것이니까.”
다소 과격한 언사에 사신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가 말했다.
“참, 내 인사를 시킬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것 같아서 오라 했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사람이 들어섰다.
그런 그의 등장에 사신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