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대마도 결전(決戰)
이즈하라의 조선 수군은 포구를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일자 횡진을 전개했다.
그나마 진형을 구축할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었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왜군의 함대는 코앞까지 달려와 있었다.
기동 대기조 함선들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적함대의 전진 속도를 늦추기 위해 포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충청 수영 대장선에서 깃발이 올라 그런 기동 대기조 함선들을 불러들였다.
그와 함께 대기하던 장갑귀선들이 일제히 전진을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온 적의 선봉을 뭉개고 적함대의 퇴각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노를 저어 속도를 올린 장갑귀선들이 무서운 속도로 적함대에 돌입해 들어갔다.
콰광.
선수포를 쏘고 돌진하는 장갑귀선들을 피해 왜선들이 황급히 좌우로 갈라졌다.
측면에 배치된 장갑귀선의 야포들이 그런 왜선들을 노리고 발포되었다.
콰과과과쾅!
폭발탄들이 왜선의 선체를 뚫고 들어가 폭발하면서 화염이 적선 안에서 일렁였다.
이내 무섭게 번진 화염에 왜선들이 휩싸였지만 그런 선봉의 피해를 무시하고 적선들은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각오였다.
멀리 보이는 대장선에서 충파기가 올랐지만 해무 탓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장갑귀선은 몇 척에 지나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는 왜군 함선들에 대장선의 깃발 신호를 본 몇몇 장갑귀선들이 충파로 달려들었다.
쿵.
거센 충격음과 함께 들이 받친 왜선들이 밀리고, 또 깨어졌다.
아군 장갑귀선들의 충파를 목격한 장갑귀선들이 충파에 합류했다.
부수고 쏘고 돌진해 밀어내고 장갑귀선들이 왜군의 선봉을 뭉개 적함대의 진출을 방해했다.
포선을 정렬한 판옥전선들이 장갑귀선들이 펼친 저지선을 빠져나온 왜선들에 화염포탄을 쏘았다.
왜선들은 부서지고 화염에 불타오르면서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아군 함선의 잔해를 밟고 조선 수군 함정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듯이 굴었다.
이즈하라에 배치되어 있던 충청 수영 함선들 전체가 미친 듯이 포를 쏘았다.
그러는 사이 점점 왼쪽으로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을 조선 수군 지휘부는 인식하지 못했다.
조류가 왼쪽으로 흘러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전투에 매몰되어 왜군이 의도적으로 조선 수군을 이즈하라 포구의 왼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3백 척에 달하는 왜군 함대는 저돌적으로 조선 수군에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일단의 왜군 함대가 이즈하라 우측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5백 척의 왜군 함선들 중 육군을 최대치로 실은 2백 척의 왜선들이었다.
그 왜선들이 해무에 숨어 이즈하라 포구로 소리 없이 다가섰다.
처음 조선군이 그 함대를 발견한 것도 포구로부터 8백보 거리까지 접근 한 다음이었다.
땡땡땡땡땡.
육군의 경비체계인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가운데 해안포들이 포격을 가했다.
쾅!
여기저기서 포격음이 들려오고 왜선을 발견한 해안포들이 차례차례 포격을 시작했다.
한데······.
왜선의 전면을 폭발탄이 뚫고 들어가지 못한 채 튕겨나갔다.
당황한 해안포들이 재장전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오늘의 일을 위해 왜군은 상륙전을 전개할 함선들의 선수에 나무를 삼중으로 덧댔다.
자신들이 가진 석화시로 뚫을 수 없을 때까지 강화한 것이다.
그로인해 다소 속도가 떨어졌지만 작전 전개에는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 효과를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왜군 함선이 이즈하라 포구 가까이로 진출하자 송상현의 지휘를 받는 조선 육군이 왜군의 상륙에 대비해 모조리 해안가로 몰렸다.
소총 진지는 물론이고, 개활지에도 소총병들이 사격자세를 취한 채 왜군의 상륙에 대비했다.
콰광쾅.
다시금 들려온 해안포의 포격소리.
퍽.
이번에도 폭발탄들은 왜선의 선수를 뚫지 못했다.
대신에 선수 장갑에 틀어박히는 포탄들이 생겼다.
그 상태에서 포탄들이 폭발했다.
장갑판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화염이 선수에 옮겨 붙었다.
일부 함선에선 반쯤 뚫고 박힌 채 폭발한 화염이 배 안으로 불길을 뿜어 화재가 안으로 번지기도 했다.
포구에서 왜군 상륙함대는 5백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불타 무너지는 왜선들 사이를 또 다른 왜선이 불쑥 솟구쳐 오르며 다가왔다.
콰과과쾅.
거의 모든 해안포가 불을 뿜었다.
섬에 가까이 붙으면서 해무의 방해는 사라졌기 때문에 해안포에서 선두에 선 왜선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미처 사격을 하지 못하고 있던 해안포들이 포격에 가세하면서 탄막이 조밀해졌고, 한 번에 쏟아지는 포탄의 양이 폭증했다.
선두함에 꽂히는 포탄의 수가 수십 발에 달했다.
콰콰쾅!
선수에 틀어박힌 수십 발의 폭발탄들이 폭발하면서 선수를 날려버렸다.
뱃머리가 날아간 왜선이 그대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왜선은 포구에서 3백보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마치 아군의 시신을 밟고 올라서듯 적선이 그렇게 가라앉는 왜선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 나왔다.
콰쾅.
해안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탄을 발사했다.
퍼버버벅.
드디어 선수를 뚫고 폭발탄들이 왜선 안으로 들어갔다.
쾅콰쾅!
선체 안에서 폭발한 폭발탄에 왜선이 화염에 휩싸였다.
불이 붙은 외병들이 배 밖으로 뛰어내리느라 온통 난리였다.
바닷물 위로 떨어진 왜병들이 포구를 향해 미친 듯이 헤엄쳐오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움직임인지, 아니면 공격을 위한 상륙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조선군에겐 한 가지 대응 방법뿐이 없었다.
“쏴라!”
송상현의 명이 떨어지고 포구를 비롯해 해안가에 몰려 대기하던 소총병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타다다당!
요란한 소총소리에 물위에서 헤엄쳐 다가오던 왜병들이 속절없이 피를 뿜어내며 가라앉았다.
전투가 끝이 났다.
불현듯 달려왔던 왜군 함대는 흩어지는 해무와 함께 물러갔다.
수백 척의 왜선이 파괴되고, 수천의 왜병 시체가 해안가를 뒤덮은 채로 대마도를 향한 왜군의 파상 공격이 격퇴되었다
조선 수군의 피해가 여느 해전과 달리 극심했다.
격렬한 전투로 조선 수군 장갑 귀선도 5척이 격침되고, 3척이 반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중 1척의 경우엔 개판위의 좁은 통로를 걸어 내부로 침입한 왜군들과 선내 전투를 벌이던 끝에 중과부적을 이기지 못해 자폭한 장갑귀선이 끼어있었다.
하지만 조선군 지휘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장을 일일이 살피기엔 전투가 너무 다급하고 격렬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가깝게 다가든 왜선들과의 선상전투로 판옥전선 6척도 반파되고 다수의 병사들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가깝게 붙기 위해 감수한 왜군 함대의 피해도 컸다.
조선 수군과 결전을 벌였던 왜군 함대도 절반이 격침되어 대마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특히 상륙전을 전개했던 함선들의 피해가 컸다. 2백 척이 넘는 상륙전 함선들 중에서 살아 돌아간 배는 50척도 되지 않았다.
살아 돌아간 왜선의 수는 모두 합쳐 2백여 척에 불과했다.
이즈하라에서 이처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히타카츠는 먼산만 바라봤다.
그쪽으로는 왜군이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마도에 진주하는 조선군 지휘부는 긴장했다.
대규모 결전을 피해왔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왜군의 행보였기 때문이다.
왜군은 마치 겨울 동안 모아두었던 전력을 토해내듯 달려들어 왔던 것이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서야 확인된 피해도 있었다.
개전 초기 대마도에 배치되었던 조선 수군 탐망선들 중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뒤늦게 확인 된 것이다.
불행히도 이즈하라와 이키 섬 사이에서 작전 중이던 탐망선들 중 귀환한 배는 단 한척도 없었다.
대마도 결전이라 불리게 된 전투 소식이 전해진 조선에선 곧바로 대마도에 배치되어 있던 수군을 충원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너무 많이 죽고, 너무 많이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
대마도 결전이 벌어졌던 날로 부터 며칠 후, 거제 건선단지의 개소식이 열렸다.
광해가 직접 거제까지 나아가 그것을 참관하고 축하했다.
제물포 선거를 페하고 통합하여 지은 거제 건선단지는 규모만으로도 제물포 선거의 열배가 넘을 정도로 컸다.
이 건선단지의 초대 건선장은 제물포 선거장의 자리에 있던 나대용이었다.
개소식 직후 거제 건선단지는 곧바로 철제를 부분 사용한 개량형 갤리온의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제 건선단지에서 최초로 개량형 갤리온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범선 제작과정의 체계가 완벽히 갖춰졌다.
장원에 이미 자리를 잡은 흐름작업이 건선 작업에도 도입되어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운송 가능한 크기의 부품들이 모조리 사전 제작되어 독, 그러니까 건선거에서 조립되었다.
치례차례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부품들을 이어붙이는 형태의 작업이었다.
작업 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개개의 부품들에 대한 정밀도와 작업능률이 올라갔다.
그 과정을 따라 건조된 개량형 갤리온의 경우 1달 만에 건조가 완료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생산된 개량형 갤리온이 시험운항과 선원 교육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광해2년 7월.
거제 건선단지에서 갤리온과 함께 개발이 시작되었던 목재 전열함이 완성되었다.
유럽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도 전열함이 완성된 것이다.
조선이 만든 시제 목재 전열함은 서반아가 설계하던 전열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 서반아의 전열함 설계는 그들이 운용하고 있던 최대의 갤리온인 마닐라 갤리온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일종의 마닐라 갤리온 확장판이랄까.
그 설계에 기반을 두고 진행된 까닭인지 조선 최초의 전열함도 비슷한 설계사상을 따르고 있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전열함은 전장 36M, 전폭12M로 3개의 주 돛대와 1개의 선수 돛대를 가지고 있었다.
선수루와 선미루를 한껏 낮추고 포갑판 2개를 갖춘 2층 포갑판 전열함이었다.
유럽과 달리 상갑판에는 포를 배치하지 않았고, 실내 포갑판 2개 층 만을 운영했다.
1개 포갑판에는 16문의 측면포가 장착되었고, 선수루와 선미루에 각기 2문씩의 선수포와 선미포가 배치되었다.
그로인해 전열함에 장비되는 야포의 수는 68문에 달하게 되었다.
아울러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건조된 함답게 미적치장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당시대 유럽 함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식들이 전혀 붙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유일하게 달린 것이라곤 장갑귀선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 바람날개를 통한 환기장치뿐이었다.
포갑판에 가득 차는 포연을 밖으로 빼내고 새로운 공기를 집어넣는 역할을 하는 장치였다.
개선과 개량을 거듭해서 이 장치도 바람으로 구동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을 위해 상갑판에는 환기장치와 체인으로 연결된 소형 풍차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바람이 없는 날에는 인력으로 돌릴 수 있는 장치도 달려있었다.
이 장치의 설치로 포격 시에 포연의 제거만이 아니라 해가 들지 않는 퀴퀴한 포갑판 특유의 냄새도 많이 사라졌다.
평상시에도 바람으로 돌아가는 장치로 인해 환기가 이루어지는 까닭이었다.
이 효과 때문에 맨 아래 선원들이 머무는 하갑판에도 같은 장치가 설치되었다.
그로인해 선실에서 머물 때도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게 된 선원들의 건강관리에 조금 더 유리해졌다.
광해가 거제까지 걸음을 해 그 첫 전열함을 시찰했다.
광해는 나대용을 비롯한 거제 건선단지의 중요 기술자들과 상의를 거쳐 조선의 제식 범선으로 전열함을 선택했다.
갤리온의 건조 및 개량에서 체득한 기술에다 철선을 만들며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전열함의 본격적인 개량과 개발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다.
광해2년 9월.
다시금 왜군 함대의 도발이 시도되었다.
이번엔 대마도도, 울진도 아닌 장기(長鬐, 지금의 포항 지역) 방향이었다.